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인트로영상 촬영기
서울시 오페라단의 가을 정기공연 베르디 빅5중 리골렛토에 이어 두 번째로 올려질 오페라 가면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의 인트로영상 제작을 위하여 무거운 촬영 장비를 지고 스웨덴의 스톡홀름(Stockholm)공항에 나레이터를 담당할 음악평론가 장일범(KBS-1FM 생생클래식 진행자)씨와 단둘이 7월27일 도착하였다.
지난해 서울시오페라단의 정기공연 마스카니의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까나에서 국내, 아니 아마 세계 최초로 시도한 오페라가 공연되기 전 작품내용과 다양한 정보를 촬영 편집하여 만든 영상팜플렛 격인 인트로 영상의 성공과 효과를 이번 작품에도 재시도하여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오페라 “가면무도회”를 감상하는데 관객의 입장에서 100%이상의 내용습득과 도움을 주고자하는 취지에서 박세원 단장님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오페라 영상팜플렛 제작은 적절하게 효과적이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는 멀티미디어의 변화와 비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양피지와 잉크로 시작한 기록 저장매체의 발전이 카세트테입, 16미리. 베타. 6mm비디오. CD .DVD .블루레이디스크. HD DVD 등등
최대의 저장용량과 최고의 화질로 나날이 발전하여 각 가정의 TV수상기와 플레이어를 교체하게 만들고 있으니 다른 모든 문화예술분야도 멀티시대에 맞춰나가야 할 것이다 .
이번 서울시 오페라단의 11월1일부터 공연될 오페라 가면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의 내용은 스웨덴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오페라가 쓰여 졌기 때문이다.
1772년 스웨덴의 왕 구스타프3세(사진참조)는 의회의 권한을 제한하고 절대군주에 오르면서 스웨덴은 강국이 된다, 스웨덴의 과학. 건축. 예술문화의 전성기에 스웨덴의 왕 구스타프3세는 가장 큰 영향을 준 왕이었다, 대중들의 의견수렴을 위하여 신문 발간등 언론발전에도 기여하였으며, 러시아배 60척을 격파한 스웨덴 해전사 최고의 승리를 기록한 인물이기도하고 스톡홀름 로얄 오페라극장도 그의 지시에 의하여 1782년 지어 졌다, 그러나 절대군주로써 권력에의 집착은 스웨덴 민중이나 의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지 3년후 인 1792년 의회의원들이 왕의 시해를 결심하고 실행에 착수하여. 결국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3세는 자신이 세운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가면무도회에서 야콥 요한 앙카르스트룀 대위에 의하여 골반부위를 총에 맞았고 바로 오페라하우스의 작은 방에 피신하여 한참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오페라에서처럼 바로 죽은 것은 아니고 13일이 지난 후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스톡홀름 로얄오페라하우스 2층에 그가 총에 맞고 머물렀던 방을 그대로 보존하였 두었다(사진참조)
물론 왕을 시해한 앙카르스트룀 대위는 대역죄로 스톡홀름시내 곳곳의 광장에서 묶인채 매질을 당한후 참수되고 만다.
이와 같이 실제 있었던 국왕시해사건을 베르디는 오페라로 만들었으며 이 사건 속에 존재하지 않은 앙카르스트룀 백작부인을 아멜리아로 등장시켜 국왕과의 숨겨진 사랑을 픽션으로 만든 대본이 노동자들의 봉기와 이탈리아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당시의 이탈리아는 나폴레옹3세의 치하에 있었으며 한동안 나폴레옹3세 암살미수사건으로 결국 검열당국의 공연불허판정을 내렸고 할 수없이 베르디는 나폴리에서의 초연을 포기하고 두 차례나 수정하였다 처음엔 폴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다시 불허판정을 받아 14세기의 나폴리로 설정하였지만 당국의 허가는 역시 불변이었다. 베르디는 포기하였으나
그때 마침 로마 아폴로극장장인 야코비치가 검열관들을 만나 타협한 것이 바로 보스톤판이다, 작품배경을 스웨덴에서 미국 보스톤으로 설정하고 주인공 구스타프3세를 보스톤 총독 리카르도로 그리고 앙카르스트룀을 부하인 레나토로 바꾸어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1859년 로마 아폴로 “Apollo” 극장에서 초연하여 대대적으로 성공한 후 1935년에는 원작의 무대였던 이곳 스웨덴을 배경으로 처음 공연을 하였다, 결국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의 배경은 이렇게 두 가지가 탄생되었으며 이번 서울시오페라단의 공연 배경은 원작에 의한 스웨덴으로 설정하기로 하였다.
친구와의 우정이냐 사랑이냐의 갈림길에서 사랑해서는 안 될 남녀의 사랑이야기와 정치소용돌이에서
왕의 시해로 이어지는 주제는 미국의 캐네디의 암살과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연상하게 한다.
구스타프 3세는 시와 연극에 관심뿐만 아니라 직접 본인이 하고 싶어 했으며 오페라를 모두 스웨덴어로 공연하게 했으며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각종 골동품을 사 모았다.
