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假中(공가중) 三諦(삼제)와 中道緣起가 우리 本來面目(본래면목) p.151
바로 이 공ㆍ가ㆍ중 삼제(空假中 三諦), 불일불이(不一不二), 오온즉시공(五蘊卽是空) 공즉시오온(空卽是五蘊)이 우리의 본래면목이다. 중도(中道)연기적(緣起的)인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따로 진아(眞我), 참나, 주인공과 같은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본래면목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목격한 '생명과 사물과 현상'의 비어 있는 모습에 인간의 우뇌(右腦)는 어마어마한 공포를 느낀다. 이때 '반야지혜(般若智慧)'라는 좌뇌(左腦)는 우리로 하여금 공포를 벗어나게 한다. 공포(客-객관)와 '공포를 느끼는 마음(主-주관)'과 '공포의 일어남, 즉 공포를 느낌'은 연기적인 현상이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즉 '공포는 본래 없는 것'이라는 인식 전환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이 점은 『般若心經(반야심경)』에 "보리살타(菩提薩埵), 의반야바라밀다(依般若波羅蜜多), 고심무가애(故心無罣碍) 무가애(無罫碍), 고무유공포(故無有恐怖),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구경열반(究竟涅槃)"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함으로써 마음에 걸리는 장애가 없으며, 장애가 없는 이유로 공포심이 없으며, 전도된 몽상을 멀리 여의고 구경열반에 들어간다.
1,350여 년 전에 6祖 혜능(慧能)은 외쳤다.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 때가 끼겠는가?
그렇다 ! 35억 년 광대한 진화의 여로에 무슨 본래면목이 있어서 번뇌가 끼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아메바나 지렁이도 정신적인 번뇌가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생명체)의 본래면목은 중도(中道)연기(緣起)일 뿐이다. (本來面目 中道緣起 空假中 是三無差別). 기세간(器世間-우리가 살고 있는 산하ㆍ대지)의 본래면목 역시 중도 연기이다.
기계 속의 유령 : 자아는 죽었다. 피리 속에는 피리 소리가 없다. p.154
禪師(선사) : 송장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눈이 아니라 마음이 보는 것이다.
안과의사 : 봉사는 마음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아니라 눈이 보는 것이다.
부처 : 싸우지들 말거라. 눈과 마음이 온전해도 對象(대상)이 없으면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본다는 것은 대상과 눈과 마음의, 즉 대상과 심신(心身)의 緣起現象(연기현상)이다. 부처님이 이미 2,500년 전에 無我論(무아론)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와 중요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기계속의 유령 p.155
서양사상에 '기계 속의 유령'이라는 게 있다. '몸속의 영혼'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듯이, 우리 '몸이라는 집' 안에 누군가 들어앉아 '눈(구멍)이란 창'을 통해서 밖을 본다는 말이다. 그 누군가는 물론 귀(구멍)을 통해서는 듣고, 코(구멍)을 통해서는 냄새 맡고, 입(구멍)을 통해서는 맛을 보고, 피부를 통해서는 감촉을 느낀다는 말이다. 물론 생각도 그 누군가가 한다. 이런 주장을 '데카르트의 극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데카르트의 극장 : 머릿속에 들어앉아 영화 보듯이 외경을 보는 존재를 보라. 텔레비전 화면과 영사막은 눈에, 음향 장치는 귀에 연결되어 있다.
