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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실학의 西學的 배경
나일수(서울대) 그러나 다산은 경학의 토대 위에서 성리학의 틀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성리학에 전면적 도전을 감행한다. 특히 다산의 실학론實學論에는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관과 그에 따른 학문관學問觀이 제시된다. 그렇다면 성리학과 다른 다산의 새로운 사상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가? 아무리 독창적이고 위대한 사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한 위대한 천재 사상가의 혼자 힘으로 구축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산의 사상 역시 그 시대의 지적인 풍토와 사회적 현실과의 만남에서 가능했다고 보아야 한다. 다산에게는 성리학과는 체제를 전면적으로 달리하는 새로운 사상과의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조선 후기의 피폐한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당시의 사회적 지도 이념인 성리학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다산의 학문적 자각自覺이 있었을 것이다. 탈성리학적인 다산 사상(보다 구체적으로는 茶山 實學)의 근원을 규명해 보려는 선행의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를 밟아오면서 점차 선명화鮮明化되고 있다. 여기에는 첫째로, 다산 사상의 출현을 송대宋代를 거치면서 관념적인 노불老佛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실천 지향의 원시유학原始儒學을 대신하게 된 성리학과는 다른, 노불사상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순수 유학 곧 ?공맹孔孟 본래의 유학(이른바 洙泗學)으로의 복귀復歸?1)에서 찾고자 하는 관점이다. 둘째로는, 다산 사상을 ?유학 내의 자기 발전?으로 규정하는 것으로서 ?수기修己 지향의 유학에서 실천實踐 지향의 유학(이른바 實學)으로 전환?2)한 것으로 파악한다. 사회의 현실적 문제 해결에 미흡했던 성리학의 공소성空疎性을 극복하고자 등장했던 조선 후기 실학의 체계 안에 다산 사상을 동류로서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셋째로는, 다산 사상의 독특성을 그 당시 사상계에 풍미했던 ?서학?3)의 수용에서 찾고자 한다. 다산을 실학자이면서 동시에 서학자로 규정한다. 기존의 유학적풍토에서 자란 다산이 새로 유입된 ?서학사상을 수용함으로써 유학을 극복?4)하였거나, 혹은 다산이 ?경학의 유신론적有神論的인 천관天觀의 바탕 위에서 천주교 교리에 공명共鳴?5)하게 되었거나, 또는 다산이 ?천주교 사상이 지닌 종교적 사유思惟를 유학의 체계 안에서 철학화哲學化?6)한 것으로 파악한다. 넷째로는, 다산 사상이 성리학과 구분될 수 있는 가장 큰 차이를 성리학 일변도의 지적인 풍토 아래서 실학또한 정당한 학문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학문관의 수립에서 찾는다. 다산 사상을 포함하는 실학은 그 이전의 성리학적 학문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학문관의 정립?7)에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율곡栗谷과 같은 실학 이전以前의 학자들이 단순히 시무책時務策의 차원에서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점을 지적하고 사회 개혁적인 주장들을 제시하는 것과는 달리, 다산은 사회 현실에 관한 연구와 그 개혁을 위한 주장들(이른바 實學)을 하나의 ?정당한 학문?으로서 취급하였다는 점이다. 실학 이전의 학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이러한 새로운 학문관은 물론 성리학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관의 수용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며, 따라서 다산 사상을 포함하는 실학은 ?성리학의 역사적 변용變容으로 파악할 수 없다?8)는 것이다. 1) 李乙浩, 『茶山經學思想硏究』, 乙酉文化社, 1966.
먼저 셋째 관점은 서학 사상, 곧 성리학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과 사상 체계를 가진 서양 과학과 천주교 사상과의 접촉에서 다산 사상의 독창성이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넷째 관점은 세계관의 변화가 수반된 학문관의 변화에서 다산을 포함한 여러 실학자들의 주장이 지닌 의미를 파악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학문관의 변화는 시대적인 모순만 가지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처럼 실학을 새로운 학문관의 정립으로 보려는 시각은, 실학자로서의 다산의 사상을 ?원시유학으로의 복귀? 또는 ?유학내의 자기 발전?으로 보려는 관점과는 대립되면서도, 다산 사상의 출현을 서학의 수용에서 찾고자 하는 관점과는 양립兩立할 수 있다. 진산사건珍山事件(1791) 이전에 청년 다산이 접촉했던 서학사상이 바로 다산의 세계관과 학문관 변화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상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통사상인 성리학이 사회 현실과 부합할 수 없다는 다산 자신의 현실 인식의 바탕 위에서 서학 사상을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의 형성과 함께 그로 인해 새로운 학문관을 전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산 사상의 형성을 서학과 관련지어 파악하고자 할 때 여기에 가장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다산 사상을 수사학洙泗學과 관련지으려는 관점이다. 그렇지만 성리학만이 배타적으로 통용되는 지적 풍토 아래서, 다산이 서학의 새로운 관점을 지니고서 공맹을 재해석한 후 서학의 관점에 동조하는 자신의 주장을 공맹을 가탁假託하여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산 사상과 서학과의 관련성이 확인된다면, 다산 실학의 근원을 원시유학과 관련지으려는 경향 및 유학 내의 자기 발전으로 보려는 관점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으며, 다산 사상의 근원을 서학의 수용에서 또는 서학의 수용에 따른 새로운 학문관의 정립에서 찾고자 하는 관점은 보다 타당성을 얻게될 것이다.
