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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율사출가자 수행근간 마련한 ‘남산율종’의 종조 |
도선율사는 중국 서안 종남산에 위치한 정업사에서 머물며 수행했다. 사진은 정업사에 모셔진 도선율사 탑. 사진제공=한국불교연구원
외도 공격 막아내고 불법 홍포 전력 다한 ‘호법보살’ 계를 받아 지니겠다는 굳은 결심 원력 중요함 강조 # 생애
양나라 승우율사 일생 닮아
〈송고승전〉 명율편의 도선전을 보면 도선(596~667)의 어머니는 도선을 임신하였을 때 하늘의 달이 그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또 꿈에 범승(梵僧)이 말하기를 “네 배속의 아이는 양나라 때 승우(僧祐, 445~518) 율사이다. 출가시켜서 부처님을 받들도록 하라”고 하였다고 전하는 데, 그 이유에서인지 도선의 일생은 승우율사를 닮은 것이 너무 많다. 아마 도선 자신도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승우가 〈석가보(釋迦譜)〉5권,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15권 등의 불교사서(史書)를 지은 것처럼 도선은 〈속고승전〉30권을 지었다. 또 승우가 불교를 보호하기 위한 논문집을 모아 놓은 〈홍명집〉14권을 지은 것에 이어 도선이 〈광홍명집〉30권을 지어 불법을 보호하려 하였으며 수많은 계율관계의 저작을 통해 승가가 여법하게 수행하도록 하여 남산율종의 종조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도선은 12개월이나 모태 속에 있다가 4월8일 부처님 오신 날에 태어났다. 9세에 부(賦)를 지을 수 있었고 15세에는 세속을 싫어하여 불교의 경전을 외우고 익히다가 지군(智, 〈속고승전〉에서는 혜군(慧)이라고 하였지만 동일 인물임) 율사로부터 수업을 받고 16세에 삭발하고 승복을 입고 일엄사(日嚴寺)에 예속되었다. 약관의 나이에 힘을 다하여 계율을 지니고 생각을 다하여 사리를 감득(感得)하기도 하였다. 수나라 대업 11년(615) 20세에 지수(智首)율사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618년 쯤 지수율사로부터 율장을 한번 보고 선(禪)을 닦으려 하였으나 지군율사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율장을 20번이나 들었다. 이후 종남산 오장곡에서 정혜를 닦았으나 물이 부족하여 불편하더니 신인(神人)의 지시대로 땅을 파서 물이 솟았음으로 그때 사람들이 백천사(白泉寺)라고 불렀다. 도선의 감화력으로 맹수(猛獸)들이 길들여지고 기이한 꽃이 저절로 피어났다. 수나라 말기에 숭의정사를 거쳐서 풍덕사로 거처를 옮겼다. 홀로 선정에 들었더니 호법신(護法神)이 말하기를 “청관촌의 옛 정업사는 도를 이룰 만한 곳입니다”라는 말에 의하여 터를 잡았다. 여기에서 명의(名醫)인 손사막(孫思邈)과 깊이 교제하였다.
