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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역학 2016년 10월호
제 103 話 평범한 행복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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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일 월 년 52 42 32 22 12 2
壬 己 戊 癸 甲 癸 壬 辛 庚 己
申 亥 午 丑 子 亥 戌 酉 申 未
午월에 월지 사령 분야가 丁火가 되니 <편인격>인데, 정인 편인을 합하여 보통 <인수격>이라 칭한다. 인수격은 편재와 정재를 ‛기신(忌神)’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인데 간혹 예외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비견이나 겁재가 인수의 주변에서 인수를 보호하고 있으면 재(財)를 용신으로 정하기도 한다.
이 여성의 사주가 이와 같아서 시간의 壬水가 용신이다. 시지 申金과 일지 亥水가 壬水를 도우니 용신의 힘이 튼튼하다.
용신을 생하는 辛酉대운중 24세 丙子년에 결혼하여 남편은 좋은 직장에 다니며 본인도 ‛리조트’에 근무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있는 여인이다. [44세 2016년 6월에 상담]
제 104 話 54세때 남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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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일 월 년 65 55 45 35 25 15 5
乙 己 辛 庚 甲 乙 丙 丁 戊 己 庚
亥 酉 巳 子 戌 亥 子 丑 寅 卯 辰
월지 巳중에 丙火가 사령하니 <인수격>이다. 사주의 연간과 월간에 庚金과 辛金이
떴고 월지와 일지가 巳酉로 金국을 이루니 남편을 상징하는 시간의 편관 乙木이 너무 제살되어 남편복이 위태한 사주.
격국이 다치거나 木 관성이 극이 될 때 남편이 위험하다. 고로 水가 강해지는 丙子대운 끝자락 54세(癸巳년) 봄에 남편이 혈액암으로 사망하여 과부가 되었다.
본인의 직업은 사주에 金이 많아 직장에서 금전을 주로 다룬다. [2013년 6월에 상담]
제 105 話 서울대 총장의 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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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일 월 년 65 55 45 35 25 15 5
己 辛 甲 庚 辛 庚 己 戊 丁 丙 乙
亥 卯 申 寅 卯 寅 丑 子 亥 戌 酉
월지 사령이 庚金 겁재라 월령에서는 격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생시로 눈을 돌려야 한다.
천간의 己土 편인은 신강사주에 필요가 없으므로 시지 亥水가 주목되는데 <상관격>으로 보아도 무난하지만 일지와 합하여 木국이 되며 월간으로 亥중 甲木이 투출하고 연지에도 寅木이 있으니 <재백격(財帛格)>으로 보아야 하며 특히 이 사주는 金과 木의 두 오행이 주를 이루어 상극하고 있으니 통관하는 亥水를 용신으로 삼아야 한다.
庚寅 대운중 2006(丙戌)년과 2010(庚寅)년에는 火기가 강하여 亥水가 무력하여 총장선거에서 낙선했으나 辛 대운에 들어서는 2014(甲午)년 양력 6월에 총장으로 당선.
제 106 話 군단장(三星)의 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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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일 월 년 66 56 46 36 26 16 6
己 辛 辛 戊 戊 丁 丙 乙 甲 癸 壬
亥 丑 酉 戌 辰 卯 寅 丑 子 亥 戌
대한민국 육군 中將의 사주.
일간 辛金이 가을 酉월에 생하고 연간지 戊戌土와 시간 己土 일지 丑土까지 일간을 생조하니 매우 신왕하다. 다행히 일지 丑과 시지 亥가 그 중간에 子水를 공협하여 亥•子•丑 북방의 水氣을 형성하여 강한 일간 金의 기운을 洩하여 길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면 재주있는 한사(寒士)에 불과할 수 밖에 없지만 이 사주는 귀기(貴氣)가 亥중의 甲木이 된다. 즉 金의 기운을 洩한 水의 기운을 다시 甲木이 洩하여 상관생재(傷官生財)로 생생불식(生生不息)하니 호명(好命)이 된다.
金이 강한 사주이면서 일지와 연지가 丑戌의 三刑까지 있으니 살기(殺氣)를 주관하는 군인이 되어 甲子대운 이후 丙寅대운에 까지 일취월장하여 별을 셋이나 단 중장에 이르렀으며 군단장을 역임했었다.
