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중산층보다 절대 빈곤층으
로 떨어지는 중산층이 훨씬 많다. 실업난, 카드빚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이혼,
별거, 사별 등에 의한 가정해체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가난에 갇혀 있는 아이들 수는 기초생활보장수급가구 아이와 실질소득이 최저생계비
를 살짝 넘지만 여전히 가난한 차상위계층가구 아이, 그리고 실직과 가정해체로 양
육을 포기한 기아나 미혼모 아이 등 요보호아동까지 합하면 대략 100만명 정도가 된
다. 이는 전체 아동 1157만명의 8.6%로서 10명 가운데 1명 가까이 되는 수치이며,
문제는 이 수치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는데도 가
난한 아이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국가발전 동력에 지장을 줌은 확실하다.
가난에 익숙할수록 아이들은 꿈을 쉽게 잃어 간다. 태어나서 계속 가난의 수렁에 빠
져든 아이들은 질병에 노출되기 쉽고, 사교육의 기회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좀처럼 가
난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고통스러워
도 함께 이겨나갈 수 있었지만 풍요 속에 느끼는 박탈감은 자포자기하기 십상이다.
가난하지 않은 아이에게 과잉보호가 문제라면, 가난한 아이에게는 과잉방임이 문제
다. 가정, 학교, 사회가 어릴 적부터 가난한 아이들을 방치하면서도 가출이나 탈
선, 비행의 결과에 대해서는 지독하게 엄격하다. 희생자 비난(blaming the victims)
의 관례를 국가정책에 반영해 가난한 자에 대해 사회적 배제를 가하며, 사회, 경제
적 차별을 당연시한다. 복지정책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간주하며, 빈곤의 대불
림과 고착화 현상을 개인이나 가족의 게으름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난한 아이들을 방치하면 나중에 더 많은 복지예산으로 감당해야 할 짐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빈곤의 대불림을 막기 위한 실마리를 가난한 아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서 찾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가난의 굴레에서 미리 끄집어내 빈곤 세습
을 차단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물로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국가의 책임이 크다. 내실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립, 일자
리 창출 등 근본적인 빈곤탈출 정책의 실천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빈
곤이 세습되지 않도록 가난한 아이들에게 양육비 제공과 함께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
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자립능력을 고취하는 일이다. 아
울러 방임된 가난한 아이들의 분노와 좌절을 도닥거려 삶의 의지를 키워주는 복지서
비스정책을 수립하고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의 책임과 함께 일반 사회의 지원체계확립도 필요하다. 가난한 아이들
과 중상류층 가정의 결연사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형편이 나은 이웃이 어려운 이
웃 아이들을 일정 기간 돌봄으로써 새싹으로 키워 나갈 수 있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외국의 많은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교사회복지제도를 활
성화해야 한다. 학교사회복지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가정과 지역사회를 연계함으로
서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교육복지를 담당하며, 학생복지 차원에서 학교폭
력 등 학교부적응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당
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아이들 문제에 관심을 쏟는 일이다. 선거철에
만 잠깐 관심을 보이는 정치권의 모습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
고 불안한 상태로 보낼 수 밖에 없는 매시간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이들에게
다가가 가르쳐줘야 한다.
이제는 가난에 갇힌 아이들을 풀어주는 그러한 촛불들을 전국 곳곳에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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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세습, 국가책임 크다/ 서울대 교수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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