남산종주 사분율의 대성자로서 도선(596~667)의 대표적인 저서는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 〈사분율계본소(四分律戒本疏, 줄여서〈계소(戒疏)〉라 하고 갖추어진 이름은 사분율비구함주계본소(四分律比丘含注戒本疏)라 함)〉와 〈사분율갈마소(四分律褐磨疏, 줄여서 〈업소(業疏〉라 하고 갖추어진 이름은 사분율산보수기갈마소(四分律刪補隨機褐磨疏) 라고 함〉를 합한 율종의 삼대부(三大部)를 비롯하여 〈사분율습비니의초〉 〈사분율비구니초〉 〈사분함주계본소〉 〈관중창립계단도경〉 등 계율에 관한 것과 〈석문장복의〉 〈석문귀경의〉와 같은 의식에 관한 것, 〈대당내전록〉과 같은 경전 목록, 〈광홍명전〉 〈집고금불도논형〉과 같은 유.불.도의 삼교가 교류함으로 인하여 일어난 논쟁에 관한 호법적인 것, 〈석가보〉 〈석가방지〉 〈속고승전〉과 같은 불교사서, 〈감통록〉 등 실로 다기(多岐)다양(多樣)한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의 저서 중 〈송고승전〉은 모두 220여권이라고 하였지만 송(宋)의 원조(元照)는 5류 57건 총 267권이라고 설하였다. 중요 저술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그의 대표작인 〈사분율행사초〉는 줄여서 〈행사초〉라 하고 갖추어 말하면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라고 한다. ‘사분율’이란 말은 불타야사가 축불염과 함께 410~412년 사이에 번역한 법장부에서 수지하던 율장으로서 4부로 분류하여 전하여졌기 때문에 사분율이라고 한다. 비구 250조 비구니 348조와 건도부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처음에는 〈십송율〉을 많이 연구하였지만 광통율사 혜광(468~537)을 비롯하여 지수(智首, 567~625)와 그의 제자인 도선의 남산종, 상부종(相部宗)의 종조인 법려(法礪, 569~635) 동탑종의 회소(懷素, 625~698) 모두 사분율에 근거하여 율종을 열었다. ‘산번보궐(刪繁補闕)’이란 말은 번거로운 것은 깎아 없애고 모자라는 것은 보충한다는 뜻이니 ‘번거로운 것은 깎아 없앤다’는 것은 옛날부터 율장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여 도선의 당시에 이미 10여개의 해석이 있었는데 필요 없는 논의가 많았고 심지어 계율을 실천함에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것이 많았음으로 이러한 것들을 과감하게 제거하여 버린다는 것이다. ‘모자라는 것을 보충한다’는 것은 옛날부터 계율을 지킨다는 사람들은 나의 소견에 집착하여 속이 좁고 교리에 밝지 못하여 행사(行事)에 당해서는 시의(時宜)에 적절하지 못함으로 지금 그것을 보충하여 옛적부터 아직 논의하지 못한 것을 궁구하여 후한(後漢) 때에 불교가 수입됨으로부터 위(魏) 진(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 수(隋) 당(唐)의 불교를 빛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행사 의식을 당하여 너무 번거롭거나 너무 간략한 단점을 보충하기 위하여 지금 〈사분율〉에 의하여 번거로운 것은 없애고 모자라는 것은 보충하여 승보 행사의 완전함을 바라는 마음에서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를 지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분율을 근본으로 하고 다른 율장의 장점을 채취하여 회통시키고 대승경론을 의지하여 대소승 경율을 융통케 하고 기타 때와 장소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하였다는 뜻이다. 도선의 찬술로서 본 〈행사초〉와 〈사분율계본소〉와 〈사분율갈마소〉를 율종의 삼대부라고 하지만 〈행사초〉에는 통변갈마편과 결계방법편에 갈마에 대한 기록이 있고 수계석상편과 지범방궤편 등에는 계본에 대한 해석이 있기 때문에 〈행사초〉는 삼대부를 모두 포섭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후대에까지 유전되고 〈행사초〉를 해석하는 사람이 60여 종류를 헤아리게 되었다. 참고로 도선이 〈행사초〉를 저술할 때 스승인 지수의 광소(廣疏)20권을 근본으로 하면서 혜광의 약소(略疏)4권과 법려의 중소(中疏)10권을 참고로 하면서 〈행사초〉12권을 지었다. 이 〈행사초〉는 626년 도선이 31세 때에 초고(草稿)를 완성하였지만 다른 율장과 대조하고 선배로서 상부종(相部宗)의 종조인 법려(法礪, 569~635)의 강의를 들으면서 교정을 끝낸 것은 630년이다. 