丁卯대운은 너무 강한 金土를 극하므로 약간의 부작용 효과로 더 이상 출세하지 못하고 58세(丙申년) 초에 예편되었다. [2016년 8월에 상담]
제 107 話 연적(戀敵)에게 칼을 맞고 흉사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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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음력 8월 7일 저녁 9시경 출생 男命]
시 일 월 년 45 35 25 15 5
丁 庚 辛 癸 丙 丁 戊 己 庚
亥 午 酉 卯 辰 巳 午 未 申
이 사람은 음식점 주방장으로 丁巳 대운 42세(甲申년)에 어느 여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여인의 전 애인도 역시 일식집 주방장 출신인데,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다투다가 칼에 찔려 사망했다.
불상사가 난 날은 甲申년 乙亥월 丁酉일 오전이었고 결국 2일 후 己亥일 丑시에 숨을 거두었다.
이 사주는 월지가 겁재이니 時에서 격을 찾아야 되고 신왕이니 시간의 丁火가 격국이 된다. 즉 <정관격>이면서 용신이다. 그런데 정관격에서 가장 싫어하는 상관 癸水가 연간에 같이 투출하였다. 즉 <정관 破格>이 되어 흉한 사주가 되었다.
대운 巳에서 월지와 합하여 金국을 이루어 흉신인 癸水를 생하고, 시지 亥水를 충하여 잠자던 亥水를 깨워 역시 丁火를 극하니 매우 불길하다. 사고가 발생한 해와 월에서도 격국과 용신인 丁火를 괴롭힌다.
여자 문제가 발생한 것은 도화살에 해당하는 사중(四仲: 子午卯酉)이 사주에 3개나 있던 것이 원인이고, 칼부림이 난 이유는 양인살이 근본적 원인이다.
제 108 話 富와 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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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류 수입업자의 사주.
시 일 월 년 57 47 37 27 17 7
壬 戊 乙 庚 辛 庚 己 戊 丁 丙
戌 申 酉 子 卯 寅 丑 子 亥 戌
월지 지장간 사령이 庚金이라 본래는 <식신격> 사주.
그러나 일지 申金과 시지 戌土이니 신·유·술(申·酉·戌)의 서방국(西方局)이 구비되어 있고, 연간에 庚金까지 투출하여 金의 기운이 사주에 가득한 채 일간 戊土를 지나치게 설기(洩氣)하니 식신격을 넘어서 종아격(從兒格)에 까지 이르고 말았다.
이럴 때에는 운에서 金을 돕거나 설기하는 土·水나 또는 같은 金의 오행은 좋지만 사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金과 상극하는 火나 木은 해롭다.
고로 己丑 土의 대운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여 판매하는 육류업으로 욱일승천(旭日昇天)하여 천억(千億)대의 부자가 되었으나 木의 기운이 강해지는 庚寅 대운에 접어들어 2008년(戊子)에 ‘광우병파동’으로 많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워낙 종아격이 튼튼하고 시간 壬水와 연지 子水가 金의 기운을 잘 설기하여 일종의 <식신생재>를 이룬 상태라 쫄딱 망하지는 않고 전성기 때 이곳저곳 방방곡곡에 사두었던 부동산이 많아 부(富)는 유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월지, 일지의 ‘식신’이 작동하여 먹는 업 즉 육류 수입업자란 것이다.
◈ 수백억 재산가
시 일 월 년 55 45 35 25 15 5
壬 丁 甲 乙 戊 己 庚 辛 壬 癸
寅 巳 申 未 寅 卯 辰 巳 午 未
월지 사령이 庚金의 <정재>분야라 [정재격 또는 재백격]이다.
일지 巳중에도 庚金이 있고, 계절이 가을에 해당하니 금기(金氣) 즉 재(財)가 강하다. 한편 丁火 일간은 연, 월간의 乙, 甲木과 시지의 寅木의 조력을 받으면서 연지 未中 지장간 丁火와 일지 巳중 丙과 시지 寅중 丙火에 통근(通根)하니 일간의 힘도 강하다. 즉 ‘신왕재왕(身旺財旺)’의 전형적인 부자사주다.
35세 庚辰의 대운에서 격국을 도우니 수입사업에 뛰어들어 급성장하여 중소기업 中富의 경지에 올라섰고, 현재 戊寅 대운에서 다소 힘들다고 엄살을 떨지만 예전과 같은 급성장이 안되니 하는 소리고 현재도 수백억 재산가이다.
◈ 임대업으로 小富
시 일 월 년 69 59 49 39 29 19 9
甲 己 庚 壬 丁 丙 乙 甲 癸 壬 辛
戌 丑 戌 辰 巳 辰 卯 寅 丑 子 亥
한로(寒露)를 지난지 2일이니 戌月支의 사령이 초기 辛金이라 <식신격>인데 연간에 壬水 財가 있으니 <식신생재격>이 형성되어 부자가 될 구조이다.
