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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정적을 제거하다
왕상2:13-46
요절: 4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매 그가 나가서 시므이를 치니 그가 죽은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솔로몬은 이제 왕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를 튼튼하게 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가 어떻게 하여 이것을 이루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혜를 잘 사용하였고, 실행에 옮기는 데에서 엄청난 결단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국정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지혜와 결단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혜란 우리가 배운 대로 하나님 말씀을 실제 삶에 잘 적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고 그대로 따르고자 할 때 지혜가 생깁니다. 그런데 지혜만 있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그 지혜를 실천하려면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솔로몬으로부터 이 두 가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A. 아도니아가 아비삭을 아내로 원하다가 죽임을 당함(13-25)
13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14 또 이르되 내가 말씀드릴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밧세바는 아도니아가 온 것에 대해 불신을 품고, 그가 순수한 목적으로 왔는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한 때 왕위를 차지하려던 그가 지금 왜 나에게 왔을까라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이에 아도니아는 화평한 목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청원하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청원이란 말을 하지 않고 진정한 목적을 숨기었습니다.
15 그가 이르되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16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17 그가 이르되 청하건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15.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이 구절은 왕위가 솔로몬에게 돌아간 것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이 아도니아에게 남아 있음을 드러냅니다. „왕위는 내 것이었다“는 말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킨 것을 두고 볼 때, 솔로몬이 다윗의 대를 이을 것이라는 사실이 이미 왕자들 사이에 알려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습니다. 순서로 본다면 그가 자연스럽게 대를 이어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도니아의 반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서열로 볼 때,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솔로몬을 왕위계승자로 삼은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이것에 대항하여 왕위찬탈을 획책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누가 왕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신다는 당위성의 관점에서 볼 때, 압살롬과 아도이나의 태도는 명백히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온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았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백성은 그의 모의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비로소 온 백성이 환호했습니다.
16.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일단 단순한 밧세바에게 거짓으로 연막전을 쓴 다음에 비로소 한가지 청이 있다는 본심을 드러냅니다. 아도니아가 손해 본 것에 비하면, 그 청은 매우 작은 것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솔로몬은 자기 것도 아닌 왕위를 얻었으니, 그 정도의 양보는 당연히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청을 하기 전에 „거절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곁들었습니다. 어쨌든 밧세바는 아도니아에게 말할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17.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왜 아도니아는 솔로몬이 밧세바의 청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19절을 보면, 솔로몬이 어머니 밧세바를 얼마나 공경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공로가 아니었으면, 솔로몬은 왕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도니아는 이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솔로몬이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판단착오였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야심을 금방 눈치를 챌 정도로 현명한 사람이었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아도니아는 꾀가 많은 사람임을 알 수가 있고, 자기 꾀에 자기가 다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꾀를 사용해서도 안 될뿐더러, 이러한 꾀에 넘어가지 않도록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깨끗해야 할 뿐만 아니라 슬기로와서 교회에서 그렇게 술책을 사용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그의 부탁은 아비삭을 그의 아내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보통 부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비삭은 비록 매우 젊고, 다윗과 잠자리를 하지 않았더라고 할지라도, 다윗의 아내와 같은 신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삼겠다는 것은 보통 부탁이 아닙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직접 솔로몬에게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밧세바는 구슬리기 좋고, 솔로몬은 밧세바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8 밧세바가 이르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19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왕좌에 앉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자리를 베푸니 그가 그의 오른쪽에 앉는지라
20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소서 내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21 이르되 청하건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밧세바는 „좋다“하고 승인했습니다. 그녀는 아도니아의 청 뒤에 무슨 음모가 숨겨 있는지를 간파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도니아를 불쌍하게 여겨서, 그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왕위를 차지하지 못한 큰 손해를 수넴 여인을 주는 작은 청을 들어주는 것으로 보상해줄 수 있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도니아의 불만도 가라앉고, 정국은 안정될 것입니다. 만약 아도니아의 부탁에서 불순한 동기를 발견했더라면, 그녀는 아도니아를 훈계해서 돌려보냈을 것입니다.
