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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큰믿음설교 받아쓰기 원문보기 글쓴이: 주님생각
영적 체험과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의 위험!
2010. 11. 29.
민 12:1-3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이 영적체험 때문에 자기 위치를 착각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예언사역을 하는 교회는 예언사역 때문에 힘을 얻고 부흥하던지, 아니면 교회가 풍비박산 납니다. 예언사역을 일으켰던 많은 교회들이 문제가 생기고 교회가 파괴되었고, 성공한 경우는 소수입니다. 그 문제가 바로 아론과 미리암의 고백에 들어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신을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쯤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목회자의 권위에 도전하고 조종하려합니다. 그렇게 되면서 예언사역이 교회에 기여되는 것이 아니라 분란과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를 파괴하는 성향이 되어버렸습니다.
큰믿음교회에서는 계시나 체험이나 영적인 은사들이 사람을 교만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은사를 계발시키는 것보다도 교만을 깨트리는 데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의 교만을 깨트리고, 단순히 은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하게 만들고, 목회자의 권위에 철저하게 겸손히 순복하고, 예수님을 닮고, 주님과의 친밀함을 추구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교회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예언사역이 교회에 큰 도움이 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큰믿음교회의 예언사역은 한국교회의 새로운 모델이 된 것입니다. 은사사역에 있어서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한국교회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것을 사탄이 두려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예언을 하라고 하신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옳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옳습니다. 신학자나 목사, 교단들이 옳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옳기 때문에 성경이 하라고 하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큰믿음교회가 많은 문제의 원인을 알고 초기부터 적극 대응해서 교회부흥에 도움이 되고 성도들에게 유익과 덕이 되는 예언사역을 일으켰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예언사역의 모델이 되는 교회가 릭 조이너의 모닝스타 펠로우쉽 교회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집회를 해보면 릭 조이너 교회나 혹은 체안 목사님 교회에 가서 예언을 받아 본 사람들이 우리 사역자들에게 예언을 받아보고 훨씬 구체적이고 정확하고 수준이 높다고 하는 얘길 많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에서 일어난 예언사역이 세계적으로 모델이 될 만한 사역이고 귀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사탄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잘 됩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 왕들이 전쟁할 때, 자신의 머리로 전쟁한 사람들은 패배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그 말에 이해가 되든지, 안되든지 순종한 사람들은 모두 승리했습니다. 그런 자세가 신학자와 목회자들에게 필요합니다.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성경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언을 사모하라고 하면 사모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하면 사모하고, 풍성할 것을 구하라고 하면 신령한 것이 풍성할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큰믿음교회의 강점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교리나 전통, 사람들의 생각이나 우리들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문맥을 통해 정직하게 살피고 무조건 쫓아갑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큰믿음교회가 걸어온 길이고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최고의 지혜임을 믿고 말씀하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모세하고 아론과 미리암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변애경 목사님과 제가 오누이인 것처럼 이들의 관계도 오누이였는데 형제인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여기에 나온 것처럼 자기에게 나타난 체험이나 은사, 기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려고 하면 속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교만해지고, 권위에 불복하고 불평과 원망하는 자가 되어버립니다. 영적인 체험이 대단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 계시와 위대한 은사를 받았다고 해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하나님의 선물일 뿐입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그것에 속은 것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론과 미리암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모세와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차이점은 아론과 미리암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지도자가 아니지만 모세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지도자입니다. 미리암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일 뿐이지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적인 은사가 임했다고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론도 나중에 대제사장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한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가시떨기 나무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은 모세입니다.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도록 부르신 자는 모세입니다. 심지어 아론은 모세의 형이지만 모세의 대언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로에 대하여 신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신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는 영적 지도자이고 신은 아니었어도 바로에게 대하여는 신입니다. 왜냐하면 바로가 가지고 있는 신의 개념을 모세가 뛰어넘었습니다. 바로가 섬기는 우상의 능력들을 모세가 뛰어넘었기 때문에 바로가 볼 때 모세가 신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에 대하여 신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지만 아론은 ‘대언자’였습니다. 정부에 대통령이 있고 대변자가 있는 것처럼 아론은 그저 대변인일 뿐입니다.