다만 월지가 연지와 冲이 되고 일지와는 刑이 되니 탁기(濁氣)가 생겨 큰 富는 이룰 수 없고 작은 富를 이루게 된다. 신약이라 시지 戌중 丁火가 용신이 되니 甲寅대운이후 수십억이 모아져 가세가 넉넉하여졌다. [2015년 1월에 상담]
* 대한민국 부자의 기준
小富(50億~100億) 中富(100億~500億)
大富(500億~1000億) 國富(1000億 이상)
이 기준은 2014년 7월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대한민국 富者보고서의 논문과 필자의 부자
실제 상담 경험을 합하여 定한 것이다.
◈ 폐지(廢紙)를 주우며 산다
시 일 월 년 64 54 44 34 24 14 4
戊 己 戊 丙 乙 甲 癸 壬 辛 庚 己
辰 未 戌 午 巳 辰 卯 寅 丑 子 亥
한로(寒露)를 지난지 18일이라 戊土 겁재가 사령한다. 연주의 丙午火가 일주를 강하게 생하며 연지 월지가 합하여 火국까지 형성하여 일간 己土를 생하니 이러한 때는 金으로 설기를 하거나 木으로 과강(過强)한 일간의 土기운을 억제해야 하는데, 戌중 辛金은 강한 화세(火勢)에 녹아버려 못쓰고, 辰중 乙木과 未중 乙木 또한 火로
흡수되어 土를 생하니 무용지물이다. 이 경우를 일러 편고(偏枯)하다고 칭하며 매우 하격의 인생이 된다.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에 올바로 살지 않아 교도소를 드나들더니 필자가 이 사람을 만난 50대초에는 극빈(極貧)하여 폐지를 주워 팔면서 연명하고 있었다. [2016년 6월]
제 109 話 술사(術師)들의 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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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白人(在鶴) 선생
1863년 11월 22일 20:00 乾命
시 일 월 년 88 78 68 58 48 38 28 18 8
丙 乙 甲 癸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
戌 丑 子 亥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강호 동양학 - 조용헌>
4.19 이후 서울에서 명성을 날렸던 술사가 전백인(全白人)이다. 그는 함경도 출신이었다. 온몸의 피부가 특별하게 희다 해서 붙은 별명이 백사(白蛇).
구한말에는 피부가 흰 사람을 잡아먹는 풍습이 비밀리에 내려왔다고 한다. 피까지 하얗다고 여기고, 그 피를 먹으면 불치병이 낫는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피부가 하얀 전백인은 10대 초반 무렵에 서울의 왕가에 잡혀 왔다.
왕가에 불치병 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검사를 해봤더니 붉은색이어서 죽음을 모면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간신히 살아난 그는 삼각산에 들어가 사주 공부를 하게 된다.
공부가 어느 정도 된 다음에는 중국대륙을 방랑하였다. 사주를 잘 보니까 어느 곳을 가든지 먹고 자는 비용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장제스(蔣介石)와 장쭤린(張作霖)의 사주도 보아주었다고 한다. 장쭤린은 서안사변(西安事變.1936년)을 일으켜 제2차 국공합작을 이루어낸 장쉐량(張學良)의 아버지이자 만주최대의 군벌이었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 와 있던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도 풀 수 없는 번뇌가 있어 전백인을 불렀다.
미나미는 전쟁터에 나간 사위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는데, 사위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를 알고 싶어 하였다고 한다. 그래야만 딸을 재혼시킬 것인지, 아니면 기다려야만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나미는 총독이라는 신분을 숨긴 채 조선호텔로 전백인을 불러들였다. 첫 대면에서 백사는 "딸 문제 때문에 온 것 아니냐. 사위는 총 맞아 죽었다"고 단칼에 찔러 버렸다. 통역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미나미는 혀를 내둘렀다.
조선에 기인 이사가 많구나! 감동한 미나미는 그 자리에서 직접 사인하여 전백인에게 '사주 면허증'을 만들어주었다고 회자된다. 우리나라에서 사주면허증 받은 사람은 아마 전백인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백사는 해방 이후 서울에 머물면서 이름을 날렸다. 4.19 이후 과도정부의 수반이었던 허정(許政)이 그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 金于齋 [1918년 음력 9월 10일 巳시]
시 일 월 년 68 58 48 38 28 18 8
己 甲 壬 戊 己 戊 丁 丙 乙 甲 癸
巳 午 戌 午 巳 辰 卯 寅 丑 子 亥
김우재선생 자평
甲木이 九月에 생하니 木氣가 휴수(休囚)되고 火旺 토조(土燥)하므로 水로써 윤(潤)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壬水가 천간에 있어 뿌리가 없고 戊土가 극한다. 고로 사주팔자의 구조가 반청반탁(半淸半濁)한다.
