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많다.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하, 밤잠을 설칠 정도다. 그러나 새로운 모험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즐거움도 있다."
11월 12일 (재)한국기원 이사회는 한국여자바둑 대표팀(상비군)을 구성하고, 첫 감독에 프로기사 양재호 9단을 선임했다. (재)한국기원이 세워진 이래, 한국바둑계가 공적인 의미로 국가대표팀 체제를 만든 것은 처음이다. 여성팀부터 먼저 창설된 것은 짧게는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아시안게임을 대비하기 위해서고, 크게는 여성기사들의 실력향상이 바둑계에 큰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남자 대표팀은 내년 3월이후에 구성이 될 예정.
감독제의를 받은 양재호 9단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평소 이러한 제도를 수차례 건의했던 양 9단이지만, 기반이 없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11월 21일 한국기원에선 'KB국민은행 2009 한국바둑리그 챔피온 결정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국리그가 한창 진행중이던 오후 8시무렵, 2층 검토실에서 양재호 감독을 인터뷰 했다. 양재호 감독은 감독수락 전과 후, "모두 고민이 많다" 밝혔다. 양재호 감독의 깊은 생각을 들어 본다.
- 한국기원과 일본기원에서 집단훈련은 개인간의 자발적인 뜻에 의해서였고 다분히 친목에 근거한 것이었다. 또는 개인의 '도장'시스템이다. 중국기원처럼 기관에 의한 집단훈련은 처음일 듯 하다. 중국기사들은 이전부터 출퇴근 개념이 있지만, 우리는 그런 개념자체가 없어서 힘들지는 않을까? "물론 출퇴근제도같은 그런 공식적인 제도는 없었다. (일종의 '강제성'이다. 지금까지 프로기사들에게 이런 분위기는 거의 없었다.) 이는 대체로 선수들이 원한 것이다.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여성기사들의 흐름이다. 분위기가 좋다. 국가상비군 같은 이런 제도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 바둑대표팀(특히 여성)은 어떻게 추진이 되었는지? 감독제의를 처음 받으셨을 때 어떠셨는지? "정관장배 같은 여자세계대회에서 한-중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 같았다. 이전부터 국가팀과 같은 성격의 공식적인 훈련 제도를 건의했었다. 감독할 생각보다는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로서 건의한 것이었다. 대표팀 감독으로 여류기사들의 추천을 받았다. 한국 여류기사들의 추천이 있었다고 들었을 때 일단 기분은 좋았다. 그러나 고민이 더 많았다. 과연 '아시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하는 실전적인 고민부터 이런 시스템에 대한 '공적인 지원'은 '지금 정말 확실히, 또 꾸준히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부분이 있었다. 많은 고민을 하다 결심하게 됐다. 개인의 희생을 각오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모험이다. 도전하는 즐거움도 있다."