성리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킨 송유들 가운데서 주자朱子는, ?성性이 곧 이理?(性卽理)다 하여 리와 기를 써서 인성과 물성을 설명한다. 그는 만물 속에 보편적으로 내재된 리를 모두 포괄하는 최상最上의 리를 태극太極이라고 한다(總天地萬物之理, 便是太極)10). 세상 만물은 모두 이 태극으로부터 리를 분수分殊받은 태극의 구현체이고 또 이 태극은 리로서 만물 속에 내재해 있다11). 이 태극太極(理)이 인성 안에 내재된 것을 명덕明德이라고 하였는데 이 명덕은 만물의 이치를 구비하고 있으며 만사萬事에 올바르게 대응對應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12). 문제는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 명덕을 가림으로써 잘못된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지만 거경居敬을 통해 그러한 인욕이 발동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모습이 명덕에 와서 닿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명덕의 작용에 의하여 현상이나 사물의 올바른 이법理法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한 대응도 할 수 있으며, 그리고 이처럼 대응이 절도에 맞게 되면, 외인外人과 외물外物에도 감화感化를 주어 순종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13). 따라서 치인치사治人治事의 근본은 수신修身이고, 치인치사는 수신의 공효功效가 된다. 이른바 본말론적本末論的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근본根本에 해당되는 인성의 확립은 말단末端이 되는 물성을 자연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고 간주한다. 이러한 본말론에 규정받는 당시의 성리학적 학문관에 의하면, 본(修身)에 관계된 내용만 학문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수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인식된 내용을 공부하는 것은 학문하는 것으로 볼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말(農工商에 관한 내용인 治事의 學, 즉 實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했던 내용)의 영역은 사대부의 학문 범위에서 탈락되고 중인中人이하층에서나 다뤄야 할 범위로 간주된다. 사대부의 학문범위를 축소내지 위축시키고 있었던 성리학의 본말론을 지탱해주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 인물성동론에 의한 인도人道와 물리物理의 연계에 있다고 볼 때, 이러한 본말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성과 물성 사이의 분리가 필요하였다. 성리학의 관점은 인간과 사물 사이에 본연성은 동일하나 기질성의 차이로 인해 차이가 난다는 인물성동론과 이에 따른 인물성연계론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성삼품설性三品說을 제기함으로써14) 성리학에서 인간과 사물 사이에 동일하다고 보는 본연성이 아예 다르다고 하여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제시하며, 인간과 사물을 연속적으로 파악할 때는 주관을 떠난 객관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인물성이론人物性離論을 제시한다. 다산은 인성과 물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 하여 인성과 물성을 분리시키며 인도에 의한 물리物理의 자연적인 변화를 거부함으로써 본말론을 탈피한다. 그렇다면 다산으로 하여금 인성과 물성 간의 연계성을 분리하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산이 서학사상을 수용했다면, 인물성 간의 동이同異와 분리分離 문제가 서학사상 속에서 확인되어야 할 부분이다. 9) 『中庸』22, ?오직 천하의 至誠이라야 그 타고난 본성을 다할 수 있으며, 그 타고난 본성을 다할 수 있어야, 人性[修己]을 다할 수 있다. 人性을 다할 수 있으면, 物性을 다할 수 있고, 물성을 다할 수 있으면 천지의 化育을 도와줄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와줄 수 있다면 天地와 함께 설 수 있다. ?(唯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 ;『中庸』25, ? 誠이란 자기 완성[修己]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완성[治事]될 수 있게 한다.?(誠者, 非自成而已也. 所以成物也)
