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루
서울 지하철이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졌다. 시내를 벗어날 땐 지상으로 나갔다. 인천이나 춘천, 수원 쪽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전철, 국철, 철도, 경전철 등으로 불리는데 부산도 1, 2, 3, 4호선 외에 사상에서 김해로 가는 지상 경전철이 있다. 레일로 가는 게 있는가 하면 철로 아닌 타이어로 가는 것이 있다. 운전자 없이 중앙 조종으로 신기하게 역을 찾아가는 것도 있다.
자꾸 뻗어 나간다. 신평에서 다대포 해수욕장과 호포에서 양산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사상에서 하단으로도 지상 지하 논란 끝에 지하철로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또 신항과 서낙동강 쪽으로도 계획하고 있다. 예전엔 쿵쿵하는 남포 소리가 울리고 돌과 자갈, 흙을 실어나르는 짐차가 오르락내리락 요란하게 다녔다. 일꾼들이 많이 매달려 공사장은 일대 난리였는데 요즘은 조용하다. 일하고 있나 싶다.
어느 날 보면 개통이란다. 지하가 넓고 시원해서 답답함이 조금도 없다. 지상보다 더 깔끔하고 편하다. 언제 이리 만들었나 놀랐다. 거기다 소리소문없이 동해선이 개통되었단다. 이름이 광역철도라는데 어떤 것인가 한번 타 봐야지 하면서 달포나 지났다. 모임에서 한번 가 보자 날짜를 정했는데 삐거덕거리면서 이일 저일로 기약 없이 미뤄졌다.
아내 바람을 씌워주자 같이 가자고 졸랐다. 이 추운데 어딜 가느냐며 어깃장이다. 꺼림칙한 마음을 달래며 손잡고 나섰다. 마침 며칠 내 춥다가 포근하다. 두리두리 껴입고 나섰더니 덥다. 한 시간이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부전역으로 갔다. 포항까지라더니 중간쯤 태화강까지 간단다. 앞을 보고 앉는 게 아니라 창 옆으로 붙어 앉는 지하철 객차이다.
가는 방향으로 앞뒤 열린 복도 문과 내리고 타는 8개의 출입문이 있는 4량을 잇댄 열차다. 어느새 자리가 차고 스르르 가면서 곳곳에 정차해 승객을 태워 입석도 빽빽하다. 산을 관통하는가 긴 터널을 빠져 신해운대역을 지나니 바닷가를 달린다. 없앤다. 그냥 두자. 말 많은 월내 고리 원전이 보이고, 연기가 푹푹 치오르는 높다란 굴뚝이 서 있는 공장지대가 얼른얼른 나타나더니 태화강역에 닿았다.
그 유명한 태화루가 어디쯤 있을까. 내려 두리번거렸는데 강은 보이질 않고 휑하다. 강으로 가자면 어느 쪽으로 가냐니까. 버스로 한참 가야 한단다. 역 앞에 주황색 버스만 자주 지나간다. 4번 타는 곳을 관광버스가 가려 여기저기 헤맨 끝에 찾아 탔다. 가까운 곳이려니 했는데 웬걸 멀다 멀어. 울산 시내 곳곳을 둘러 간다. 아침에 집 나서서 점심때가 훨씬 지난 뒤에야 대밭이 보이는 강에 이르렀다.
아내는 배고파라 야단이다. 이리 머냐며 투덜댄다. 몇 번이고 운전 기사에게 물었다. ‘다 와 가느냐.’ 강가 잔디밭 구석에 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못 먹게 하던데 이래도 되나 하면서 들었다. 끝날 줄 모르고 더 기승을 부려대는 코로나다. 이태 넘게 창궐하는 전염병으로 나들이를 꺼림칙이 여기는 아내를 위로하면서 허겁지겁 달게 먹었다.
태화강이 빙 둘러 흐르고 그 가운데 수십만 평을 대공원으로 만들었다. 국가정원이란다. 봄과 여름, 가을에는 온갖 꽃을 피워 드넓은 강가가 온통 화원으로 흐드러졌단다. 수선화와 채송화, 백일홍, 장미, 앵속, 코스모스 등 수많은 화초로 울긋불긋 꽃 대궐이었다니 놀랍다. 교목과 관목, 만목의 꽃나무도 어디서 가져와 심었는지 그늘을 만들어 쉬엄쉬엄 가면서 구경한단다. 다 시들고 앙상하지만 몇 달 뒤 활짝 필 모습이 삼삼하게 그려졌다.
겨울이지만 억새와 갈대가 샛강을 따라 지천으로 들어섰다. 고니가 살랑살랑 머무는 데서 사진도 찍었다. 카키 국방색인 갈색을 들어부었다. 아직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하얀 솜털 씨앗이 바람에 나부낀다. 강가 갈대는 회색 열매를 안고 요리조리 부대낀다. 이리 큰 돌을 어찌 옮겼나. 덩치 큰 돌다리 난간에 서서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발길을 옮겼다.
지난가을 황국화를 미처 뽑지 못해 밭 가득히 시든 게 보였다. 십 리 대밭으로 들어갔다. 하늘로 치솟은 굵은 맹종죽이 근심 걱정 없이 쭉쭉 뻗어 시원시원하다. 가운데 흙길을 내어 여름은 댓잎 소리에 선선하고 겨울은 아늑하며 포근한 길을 걷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얼마나 긴지 똑같은 대나무가 가지런하게 수없이 들어차서 어두컴컴한 게 가마득하다.
밖으로 나와 자글자글 햇볕으로 걸으니 별천지를 다닌다. 폭신폭신 잠자리 같은 잔디가 어쩜 잡풀 하나 없이 깨끗할까. 나무마다 유박 거름을 주었고 꽃밭 군데군데 물뿌린 흔적이 보인다. 광역시와 구청에서 정성을 기울인 모습이다. 울산은 갑자기 많은 공장이 생겨나서 검은 연기가 뒤덮고 매캐하며 흐리멍덩한 곳이라 알았는데 아니다. 산지사방에서 모인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돈 끓는 곳에 사는 줄 여겼다. 이렇게 근사한 정원을 가꾸며 사는가 놀랍다. 태화강 이름도 참 정겹다.
태화루가 우뚝 보인다. 날아갈 듯 휘어진 기와 선이 날렵하고 어여쁘다. 단청도 선명하게 아로새겨졌다.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가 함께 이름난 대표 누각인데 이리 산듯한 새집일까 했다. 임란 때 불타고 최근에 지어서이다. 왜란이 없었으면 선덕여왕 때 지은 오랜 건물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전쟁 나면 불태우고 문화재를 가져가는 못된 버릇이 있다. 중구 태화루는 신라 때 누각으로 여태껏 그 오랜 세월 흘러 내려왔다. 불 질러 사그라지게 했으니 생각할수록 안타까워 한숨이 다 나온다. 태화강이 바다로 들어가면서 주위에 자동차와 조선, 화학공단이 수두룩하게 들어차 우리나라를 살찌우니 고맙고 고마워라.
망양과 개운포, 태화강 역을 내리면 바다와 강이 기다리려나 했다. 어디 있는지 얼씬거리지 않는다. 이름에 걸맞지 않다. 태화루 옆 강기슭에 역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첫댓글 사모님과 멋진 여행하셨네요
동해선 전 아직 타보지 못했서요
울산 태화루는 몇 번 가 보았는데
예전엔 비경이 였는데 지금은 도심속이라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게 변했서요
수고 하셨습니다
겨울 정원의 대밭과 억세 갈대가 멋졌습니다.
태화강역에 내려 버스로 한참 가야 태화루가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