심장 의식설 p.155
창이 막히거나 망가지면 밖을 볼 수 없다는 논리는 이해해 줄 여지가 좀 있지만, 뇌가 망가지면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생각은 뇌가 아니라 심장이 한다고 주장하는 괴이한 이론가들은 더욱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지금이 고대 그리스(아리스토텔레스)나 이집트도 아니고, '뇌가 아닌 심장이 생각한다'라고 믿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인가? 지금도 인도인과 티베트인과 남방 불교인은 '마음이 심장에 있다'라고 믿는다. 한국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티베트 불교와 남방불교의 영향이다. 목 아래가 없는 사람에게 기계를 이용해서 피를 공급해 살게 하면, 심장이 없는 이 사람은 마음이 없는 사람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차라리 '마음은 피에 있고, 생각은 뇌가 아니라 피가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이다. 물론, '마음이 심장에 있다'라는 주장이나 '마음이 피에 있다'라는 주장이나, 둘 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호문쿨루스 p.156
요즈음 유행하는 '변신 로봇 머릿속에 들어앉아 로봇을 운전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로봇이 기계에, 그리고 사람이 유령에 해당한다. 또는 영화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긴 팔이 여러 개 달린 괴물 기계 가슴 속에 들어앉아 괴물 기계를 운전하는 사람(유령)을 연상해도 된다. 그와 같은 것들이 기계 속의 유령이자 영혼이다.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이자 해석기하학의 창시자인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영혼은 뇌의 松果腺에 존재한다'라고 생각했다. 뇌 깊숙이 있는 조그만 솔방울같이 생긴 송과선에 자리 잡고 안(눈)ㆍ이(귀)ㆍ비(코)ㆍ설(혀)ㆍ신(피부)을 통해서 외계에서 들어오는 감각 정보를 경험하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하 벙커에 자리잡은 사령부를 연상해도 좋다. 이곳의 사람들은 지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모든 정보를 보고 받는다. 데카르트에게는 송과선이 바로 이 지하 벙커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 기계 속의 유령을 믿으며, 이 유령이 자기들 뇌 속에 '작은 사람의 형태'로 산다고 믿는다. 이 작은 사람은 '호문쿨루스-인조인간'라고 불린다.
뇌에 흩어져있는 감각중추와 인지 중추 p.157
현대과학에 의하면, 인간의 감각과 인식 기능은 뇌 전체에 분산되어 있지 어느 특정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각중추는 후두엽에 있으며(그래서 뒤통수를 된통 가격당하면 시각을 잃을 수 있다.), 청각중추는 측두엽에 있다. 그리고 공의 표면 같은 뇌피질은 피부와 1대1로 대응되고 있다. 즉 뇌에는 온몸의 피부 지도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팔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팔에 간지럼을 느끼는 환상통(幻想痛)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얼굴의 특정 부위를 긁으면 간지럼이 사라질 수 있다. 바로 그 특정 얼굴 부위를 담당하는 뇌 부위와 팔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서로 인접해 있어서, 前者를 긁어줌으로써 인접한 後者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언어ㆍ논리ㆍ분석ㆍ수학ㆍ이성 등은 좌뇌가 담당하며, 직관ㆍ통찰ㆍ예술ㆍ공간 감각 등은 우뇌가 담당한다.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기능은 해마에 있으며, 변연계(邊緣系)는 감정을 담당하고, 전두엽(前頭葉)은 의사결정과 계획 등을 담당한다.
국가와 사회는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거기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 단일한 결정자는 없다. 집단을 움직이는 것은 단일한 결정권자가 아니라 제도, 즉 시스템이다! 뇌에도 이런 시스템이 존재한다. 수학적으로는 일종의 알고리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누가 이런 알고리즘을 만들었을까? 유신론자들은 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하겠지만, 진화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만든 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냥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선택을 통해서 '자연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생기고 발전한 것이다.
국가에서 대통령이 모든 결정을 하지 않으며, 일을 분담한 각 부처의 장관들이 자기 부처의 모든 결정을 하는 것도 아니며, 다시 장관 밑의 국장들이 자기 부서의 모든 결정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듯 고도로 발달한 복잡한 조직의 의사결정은 逆캐스케이드(역cascade-하부에서 상부로)를 이루며 연쇄적으로 이루어진다. 뇌의 의사결정도 마찬가지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자가 없는 국회가 더 좋은 예이다. 가장 높은 지위의 국회의장에게도 그런 권력은 없다. 국회는 국회법과 시스템에 의해서 돌아가지 일개인의 결정에 의해서 운영되지 않는다. 의사결정은 투표에 의해서 집단적으로 일어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회가 비리 혐으로 체포 위기에 처한 동료 국회의원을 보호하려고 방탄 국회를 열었다'라고 하면서, 마치 국회가 생물체와 같이 의지를 지닌 것처럼 묘사한다.
출처 : 강병균 교수 역저. 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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