나중에 아론이 11절에 ‘슬프다, 내 동생이여.’ 라고 하지 않고 ‘슬프다, 내 주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른 사람은 모세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권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선택하여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는 그에게 영적인 권위를 주십니다. 권한이 없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권위가 있고 권한이 있어야 일을 추진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있는데 영적인 권위입니다. 하나님께로서 온 권위이기 때문에 거스르게 될 때는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를 대적하는 자는 나를 대적하는 것이고 너희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이것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체험으로 같아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기름 부어 세우신 종들에게는 체험이나 계시, 은사로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선택하여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직접 선택하셔서 기름 부으시고 권위를 주어 지도자로 세우신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순복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신앙생활하면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목사님들도 목사님이지만, 큰믿음교회에 대해서는 변승우 목사인 제게 기름 부으시고 부목사님들은 저를 도와 주의 일을 하라고 주신 것이지 절대 동등한 것이 아니고 은사와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판단과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성도들과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있어 넘어서는 사람들은 품지 않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되고 다른 성도까지 병들게 하기 때문에 경고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어 쫓습니다. 교회는 친목단체도 아니고, 사랑 타령만 하는 곳이 아닌 군대입니다. 그리스도의 군대이기 때문에 사랑과 자유가 있으면서도 질서 있고 일사불란해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그것을 망각하고 체험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택하시고 기름 부어 영적인 권위를 주었는지 근본적으로 중요합니다. 모세가 없으면 아론도, 미리암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영적인 권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체험을 가지고 자기를 높이고 권위 아래 순복하지 않는다면 영적인 자살행위입니다. 어떤 은사나 체험, 계시를 받았든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 아래 거하고 복종해야 안전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문둥병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첫 번째는 체험이 아닌 권위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주님과 얼마나 친밀하느냐. 이것입니다. 언뜻 생각해볼 때에는 모세나 아론과 미리암이 동등하다고 생각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동등한 것이 아닌 비슷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후에 직접 말씀하시기를
4~8절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삼인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3인이 나아가매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내 말을 들으라.’ 이 말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내 말을 듣고 깨닫고 너희 생각을 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이것이 친밀감입니다. 똑같이 환상을 보고, 똑같이 음성을 들었는지 몰라도 친구가 대면하여 말하는 것처럼 주님의 얼굴을 보이신 것입니다. 친밀한 교제는 모세에게만 보이셨습니다. 은사로 자신을 평가해선 안 되고 주님과의 친밀함으로 자신을 재어 보아야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것을 품거나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어선 안 되고, 하나님께서 나를 무엇으로 부르셨는지 알아야합니다. 성경에서 자기 지위를 떠난 것이 사탄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탄일 수가 있습니다. 목사도 장로도 예언, 치유, 중보사역자도 사탄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떠난 것이 사탄입니다.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것처럼 그 역할이나 속성이 사탄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이 사람이 사탄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속성이나 행동이나 역할이 사탄과 유사하기 때문에 사탄이라 부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믿음의 분량을 주셨고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혜롭게 생각해야 되요. 자기의 위치를 떠나면 안 되는데 교만하여 져서 자기의 위치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의 위치를 반드시 지켜야 됩니다. 부르심 받은 대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사탄은 자꾸 자기가 부름 받지 않은 뭐가 되려고 해요. 양신 역사하는 사람들은 자꾸 자기가 부름 받지 않는 뭐가 되려고 그래요. 왜냐하면 사탄이 그 속에 역사해서 그래요. 교회 지도자들이 볼 때에는 전혀 그런 은사가 없고, 그런 기름부음이나, 능력이 없는데 양신 역사하는 사람들은 자꾸 자기가 무슨 은사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무슨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고, 뭐가 되려고 그래요. 왜냐하면 이것은 사탄적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친밀감입니다. 