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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를 찾은 어린이들. 한 친구가 기자의 카메라를 빼앗아 직접 사진을 찍어주었다. |
까사미아를 운영하는 최금자(엘리사벳) 씨는 “잇따른 청소년의 자살은 한국 사회의 폭력성이 학교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아이가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멘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탈리아어로 ‘나의 집’이라는 뜻의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는 어린이라면 누구나 조건 없이 찾아와 책을 보거나 쉴 수 있고, 간식으로 남편 김용길(베드로) 씨가 직접 요리하는 스파게티를 제공한다. 이들은 스파게티와 공간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도 어린이들과 게임을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멘토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한번은 몸에 멍이 든 친구가 까사미아를 찾아왔다.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봐도 어린이의 대답은 “넘어졌다”만 반복됐다. 이후에도 몸 곳곳에서 상처를 발견한 부부는 어린이와 대화를 나눠가면서 “엄마가 폭력적이다”라는 말을 듣게 됐고, 어린이 몸에 난 상처를 사진 찍고, 어린이와 나눈 대화도 녹음해 증거자료로 남겨뒀다.
어린이와 만난 지 6개월쯤 되던 어느 날 어린이의 머리에 피가 엉긴 것을 발견했다. 며칠 후에는 팔이 늘어져서 찾아왔는데, 병원 치료가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치료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결국 아동센터에 전화했고, 어린이는 현재 부모와 떨어져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최금자 씨는 “아이가 직접적으로 살려달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관심을 두고 보면 간접적인 메시지를 볼 수 있다”며 “어른들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50대가 되면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약속한 최금자, 김용길 부부.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를 운영하고 있다. |
세상 속 가정, 집의 문을 활짝 열다
최금자, 김용길 부부는 결혼 생활 10년이 지나면서 50대가 되면 따로 일하던 직장을 접고 의미 있는 일을 함께하자고 약속했다. 이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교회가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다는 것은 교회가 세상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면서 가정도 사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사회를 향해 문을 열어야 한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집의 문을 활짝 열어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를 시작했다.
김용길 씨는 “어린이에 대한 일차적인 양육자는 부모지만, 부모가 모든 것을 커버할 수는 없다”며 “어린이가 속한 동네, 마을 공동체의 성원들이 이차적인 양육자 또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어린이 카페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일단 어린이 카페의 문을 열어보니 기대 이상으로 많은 어린이가 찾아왔다. 김용길 씨는 “까사미아를 하면서 이 동네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됐다”며 “이제는 동네에서 아이들과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눌 정도로 스타가 됐다”고 자랑한다.
까사미아에서는 먹고 놀고 공부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요리사인 김용길 씨가 스파게티를 내놓으며 “부온 아뻬띠또(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면, 어린이들은 “그라찌에(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스파게티를 다 먹고 나면 접시에 남은 소스도 조각 식빵에 발라서 깨끗하게 먹는다. 김용길 씨가 “왜 깨끗하게 먹어야 하지?”라고 물어보면 어린이들은 “음식물을 안 남기면 자연을 보호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어린이들은 접시에 남은 스파게티 소스를 식빵에 발라먹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다. 김용길 씨는 “일종의 문화충돌을 경험하는 것”이라며 “유럽 사람들은 식빵에 소스를 발라 먹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접시를 닦아 먹는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문화적 차이를 이해한 어린이들은 각자 터득한 요령을 발휘해 작은 식빵이어도 소스를 잘 발라먹는다.
▲ 김용길 씨는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된 스파게티를 먹이기 위해 학원에서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
창의적인 어린이는 자율적인 어린이
최금자, 김용길 부부가 까사미아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율성이다. 어린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가정이나 공부하는 학교 모두 어린이를 틀에 가두어 자율성과 창의성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미 타율에 젖은 어린이들이 까사미아에서 처음부터 스스로 놀고 공부하지는 못했다. 어린이들은 “컴퓨터 없어요? 텔레비전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금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카드 게임을 한다거나 친구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책을 읽는다.
변한 것은 어린이들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최금자, 김용길 부부가 변했다. “저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지요. 그래서 책도 좀 보라고, 숙제도 하라고 얘기를 건넸어요”라고 말하는 최금자 씨는 6학년 학생의 말에 무릎을 쳤다.
“제가 책 읽을 나이인가요?” 학생의 말에 순간 당황한 최금자 씨는 이내 집에서도 공부, 학교에서도 공부, 학원에서도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공부의 ‘공’자도 듣기 싫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은 심심해하면 심심해하는 데로, 공부하고 싶어하면 그대로 그냥 함께할 뿐이다.
자율성을 보장받는 어린이들은 금세 창의성을 꽃 피운다. 따로 공부방과 놀이방의 구분이 없었던 까사미아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싶은 어린이들이 공부방을 따로 마련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카드 게임이나 보드 게임의 정해진 규칙을 가르쳐주면 “저희가 따로 규칙을 만들었어요. 같이 해볼래요?”라고 되묻는다. 넓은 세상을 알려주기 위해 세계지도를 걸어놨는데, 어린이들은 국가 이름 외우기 퀴즈, 국가 경매 등의 놀이를 만들어냈다.
까사미아라는 공간에서 어린이를 맞이하는 이들의 사랑은 각별하다. 동생의 집에서 세를 들어 시작한 가난한 결혼 생활에서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김용길 씨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신혼을 차린 이 공간에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며 “그래서 이곳 까사미아는 저희에게 아주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힘을 주며 말한다.
▲ 어린이들은 따뜻하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고, 스파게티를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는 ‘까사미아’에서 추억을 만들어간다. |
까사미아가 없어져서 어린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아무런 지원 없이 두 사람의 힘으로 무료 어린이 카페인 까사미아를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후원회원 30여 명이 있지만, 기본적인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난방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겨울에는 살림이 더욱 쪼그라든다.
김용길 씨는 “처음에는 요일별로 메뉴를 적어 놓고, 해물 스파게티, 크림 스파게티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였어요. 그런데 점점 감당이 되지 않더라구요”라고 말한다. 지금은 주로 야채 스파게티를 내놓고 가끔 크림 스파게티를 내놓을 때가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하느님께서 이 일을 원하신다면 계속 카페를 운영하고, 그렇지 않다면 접자고 하면서 시작했다. 김용길 씨는 “지금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가 없어요. 이미 아이들과 맺어온 관계를 쉽게 끊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최금자 씨도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신뢰, 어른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 싶다”며 “까사미아라는 공간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까사미아를 자주 찾는 윤형준(12)은 “까사미아가 없어진다면 화가 날 것 같다”며 “스파게티란 음식을 처음 먹어봤고 아줌마, 아저씨랑 정이 많이 들었다”고 말한다. 코알라 아저씨, 빨간 안경 아줌마 등 스스럼없이 김용길, 최금자 부부의 별명을 짓는 어린이들에게 까사미아는 이미 소중한 ‘나의 집’이다.
까사미아가 문을 연 지 1년 6개월 정도가 지났다. 어린이들의 소중한 ‘나의 집’이 그들과 가까운 곳에서 지속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후원과 봉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최금자 씨는 “까사미아를 후원하는 분들을 살펴보면 이미 다른 좋은 곳에도 많이 기부하시는 분들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만큼 나눔에 익숙한 사람들이 먼저 기부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김용길 씨는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 어린이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들이 여러 곳에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청소년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확실한 답이 명쾌하게 있지는 않겠지만 최금자, 김용길 부부와 같은 시도가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그 실마리를 잡고 따라가다 보면 청소년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실천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그 미래를 앞당기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출처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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