〈정심계관법(淨心誡觀法)〉은 도선이 수주(隋州)의 흥당사(興唐寺)에서 하안거 중에 있을 때 늦게 출가하여 스승을 오래 모시지 못하고 태산(泰山)의 영암사(靈巖寺)에 있는 자인(慈忍)이라는 제자에게 ‘마음을 깨끗이 하여 삼가고 조심스럽게 관찰하라’는 뜻으로 적어 보낸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한다(淨心)’는 것은 오정심관(五停心觀)을 닦아 육식(六識)의 마음을 깨끗이 하여 현행의 번뇌를 없애고 마음을 맑고 밝게 하여 선정에 들고 지혜를 일으키게 함을 말하며 더 나아가서는 대승 청정의 신심을 일으켜 남을 이롭게 하는 큰 행원을 실천함을 말한다. 계법관(誡觀法)이란 것은 ‘계(誡)’란 것은 경계를 대하여 다스리는 처음을 알게 함이니 재물과 여색이 악업의 근본임을 알아 제거하며 병을 알고 약을 알아 마음을 지키고 말을 조심하여 열심히 도를 닦아 허물을 없앰으로 ‘계’라고 한다. ‘관(觀)’이란 것은 관찰함이니 이 계가 불법과 상응하는 것인지를 관찰하여 도를 장애하는 허물을 없애고 도에 나아가 물러남이 없게 함으로 법이라 한다고 하였다. 중요내용은 입으로는 깨끗한 척 하면서 마음을 혼탁케 한다거나 밖으로는 위의를 갖추지만 안으로는 삿된 짓을 한다거나 으슥한 곳에서 나쁜 일 하지 말고 육도에 윤회하는 중생이 받기 힘든 사람 몸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 바로 믿고 수도에 전념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총 30장으로 된 계관법의 25장까지는 번뇌 망상을 끊는 방법과 마음가짐에 대한 것이고 26장부터는 이타행을 설하였다. 마지막 1장은 이 계를 수지하여 계정혜를 잘 닦아 보리를 이루고 다른 사람을 가르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계는 오계, 10계와는 전혀 다른 스스로 경책하여 방종하지 말고 사치하지 말며 근검절약하여 수도에 전념하라는 내용이다. 또 한 가지 특기할 것은 ‘부모는 칠생(七生)의 인연이지만 사승(師僧)은 누겁(累劫)의 인연’임을 강조하면서 제자를 생각하여 잊지 못하는 심정을 토로하며 고구정녕하게 허물없이 여실 수행하기를 바라는 글이라는 점이다. 〈속고승전〉은 혜고의 〈고승전〉을 이어서 지은 고승의 전기라는 뜻인데, 당나라 때 성립되었다고 하여 〈당고승전〉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송고승전〉과 〈명고승전〉을 합하여 ‘사조고승전(四朝高僧傳)’이라고 부르지만 그 중에서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학문적인 가치도 높다. 여기에 수록된 고승은 340인의 정전과 160인의 부침이 있는데 〈고승전〉의 예에 따라 1.역경(譯經) 2. 의해(義解) 3. 습선(習禪) 4.명율(明律) 5. 호법(護法) 6.감통(感通) 7. 유신(遺身) 8. 독송(讀誦) 9. 흥복(興福) 10. 잡과(雜科)의 십과로 나누었다. 이것은 〈고승전〉의 예를 따른 것이지만 〈고승전〉의 신이(神異)를 감통으로, 〈고승전〉의 경사(經師)와 창도(唱導)를 합하여 잡과로 바꾸고 ‘호법’을 추가하였다. 〈당고승전〉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이 신설된 호법에 그와 같은 시대를 산 ‘당신라국대승통석자장전(唐新羅國大僧統釋慈藏傳)’을 싣고 ‘신라에 불법이 들어온 지 백년이나 지났지만 모자라는 것이 많아 자장을 국통을 삼아 정비케 하였더니 보름마다 계를 설하여 계율에 의하여 참회케 하고 춘추로 시험을 보아, 가지고 범함을 알게 하며 순사를 두어 모든 절을 돌면서 설법을 격려하고 불상을 여법하게 모시고 스님답게 수행토록 하였으니 이 사람이야말로 호법보살이다’라고 극찬하고 있는 점이다. 즉, 자장과 그는 똑같이 4월8일에 태어났고 사념처를 닦았고 계율을 존중하였음으로 자신의 이상형을 자장에 빗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한 마디로 도선이야말로 불법을 외도들의 공격으로부터 막아내고 자신과 교단을 단속하고 불법을 홍포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 호법보살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도선 사상의 특색은 마음가짐을 중요시하였다. 한 예로서 그는 계체론(戒體論)에서 계를 받아 지니겠다는 굳은 결심과 원력에 의하여 계체가 성립되며 똑같이 사분율에 의하여 계를 받더라도 소승을 믿는 마음으로 계를 받으면 소승의 계체가 성립되고 깊이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심에서 계를 받으면 대승의 계체가 성립된다고 하였다.
혜남스님 통도사 전계사
[불교신문 2324호/ 5월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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