문제는 인간의 마음에 선천적으로 4덕이 내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질과 인욕의 방해로 인하여 내재된 덕이 밖으로 발현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때 명덕을 밝힌다는 것(明明德)은 경敬을 통해 마음을 바로 잡고(治心) 본체의 밝음을 회복함으로써(明心), 기질과 인욕을 제거하고 4덕德을 온전하게 발현시키려는 것이다. 성리학에서 수신의 요체는 치심治心과 명심明心에 있었으며, 치심과 명심을 통해 인성 안에 내재된 덕을 발현시키려는 것이다. 다산이 보기에15), 덕의 내재론과 발현론에 토대한 성리학의 입장은 수신의 요체를 도문학(格物致知)에서 찾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학』의 8조목 안에서 성신誠身(誠意正心) 앞에 격물치지를 둔다. 도문학의 공부를 통해 성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수신함에 있어 성의정심誠意正心 앞에 격물치지를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궁구窮究하는 격물치지 자체는 지리支離한 일이고 끝없는 탐구의 과정으로서 격물치지에 이른 후 일을 실행實行하는 것은 너무 늦다고 한다. 15) 『中庸講義補』2:44, 46, ?주자가 말하길, 誠身은 善에 밝다는(明善) 것이다. 格物致知를 통해 至善을 참으로 알지 못하면, 반드시 好色을 하듯 善을 좋아하고 악취를 싫어하듯 惡을 미워할 수 없다. … [기질의 방해를 극복하고 본연성을] 능히 극진히 한 사람은 知가 밝지 않음이 없으며, 처함에 마땅하지 않음이 없다?(朱子曰, 誠身在乎明善, 蓋不能格物致知, 以眞知至善之所在, 必不能如好好色如惡惡臭. … 能盡之者, 知之無不明, 而處之無不當也). 그런데 수신의 방법을 격물치지에 부여할 때의 문제점은, 수신의 방법이 자연이 사사물물事事物物의 이치를 탐구하는 격물치지와 연계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도문학의 공부가 없이는 수신이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는 점이다. 성리학에서 수신과 도문학의 공부가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은, 직접적으로는 성리학의 수신론에서 추구하는 제일 목표가 기질 제거와 본성 회복에 두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수신과 연관되었다고 여겨진 성리학만 학문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수신과 도문학의 공부가 연계되었다는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수신은 이론적인 도문학의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아울러 도문학을 통하지 않고는 수신이 불충분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말이다. 이때 수신과 도문학 공부의 연계 문제가 안고 있는 난점難點은 무엇이었을까? 성리학의 이기론에 기초한 인성관에 의하면, 상지上智와 중인中人에 비해 서민하우庶民下愚는 선천적으로 기질이 탁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인성관 아래서 서민하우는 태생적으로 탁하고 그릇된 기질을 부여받았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기질을 변화시키는 데 필수적인 과정으로 여겨지는 도문학의 공부에서도 배제되어 있었다. 서민하우는 사회적으로 공정한 대우를 받기에는 불리한 기질과 탁한 성품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교육 기회의 상실로 인하여 기질 개선의 가능성까지도 상실한 것이다. 이렇듯 도문학의 공부와 수신을 연계시킨 성리학의 수신론은, 서민하우로 하여금 성품에 있어서의 열악성을 주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육 기회마저 주지 않음으로써, 어쩌면 그들의 도덕적 삶을 개선하는 일에 스스로 포기 상태에 빠지게 하거나 아니면 당시 사회적으로 주어진 규범과 관례에 묵종하게 하였을 것이다. "[기질을] 맑게 품부받은 자는 현인이 되고 탁하게 품부받은 자는 하우가 된다"(稟之淸者爲賢, 稟之濁者爲愚)는 정자程子의 말과 같이 이러한 성리학적 구도 아래서, 개인의 선천적?유전적 요인인 기질氣質은 지적知的?도덕적道德的 능력과 필연적 관련을 맺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사회의 신분제를 정당화하고 구현하는 데에도 이 기질성의 논리가 사회적 이념으로 작용하였다고 보인다. 그러나 다산은 기질과 도덕적 능력 사이의 필연적 관련을 거부한다. 이와는 달리 다산은 명덕을 내재된 덕이 아니라 ?효제자孝悌慈 또는 인륜人倫?이라고 하여 인간의 마음에 외재적外在的인 것으로 생각한다. 덕이 선천적으로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는 성리학의 주장을 거부하면서, 반면에 원래 마음에 없던 덕을 행사와 실천을 통해 후천적으로 채워가야 한다고 하여 덕의 외재론을 주장한다. 다산으로 하여금 이렇듯 수신과 이론적인 도문학과의 연계성을 거부하고 덕의 내재론을 부정하면서 덕의 외재론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수신과 도문학 공부 사이의 불연계성과 덕의 외재론 여부도 서학사상 속에서 확인되어야 할 부분이다. 20) 『中庸講議』1:43, ?格物者格物有本末之物也, 致知者致知所先後之知也, 格致與明善不同. 明善者知隱之, 知微之顯, 知天之不可斯也."