앙카르스트룀이 사용했던 무기와 구스타프3세가 입고 있었던 피묻은 옷들이 지금도 박물관에 온전히 전시되어있으며, 구스타브 3세가 1792년 암살당한 후, 1805년 그의 아들인 구스타브 4세는 그의 부친의 적이었던 러시아와 한편이 되어 나폴레옹에 선전 포고를 했지만 러시아는 나폴레옹과 강화 조약을 체결, 그 결과 러시아는 당시 스웨덴 영토였던 핀란드를 잃고(1809년). 국민들은 왕의 퇴위를 강요하게 되어 구스타브 4세는 폐위되었다. 이 때 왕과 의회의 세력 균형을 꾀하고자 권력 분립을 기초로 한 새헌법이 제정되었으며, 나폴레옹의 명장 베나도트를 스웨덴 왕위에 오르도록 하여 베나도트는 즉위하여 칼 요한 14세(Karl XIV Johan)가 되었다, 바로 스웨덴 현재 왕가의 시조이다.
이러한 역사를 지닌 우리와는 지리적으로도 먼나라 스웨덴,
북구의 베네치아, 바이킹 언어로 Beauty on Water "물위에 떠 있는 아름다움"(사진참조) 이란 뜻을 지닌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바이킹의 땅 스웨덴의 스톡홀름(Stockholm)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항구 도시이며, 1년 중 절반이 넘는 혹독한 겨울을 극복하기 위하여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던 바이킹이 최초의 왕국을 설립한 곳이 스톡홀름 북쪽에 위치한 세계적인 대학 도시 옵살라(Uppsala)지역이다. 13세기 중엽 바이킹세력이 쇠퇴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발트 해의 중요한 무역 항 스톡홀름(Stockholm)은 풍부한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고전적이면서도 현대미가 넘치는 활력의 도시로써 공기는 투명하고 공해가 없어 스톡홀름의 밝은 직사광선은 사진촬영에 더 없이 좋았으며 길을 걷는 다양한 민족의 피부색과 머리색 특히 금발여인의 머릿결은 유난히도 매혹적이었다.
왼쪽은 멜라렌호수, 남쪽으로는 감라스탄섬(Gamla Stan), 셰프스홀멘섬, 듀르고르덴섬, 동쪽에 리딩괴섬이 있고 북쪽이 반도에 면한 도시의 중심가이다.
특히 감라스탄의 참맛을 피부로 접하기에 좋은 곳은 오스터랑가탄 거리(사진참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보행자의 거리 바스터랑가탄은 바이킹의 흔적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터전이자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간이었다.
집집마다 흥미롭게 꾸며진 간판과 예쁜 창문들과 다락방에서 찾아낸 오래된 그림엽서를 연상시키는 오스터랑가탄을 걷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세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간간히 건노라면 오페라에 등장하는 구스타브란(사진참조) 이름의 상점과 울리카란(사진참조) 이름의 간판들을 마주한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오스카도 이곳의 왕의 이름으로 오페라하우스의 정면에 보면 구스타프의 G와 오스카 O를 이니셜로 부조하여 두었다
감라스탄섬(Gamla Stan)주변은 옛 구시가지가 밀집되어 있어서 걸어 다니며 촬영하기에 무리가 없는 전형적인 관광지 역활을 하고 있었다.
드로트닝가탄 로드(Drottninggatan)를 따라 걸어가니 콘서트홀(Konserthunset)이 왼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1926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정면에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조각가 밀레스(C. Milles)의 작품이 있으며 각종 음악회와, 노벨상 수상식이 거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 건너편의 회토리에트(Hötorget) 광장에서는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에 벼룩시장이 열리며
2블럭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세르겔 광장(Sergels Torg)이 나온다 이곳 광장 중앙에는 8만 개의 유리로 만들어진 타워가 솟아있으며 세르겔광장을 둘러싼 계단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과 노점 등으로 붐비며 타워의 광장앞 유리 건물은 문화회관(Kulturhuset Stadsteatern)으로 문화에 관한 각종 정보제공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 인포메이션에서 특색있는 정보를 한가지 얻어서 가기로 했다,
스웨덴 인구비례로 세계에서 가장많은 민간지역 합창단이 있는 것으로 봤을때 이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짐작이가는 행사였다 행사제목은 “오페라 싱어롱 ” 오페라아리아를 일반인들과 다함께 부르는 행사였다, 아니 대중음악도 아닌 오페라아리아를 다같이 부른다는 것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그곳 야외행사장에 가보았다, 그곳은 요트들이 들어차있는 해안가 언덕으로 벌써 많은 인파가 들어차 있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자리는 언덕위쪽 뿐에 없었다, 전자오르간 하나에 마이크와 천막하나뿐, 마침 비도 조금씩 뿌려지는 것에 아랑곳없이 간단한 발성부터 시작하여 정말진지하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얼마나 진지한지 사진기의 플레시를 사용할 수 없는 정도로 경청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다, 장일범씨의 따라 부르는 모습 또한 재미있었다.
요즘은 휴가철이라 오페라나 음악회가 모두 없는 아쉬운 시기였다 혹시라도 우리가 공연할 가면무도회가 유럽지역에 하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2008년까지 나와 있는 공연 예정리스트에는 없었고 특히 많은 경비가 들어가는 작품이기에 무대에 올리기 힘들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