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일- 누가복음 4:14-30
잠언 8:6-10/ 찬송 398장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 예수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예수님의 공생애 출발점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침을 시작하실 때가 “삼십 세쯤”(눅 3:23)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활동 반경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뉩니다. ‘갈릴리’(-9:50),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여정’(9:51-19:28), ‘예루살렘’(19:29-)입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이 자라나신 곳입니다.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눅 2:39).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눅 2:51).
세례와 광야 40일 이후 예수님은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셔서, 공적 사역을 행하셨습니다(14).
누가는 예수님이 시작 즈음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하신 일을 전합니다.
역사가 누가는 ‘시간 순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사역의 ‘우선 순위’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이 펴서 읽으신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입니다(사 61:1-2).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18-19).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사면(大赦免) 곧, 희년(禧年)을 선언하십니다. 심판을 전했던 세례 요한과 달리,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19)를 선포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은 고향 사람들은 귀를 의심하였고, 이 말을 한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어서 더욱 놀라고, 불신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잘 안다고 여긴 나사렛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24).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한 고향 사람들 대신, 결국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기회가 돌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구원의 모범 사례를 두 가지 말씀하십니다.
구약시대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간 시돈 땅 사렙다 과부(왕상 17장)와 엘리사 선지자 때에 고침을 받은 수리아 사람 나아만(왕하 5장)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이방인에게로 향합니다.
회당에 있던 나사렛 사람들은 더욱 화를 내어 예수님을 동네 밖 벼랑 끝으로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거절하고 반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영하고 칭송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기준은 동향 출신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샬롬샬롬
☀ 다시 봄
1) 안식일에 낭독한 이사야의 말씀(사 61:1-2)은 곧 예수님의 소명(召命)입니다. 공생애를 출범하시는 예수님의 취임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정작 메시야를 알아볼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세상의 출신과 신분에 따라 분별했기 때문입니다.
☀ 새겨 봄
1) 예수님의 “주의 은혜의 해” 선포는 이상적인 메시야의 등장을 들려주십니다. 선지자의 말씀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대망과 예언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18). 하나님은 기름을 부으시어 주의 종으로 삼으신 그를 통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21)고 선언하십니다.
첫댓글 이 곳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으니 그 말씀을 듣는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사랑을 나누게 하옵소서.
주님 하나님의 섭리가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깨닫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북녘땅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임하길 소망합니다
주님, 오늘 말씀을 듣고 행함에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주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은총을 더하여 주옵소서.
"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실 것입니다. "
가난, 포로, 눈먼자라는 구체적인 시대상황에 보다 포괄적인 개념인 눌린자(the oppressed)로 마무리합니다. 때론 이런 저런 이유로 눌려 무력해질때도 있습니다. 주님앞에서 자유를 회복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