성리학의 천은 모든 개별적 존재의 논리적 근거내지 그 변화과정을 주재主宰하는 원리로서 인식되는 것이었지 초월성超越性을 특징으로 하는 인격신은 아니었다. 이처럼 내성화內省化된 천 또는 우주의 자연법칙화自然法則化된 천은 도문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야할 것으로 인식되었고, 신앙적으로 하늘을 숭배하는 천에 대한 인격적 이해방식은 오히려 미숙한 인식의 단계로 평가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에, 상제上帝(天)에 대한 ?제의祭儀?는 천자天子만이 집행할 수 있는 특권이었고, 조선 사회의 군왕君王이하 모든 백성은 직접 천제天祭를 드릴 수 없는 것으로 제약받았다22). 조선후기 사회에서 천은 이기론 내의 보편적인 존재로만 인식되고 있어서, 도문학을 통한 천에 대한 접근 방식이 아니고서는 신앙의례信仰儀禮와 제사의식祭祀儀式을 통해서 천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관념적으로나 혹은 사회제도적으로나 봉쇄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도문학의 기회를 상실한 서민하우는 천에 대한 접근마저 봉쇄된 처지에 놓여 있었고, 결국 天은 도문학에 관여하는 사람들만의 독점물이 된 셈이었다. 수신의 요체를 도문학의 공부에 두었던 사회적 풍토 아래서 하늘에 대한 접근마저 어려운 서민하우는, 성리학이 원래 의도했던 바가 그러한 것이 아니었으나, 현실적으로 도문학을 통한 수신의 가능성은 제약받았을 뿐 아니라 관념적으로도 인격적인 천(통칭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한 수신의 가능성마저 상실했던 것이다. 도문학과 천(하늘)이 연계되어 있는 상황 아래서는 양자간의 연계성이 관념적으로 분리되어야 비로소, 도문학을 통하지 않고도 하늘에 대한 접근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은 이법아닌 인격신인 ?상제 천? 관념을 제시하면서 상제는 도문학을 통한 형이상학적인 탐구가 아닌 신앙적인 섬김의 태도로 다가가야 할 존재임23)을 주장함으로써, 도문학의 영역 속에 갇혀있던 천을 새롭게 신앙의 영역 속으로 분리해 내고 있다. 다산으로 하여금 초월적인 인격신과 형이상학적인 이법 간의 구분이 가능할 수 있도록 성리학과는 다른 천관을 제시해 준 것은 무엇일까? 다산의 천 관념 또한 서학 사상 속에 파악되어야 할 부분이다. 21) 朱熹, 『朱子語類』1:22, ?運轉周流不已, 便是那箇. 而今說天有箇人在那裏批判罪惡, 固不可.?
조선사회에 유입된 한역서학서는 상당수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사상계에 영향을 미쳤다. 다산은 ?서학서의 섭렵과 탐독이 그의 젊은 시절 당시 지식인들의 사회적 풍기?25)였다고 한다. 서학 연구가 본격화되었던 18세기 후반의 조선사회는 사상적 지도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성리학이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구분된다. 전자前者는 절박한 사회개혁의 필요를 성리학이 감당해낼 수 없었다는 점이고, 후자後者는 서학이라는 이질 사상체계의 유입으로 성리학에 대한 도전이 증폭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위기 의식은 지식인층(특히 在野)에서 보다 민감하였는데, 이들의 서학에 대처하는 양상은 성리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성리학의 이념에 보다 철저하여 이단異端 사상체계로 파악된 서학을 전면적으로 배격하려는 입장으로서 지방 사족과 중앙 지배층을 들 수 있다. 둘째는 서학을 이원적二元的으로 파악하여 리적理的 측면(天主敎 思想)은 거부하고 기적器的 측면(西洋 科學)26)만을 선별하여 수용하려는 북학파 실학자이다. 셋째는 서학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려는 입장으로서 당시의 정통사상인 성리학에 가장 회의감을 노정하는 집단으로 이들은 이른바 ?초기 서학자?27)라 부를 수 있다. 조선 지식인층의 서학 연구는 전적으로 한역서학서에 의존하여 이루어진다. 한역서학서는 서양 중세의 스콜라(schola)학문과 문예부흥기의 서양과학의 저서들을 한문으로 번역?번안한 것이 많고, 순수한 저서로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천주교 선교사들이 저술한 포교론적布敎論的인 한역서학서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저술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쓴 『천주실의』이다.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중국은 물론 조선, 일본, 몽고 등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에 속하는 여러 나라에 커다란 사상적 영향을 주었으며, 서양인이 한자로 저술한 서적 가운데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서학의 리적理的 측면(天主敎思想)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초기 서학자들도 들도 실은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읽은 후 서학에 관한 자신들의 관점을 형성하게 되며28), 태학생太學生시절 청년 다산 역시 이 책을 읽고 서학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형성하는 것으로 밝혀진다29). 24) 西學의 전개, 발전 및 쇠퇴과정은 實學의 그것과 각각 동일한 시기에 나타난다. 李元淳교수는 조선 서학의 전개과정을 접촉 도입기(17c-18c전엽), 검토 연구기(18c중엽을 전후한 반세기), 실천기(18c 후반), 수난기(19c초반 이후)의 4단계로 구분한다(李元淳, 앞의 책, 14-18쪽).
