國朝人物考四十二
심안세(沈安世) 묘지명(墓誌銘) - 신익성(申翊聖)
안세(安世)는 그의 휘(諱)요, 덕유(德裕)는 그의 자(字)요, 청송(靑松)은 그의 본적이며 청성백(靑城伯) 휘 덕부(德符)는 그의 시조이고 충혜공(忠惠公) 심연원(沈連源)과 익효공(翼孝公) 심강(沈鋼)과 청양군(靑陽君) 심의겸(沈義謙)은 그의 고조부, 증조부, 조부이다.
영의정 청천 부원군(領議政靑川府院君)에 추증된 심엄(沈)과 정경 부인(貞敬夫人) 능성 구씨(陵城具氏)는 그의 부모이고 파평(坡平) 윤흥파(尹興坡)의 딸은 그의 아내이고 족제(族弟) 심유진(沈儒珍)의 아들 심습(沈褶)은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이다.
만력(萬曆) 무술년(戊戌年, 1598, 선조 31) 2월 초10일은 그의 생일이고 병진년(丙辰年, 1616, 광해군 8) 3월 26일은 그가 죽은 날이고 5월 모일(某日)은 그의 장례일이고 통진 옹정리(通津瓮井里)에 있는 그 조부의 묘역(墓域)에 간좌(艮坐)의 언덕이 그의 넋이 묻힌 곳이다.
나이 12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형들에게서 수학(受學)을 하여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통달하였고 16세에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나 복시(覆試)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집안이 어렵게 되자 다시 과거를 보지 못하고 두문불출하며 면벽(面壁)해 앉아서 때때로 구문(舊聞)을 소리내어 외우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였다.
그러다가 오래지 않아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였다. 타고난 기품이 도(道)에 가깝고 자질은 간결하고 묵중하였다. 도량이 깊고 컸으며 행동은 법도를 좇았으므로 나이가 어렸어도 이미 노성(老成)하였다. 시를 지으면 맑고 아름다움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 속세의 잡된 생각이 전혀 없어졌으니, 마치 신선이 사는 곳에 들어와 있는 듯 하였다.
혹 그의 문고(文稿)를 쓰고 혹 그의 묘표(墓表)를 지었으니 후세에 전한 이는 소암(疎庵) 임숙영(任叔英)과 택당(澤堂) 이식(李植)이고, 그의 시를 알뜰히 모아서 그의 행적을 저술하여 제공(諸公)에게 알린 이는 그의 아우 심희세(沈凞世)이다.
그의 관향(貫鄕)과 세계(世系), 세상에서의 공적, 태어남과 죽음을 기록하고 그 말을 꾸미지 않으려 한 자는 동회(東淮) 신익성(申翊聖)이니, 이로써 묘지(墓誌)를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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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國朝人物考四十二 .
沈安世 墓誌[申翊聖]
安世, 其名也: 德裕, 其字也: 靑松, 其籍也。 靑松伯德符, 其鼻祖也: 忠惠公連源、翼孝公鋼、靑陽君義謙, 其高、曾、祖也。 贈領議政靑川府院君㤿、貞敬夫人綾城具氏, 其父母也。 坡平尹興坡之女, 其配也: 族弟儒珍之子褶, 其後者也。 萬曆戊戌二月初十日, 其生之日也: 丙辰三月二十六日, 其死之日也。 五月某甲, 其葬之日也: 通津甕井里, 其祖之塋而負艮之原, 其厝魄地也。
年十二而孤, 受學於諸兄, 通經史。 十六, 發解未及省試。 遭家難, 不復赴擧, 杜門面壁, 時自諷誦舊聞以自遣。 未幾, 病不起。 天資近道, 質素簡默。 器度淵偉, 動由規矩, 少年已自老成。 爲詩淸婉警絶, 絶無埃壒之想, 殆仙材也。
或題其稿, 或表其墓, 以傳於後者, 任疎庵叔英、李澤堂植也。 能輯其詩, 述其行, 俾諸公誦之者, 熙世, 其弟也。 書其鄕貫、世系、世續、始卒, 納諸壙而不欲文其辭者, 東淮申翊聖也。 是爲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