주님과의 친밀감을 통해서 자기를 재는 것입니다. 계시나, 은사나, 능력이 아니라 주님과 얼마나 친밀한가. 그것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평가해야 됩니다. 그래야 미혹이 안 됩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 차이는 무엇이에요. 3절에 나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그랬어요. 진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결과예요. 진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결과예요.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매 주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니 이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그랬잖아요.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시죠. 그래서 예수님을 정말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말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정말 대면한 사람들은, 단순히 예언을 잘하고, 병을 잘 고치고,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예수님을 자주 보고, 천국에 자주 올라가고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모세처럼 온유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겸손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으로 자기를 평가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 모세하고만 말하였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이런 체험가지고 자기를 평가하면 큰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서 어떻게 되었느냐, 주님을 봐서 어떻게 되었느냐, 천국에 갔다 와서 어떻게 되었느냐, 예언의 은사를 받아서 어떻게 되었느냐, 강력한 기름부음과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그래서 예언사역자가 되었다. 이러면 안돼요. 그래서 난 잘나가는 치유사역자가 되었다. 이러면 안돼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온유해져야 되요. 겸손해져야 되요. 예수님을 닮아야 되요.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됐어야 되요. 이게 그 사람의 크기입니다. 천국에서 사람의 크기를 재는 자가 있는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가장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분이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과 닮으면 닮을수록, 그분과 같으면 같을수록 천국에서는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체험으로 자기를 재는 자, 은사로 자기를 재는 자, 나타나는 능력으로 자기를 재는 자, 자기가 가진 직분으로 자기를 재는 자. 이것은 다 속고 있는 것입니다. 온유로 자기를 재야 되요. 겸손으로 자기를 재야 되요. 거룩으로 자기를 재야 되요. 사랑으로 희생으로 자기를 재야 되요. 여러분,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스스로 속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게 뭐에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내게로 와서 배우라’내게로 와서 성경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예수님 자신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겸손한 자는 높아지고 교만한 자는 낮아진다.’그것이 자라는 것입니다. 누가 진짜 큰 자인지. 그것이 자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겸손한가, 얼마나 온유한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는가. 이것이 자라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나 생각해 볼 때 끔찍했어요. 이단 사냥꾼들과 안 싸울 수도 없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또 고통당하는 성도들과 소속 교단의 목회자들을 위해서 안 싸울 수도 없고. 오만하고, 거짓말쟁이들이고, 양심은 화인 맞은 자들이고, 참소하는 귀신의 하수인들이고, 이 뱀들과 독사의 자식들. 이런 사람들하고 싸우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봐야 되는데 자꾸 독사를 보고, 주님의 온유하심을 봐야하는데 뱀의 혀가 날름날름 거리는 것. 그러다 보니깐 저도 모르게 제가 많이 거칠어졌어요. 거칠어지고, 화도 내고. 예수님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그랬는데 이해가 가려고 그래요. 얼마나 몰상식하고, 악질적이고, 저질적인 인간들인지. 그래서 제가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반성하고 있어요. 특히 <예수님의 얼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결국에는 예수님을 대면해서 보고,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런다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만났다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많은 대화를 했다고 예수님을 아니고, 천국에 까지 이끌려 올라갔다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마음을 알아야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그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분이 어떻게 말씀하는지 이런 것이 아니고, 그분의 음성을 알고, 외모를 알고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함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것을 닮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입니까. 그 말씀을 거울로 삼아서 보니깐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 위의 모든 사람들 보다 승하더라.’그랬는데 나는 이단 사냥꾼들하고 싸우면서 그런 부분에서 많이 망가졌다. 원래도 본질적으로 온유한 사람은 아닌데다가 그래서 자신을 많이 돌아보고, 그래서 요새는 목회자 회의 할 때나 이럴 때 온유해지려고 많이 애를 씁니다. 의도적으로도 온유해 지려고 부드럽게 말하고, 친절하게 말하고, 겸손하게 말하고, 온유해지려고 애를 많이 쓰는데.