그러나 성리학의 인물성동론을 거부하는 마테오 리치는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영혼의 특성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영혼의 불멸성34)이다. 식물의 초혼과 동물의 각혼은 육체의 소멸과 함께 소멸되나, 오직 영혼만은 혈육의 부모로부터 육체가 형성되는 동일시점에 천주로부터 각기 개별적으로 창조되는 것으로서, 다른 사물과는 달리 오직 인간은 몸이 죽는다하더라도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35)고 한다.
둘째는 오직 인간 영혼에만 부여된 도의道義의 가능성이다. 금수와는 달리 인간만큼은 선을 행하고자 하면 선을 행할 수도 있다고 한다. 30) 李元淳, 앞의 책, 60쪽.
38) 앞의 책, 上:7, ?以其旣曉, 及其所未曉也." 42) 앞의 책, 下:7, ?仁義禮智, 在推論之後也."
마테오 리치가 상정想定하는 우주의 궁극자는 인격신이다. 반면에 성리학에서 우주의 궁극적 존재인 태극(곧 理)은, 우주만물의 생성 근거일 수는 있으나 창조주는 될 수 없으며, 인간의 본성 안에 내제內在되어 있어서 선의 궁극적 근거일 수는 있으나 희노애락의 감정을 지니고서 인간의 행동을 감찰하거나 규제하는 인격신은 아니다. 주자가 생각하는 천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면서 성性이 되어 하나의 본연지성으로 남게되고 마음 밖에서는 천리天理라는 앎이 없는 이법理法으로만 남게되어 주재의 위력과 권능을 잃어버린다.
천이 성으로 수렴되면서 성만 남고 천은 감춰진다. 성이 주체가 되고 천리는 객체가 되며, 인간이 주체가 되고 천은 객체가 되어버린다. 마테오 리치가 천과 성을 분리시켜 놓고 성을 제쳐두고 천을 숭배하고 있었다면, 주자는 천과 성을 일치시켜 놓고 성을 통해 천을 탐구하고 있다. 이점에서 천을 중심에 둔 마테오 리치의 사고가 신앙적이라면, 성을 중심으로 한 주자의 사고는 형이상학적이다. 인격신을 내세우는 마테오 리치는 수신론에 있어서도, 온전한 수신은 인격신인 천주와의 만남 속에서만 가능하다48)고 한다. 마테오 리치는 선의 근원根源을 인간의 심성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심성 밖의 인격신에서 찾는다. ?사람은 의지意志가 약하고 쉽게 변하여 스스로 수신에 힘쓸 수가 없으며 오직 천주와의 관계 내에서만 덕을 이루게 된다?49)고 한다. 마테오 리치는 사람의 심성 안에는 선의 덩어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성기호性嗜好만 존재할 뿐이며, 선의 근원은 인격신인 천주에 있다고 한다. 온전한 수신은 인간 스스로만의 노력이나 집념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원래 덕이 없고 덕의 가능성만 지니면서 의지가 약한 인간은 오직 초월적인 인격신의 존재를 상정시켜 놓았을 때라야 비로소 선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고, 또한 온전한 수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생각하고 있는 인간은 신에 대하여 자주적인 존재가 아니라 신에 의존적인 존재이다. 이상 『천주실의』에 제시된 내용을 요약하면, 성리학과 다른 서학의 새로운 세계관과 인간관은 인물성이론과 인성과 물성의 분리, 덕의 내재성 부정과 덕의 후천적 축적론, 그리고 초월적인 인격신의 인정이다. 성리학과 다른 서학의 세계관이 다산 사상 내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느냐를 검토해 보자. 45) 앞의 책, 上:4, ?天主造物, 卽以無而爲有, 一領而萬象卽出焉."
50) 『大學講議』 2:27, 28, ?本然之義世多不曉據佛書本然者, 無所始生. … 佛氏謂本然之性無所稟命. … 先儒偶一借用.?
