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시골우체국 우체통
신아문예대학 수필가 구연식
나는 1950년대 말에 금마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운동장 측백나무 울타리 모퉁이 길 건너 남쪽에는 지서가, 서쪽에는 우체국이 있었다. 측백나무는 촘촘하지 않아 작은 개구멍이 많이도 뚫렸다. 그 개구멍 사이로 난생 처음 보는 빨간 통이 우체국 앞에서 눈·비를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도 신기하여 시간 있을 때마다 측백나무 개구멍에 쪼그리고 앉아서 사람들이 편지를 빨간통에 넣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길을 건너가서 빨간통을 만져보니 두툼한 쇠로 만들어졌고, 편지 넣는 곳을 손으로 더듬어 보니 개구리 입처럼 쩍 벌리고 있어서 무섭기도 하여 모양보다는 용도가 더 궁금했다.
초등학교 입학 시절에는 한국의 6. 25 전쟁 직후여서 나보다 한 살이 많거나 적은 친구들이 함께 입학했다. 그런데 금마우체국에 근무하는 우리 동네 어른들은 우체국장님을 포함하여 4명이나 되어서 그 집 친구들 귀동냥을 통해서 우체국에 대해서는 빨리 알았다. 그 당시는 동네에서 부잣집만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우체국 다니는 집에는 빨갛고 번쩍거리는 자전거가 있어서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우체국 안을 들어가 보니 검정 블라우스에 하얀 옷깃의 근무복을 입은 복스럽게 생긴 누나는 은행이 귀하던 시절이라 예금을 받고 있었다. 한쪽 구석방에는 작은 작두 같은 기계를 손목으로 또~또 소리를 내며 치는 아저씨가 있어 마냥 신기했다. 스님 바랑만 한 가방을 메고 동네 고샅길을 누비면서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국 아저씨가 마을로 들어오면 혹시 우리 집에 편지가 왔을까? 아저씨의 거동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휭 지나치면 몹시도 서운했다.
초등학교 3~4학년쯤이었다. 편지가 하도 쓰고 싶고 붙여보고 싶어서 처음으로 어머니한테 편지를 써서 누런 봉투에 넣어 우체국에 가서 우표 파는 아저씨한테 어떻게 붙이느냐 물었다. 아저씨는 편지봉투 풀칠 안한 곳에 주소와 이름을 쓰고 제일 위쪽에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넣으라고 했다. 아저씨 말대로 주소와 이름을 쓰고 우표를 붙여 개구리 주둥이 같은 우체통 구멍에 넣으니 찰싹하고 우체통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과연 내가 보낸 편지가 어머니에게 배달이 될까? 며칠을 기다리니 드디어 우체국 아저씨가 우리 집에도 오셔서 어머니한테 편지를 주고 가셨다. 나는 순간 기쁘고 부끄러워서 뒤 모퉁이에서 한참 동안 숨어있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편지를 읽어 보셨는지 빙그레 웃으시며 나한테 다가와서 ‘우리 연식이가 벌써 다 컸네!’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칭찬을 하셨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카드 겸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 유행했다. 또 호기심이 발동하여 부상마을 우리 집안 어른들을 비롯하여 동네 어른들 모두에게 체신부에서 발행한 연하장을 보냈다. 연하장이 도착할 무렵 의도적으로 동네 한 바퀴를 슬슬 돌아보니 어른들이 고맙게 엽서 잘 받았다고 덕담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픈 철부지 행동이었다. 전화기가 한 동네 한 대 설치도 미흡했던 시절이라 농촌에서는 편지가 유일한 통신수단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는 편지를 주고받는 펜팔(pen pal)이 젊은이들에게는 유행하여 잡지나 신문 귀퉁이에는 펜팔 주소가 수두룩했다. 어떤 사람은 외국인과 펜팔로 외국 여행도 갔고, 국내 사람들은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는 사람도 흔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금마시장 삼거리 우체국을 보니 옛날 그 자리에는 없고 조금 아래로 옮겨 멋없고 정 붙일 데 없는 신축건물을 지어 이사를 했다. 더 서운한 것은 빨간우체통은 사라지고 낯설고 보기 싫은 우체통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옛날 누님은 온데간데 없고, 마네킹 같은 여인이 컴퓨터 음성으로 찔끔 인사를 한마디 하더니 하던 일을 그대로 하는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나는 옛날 그대로인데 집도 사람도 모두 다 바뀌었다. 나오면서 빨간우체통을 몰아내고 심술궂게 서 있는 우체통의 머리를 꾹 찍어 분풀이를 해보지만 내 주먹만 아팠다.
우체국의 빨간 우체통은 나에게는 처음으로 문명의 세계를 알게 한 호기심의 물건이었다. 어쩌면 우체국은 학교 다음으로 성장 과정에서 사회성을 깨워준 교육기관이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도서벽지를 불문하고 소식을 전달해주는 국가 유일의 체신(遞信)기관이다. 객지에 나가 사는 자녀, 출가한 딸, 군에 입대한 아들, 외국에 유학 간 손자, 뿔뿔이 흩어져 사는 형제자매들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시골우체국 우체통이 없다면 원시인처럼 모르고 답답하게 살았을 것이다.
여름에는 나뭇잎들이 짙푸른 녹색으로 젊음을 과시하더니, 가을이 가까워지면서 노랑과 붉은색으로 단풍이 물들어 기약 없는 이별을 예고하면서 산들바람에 떨고 있다. 붉은색 단풍잎 모두 다 주워서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이들에게 소식을 적어 빨간 우체통에 배불리 먹여 소식을 전하고 싶다. 우체부 아저씨가 민들레 꽃씨처럼 하늘과 땅 온 천지에 날려 보내면 그중에 한 임은 붉은 낙엽 편지를 보고 한 번쯤 기억해주겠지 싶다. 해 저문 오후 산사로 올라가는 길에서 만난 우체부 아저씨는 속세를 떠나 암자에서 홀로 계시면서 중생들의 평온과 영혼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스님에게 어느 보살님의 편지 한 통을 달랑 들고 꼬부랑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에게 시골우체국 빨간 우체통은 고향 집 오두막 싸리문에서 자식들을 기다리시는 어머니와 같다. 나의 어린 시절 시골우체국은 작고 누추했지만 있어야 할 식구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일하는 오붓한 모습이었다. 한낱 무쇠 덩어리 같은 빨간 우체통은 수천 년부터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온 마을 입구의 돌하르방 같은 수호신이었다. 그런데 오두막도 사라지고 빨간 돌하르방도 볼 수 없다. 최첨단의 기계문명은 인간의 향수를 분쇄하여 날려 보내지만, 황혼의 낙엽들은 시골 우체국 지붕위로 날아가는 향수를 향해 움켜쥐고 순간이나마 빨간 우체통의 전설을 애원해 본다.
(2020.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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