임식갑(壬食甲)하고 甲木이 戊土를 극하므로 조업(祖業: 조상의 직업 또는 조상의 재산)을 지키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고로 자수성가격(自手成家格)이다. 일생동안 재물이 고갈(枯渴)하여 포부를 마음껏 펴지는 못하였고, 火土 가상관격이라 재예(才藝)만 많을 뿐이다.
아들이 되는 庚金이 時의 巳中에서 장생하므로 다섯명의 아들이 무성(茂盛)하였다. 甲木이 패지(敗地)에 있으므로 처궁(妻宮)의 파란이 많았다.
일생을 논함에 재다신약(財多身弱)하므로 간간히 재물이 생겼으나 축적(蓄積)이 무(無)하다. 고로 기복(起伏)이 다단하였다.
나의 팔자에 득남(得男) 9인 중에 네 아들이 사망하였다. 사망을 한 년도는 대개가 자년(子年)이니 금사어자(金死於子)가 분명하다.
아들의 출생의 해도 丑辰申년이니 丑土 辰土는 습토(濕土)라 조토(燥土)를 윤(潤)하게함이요 申金은 壬水가 장생하여 윤토(潤土)함이다.
편재 戊土 아버지가 천간에 노출하므로 노출자는 쉽게 꺽이므로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셨다. 乙운중 庚寅년에 乙庚이 합위금(合爲金)하여 生壬水하니 壬水가 生甲木 고로 甲木이 乙木과 더불어 동심유력(同心有力)하여 戊土를 극한다. 고로 형동극부(兄動克父)가 분명하므로 이 해에 부친이 별세하셨다.
팔자안에 몰인(沒印:인수 없음)인바 癸水가 인수라 丑운 癸巳년에 癸水가 거두(擧頭)에 丑土가 극하므로 이 해에 모친이 별세하셨다.
형제의 분야는 戌月이 甲木(일간)을 養하므로 양중삼형제(養中三兄弟)인바 형제가 4명이었으나 큰 형이 사망하여 현재는 3명이다.
이 사주는 水로 자윤(滋潤)함이 마땅하다.
癸亥운 10년이 극히 좋았고 이 운중 癸酉년 16세에 결혼하였다. 이때가 일생중에 제일 좋았다. 甲운은 보통의 평운이었고 子운에 파산의 위(危)가 있고 4년간 객지에서 고생했는데 부부간에 이별이나 다름없었던 것은 일지 부부궁을 상충한 때문이다. 乙운 29세에 관직(官職)에 들어갔다가 丑운중 壬辰년 35세에 직장을 자퇴하였다가 丑운중 37세에 다시 관직에 복직하였으나 다시 丙운중 39세에 또 다시 자퇴하였다. 이것은 丙火가 사주를 더욱 조(燥)하게 하면서 丙冲 壬水라 이 5년간이 일생중에 최흉이 되어 파산까지 하였었다. 현재 寅운은 발전은 없으나 조금 평안하므로 이 『八字大典』을 저술하여 후학 현인을 기다린다.
※ 김우재 저. 『팔자대전』. 창원사. 1963.
◈ 高木乗 (다카기 쇼)
신문기자, 도검 감정가, 시인. <일본 사주추명학회> 회장,
1879년(명치 12년) 양력 4월 20일 22시 출생.
시 일 월 년 85 75 65 55 45 35 25 15 5
癸 癸 戊 己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亥 酉 辰 卯 未 申 酉 戌 亥 子 丑 寅 卯
1895년(17세) 부친 사망,
1919년(41세, 갑자대운 기미년) 장남이 사망함. 이후 차남도 사망.
1960년(82세) 아내 시즈 사망,
1965년(87세) 3월 16일 본인 사망.
高木乗 (다카기 쇼 - 본인 약력)
미토시 내쯔미죠 가이시죠메에서 출생
시미즈 다가노리 또는 시인으로서 시미즈 깃손 이라는 펜네임을 갖고 있다.
가계)
시미즈고우기마쯔의 장남으로 출생
아버지 시미즈 고우기 1846년 9월 23일 출생 미토시 내쯔미쬬 가이시죠매의 시장. 후에 개척자가 되어 이바라기갱 오오아라이다치바나무라로 이사함.