인간과 사물의 다른 점은, 동물은 육肉으로부터 육으로 전해지며 영명과 관계가 없다. 영명을 갖는 인간은 영명이 없는 사물과 본성적으로 구별된다. 이렇게 보면, 다산의 영명은 마테오 리치의 영혼과는 용어의 차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마테오 리치의 영혼靈魂 역시 인간에게만 고유한 특성이었고, 마테오 리치가 영혼의 기능으로서 제시하고 있는 도의의 가능성과 추론력은 바로 다산의 영명이 갖는 기능과 동일하다. 양자가 모두 동일한 분류 기준과 특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단지 차이가 있다면 용어 선택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다산이 분류 기준을 ?성?에 놓고 성3품설性三品說을 제시하였다면, 마테오 리치는 ?혼?에 놓고 3혼설三魂說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다산의 성3품설이 마테오 리치의 3혼설을 계승하였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다산은 왜 용어를 혼에서 성으로 바꾸었던 것인가? 그 이유는 마테오 리치가 규정하는 혼의 개념과 다산이 규정하는 혼의 개념이 달랐던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리학에서 규정하는 혼개념은 기의 영역에 속한 하위개념이었으나, 스콜라 철학에서 규정하는 혼개념은 성리학의 리와 기의 모든 영역에 속하는 넓은 범위의 상위개념이었다. 이로 인해 마테오 리치가 기의 차원인 혼에 의한 인?물성간의 분류를 하였더라도 실상은 리의 차원인 성에 의한 분류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유학자인 다산의 시각으로 볼 때, 기의 차원과 혼동될 수 있는 혼에 의한 마테오 리치의 인?.물성 분류는 분류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용어의 부적합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되면 일반 유학자의 시각에 들어올 때 문자 그대로의 혼에 의한 인?물 구별방식은 기의 차원에서 인?물을 구별하는 성리학의 분류방식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그러나 마테오 리치의 인물성 구별방식에 동조하는 다산은, 마테오 리치가 용어를 부적절하게 선택했음을 파악하고서는 용어를 바꾼다. 즉 다산은 마테오 리치가 채택한 용어를 바꾸어가면서까지 성리학의 인물성동론의 관점을 배격한다.
유학의 수신론이 지닌 특징은 덕의 내재론에 기반을 둔 성선설이었다. 맹자의 4단四端(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도 이런 의미였다. 맹자에 의하면 심성 속에 본래 내재된 4덕(仁義禮智)으로부터 4단의 마음이 출현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단서설端緖說?이다. 반면에 다산은 인간 심성 안에 선의 가능성으로 부여받은 4단의 마음을 실천하면 4덕이 출현할 수 있다는 이른바 ?단시설端始說?을 주장함으로써, 맹자의 논리와 정면으로 벗어난다. 다산의 인성론은 수사학洙泗學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수사학의 인성론과 대립되는 다산의 관점은 마테오 리치와 유사하다. 마테오 리치는 덕은 ?선한 행동 이후에 추론되는 것?이라 하여 덕의 실재론을 부정하였고, 덕은 ?새로운 앎(즉, 獲得하는 것)이지, 본래 있는 것의 회복(즉, 꺼내는 것)은 아니다?라 하여 덕의 내재론을 거부하였으며, ?선행善行을 반복하면 덕은 자라나서 한정 없는 경계에 들어간다?56)고 하여 덕의 축적론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덕의 내재론을 부정하는 논리, 덕의 개념을 규정하는 방식 및 인간의 심성 안에 덕을 축적하는 방식의 세 가지 모든 측면에서 마테오 리치와 다산은 모두 동일한 입장 위에 서 있다. 55) 『中庸自箴』1:23, ?不息則久 久則徵 徵悠遠…悠遠則積德."
?천지天地의 귀신중 가장 존귀한 자는 상제이며, 상제의 체는 무형무질無形無質해서 귀신과 더불어 덕이 같다. 상제의 감격조림感格照臨함을 일러서 귀신이라 한다58)"고 하여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상제를 실재화實在化시킨다. 성리학에서 천은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성이 되어 하나의 본연지심으로만 남게 되어 주재하는 위력과 권능을 상실한다. 그러나 다산의 천은 본연의 성으로 수렴되지 않으므로 밖의 상제가 되어 안의 마음씨도 살피면서 주재의 능력을 갖는다. 다산이 규정하는 천(上帝)은, 인간 심성 내부에 도덕적 행동을 위한 근거로서 작용하는 양심 내지 도덕률의 차원을 뛰어 넘어, 인간의 심성 밖에서 인간에게 작용하는 신앙적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성리학에서 본성으로 수렴된 천, 곧 내성화內省化된 천天은 인간의 심성을 규명하는 과정, 다시 말해 학문하는 과정 안에서 다뤄지는 존재였다. 그러나 인간의 심성 밖에서 인간을 감찰 규제하는 다산의 천 관념에서의 천은 신앙적 숭배의 대상이다. 나아가서 다산은 유학사상의 전통 안에서 우주만물의 생성 근거이자 우주현상의 근원적인 두 가지 구성 요소로 간주되어 온 음양陰陽의 실재성을 거부한다. 선진유학先秦儒學이래 유학사상은 음양의 교착交錯에서 만물이 생성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다산은 ?음양은 체질이 없고 음양의 이름은 일광日光의 조암照庵에서 나온 것이다. 음양은 만물의 부모가 될 수 없다?59), ?만물物은 상천上天의 조화造化 가운데 있으며?60), ?5행五行은 만물 가운데 불과 5물五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다같이 이 한가지 물질인 데, 이 다섯이 만 가지의 물질을 생성한다니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은가??61)라고 하여, 이제까지 우주만물의 창조자로서 음양이 누려온 권위를 인격신인 상제에게로 돌린다. 다산이 음양의 창조성創造性을 부정하고 상제의 창조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볼 때, 다산 사상을 ?수사학에로의 복귀?로 파악하려는 입장은 이론異論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다산 사상을 서학의 수용으로 악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나아가서 다산은 도덕 수양의 근거를, 성리학에서와 같이 도문학의 공부에 두지 않고, 인격신인 상제의 임재성에 부여한다. 57) 『中庸講議』1:20, ?日監在玆, 故其戒愼恐衢愼獨 …."