20절에 그녀가 솔로몬 왕에게 부탁한 내용을 보면, 그녀가 완전히 아도니아 편에 서서 청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작은 일“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녀는 아도니아의 청이 정말로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아도니아의 간계한 책략에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도니아와 같이 청을 하기 전에 먼저 „내 청을 거절하지 마소서“라는 말로 언질을 받았고, „당신의 형제에게“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형제끼리의 우애를 위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즉 그녀는 아도니아의 청을 자신의 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볼 때, 인정이 많은 것도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인정이 이끌리는대로 생각과 행동을 하면, 큰일을 그르칠 수가 있습니다. 양의 탈을 쓴 악한 자들의 속마음을 모르고 그들의 그럴듯한 술수나 가르침에 속아 편승해서, 자신의 믿음마저도 버리게 되고 하나님의 적이 될 수가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이러한 교인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목사에게 무조건 순종해야한다는 거짓 교사들에 속아서 결국 이리와 같은 자들에게 붙어서 일생을 하나님의 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신자는 영적인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신자를 헛된 거짓 약속으로(„편안하다, 편안하다“) 무디게 만드는 교회는 속히 떠나야 합니다.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솔로몬은 어머니를 극진하게 공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절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오른쪽에 앉혔습니다.
22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솔로몬의 응답은 밧세바에게 매우 냉혹하였습니다. 그는 분노했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당신이라는 말이 강조되어, 왜 „하필 당신이“ 아도니아 편에 서서 그런 청을 하는가라는 „솔로몬이 전혀 이해할 수 없다“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이 청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아도니아의 검은 마음을 금방 알아차리고,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라고 덧붙임으로써 지금 밧세바가 얼마나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아의 획책을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지혜로왔습니다. 이것은 그의 왕위가 견고하지 못해서 그가 고심하고 있었던 차에 일어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아비아달과 요압이 모의에 가담한 것을 솔로몬에게 사과하지 않아서 솔로몬에게 그들이 큰 부담이 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즉 그는 이들이 아직도 왕위찬탈의 꿈을 버리지 않았음을 확신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아도니아의 청이 왕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로 정당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사후에 그의 후처(여러 후처 중의 하나)를 아내로 삼는다는 것은, 은밀하게 자신의 왕권을 과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솔로몬이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밧세바의 청에 못이겨 결혼을 허락했다면, 이것이 아도니아가 백성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실마리를 주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정황에서 아도니아가 아직도 자신의 왕위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입니다.
23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24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이 단락에서 매우 강렬한 맹세가 나옵니다. 23에서는 맹세와 저주(벌을 내리심)가 함께 있고 24에서는 또 맹세가 나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아도니아가 죽을 것을 두 번(23,24)이나 맹세하였습니다. 23절의 맹세는 저주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맹세로서, 맹세 내용이 틀림없이 지켜질 것임을 확인하는 맹세입니다. 즉 자신이 그 맹세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24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맹세의 내용과 관련되어 여호와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들이 묘사됩니다. 즉 여호와께서 과거에 이러이러한 일을 하셨으므로, 지금 내가 그러한 여호와를 걸고 이러한 맹세를 한다는 것입니다. 1장에서 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솔로몬을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도니아는 하나님의 일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왕위 찬탈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일에 대항해서 도전한 것이므로 그는 틀림없이 죽어야 합니다. 그것도 이 일이 당장 오늘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도 솔로몬의 굳은 결의를 나타냅니다.
25 솔로몬은 브나야를 보내어 아도니아를 죽였습니다. 성경은 그가 저항을 했다던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매우 간단하게 브나야가 그를 죽였다고만 합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매우 단호한 결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볼 때에 다윗의 유언이 효과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왕위가 견고하지 못해 걱정하고 있던 솔로몬에게 „너는 강하라, 남자가 되어라“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의 이 유언을 간직하고 있다가 대담하게 이것을 적용시켜 정국을 평정시켰습니다.
