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치님 뒤를 돌아보세요!”
소소의 다급한 소리에 뒤를 돌아본 파치는 깜짝 놀랐다. 수정자라가 벽 속으로 스르르 사라자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사실은 갑자기 수정자라 뒤에 있던 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안개가 자욱한 동굴이 생겼고
수정자라가 놓인 좌대가 그 속으로 사라졌다. 파치는 황급히 수정자라를 따라서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불규칙하게 움직이던 돌기둥들이 모두 내려가더니 호수 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소소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보다도 파치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지자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파치님!”
“...................”
“파치님!”
“...................”
소소는 너무 슬펐다. 그리고 파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미웠다.
파치는 어두운 동굴을 혼자 걷고 있다.
사방은 깜깜하고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바닥에는 빛나는 돌이 길게 깔려있었다.
파치는 마치 반짝이는 은하수 위를 걷듯 그 위를 걸어가고 있다.
저~ 멀리 수정자라가 빛을 내며 파치를 부르는 것 같다.
마침내 파치는 수정 자라 앞에 섰다. 그리고 공손히 절을 올렸다.
“도와주세요. 아시겠지만 지금 세상은 악의 기운의 힘이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파치는 품에서 수정물고기를 꺼내 수정 자라 옆에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옥가락지도 자수정검도 모두 수정자라 옆에 올려놓았다.
수정 자라와 수정 물고기는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는 듯했다. 온몸이 축축이 젖어갔다.
바로 그때.. 파치는 전설이 생각났다. 수정물고기를 수정자라의 등에 꽂았다.
“파치님~~~”
“파치님~~~”
소소는 눈물이 글썽거리며 파치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순간 파치가 들어간 안개 자욱한 동굴 속에서 무지개 빛이 찬란하게 새어나왔다.
그리고 안개가 서서히 밖으로 밀려나왔다. 어디선가 상큼한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금세 눈물이 뚝 뚝 흘러내릴 것 같은 소소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움직임도 멈췄다.
동굴 속에서 두 줄기 섬광이 번쩍하더니 희미한 형체의 무엇인가가 밖으로 나와 호수위에 머문다.
요정인 듯 혼령인 듯 그 두 물체의 모습이 흐릿하며 은은한 빛이 나는데
그들은 잠시 허공에 머물다가 호수 속으로 내려간다.
어찌된 일인지 악어도 전혀 움직임이 없다. 물빛이 서서히 자색(紫色)으로 변한다.
곧이어 옅은 쪽빛으로 서서히 변하더니 다시 원래의 물빛으로 돌아왔다.
호수 속에 잠겼던 돌기둥이 모두 스르르 올라왔고 밟고 지나가기 딱 좋은 위치에서 멈췄다.
그 순간 물속에서 희미한 두 물체가 나오더니 쏜살같이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멍~ 하고 있던 소소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돌기둥을 징검다리같이 밟으며 호수를 건넜다.
그런데 소소가 건너편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동굴 속에서 파치가 나왔다.
“파치님!”소소는 파치의 품에 와락 달려들며 눈물을 흘렸다.
파치는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곧바로 사태를 알아챘다.
“난 괜찮아요. 소소님이 걱정 많이 했나 봐요.”
“.................... 몰라요.”
“이제 그만 그치세요. 예쁜 눈 퉁퉁 붇겠어요.”
파치의 말에 소소도 약간은 겸연쩍은 듯 파치 품에서 나왔다.
“그런데 수정자라는 못 찾은 거예요?”
“찾았어요.”
“어디요? 보여줘요.”
“저기를 봐요.”
파치가 가리키는 허공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안개도 아닌 구름도 아닌 희미한 그 무엇이 둥둥 떠 있었다.
아까 동굴에서 나와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동굴로 들어간 그 물체였다.
“저게 뭐죠?”
“수정물고기와 수정자라는 원래의 모습인 요정으로 변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능력 때문에 우리의 눈에 안 보이는 것 이예요.”
“네... 그런데 좀 무서워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저분들은 소소의 착한 마음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
“왜 그래요? 어디 아픈데 라도?”
