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사념처>를 오해하는데 ... 사실은 ........... ‘身(kāya)과 수(受, vedanā, ☜복수형)’는 set이고 ‘心(citta)과 법들(法들, dhammā, ☜복수형)’도 set다.
그래서 .......... ‘身(kāya)’은 <두 가지 측면에서> 거론된다.
<身至念(kāyagatā sati)이라는 측면과 身念(kāya sati)이라는 측면>이다.
<身至念(kāyagatā sati)이라는 측면> ; <‘身(kāya)’이라는 法(dhamma)>을 身內部에서 보고서 ........ ‘무명을 버리고 明을 얻는’ ....... 일종의 ‘軍茶利名(明)王(군다리명왕)’의 작전인 ‘두 길로 해탈하는 길’이다. 이때는 ....... ‘身(kāya)’이 ‘독립적인 處(āyatana)’가 아니고 ‘육입(六入, saḷāyatana, 六處, ☜단수형) 상태’.
만약 ‘독립적인 處(āyatana)’라면, 유체이탈하게 된다. 유체이탈은 ‘意識(mano-viññāṇa)’이 맑아져서 생기는 현상으로 ........ 수행의 결과로 생기는 ‘意成身(mano-maya-kāya)’과는 다르다.
Nissaṭṭhena h' āvuso pañcahi indriyehi parisuddhena manoviññāṇena kiṃ neyyan-ti? Nissaṭṭhena h' āvuso pañcahi indriyehi parisuddhena manoviññāṇena ananto ākāso ti ākāsānañcāyatanaṃ neyyaṃ,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neyyaṃ,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ṃ neyyan-ti.[MN. vol.1. p.293]
벗이여, 五根으로부터 벗어나고 청정(parisuddha)해진 意識(mano-viññāṇa)에 의해 무엇이 알려집니까? ―벗이여, 五根으로부터 벗어나고 청정해진 意識(mano-viññāṇa)에 의해 무한한 공간이라는 空無邊處가 알려지고, 무한한 識이라는 識無邊處가 알려지고, 아무 것도 없다는 無所有處가 알려집니다.
결국 ..... 오신통자(五神通者)가 되기는 하나 ........ 불교적 관점에서는 <학인(學人, aṭṭhaṅga를 배우고 ‘배울 것이 남은’ 상태)도 아니고 아라한(=無學)도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가 육신통자(六神通者, =두 길로 해탈한자)가 되기 위해서는 ......... 처음부터 다시 ...... aṭṭhaṅga(여덟 가지)를 배우고 추가로 2개를 더 배워야 한다.
‘아위자’는 오신통자(五神通者)가 육신통자(六神通者, =두 길로 해탈한자)가 되기 위해서.... 행자과정부터 시작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나 ........
<身念(kāya sati)이라는 측면> ; ‘sati(念)’는 ekayāna-magga(一乘道, 유일한 탈 것으로서의 道, =一佛乘道의 준말)로서, <아땅가(aṭṭhaṅga, 여덟 가지, =팔정도)와 다쌍가(dasaṅga, 열 가지, =위빠사나)>를 모두 아우르는 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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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치 ......... 저동차를 타고서 ‘차 내부에서 <차(車)>’를 보는 것이 .... ‘身至念(kāyagatā sati)’이고, ‘차 외부에서 <차(車)>’를 보는 것이 .... ‘身念(kāya sati)’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아위자’는 오신통자(五神通者)가 육신통자(六神通者, =두 길로 해탈한자)가 되기 위해서.... 행자과정부터 시작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나 ........ (생략) ..............
첫댓글
身念(kāya sati)은 <身(kāya)에 sati를 확립하는 것>이어서 ..... <身(kāya)이라고 부르는 ‘法(dhamma)’>에서 ‘集(samudaya)하는 法(dhamma)과 滅(nirodha)하는 法(dhamma)’을 보고서 거기에 sati하면 ....... 추후 ‘그 sati’가 택법각지(擇法覺支)로 작용하여 ..... <身(sakkāya, =오취온)으로부터 paññāvimutti(혜해탈, =한 길로 해탈)하는 paṭipadā(방도, 道)>다.
비구들이여, 혜해탈한 비구는 色(~識)을 nibbidā(싫어하여 떠남으로써, 厭離함으로써) virāgā(離貪함으로써) nirodhā(멸함으로써) anupādā(取하지 않음으로써) vimutto(해탈한 자) 즉 혜해탈자라고 부른다.(=Bhikkhu pi bhikkhave paññāvimutto rūp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paññāvimutto ti vuccati.)[SN. vol.3. pp.65~66]
身至念(kāyagatā sati)은 <신내증(身內證)을 통하여 ‘무명을 버리고 明을 얻는’> ........ 일종의 ‘軍茶利明王(군다리명왕)’의 작전인 ‘두 길로 해탈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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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念(kāya sati)과 身至念(kāyagatā sati)의 차이점>은 ‘upekkhā(우페카, 평정, 捨)’를 ........... 언제 어디에서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 .... 의 <차이점>이라고 추측된다.
‘捨(upekkhā)’는 ‘慾(kāma)’에 대응하는 것이어서 ........ 대부분의 中道(majjhimā paṭipadā, ☜aṭṭhaṅga)는 <‘捨(upekkhā)’를 얻음으로서> 마친다. 즉 ‘kāma-dhātu(慾界)에 대응하는 nekkhamma-dhātu(出離界)’가 시작되는 지점이 .... 바로 .... <‘捨(upekkhā)’를 얻는 지점부터>인 것이고 .......
<‘捨(upekkhā)’를 얻는 지점>이 분명한 것이 ①팔정도의 ‘제4선’, ②칠각지, ③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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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kkhamma는 ‘출가(出家,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남)’라는 용어로서, 세간(世間)에 대응하여서는 출세간(出世間)으로, 까마界(kāma-dhātu)에 대응해서는 出離界(Nekkhamma-dhātu)로 번역된다.
말하자면 .... <‘밖으로(bahiddhā) 法들(dhammā)’인 ‘오욕락(五慾樂, pañca kāmaguṇa)이라는 kāma[=세속적 욕망]’>를 즐기는 생활에서 벗어나 ...... ariyo aṭṭhaṅgiko maggo(팔정도)라는 성인(聖人)의 길에 들어서 ....... ‘차안(유전문)에서 피안(환멸문)으로 이어지는 길’[SN. vol.5. p.24]을 걷는 것.
@아위자
바로 ... 이 길이 <깨달음의 길>이고 <jhāna(禪)의 문(門, dvāra)[=행복의 문]>이며 <불사(不死)의 문을 ‘두드리며 서 있는 자’>가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