아무튼 여러분 중요한 것은 주님을 얼마나 많이 닮았느냐? 그것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재봐야지. 다른 것으로 재면 미혹되는 것입니다. 아론이 대제사장이지만 착각한 것이 그것입니다. 미리암이 선지자이지만 착각한 것이 그것입니다. 대제사장이라고 같은 것이 아니에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선지자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세우 지도자들이 있어요. 대제사장이라고 지도자가 아니에요. 선지자라고 지도자가 아니에요. 목사라고 다 같은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지도자들이 있어요. 그들이 사도들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서 세운 지도자들이 있어요. 그 권위 앞에 겸손해야 됩니다. 순복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체험이 아니고, 은사가 아니고 주님과의 친밀감입니다. 모세가 가졌던 주님과의 친밀감. 그 친밀감이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수많은 기적을 행하고, 수백만 명을 영도하고 그래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그랬잖아요. 아브라함은 그냥 가장이었을 뿐이에요. 좀 부자였을 뿐이고, 식솔들이 좀 많았을 뿐이고, 그냥 가장이에요. 아브라함이 엄청난 기적을 행한 것도 아니고, 아브라함이 엄청난 사람들을 이끌고 사역을 하고 그게 아니에요. 아브라함은 그냥 평범한 가장이에요. 그러나 얼마나 위대한 인물로 성경에 나옵니까. 또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의 얼굴>이라는 책에서 아브라함이 모세와 비교에서도 얼마나 특별한 인물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까? 그것이 왜 그래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였어요. 그것이 아브라함을 독특하고, 특별하게 만들 것입니다. 위대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슨 직임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아브라함이 무슨 큰 사역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아브라함이 엄청난 기적들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그래도 아브라함은 독특하고, 위대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과 친밀했기 때문에 내가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비밀이 없었어요. 진짜 친한 친구들은 비밀을 나누는 것처럼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는 비밀이 없었어요. 그게 아브라함을 위대하게 만든 것입니다. 영적인 위대성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얼마나 친밀한가!
그리고 체험을 가지고, 은사를 가지고 자기를 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모세가 지면 위의 모든 사람들 보다 온유했던 것처럼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한가,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는가,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닮았는가. 이것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해야 해요. 올바른 목회자들은 그것으로 자신을 평가합니다. 올바른 사역자들, 올바른 신자들은 그것으로 자기를 평가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점점 낮아집니다. 권위 아래 순복합니다. 비난하는 자가 아니라 기도하는 자가 됩니다. 그것이 올바른 목회자들이, 올바른 사역자들이고, 올바른 신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마무리 삼아서 말씀을 드리면 여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7절에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나님이 모세하고는 대면해서 얘기했어요.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줄 참이었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모세에게 만큼은 보여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왜 그랬다고 그랬어요? 왜 하나님이 모세를 그렇게 특별하게 대우했습니까? 왜 다른 선지자들하고 다르게 모세를 그렇게 특별하게 대우했어요? 그가 충성됐기 때문에. 왜 아브라함을 특별하게 대우했어요? 그가 순종했기 때문에.‘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독자 이삭을 드려라.’그는 철두철미하게 순종했어요. 순종이 아브라함의 특징이었다면, 충성은 모세의 특징이었습니다. 모세가 충성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식으로 영적세계에서도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슨 집회에 참석해서 불덩어리 받으면 갑자기 슈퍼스타가 되어가지고 큰 은사와 능력으로 가지고 크게 쓰임 받고. 그런 것 없어요. 기도하고, 집회 쫓아다니고, 사십일 금식하고 능력 받으면 뭐가 갑자기 그 사람이 슈퍼스타가 나타나는 것처럼 주님을 위해서 크게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브라함 같은 순종입니다. 삶 속에서의 순종입니다. 진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모세와 같은 충성입니다. 그런데 그 충성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요? 