소소는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다. 수정자라를 찾는데 자기가 온힘을 다해 도와줬었는데
막상 수정자라를 찾고 보니 파치와의 이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좀 피곤해서요.”
“그래요? 그럼 어서 돌아갑시다.”
수정물고기와 수정자라의 이름은 “소화”와 “조인”이었다.
조인과 소화는 하백 앞에 공손히 서있다.
“그래 조인 자네 그동안 답답했지?”
“아닙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쉬었습니다.”
“허허허... 그랬나? 이사람 아직도 겸손하기는...”
“소화 자네는 해모수님에게 인사드려야지?”
“네.”
“그래 해모수님 만나게 되면 언제 이곳에 한번 놀러 오시라 전해주게나.
내가 예전에 신세를 진 적이 있는데 그것을 갚을 기회를 안주시네 그려...허허허”
“네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음.. 조인 소화 둘에게 한 가지 당부할 게 있네.”
“네.”
“네.”
“다행이 악의 화신이 지하에서 나오지는 않았다네. 하지만 앞으로 수일이 지나면 나올 것 같네
그 말은 악의 힘을 거의 되찾았다는 말 이기도하지.
그리고 그 추종세력들이 인간의 세계와 요정의 세계를 이미 어지럽히고 있다네.
자네들이 할일을 내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내가 몇 가지 당부할 게 있네.
악의 기운을 잠재운 후 빨강, 초록요정의 우두머리도 깊은 지하에 감금하게나. 그들이 요즘 나쁜 짓을 너무도 많이 했어
그리고 아직도 그 실체를 보이지 않고 숨어서 지시만을 내리는 인간세계를 어지럽히는 자가 있는데 그를 찾아내게나.”
“네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 요정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를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자네들뿐이네.
이세상이 자네들손에 달려있다는 이야기지.”
“최선을 다해 세상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파치는 조인과 소화를 기다리며 정원을 거닐고 있다. 소소는 그런 파치를 멀리서 바라보며 울고 있다.
이제 이별의시간이 온 것이다. 소소는 가슴이 허전했다. 이제 그만 울음을 멈추고 파치에게 가고 싶었지만
소소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눈물의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때 파치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소소는 들을 수 있었다.
“소소님! 당신의 마음 알아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휴~~~~~
그런데 떠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는데 소소님을 어디 있는 거지?”
아주 작은 소리였는데 소소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소는 파치의 한숨소리에 잠시 눈물을 멈추고 파치를 바라보았다. 파치의 고뇌가 느껴졌다.
순간 파치를 힘들게 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가야할 사람인데 무거운 마음으로 보내느니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소소는 울음을 멈추고 파치에게 다가갔다.
“파치님! 여기서 뭐해요?”
“아... 소소님! 안보이기에 많이 궁금했어요. 도대체 어디 있었어요?”
“정말 궁금했어요?”소소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럼요. 이제 곧...” 파치는 이별이라는 말을 하려다 말이 막히고 말았다.
소소도 그런 파치의 마음을 아는지 씁쓸한 표정이다.
“이거 받으세요.”
소소가 내미는 것을 보니 작은 앵무조개로 만든 장신구(裝身具)였다.
엉겁결에 받아보니 매끄러운 느낌이 아주 좋았고 한손에 쏙 들어왔다.
“혹시라도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옹달샘에 이것을 담그세요. 그럼 제가 파치님을 찾아갈 거예요.”
“옹달샘요?”
“네 모든 옹달샘이 이곳과 연결되어있거든요.”
“그래요. 고마워요.”
“나도 뭐하나 주세요.”
“응? 그런데 어쩌죠? 전 지금 갖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 목걸이 주세요.”
소소가 가리킨 것은 늑대 송곳니 목걸이였다.
“이건...”
“왜요? 안되나요? ”
“그런 건 아니지만...”
“이미 미지님께 청혼한거 알아요. 다른 뜻은 없어요. 그저 파치님의....”
파치는 소소의 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파치는 목걸이를 소소의 목에 걸어주었다.
소소는 자신에게 목걸이를 걸어주는 파치의 얼굴을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파치의 목을 껴안더니 파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