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가 지나 모심기 철이 됐는데도
하늘은 쨍쨍, 구름 한점 보이지 않고
대지는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져
농사꾼들의 가슴도 찢어지고 있었다.
새실댁이 눈을 떴다.
한밤중에 소나기가 퍼부었다.
맨발로 뛰어나가 머슴방 문을 두드렸다.
“만석아, 비가 오네. 비가.”
만석이는 없었다.
새실댁이 삽을 들고 칠흑처럼 깜깜한 들길을 내달려
천수답 다섯마지기가 붙어 있는 몰개골에 다다랐다.
만석이가 벌써 물꼬를 트고 있었다.
새실댁은 자신이 맨발과 속옷 차림에 비를 맞아
홑옷이 몸에 착 달라붙었다는 것도 잊은 채
만석이를 얼싸안았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깜깜한 사경에
과부 새실댁과 총각 머슴 만석이 감격에 겨워 껴안았는데
만석의 양근이 그만 지긋이 새실댁의 삼각골을 짓눌렀다.
그제야 새실댁이 정신을 차리고 깜짝 놀랐으나
벌써 뜨거워진 두 몸은 밤비도 식힐 수 없었다.
비는 계속 쏟아붓는데
새실댁과 만석은 논둑에 엎어져
합환의 열기로 정신을 잃었다.
모심기할 논에 빗물이 가득 찼을 때
만석이 떨어졌다.
“내가 왜 이러지?”
새실댁이 중얼거렸지만 빗소리에 파묻혔다.
둘은 집으로 돌아와 진흙투성이 몸을 씻고
또 안방에서 합환의 불꽃을 튀겼다.
만석이 제 방으로 돌아간 후
새실댁이 가만히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신랑이 죽고 나서 십이년이나 지켜온 수절을
빗물과 함께 흘려 보내버렸다.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기뻤다.
수절을 깬 건 슬펐지만
꽉 닫아놓았던 정염이
아직도 불꽃처럼 타오른다는 건 기뻤다.
이튿날부터 모심기가 시작됐다.
만석이는 두어 식경 눈을 붙였나,
먼동이 트기도 전에 논에 나가 모심기를 했다.
아침밥을 이고 모심기하는 몰개골로 가는
새실댁의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벼웠다.
그날 밤, 스물다섯살 만석이와
서른여덟살 새실댁은
또다시 정염의 불꽃을 태웠다.
한달이 지난 어느 날
만석이 자신의 방은 습기가 찬다며
생전에 신랑이 쓰던 사랑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깍듯하게 마님이라 부르더니
합환을 할 때는 새실댁이라 불렀다.
어느 때는 삼일이나 안방을 찾지 않아
새실댁이 개다리소반에 간단한 술상을 차려
사랑방으로 갔더니
수저를 놓으면 잠만 자고 싶다며
술을 마시고는 쓰러져 잤다.
이튿날,
논밭에서 할 일도 많은데
만석이는 들에 나가지 않고 낮잠만 자다가
저녁나절에는 동구 밖 주막에 가서
술을 한잔 걸치고 돌아왔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와 새실댁을 발가벗겨
온갖 기교를 다 부리며 녹초를 만들어 놓았다.
만석이는 이틀 일하고 하루씩 쉬며
쉬는 날만 안방을 찾았다.
이제는 언제나 새실댁이라 부르고
툭하면 씨암탉 목을 비틀어 들고 부엌에 던졌다
. 머슴이 아니라 신랑 행세를 하는 것이다.
새실댁의 한숨이 깊어갔다.
어느 날 저녁,
만석이가 집에 들어왔더니
평상에서 어깨가 떡 벌어진 젊은이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새실댁은 웃는 얼굴로 상 옆에 앉아
다정하게 반찬을 챙겨줬다.
억쇠라는 그 젊은이는
만석이 쓰던 머슴방에 단봇짐을 풀었다.
만석이 부엌으로 가 설거지하는 새실댁에게 물었다.
“누구요?”
“논에 피가 벼보다 많아 머슴 하나를 구해왔소.”
만면에 미소를 띤 만석이
새실댁 엉덩이를 툭 치고 사랑방으로 들어가
두팔로 베개를 만든 뒤 벌러덩 누웠다.
“그래, 나는 이제 이 집 주인이야.
나는 이제 손에 흙을 묻히지 않을 거야.”
곰방대에 연초 한대를 피우고
안마당을 건너 대청을 지나 안방 문을 살짝 열었는데,
‘어!’ 문이 잠겨 있다.
“새실댁, 문 여시오.”
“앞으로 안방에는 얼씬도 말 일이다!”
새실댁의 목소리에 찬바람이 일었다.
이튿날 밤,
만석이가 대청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방에서 흐르는 새실댁의 자지러지는 감창이
문풍지를 찢고
, 황소가 진흙밭을 걸어가는 소리가 났다.
다음날 만석이와 억쇠의 주먹다짐으로
안마당이 핏자국으로 얼룩졌다.
몇합 치르지 않아 뻗은 건 만석이었다
첫댓글 재미있는 글 즐감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
그냥 읽는것만으로 즐거움이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