큰일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큰일을 맡긴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일에도 충성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일에도 불의하다. 애초에 접근자체가 잘못 되었어요. 그냥 영성집회나 쫒아 다니면서 서로 예의도 안 지키고 양심도 없고, 자기 기도 받을 차례도 아닌데도 튀어나오고, 받았는데 또 받고, 자리 때문에 싸우고, 그래서 임파테이션 받아서 능력 받으면 무슨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처럼. 무슨 교회가 세상입니까? 그런 것 없습니다. 사람들이 복권 당첨되는 것은 일확천금 노린다고 사십일 금식해서 떼써가지고 능력 받고, 능력 받으면 불의 종. ‘난 불의 종 싫어요.’ 무슨 불의 종이 되요? 말씀의 사람이 되고, 예수의 사람이 되고,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지. 뭐 일확천금을 누리는 식으로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아브라함 같은 삶속에서의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무슨 사역을 했던 것이 아니에요. 아브라함처럼 일상 삶속에서의 순종이에요. 오랜 순종이 쌓이고, 독자 이삭을 드리라 한다고 할지라도 순종할 수 있도록 그렇게 순종이 성숙하고 깊어지고 온전해 질 때에 그 사람이 위대한 영적 거인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충성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양신역사 아까 얘기해 드렸습니다만 양신 역사하는 사람의 특징은 뭐에요?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청소하고, 식당 봉사하고, 주차 봉사하고, 어떤 부서에서 봉사하고 성도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갑자기 대변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갑자기 어떤 선지자, 대언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자꾸 하나님이 이런 것을 전달하라고 나를 만나라고 그랬다고 하는데. 어디서 귀신의 음성을 듣고 와서 교만해가지고, 주제 파악이 안 되어 가지고, 어디서 잡동사니 헛된 계시들을 받고 와서 자기가 선지자가 된 줄 알고, 선지자라도 그렇지 선지자가 왜 나한테 말해야 해요. 선지자면 선지자이지.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지 거창한 일, 큰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고수들 따라하지 마십시오. 밥 존스 목사님처럼 숫자로 계시를 받는 것부터 따라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고수 따라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아이답게 놀아야 합니다. 위대해지는 방법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에 있습니다. 교회 일을 오래하면서 보아온 것은 진짜 위대해지는 사람은 불이나 능력을 받거나, 예수님 보고 천국 갔다 온 사람이 아니라 삶 속에 아브라함처럼 평범한 일에 계속 순종의 길을 걸어왔던 사람입니다. 진짜 크게 쓰임 받았던 사람은 작은 일에 이름도, 빛도 없이 순수하게 충성되었던 사람입니다.
변애경 목사가 갑자기 슈퍼스타가 된 경우가 아닙니다. 아주 충성된 집사였습니다. 마음이 반듯하고 야망, 야심이 없고 교회를 사랑하고 목회자를 존중하고 헌금에도, 봉사에도 충성스럽게 순종하고 섬기는 집사였습니다. 저는 변 목사가 저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설교하면 말씀을 잘 듣고, 깊이 받아들이는 충성된 집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은사가 임했습니다. 은사가 임했다고 목사가 된 것이 아니라 모세가 주님의 온 집에 충성되었던 것처럼 계속 충성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강력한 은사가 임했습니다.
또, 간증을 들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옥경 목사님도 야망이 있던 분이 아닙니다. 목사나 선지자, 세계적인 강사가 되겠다는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남편 되시는 신재호 장로님도 병원을 하시지만 소득에서 가족의 생활비 외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셨습니다. 그래서 병원이 잘되고 명의이심에도 불구하고 개인 소유의 병원이 아직까지 없습니다. 필요한 생활비와 병원 운영의 기본적인 돈 외에는 모두 하나님 나라에 드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신재호 장로님은 영적인 재벌이라 천국에 가시면 얼마나 많은 상급이 있을지 참 부럽다고 말씀드립니다. 비록, 돈을 버는 사람이 남자이지만 모든 소득은 부인이 관리하는데 부인의 허락 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김옥경 목사님이 불을 받거나 은사를 받아 유명해지신 것이 아니라 평신도 때부터 오랜 순종과 오랜 충성으로 헌금생활부터 주님께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그 집은 병원 전세와 집 외에 아무런 재산이 없습니다. 수십 년 동안 잘되는 병원을 해오셨지만 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김옥경 목사님이 권사님이셨을 때 저의 비서실장이셨는데 지금도 제가 김옥경 목사님을 못 놓아드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충성된 분이 없었습니다. 지금 저의 비서역할을 하시는 분들도 마음가짐이나 섬김이 그 정도를 못 따라옵니다. 김옥경 목사님은 완전히 올인해서 섬기시는데 제가 태어나서 그런 섬김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불을 받거나 천국 다녀온 체험으로 순식간에 뜬 사람들은 금세 교만해져서 비뚤어지고 왜곡되어 사라집니다. 오랜 순종과 오랜 충성, 이것입니다.
