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죽이려면(죄 죽이기 4)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죄를 죽이기 위한 여러 방법에 대하여 로마서 8:13 말씀을 가지고 4번째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죄를 죽이는 길이 우리 영혼이 힘을 얻고 주님과 그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힘 있게 일하심으로써 거룩함의 열매를 맺어가기에 이 주제를 가지고 반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몇 번에 걸친 설교를 통하여 죄를 죽이는 방도에 대하여 함께 살펴본 바 있습니다. 지난번까지 설교 중에 여러분과 나눈 방도를 잠시 재언급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죄를 죽이는 일을 진지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항상 힘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이것이 죄를 죽이는 일에 동기로써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로, 죄가 우리 안에 항상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항상 죽여야 합니다.
둘째로, 죄는 우리 안에서 가만히 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강력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죄를 계속하여 항상 죽여야 합니다.
셋째로, 죄는 우리의 변화된 새 본성과 성령의 활동을 거슬러 행하며 반대하기 때문에, 죄를 항상 죽여야 합니다.
만일 이렇게 내재하는 죄와 그 활동을 죽이는 일을 무시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우리의 영혼과 새 생명은 거의 죽은 것과 같이 되고 죄는 우리 마음을 완전히 완고하게 그 터를 잡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죄를 죽이라는 이 부르심이 얼마나 중요한 사명인지 다시 한번 깊이 되새깁시다. 이 죄와 싸워 죄를 죽이라는 사명은 우리가 꾸준히 날마다 짊어져야 할 한평생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죄를 죽이는 방도에 대하여 살펴본 바 있습니다. 죄를 죽이는 방도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죄의 간교함과 죄의 집요함과 죄의 파괴성과 해악을 항상 인식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죄와 싸워 죄를 죽이려고 할 때 모든 죄에 대하여 총체적인 싸움을 싸울 각오와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들이 죄와 싸우되 성령과 함께 죄를 싸워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를 도와서 죄와 싸워 이기게 하실까요?
먼저, 성령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풍성한 은혜를 보게 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십자가에 죽었고 그와 더불어 살아서 죄에 대하여 승리한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도록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해주십니다.
또한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죄를 소멸하게 하시고 정결하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죽이기 위하여 죄의 위험성을 잘 알고, 모든 죄에 대하여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죄와 싸우며, 성령을 의지함으로써 죄와 맞서 싸워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지난 주 수요일에는 때로 어떤 욕심과 죄의 증세들은 신자들에게 이미 매우 치명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기에 이것을 물리치는 데 더 끈질긴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러한 심각한 욕심의 증세들로는 첫째로, 욕심과 죄가 오래 되어 고질적이 된 경우요 둘째는 욕심과 죄를 묵인하고 타협하면서 정당화하는 경우요 셋째는 죄의 결과인 형벌이 두려워서 죄를 대적하는 경우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욕심과 죄도 고질적이고 끈질기고 위험하며 치명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물리치려면 그것들의 위험성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자기 속에 있는 이러한 위험한 증세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속에 일어난 여러 가지 욕심과 죄들이 계속 진행되기 전에 치열하게 싸워 이겨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지난 삼 주에 걸친 말씀들에 이어서, 오늘 저녁에는 육신과 죄를 죽이는 방도에 대하여 한번 더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거주하는 육신과 죄를 죽일 수 있을까요? 다음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죄와의 영적 싸움을 싸워가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육체와 죄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기와 경우를 살펴 이를 피해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기질도 있고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으로 타락의 본성인 육신이 강화되기도 합니다. 죄가 어떤 상황에 접하면 불이 붙고 더 세차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러한 죄가 잘 억제가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러한 죄성이 오리가 물을 만난 듯 더 세차게 힘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이라도 자기 속에 이러한 죄성이 강하게 되고 잘 넘어지는 시험이 오는 것을 보면, 그러한 상황을 조심하고 이를 사전에 지극히 조심하여 그러한 상황을 피하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하는 선한 분이었지만 늘 인간적인 정에 약하여 북 이스라엘의 불경건한 왕 아합 왕가에 끌려다니다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이방 나라와 싸우곤 했습니다. 그리고 정에 약하여 북 이스라엘 왕가와 사돈의 인연을 맺어서 자기 큰 아들 여호람을 아합과 이세벨 여왕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까지 맞았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어 전쟁하느라고 자기 병사들도 전쟁에 나가 죽기도 하고 본인도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책망할 때 다행히 반성하고 돌이켰지만, 이러한 인연을 끊지 못하고 계속 이어갔습니다. 결국 말년에 아합 왕의 아들 아하시야가 또 다시 여호사밧 왕과 함께 무역선을 만들어서 장사하자고 요청했으나 이번에도 넘어갈 수 있었으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건조하던 그 배를 깨뜨려버리셨습니다. 여호사밧 왕의 연약한 기질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배를 깨뜨리셔서 함께 사업하지 못하게 해주시고 그 말년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마음이 너무 여리고 불신앙자와 함부로 교제하고 사돈의 인연까지 맺은 결과 그는 많은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 인연을 칼로 무 자르듯 잘라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여 많은 손해를 보았고 그 아들대와 손자 대까지 크나큰 인명 손실의 피해가 이어졌으니, 이것이 아합 왕가와의 인연 때문에 생긴 큰 재앙이었습니다. 죄와 재앙이 타고 들어오는 점에 대하여 조심하지 않았던 여호사밧의 실수로 인하여 그러한 큰 손해가 다윗 왕가에 임한 바 있습니다.