요약해 보면, 다산의 세계관은 인?물성이론, 덕의 외재론 및 축적론, 인격신의 인정으로 파악되며, 다산의 이러한 관점은 『천주실의』에 제시된 마테오 리치의 서학적인 관점과 부합符合한다. 성리학을 정립한 주자는 『대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대학장구大學章句』를 남겨 놓았다. 다산 역시 서학을 접했던 젊은 시절(28세, 1789년)에 『대학』을 해석한 『대학강의大學講議』와 강진의 유배시절(53세, 1814년)에 다시 해석한 『대학공의大學公議』를 남겨놓았다. 『대학大學』 경1장經1章에는, ?먼저 모든 일에는 근본과 말단,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 있으며, 근본과 먼저 할 것에 힘쓰면 나중 할 것은 저절로 다스려지게 되는데, 그 근본되고 먼저 할 것은 수신이다?라고 씌여 있다. 『대학장구』에서 주자는 이 명제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단지 그 명제가 옳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주자의 설명 논리는 인성과 물성을 동일한 것으로 보면서, 선천적인 덕의 내재론을 인정하는 관점 위에서 제시된다. 인물성동론과 물아일체론에 기초한 주자의 시각에 의하면, 오심吾心의 리와 사물事物의 리를 일치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본(根本)이 되는 수신을 이룩하면 말(末端)이 되는 치사治事는 자연적으로 가능하다는 관점이 가능하다. 이 논리에 의하면 외물外物이나 타인他人을 다스리려는 일(治人治事)의 근본은 수신이고, 치인은 수신의 공효일 뿐이다. 따라서 선비들이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것은 기질을 제거시키려는 수신이며, 치인치사에 관한 것(實學에서 중요한 영역)은 선비로서는 부차적인 것 내지 온전한 수신을 방해하는 것으로까지 생각된다. 이로 인해 사대부의 학문 범위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근본이되는 수신에 관한 내용뿐이었고, 말단으로 여겨지는 농공상農工商에 관한 학(즉 實學)은 선비로서 해야할 학문의 범위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러나 『대학강의』에서 다산은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이 다 같은 일리一理로서 동일하다는 성리학의 이기론이 불교에서 빌려온 것이라 하여 인물성동론의 관점을 거부한다. 성리학과 정반대로 인과 물은 기질지성은 동일하지만 본연지성이 다르다고 보아 본연지성의 차이로부터 인물성을 구분하고 인물성의 연계성을 분리하는 다산에 의하면, 인성과 물성은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本性은 전혀 다른 것이어서, 내마음의 리와 사물의 리는 서로 별개의 차원에 있는 것이므로 상호간에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또한 ?물은 기질만 가지고 있으나 사람은 기질 이외에 도의의 성과 추론력까지 가지고 있으므로? 물은 인간보다 열등한 것이다. 물아일체와 인물성동론이 아니라 물은 이제 인에 대해서는 지배와 종속의 대상이다. 나아가 인도人道의 연구에만 한정되어서는 안되고 물도物道를 별도로 연구해야 한하는 것이다. 다산은 물도는 연구하지 단순히 마음을 경건히 함으로써 풍년을 가져오려는 성리학자의 태도, 곧 인도로서 물도를 대체하려는 시도를 힘을 주어 비판한다. 치인에 관한 것(法律과 醫療에 관한 내용)과 치사에 관한 것(農工商의 原理에 관한 내용)을 연구하는 것도 선비의 정당한 정당한 학문 범위로 인정된다. 실제로 지력知力이 뛰어나고 육체 노동에서 벗어난 양반층이 실학에 관한 내용을 정당한 학문으로 수용하지도 않았고 실학에 간여하지도 않았던 조선후기의 사회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제도를 개혁하는 것도 절박하였지만, 실질적으로 학문에 종사할 여유가 있었던 양반 사대부들의 학문범위를 축소시키고 학문의 폭을 제한하였던 성리학적 학문관을 새롭게 개혁해야 하는 일도 긴급히 요구되는 과제였다. 인성과 물성을 분리함으로써, 수신과 치사를 분리시킬 수 있고, 따라서 치사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일도 학문의 범위에 들어올 수 있다는 다산의 논리는, 실학도 정당한 학문의 자리에 들어올 수 있다는 새로운 학문관의 정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학문관의 변화를 가능케 한 다산의 논리가 인물성을 근원적으로 분리하는 서학의 세계관과 맞물려 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다산 실학의 출현은 서학과 연관지을 수 있다. 즉 태극太極(理)과 같이 앎과 주재의 능력이 없는 자연법칙을 우주의 절대자로 상정하고 있는 성리학과, 지각과 희노애락의 감정을 지니고서 인간의 사유와 행동을 감찰하고 규제하는 인격신을 절대자로 인정하고 있는 다산은, 도덕 수양의 측면에서 각각 어떠한 차이를 드러낼 것인가? 