저는 그런 정도의 간증은 없지만 저의 비전은 그냥 목사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에 세계최대의 교회에 대한 비전을 품었다는 말을 듣고 오해하시는데 저의 최고의 목표는 그냥 목사가 되어 주의 일을 하며 섬기는 것이고, 그것을 대통령이나 최고의 재벌이 되는 것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세상의 것이 배설물 정도가 아니라 나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으로 여길 정도로 주님의 종이 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야망을 갖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중심을 봐주신 것입니다. 어떤 체험이 여러분을 하루아침에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십시오. 제가 오랫동안 목회해오면서 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을 지켜봐 온 결과 평범한 삶 속에서 축적된 순종과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 이것이 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고 주님께 인정받게 만듭니다. 그렇게 인정받게 되면 주님께서 모세에게처럼 대면하여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작은 일에 충성되고 순종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 살 때, 하늘로부터 은사와 계시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은사나 불이 임해 이해타산이 맞아 크게 목회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가 많아 자신의 영혼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일상의 삶속에서 순종하는 사람, 모세처럼 충성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 앞에 특별하게 쓰임 받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그냥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순종하고 하나님의 일에 사심이 없이 순전한 동기와 기쁨으로 순종하다 죽으면 영광이고 행복이지 않습니까? 대통령이나 재벌이 그보다 나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역의 크기가 아니라 중심, 순종과 충성을 보시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부각되는 사역을 하지 못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죽었다고 해도 억울한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쓰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 잘 살고 잘 죽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모세에 대해 아론과 미리암이 어떻게 자기를 착각했는지, 계시나 은사나 체험이 어떻게 자기를 과대평가하게 만들어 실족하게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영적인 체험이나 자기에게 임하는 계시와 능력을 통해 자신을 재어보면 안됩니다. 그것은 진정한 잣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복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결정이 옳고, 그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주님의 친밀감으로 자신을 재어보아야 합니다. 또 온유와 겸손으로, 주님의 성품과 자신이 주님과 닮았는지로 재어보아야 합니다. 바꿔 말해 천국의 왕이신 주님 자신으로 우리를 재어보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4장에서 머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자라야한다고 했습니다. 머리는 주님 자신이요, 자란다는 것은 주님과 같아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이 우리의 잣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성품으로 자기 자신을 재어보아야 과대망상에 빠지지 않고 쉽게 자기 자신에게 미혹이 되어 비판하고 원망, 불평하여 범죄하는 자들이 되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올바른 잣대로 자신을 재어보게 하여주시옵소서. 교만을 버리고 원수마귀에게 속지 않고, 착각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식의 신앙생활을 버리게 하여주시옵소서. 어느 날 불이나 임파테이션, 계시나 주님의 방문을 받아 갑자기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주님, 아브라함처럼 일상생활에서 순종하고 모세처럼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큰일만을 원하는 자가 아닌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되기 원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주님께서 비전을 주시고 은사와 체험과 능력을 주시어 써주시면 감사하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순종하는 삶을 살았으면 족합니다. 주님은 직분이나 사역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순종하고 충성했는지를 보시고 평가하시기 때문에 순종하고 충성된 삶을 살았으면 성공한 것입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고 계신 집사님이 대통령이나 재벌보다 위대한 자입니다. 톱스타나 세계적인 석학들보다 위대한 자입니다. 주님, 우리가 그런 사람 되기 원합니다. 삶 속에서 순종하고 사역에 있어서 충성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제가 큰 믿음 교회를 사모하는 이유가 이 설교에 모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큰믿음 성도들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비누아투(맞나요)에도 큰믿음교회가 세워질 날이 올 것입니다^^ 사모하는 분들이 많은 곳이잖아요 축복합니다
바누아투군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