- 중간부분 생략 -
4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매 그가 나가서 시므이를 치니 그가 죽은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12절에서는 솔로몬이 견고한 나라를 물려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솔로몬이 13-46에서 일련의 조처를 해서 나라가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는 견실한 나라를 물려받아서, 그의 지혜로 아도니아와 시므이를 제거함으로써 나라를 더욱 안정시킨 것입니다. 이들은 보통 사람이 통찰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의 계획을 펼쳐나갔습니다. 특히 시므이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긴장을 이용하여 사울 가문을 다시 세우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찰하여 사고를 미리 막은 솔로몬의 지혜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아도니아, 요압, 아비아달, 시므이와 같은 자들이 난무하는 장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자신의 몸으로 갚으시고 세운 교회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솔로몬과 같은 지혜로 악인들의 행태를 통찰하여 자신을 그들과 분리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참으로 큰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악인 편에 서 있게 됩니다.
- 설교 끝 - .
이하는 생략된 부분
B. 아비아달과 요압(26-35)
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26 솔로몬은 아도니아를 제거하면서 여세를 몰아 정적문제를 해결하였다.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라는 말로 솔로몬은 아비아달의 죄를 분명히 했다. 즉 그가 죽을죄를 지었다는 의미이다. 죽을죄란, 그가 전에 요압과 함께 아도니아를 왕으로 추대한 것과, 솔로몬이 왕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아도니아에게 붙어 있었던 죄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를 죽이지 않고 그의 고향 아나돗으로 보냈다. 아나돗은 예루살렘 북동쪽으로 5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서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다. 그곳에는 레위인 마을이 있었다(수21:18).
그가 죽음을 면한 이유는, 그의 과거의 공로 때문이다. 그는 다윗 왕 시절에 제사장 지위를 잘 지켜나갔고, 끝까지 다윗을 따랐다. 그는 벌써 다윗이 사울로부터 쫓길 때부터 다윗을 따랐고(삼상22:23), 그가 위기에 처할 때에도 그에게 붙어 있었다(삼하15:24: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27 이러한 솔로몬의 처사 뒤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이름 모를 선지자를 통해 내리신 저주가 실현된 것이다(삼상2:30-35)
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29 어떤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30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아뢰어 이르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28 요압은 아비아달이 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솔로몬이 아도니아파를 숙정하고 있다는 것을 즉각 눈치챘다. 그는 급히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였다. 여호와의 장막이란 성막과 다르다. 이곳에는 제단이 있고 성막과 함께 향유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29-30 솔로몬은 여호야다에게 요압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장막에서 죽일 수가 없었으므로 요압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하였다: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출21:13-14)
그러나 요압이 그곳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죽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브나야는 율법에 따라 그를 제단에서 끌어내려서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율법을 어기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를 끌어내리지 않고 망설이며, 솔로몬에게 돌아가서 지시를 요청했다.
31 왕이 이르되 그의 말과 같이 하여 그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32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33 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그를 쳐죽이매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35 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사령관으로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31 솔로몬은 브나야에게 요압을 제단에서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31-33에서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즉 지금 요압을 죽이는 이유는, 그가 아도니아 편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외적인 이유이다. 그보다 더 중대한 이유가 있다: 그는 까닭 없이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 피는 반드시 응보가 되어야 한다. 즉 까닭 없이 남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요압이 죄없는 군사령관 아브넬과 아마사를 다윗의 명령없이 죽였다. 그런데 요압은 다윗의 부하였으므로 다윗이 요압을 죽여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위해 원수를 갚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책임은 다윗에게 있으므로, 다윗과 그 자손에게 피가 붙어있다. 따라서 요압을 죽여야지만, 그 피가 다윗 가를 떠나서 요압의 자손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다윗 자손의 왕위에는 여호와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게 된다.