- 최근 GS배 예선에서 여성기사들의 성적이 좋았다. 남자기사 그것도 20대 전후의 기사들을 상대로 2승, 3승씩 승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떤 자극이라도 있었는지? 양재호 9단이 추천받았다면 여성기사들이 자신들을 독하게 훈련시킬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매우 합리적인 사람을 찾았던 것 같다. "음. 월간바둑에서 중국여류들이 한국여자기사들의 기보를 연구하다 '아마추어'라고 평가한 것이 소개됐었다. 김미리 초단이 특히 매우 열받았다는 소리도 듣긴 했다. GS배에서 여류기사들 성적이 전보다 잘 나온게 있었다면 그런게 자극이 됐을 수 있다. 여류들에게 내가 편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유창혁 9단도 추천을 받았었고, 윤성현 9단도 추천을 받았었다. 윤 9단은 코치로 선임됐다. 내가 독하기다기보단 편하게 보여서 추천을 했을 수 있다. 허나 지금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대표팀이 구성되면 강하게 훈련(공부)을 할 것이다. "
- 한국리그 감독을 하는 것과 국가상비군 감독을 하는 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한국리그 선수들은 승부자체로서 승패와 상금이 달라지기에 감독보다 선수 개인의 책임이 더 큰 부분이 있다. 상비군체제인 경우 성적이 안좋으면 감독부터 비난의 목소리에 시달릴 거다. 기관의 정책이 들어가는 공적인 성격이 있기때문이다. (다른 종목 국가팀에 비하면) 이런 부분도 우리 바둑계에는 아직 생소할텐데? 게다가 훈련방법으로서 남자 기사들이 아무런 보상없이 두어 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국가기관인 중국기원과는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국가의 힘과 지시가 존재하는 중국과는 다른 환경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부분에서 정말 고민이 많다. 여류기사들의 '실력향상'을 위한 여건마련은 힘들다. 생각하다보면 밤잠을 못 잘 정도다. 누군가 앞에 마련해 놓은 기준이 있다면 이를 조금씩 고쳐가며 할 수도 있을텐데. 지금은 어떤 걸 해도 최초다. 여류기사들의 경우 입단하면 '공부'라는 면에서 '방치'되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현재는 젊은 (남성)프로들의 희생정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지금까지는 바둑은 '민간부문의 기여'였다. 이제는 '국위선양'이라는 공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는 것이다. 가령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들은 경우에 따라서 '국가연금수령'이 가능할 수 있다. 남여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혼성페어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가능할 수 있다고 들었다. 현대 한국바둑계에 처음 있는 일이 된다. 성적결과에 따른 감독에 대한 비난도 지금은 뭐든 최초이므로 상당부분 감수해야 한다. 그런 것도(감독에 대한 팬들의 질타등) 팬 서비스다. "
- 여성기사들의 성적이 좋아질 경우, 지지옥션배에서 보다시피 다양한 성격의 기전들이 최소1~2개는 더 생겨나고, 여류기전도 더 활성화 될 것 같다. 아직은 우리사회에서 '여성'이란 이름은 사회적 약자를 의미하니까, 사회적약자가 강자들을 이기면 뭐랄까 통쾌해하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성기사가 한국바둑계에서 이창호, 이세돌 아니면 최철한,박영훈 정도의 스타로 발돋움을 할 수 있을까?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 여자기사가 성적을 내면 보통의 남자기사들 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바둑보급에도 매우 유리하다. 여성기사의 실력향상은 지지옥션배나 정관장배처럼 많은 기전이 생겨날 밑바탕이 된다. 바둑계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기초다. 여류기사중 정상급기사가 배출된다면 당연히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이게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 양감독님 체제에서 그런 한국바둑계의 여성슈퍼스타가 나올 수 있을까? 기대해되 될지? "여자연구회는 지금도 있다. 그동안 여자연구회 스스로는 체계적인 준비를 하지 못했다. 실력향상과 친목도모라는 실용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여성기사들이 지금보다 체계적으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훈련시스템을 원한 것이다. 여성기사들중에 정상급의 스타기사가 배출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짧아도 1~2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아시안 게임 준비기간도 많이 안남았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실력이 뛰어난 기사와의 실전과 지도도 마련될 것이다. 입단하기전 처럼 공부해야 한다. 지금은 평범한 방법으론 힘들다. 최대한의 도움을 줄 것이다. 노력은 여성기사들 본인들에게 달렸다"
참조 : (재)한국기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0년 11월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에는 3개의 금메달이 책정됐다. 상비군의 훈련 비용은 2009년 대한바둑협회의 경기력 향상기금 중 1,500만원을 사용하며, 2010년부터는 아시아경기대회 출전 훈련비가 지급될 예정이다. 한편 남자상비군은 2010년 3월 구성할 예정이며, 내년 7,8월 경 최종 남녀 대표선수를 선발할 예정이다. (여자 상비군 선발과 인원, 대표선발 등은 11월 중 정해 시행할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