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탕에서의 작은 배려
송 희 제
작년 연말에 서울 언니 내외와 연중 몇 번씩 가는 온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수질이 우리에게 잘 맞아 언니네가 늘 주관하여 날짜 연락이 와서 겹친 일 없으면 거기에 따른다. 팔순이 된 언니가 얼마 전에 무릎과 어깨를 시술하였다.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았지 직접 상태를 본 지가 오래다. 반가운 맘으로 우리 부부는 5일간 예약했다는 백암온천으로 향했다. 딸 넷 중 맏언니는 세상을 뜨고 바로 위 언니는 미국에 산다. 둘째 언니와 막내인 나만 자주 통화만 하고 지낸다. 다 연로해가서 몸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니 얼마나 이런 휴양 여행으로 만날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 우리 자매의 만남은 반갑고 돈독하다.
우리는 대전에서 출발해 휴게소에서 한 번만 쉬고 갔다. 빨리 만나서 온천수에 잠길 마음으로 4시간 정도 걸려 도착했다. 언니가 노령에 두 군데나 시술했는데 얼마나 좋아졌을까? 시술한 지는 한 달여 지났으나 아직 팔다리의 움직임이 불안전해 보였다. 언니가 건강이 요즘 너무 안 좋아 안타깝다. 여장을 풀고 온천탕에 갔다. 연말이 가까우니 여탕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더구나 오후 저녁 전이라 앉을 자리도 없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느라 탕 주변을 휘젓고 다녔다. 언닌 더 기울어진 몸체로 비틀거리니 누가 옆자리에 앉게 배려했나 보다. 내 모습은 안개 속처럼 수중 열기로 자욱한 실내서 내 흰머리가 오가니 눈에 뜨인 모양이다. 키 크고 젊은 긴 머리 아가씨가 내게 가까이 와서 내 팔을 잡는다.
"제가 곧 나가니까 옆에 있다가 하세요. 아까부터 이 탕 안을 몇 바퀴나 돌면서 자릴 찾는 것 같아서요."
"아~ 그래요. 고마워라. 이렇게 사람이 많아 각자 자기 몸 씻기에도 바쁜데 눈여겨 봐줘서 감사합니다. 약자를 살피심에 복 많이 받겠네요."
하며 나는 반갑고 기뻐 응수하였다.
자리를 차지하고 언니가 어디에 있나 둘러보았다. 언니도 끝에 코너 자리에 앉아 천천히 오른팔이 시술로 회복 중이라 왼팔로 물을 받아 적시고 있었다. 그녀는 몸에 물만 끼얹고는 천천히 탕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샴푸를 한 후 그 옆 미온수 탕 안에 갔다. 그녀는 아직 힘든 노약자라 탕 안에 내 옆에 있지 않으면 내가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 나는 탕 안 벽시계를 보며 몇 분 더 있으려고 온천수에 잠긴 채 있었다. 그녀는 힘든지 옆 탕에서 먼저 혼자 뒤뚱거리며 나갔다. 비틀대며 불안한 상태로 천천히 걸음을 걷는 걸 보고 물속에 잠긴 내가 나가서 부축하려던 참이었다. 언니가 힘겹게 지나가자 탕 안 여자들은 그 모습에 불안해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코너를 도는데 우아하게 생긴 중년 여자가 발을 탕 안에 담그고 있다가 나와서 언니를 부축했다. 얼른 내가 나와서 언니를 붙잡고 자리에 앉힌 후 그 여자분께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도 내 자리에 앉아 나가려고 온몸에 비누를 칠하기 시작했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분은 나보다 더 연로해 보였다. 비눗물을 샤워기로 뿌린 후 등을 닦으려던 참이었다. 흰머리를 보고 더 연장자로 본 모양이다. 아무 말 없이 혼자 등을 닦는데 누가 와서 내 등을 밀어줬다. 나는 놀라고 고마워서 말을 건넸다.
"이렇게 복잡하고 좁아 각자 자기 몸 닦기도 바쁜데 제 등까지 밀어주셔 고맙습니다. 전 대전에서 왔는데 어디서 오셨어요? 제가 등 밀어 드릴까요?"
하니 본인은 울산에서 왔는데 아파서 오래 병원에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거의 좋아져 이렇게 온천도 와서 혼자 몸을 닦을 수도 있단다. 내가 팔이 약해 등 쪽을 힘들게 닦는 거 같아서 해주고 싶다고 했다. 오랫동안 자기 몸을 잘 못 부리다가 나아져 남에게 베풂을 하려는 그 고운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입욕하는 시간이 짧다. 형부와 남편이 기다릴 것 같고 언니도 안 보여 나가려던 참이었다. 내 앞에 젊은 엄마가 두 딸을 한 아이는 안고 걸리며 나가는 듯했다. 뒤따라 나가던 아이가 들고 있던 장난감을 바닥에 놓쳤던 모양이다. 그걸 주우려던 찰나에 옆에서 머리 감던 여자의 바닥 비누 거품에 어린애가 미끄러졌다. 비명이 갑자기 울려 퍼졌다.
"아~ 어음 마!"
갑자기 난 어린아이의 큰소리에 탕 안 여자들이 모두 놀라 시선이 쏠렸다. 아이가 넘어진 것 같았다. 한 아이를 안고 한발 앞 디딘 엄마가 뒤돌아 왔다. 어린아인 넘어져 우측 팔과 발목에 그새 상처가 나서 선홍색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도 나가려던 참인데 너무 놀라 넘어진 아이를 잽싸게 힘들게 안고 그 엄마보고 얼른 나가자고 했다. 나와서 청소하는 여직원을 불러 사고 얘길 했다. 아이와 엄마도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해 내 자식 같은 마음에 진정하도록 다독였다. 그들은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모양이었다. 온천 측에서도 그 소식에 여직원 둘이 왔고 아이 아빠도 놀라서 소식 듣고 급히 출발했다고 했다.
저녁 시간이 되자 그렇게 복잡했던 탕 안에 사람들이 몇 명밖에 없었다. 탈의장에 있는 화장대 앞에서 화장하던 이들도 거의 다 갔다. 하얀 화장대 위에 짧고 긴 머리카락과 뚜껑도 안 닫은 화장품 뚜껑과 어질러진 화장품 티슈가 널브러져 있다. 실내 청소하는 직원이 지저분한 실내 바닥을 훔치며 흘린 수건들을 주워 담는다. 나도 거들며 화장대 위를 치웠다. 청소 직원은 잠깐 치운 나에게 여러 가지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추운 겨울 연말도 가까운데 둘째 언니를 모시고 자매간에 서로 연로해가는 얼굴도 보며 쉬러 온 첫날 오후! 잠깐인데도 온천탕 안에서 여러 모습을 보며 몸소 겪은 하루였다. 우리네 삶들은 서로 어우르고 부딪히기도 하며 산다. 세상사가 나 혼자만의 방식대로 살 수는 없다. 이 온천탕에서부터 내 이기적인 잣대가 아닌 객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며 작은 일에서부터 서로가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느껴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