어머니 시미즈마쯔 1847년 6월 19일 출생
다카기 쇼의 집안은 히타치 오타구의 출신으로 다이라가문의 일족이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경력)
1888년 11살에 橘村與澤(다치바나무라 요자와) 초등학교에 입학, 고등학교에 편입되었지만 가난하여 초등학교 2학년에 중퇴, 유년시절에 고생하였고, 그사이에 독학하여 중학교 중퇴한 그에게 학교는 도서관이었다.
1895년 개간지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만17세에 집은 누이에게(배다른 형제)주고 백부에게 이끌려 仙台、福島(센다이 후쿠시마)로 옮겼음.
1898년 상경하여 그때부터 화가 望月 金鳳에게 四條流(사조류)를 배우고 동시에 俳句(하이구; 어떤 말짓기 같은 것이라 생각됨) 岩谷小波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1899년 4월 高瀬真卿이 창설한 감화원(아동 의탁시설)에서 교부가 되어 감화원교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감화원은 渋谷羽澤에 있다.
1901년 23세 시집『야인』을 仙台有千閣에서 출판, 이때부터 쓰기 시작한「橘村」(다치바나무라)의 호는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村(무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1903년 25세 國益新聞(岩谷松平社)에 들어가 기자가 됨.
1908년 구「東京日々新聞」 기자가 됨.
1909년 시집『筑波紫』을 출판, 이외에 1,2의 소설집이 있다.
같은 해 10월 30일 삼남인 清水康教(시미즈야스노리)가 토쿄 시부야구에서 태어남.
1910년 東京 朝日新聞에「家庭訓話今日の歴史」을 연재, 후에 雪月花의 세번째 책으로 弘道館에서 발간 메이지 천황, 황태자에게 헌상한다.
1911년 史伝『兵部卿護良親王』을 쓰고 木村鷹太郎와 共著(공저).
1915년『刀剣辞典』을 편저, 도검가 木阿弥光遜와 공저.
1916년 「時事新報」의 기자가 됨
다카기 쇼가 역학, 명리학에 빠지게 된 원인은 관상의 대가 櫻井大路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신문기사로 무언가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도쿄 매일 신문에 올릴 수 없는지 편집부에 안을 내놓게 되었고 그때 당시에 점술가들의 특집을 기획하게 되었는데,
선정한 占에는 手相・人相・家相・易・墨占い・算命術・水晶占い・九星気学・占星術( 수상. 인상. 가상. 역. 묵점. 산명술. 수정점. 구성기학. 점성술)등이 있었고 각 점술들의 특징과 득의(得意)한 점술가들의 기사를 매주 연재하게 되었다 .
그 기획기사를 다카기쇼가 맡게 되었다.
그 특집의 마지막은 인상의 대가 櫻井大路선생이였는데 원고를 받으러 가서 다카기 쇼가 櫻井大路선생에게 무심코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앞으로 저의 인생은 어찌되는지요?>
마침 저녁 무렵 현관 앞에서 거울너머로 다카기쇼를 보며
<어두워 잘 보이진 않지만 당신은 1.2년 안에 자식이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신문기자도 그만둘 것이다> 라고 말했다.
다카기쇼는 그 말을 듣고
<맞는 것도 팔괘, 안 맞는 것도 팔괘라고 잘도 말하네, 장난도 적당히 해야지, 내 아들은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병 한번 안 걸렸다, 나의 일 또한 지금 모든 것이 너무 잘 되고 있고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엉뚱한 말도 적당히 하라> 고 화를 내고 나왔다.
그리고 1년 후 과연 장남, 뒤이어 차남을 잃고, 신문사도 나왔다
그 후 그는 인상을 연구하여, 『人相の秘鍵』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다카기쇼는 인상학과 수상학에도 대단한 실력이 쌓이게 되었지만 櫻井大路선생에게 예의에 어긋난다하여 人相 手相은 나타내지 않고 사주 추명을 간판으로 내걸게 되었다.
1919년 장남을 잃고, 그 일이 시발점이 되어 사주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태어난 신비 사주추명학』이란 책도 내놓게 되었다.
17세의 장남을 잃은 것 때문에 고민을 하고 다카기쇼는 정신적 편력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리스도교외 여러 가지 종교서적 아동교육 철학 성명학 인상학 구성학등 정신적, 종교적 세계와 여러 가지 점술에서 해결점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핵심은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21년에 잡지 “운의 세계”을 발행하면서 그때까지 근무한 時事新報社을 퇴사하고 점술의 길로 전념하게 된다.
그는 사주 추명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에 五行易、梅花心易、家相등을 연구하여 昭和 10年 이전에 몇 권의 책을 출판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関東大震災予言は「梅花心易」(관동 대지진 예언은 매화심역)에 의한 것이라 전해져온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