먼저 마테오 리치는 반복적인 선행의 실천은 인격신인 천주와의 만남에서 가능하다고 보며, 천주와의 관계 속에서 선행을 반복적으로 실천할 때 덕성이 함양된다고 하였다. 즉 마테오 리치는 덕은 도문학의 공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격신인 천주의 섬김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으로서, 덕성의 함양은 도문학의 영역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임을 제시하였다. 서학의 리적 측면(天主敎)의 주장에 의하면, 덕은 도문학의 공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격신인 천주와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덕성 함양의 문제를 바라보는 다산의 관점이 서학적인 것이냐의 여부를 확인하려면, 다산이 덕성의 함양을 도문학(格物致知)의 공부와 관련짓느냐 아니면 상제에 대한 신앙(知天)에 관련짓느냐의 여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다산이 덕성 함양을 도문학의 공부 아닌 인격신의 수용과 관련짓고 있다면, 다산의 관점은 마테오 리치의 관점과 부합될 것이다.
다산이 『대학』의 격물치지(道問學)와 성의정심(尊德性)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로부터 이 문제를 파악해 보자. ?격물이란 물에 본말이 있음을 아는 것이요, 치지란 사事의 선후할 바를 아는 것이니, 격치와 명선明善은 다른 것이다"라 하여 다산은 격치(道問學)와 명선(尊德性)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한다.
?수신은 성의誠意를 첫 공적으로 삼고 이로 쫓아 어가야 하여 이로 쫓아 손을 댈 것이니, 성의 앞에 어찌 2층의 공부가 있을 것인가"라 하여 성의의 앞에 격물치지가 올 수 없다고 한다. 도문학의 공부와 덕성 함양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의미이다. 도문학의 공부를 통해 덕성을 함양할 수 있다는 생각에 회의를 나타내는 다산은, 그러면 덕성은 어떤 방식으로 길러진다고 보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다산의 생각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속적인 선의 실천이 덕성의 함양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덕성 함양의 방법을 도문학의 공부 아닌 선행의 실천 곧 행사에 둔다. 그러나 다산이 생각하는 인간의 현실적 모습은 ?선을 행하기는 어렵고 악을 행하기는 쉬운(難善易惡) 존재?였다.
이처럼 인간의 심성을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에서 보려는 다산의 관점이 천주교 선교사들의 일반적인 인간관과 유사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 난선이악難善易惡의 심성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사욕私欲의 방해를 극복하고 선행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다산은 ?선에 밝다는 것은 감춰져있지만 뚜렷함을 알며, 미세하지만 나타나 있음을 알며, 하늘을 속일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이다. 하늘을 안 연후에 선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니, 하늘을 모르는 자는 선을 선택할 수도 없을 것이다?65)고 하여 불완전한 인간이 사욕을 극복하고 선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지천知天에서 찾는다. 심성 밖에서 사람의 행위를 감찰하고 있는 인격천을 인식하고서 선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심성 안에 원래 없던 덕이 후천적으로 축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신의 과정을 도문학의 공부가 아니라 상제와의 만남에서 찾고 있는 다산에 있어서, 도덕 수양의 요체는 지천과 행사에 있다. 비록 도문학의 공부를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더라도, 상제를 섬기면서 선행을 실천하면 덕성이 길러질 수 있음을 밝힌다. 이때 다산에게 있어서 상제는, 성리학자들의 천리와 같이 도문학의 공부 안에서 탐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신앙적으로 숭배해야 할 서학의 인격신이다.
자료출처 : 다산학술재단 [다산학]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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