훗날 다윗은 늘 전쟁과 국정에 전념할 때에는 범죄하지 않았으나 전쟁터에서 나와 예루살렘에서 한가하게 지내는 중에 그의 영혼에 영적 게으름과 방심이 찾아와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야곱의 아들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자 그는 하나님과 그 주인에게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분명히 거절하였을 뿐 아니라 아예 그 여인 곁에 있을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죄가 틈탈 기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 것이 요셉의 귀한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가 자주 넘어지는 육신과 죄의 성향이 어떤 상황, 어떤 친구, 어떤 계기에 더 강하게 일어나며 우리 연약함이 더 드러나는가를 잘 살펴서 이를 미연에 잘 피하고 미리 마음으로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도록 준비하여 죄를 죽여야 하겠습니다. 자주 넘어지는 자신의 환경, 자기의 시기, 자기 생활 중에 어떤 계기를 알아챈 후에는, 미리 미리 조심하여 또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기도로 무장하여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34 말씀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생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심령의 은혜를 도적질당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마음을 죄와 불신앙과 불평 원망으로 이끄는 세상 친구, 세속적인 친구들이 있다면 그런 인연을 지혜롭게 단호하게 끊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욕심과 죄가 최초로 잉태될 때 적극적으로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잠언 17:14 말씀에 보면,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분노와 다툼과 원한과 분열의 죄만 아니라 모든 죄들은 그 시작은 미미합니다. 처음에는 손가락만한 구멍에 물이 조금씩 새나오는 것처럼 사소하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점점 커지면 손으로 막을 수 없고, 모래주머니 몇 개 가지고 막을 수 없이 물이 쏟아져 흘러 둑이 무너져 홍수가 되는 것처럼, 죄도 처음에는 작은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이 생각을 떨쳐버리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떨쳐버리면 되는데, 그 생각을 붙들고 점점 더 시간을 들이고 깊이 생각하면 그 욕심은 점점 구체화되고 점점 인간의 감정과 이성과 의지를 사로잡아갑니다. 그래서 결국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게 되고 그 죄를 거듭 행하게 되면 결국 사망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욕심이 처음 마음 속에 죄의 상념을 떠오를 때에 곧장 그 생각을 대적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시작 단계에서 곧장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물리치고 예수님의 보혈로 물리쳐야 합니다. 처음부터 아예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해야 죄가 자라날 수 없습니다.
3. 몸의 지체를 성령의 은혜 중에 죽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최근 건강법 중에 많은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것이 ‘간헐적 단식법’입니다. 일정 기간에 음식물을 몸에 공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6시간 단식하는 방법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몸에 있는 모든 활성산소가 다 사라지고 몸의 노폐물들이 다 사용되어서 염증들이 없어지고 몸의 기관들이 활력을 되찾고 건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몸이 이렇게 한번씩 긴장을 주면 그 결과 죽었던 기관들이 활성화되어 새롭게 되는 원리처럼, 영적으로도 기도와 금식이 그러한 영적 쇄신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작정하여 회개 기도를 드리거나 일정 기간 금식을 하게 되면, 타락한 우리의 몸의 지체 속에서 활발하게 역사하던 죄의 세력들이 타격을 입고 죄의 소욕들이 약화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9:29 말씀에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귀신 쫓는 것과 병 고치는 것뿐 아니라 우리 몸의 오랫동안 자리잡고 우리를 미혹하고 압제하는 죄의 세력을 꺾는 일에도 유효한 말씀입니다. 오랜 죄의 힘 이면에는 악한 마귀와 귀신의 역사도 함께 하곤 합니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금식하며 회개 기도를 드리면서 지난 날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간구하면, 분명코 죄와 그 이면에 역사하는 마귀가 약화되어서 점점 죄의 세력이 꺾어지는 영적 승리가 임할 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과 거룩함을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삶이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죄로 인하여 인간이 얼마나 비참해지고 얼마나 초라해지는 것을 우리들이 목격합니까? 그러한 죄로 인하여 얻는 것들이 한줌의 권력, 한줌의 재물, 한줌의 칭찬, 한줌의 쾌락 아닙니까? 인간의 삶은 참으로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마치 바람과 같이 죽음 저 너머 흙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온 세상이 존재하기 전부터 계신 분이요 이 모든 세상을 만드신 분입니다. 우리가 살고 보는 온 우주의 넓이가 무려 150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빛의 속도로 가도 150억년을 가야 도달할 정도랍니다. 그 중에 우리 태양계는 야구장의 밤톨 정도나 되겠지요. 이렇게 광대하신 우주를 만드시고 이 지구를 그토록 아름답고 푸르고 다양한 동식물을 살게 해주신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생각할수록 우리 인간은 얼마나 지극히 작은 존재입니까? 그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들이 무엇이관대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며 내 고집, 내 아집을 내세우겠습니까? 그분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로우심,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의 아들을 십자가에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내어주신 조건없는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찌 이기적인 마음과 교만함과 불결함과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주인되어 살아가는 자만심을 어찌 부끄럽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자주 묵상할수록 우리들은 우리 자신의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내려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저 광활한 하늘의 별과 달과 별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가 아들일지라도 죄를 담당하셨을 때 기꺼이 그를 버리시고 그에게 모든 진노를 쏟으신 그 거룩하심과 죄를 미워하는 질투심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들은 죄를 이기지 못한 채 지내는 우리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하나님 백성으로서 합당치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주 이 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삶의 작고 비참함을 기억하면서, 장차 그 크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 서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거룩하신 분 앞에 섰을 때 우리의 모든 삶이 실오라기 하나 걸친 것 없이 드러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상의 잠시 잠깐의 세월을 사는 동안 자신을 정결하게 지켜가야 할 것을 결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회 되는 대로 바로 이 지극히 크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지극히 작고 비천한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서 자기의 죄를 내려놓는 거룩한 주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