여기에서 죄와 음보의 문제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다. 죄, 특히 살인은 틀림없이 응보를 받아야 한다. 당시에는 요압의 세력이 너무 컸으므로 다윗이 그를 벌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윗이 그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는 솔로몬에게 그 문제 해결을 의탁한 것이다. 솔로몬은 그의 뛰어난 지혜로, 아도니아 문제와 연관시켜서 요압을 죽여서 하나님의 의를 세운 것이다.
34-35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브나야는 솔로몬의 명령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요압을 그의 고향에 매장하게 했다. 이것은 그의 죽임이 단순한 복수가 아닌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적의 시체는 훼손시켜 그를 죽음 다음에도 모욕하는 경우가 있다(삼상31:9-10). 솔로몬은 요압의 관직을 브나야에게 주고, 아비아달의 관직은 사독에게 주었다.
C. 시므이의 죽음(2:36-46)
36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37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38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 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36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솔로몬은 마지막으로 시므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를 죽이는 것은 다윗의 유언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솔로몬이 시므이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살라고 명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솔로몬은 무슨 근거로 그런 명령을 하였을까?
본 단락을 면밀히 연구해볼 때, 그가 분명히 솔로몬에게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사울의 친족으로서 압살롬으로부터 피신하는 다윗을 저주한 것으로 볼 때, 그 당시에 사울의 친족과 그들을 동정하는 많은 무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삼하16:5)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2-3킬로미터 떨어진 시므이 동네인 바후림에 첩자를 보내어 시므이의 반역 혐의를 포착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손에 잡히는 증거가 없어서 그를 처형할 수는 없어서 그에게 모반의 도시 바후림을 떠나서 예루살렘에 이사와 솔로몬의 감시를 받으며 살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죽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하고 선뜻 그 명령에 복종한 것이다. 본문을 피상적으로 볼 때, 시므이가 솔로몬의 억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37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 시므이의 고향 바후림이다. 따라서 그는 고향에 접근만 해도 죽인다는 엄명을 받았다. 이로써 시므이의 세력은 일단 꺾였다.
39 삼 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어떤 사람이 시므이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40 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의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
41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한지라
삼 년 후에 시므이가 종을 찾으러 블레셋의 가드에게 갔다. 문제는 그가 솔로몬의 허락을 받지 않고, 그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가드로 가서 두 종을 찾아온 것이다. 왜 그는 허락을 받지 않았을까? 이것은 그가 모반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로서는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에 갇혀 사는 것이 고역이다. 그가 사울의 동조자들을 통해 유다지파의 경쟁자 10지파를 결집시켜 다시 과거처럼 왕국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그에게 없었을까? 마침 종들이 블레셋의 가드 왕의 아들에게 갔으니, 그차에 그에게 가서 자신의 계획을 놓고 의논하며 협조를 요청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42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에게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게 하고 경고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43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두고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44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네 마음으로 아는 모든 악 곧 내 아버지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보내시리라
45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왕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42-43 시므이가 가드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솔로몬에게 알려지자 솔로몬은 즉각 그를 호출했다. 시므이가 몰랐던 사실은 솔로몬이 자신을 죽이려고 자신의 거동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러서 그가 맹세를 깨어서 죽게 되었음을 알렸다. 시므이는 여호와를 두고 한 맹세를 가볍게 여기고 왕의 명령도 지키지 않았음을 솔로몬은 분명히 하였다.
44-45 그 후에 그가 지은 과거의 죄를 끄집어냈다. 그것은 그가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 왕에게 행한 악행이었다. 그것은 시므이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타인에게 행한 악행이 자신에게 돌아가도록 하나님께서 하신다. 즉 그가 다윗에게 퍼부은 저주가 다윗에게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다윗 왕조는 여호와 앞에서 영원히 견고해지고, 그 저주는 자신에게 돌아가서 자신은 죽게 된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