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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51521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220612 주일
ex)은평교회 사진
오래전 교회 목사관을 건축하면서 벽체를 옹벽으로 공사를 했습니다. 철근 작업후 거푸집을 대고 그 안에 콘크리트를 넣었습니다. 콘크리트를 부어 넣는데 2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콘크리트를 밀어 넣으니까 골고루 들어가지를 않았습니다. 물론 바이브레이터로 진동을 주어서 어느 정도까지는 내려가지만 맨 밑에까지는 철근에 걸려서 잘 들어가지를 못하니까 맨 밑에 부분은 나무 망치를 만들어서 거푸집 내려 쳤습니다. 빈데가 없이 골고루 들어가라고 말입니다. 꽤 힘든 일이었습니다.
콘크리트를 위에서 부어 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왜 그렇게 힘들게 망치질을 할까요?
속이 콘크리트로 꽉 차라고 하지요. 속이 비면 아무리 철근을 넣었어도 옹벽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나무 망치로 거푸집을 힘껏 후려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 공간없이 콘크리트로 꽉차있어야 옹벽이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인가 꽉 차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술은 세상의 쾌락, 세상의 가치를 대표합니다.
술로, 세상 것으로 충만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을 꾸며주는 ‘오직’은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즉 성령으로만 충만해야지,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충만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그런데 우리는 흔히 여러 가지로 충만하면 좋으면 좋았지 해로울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위 옛날 식으로 말하면 팔방미인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팔방미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팔방미인은 전문성이 없다는 겁니다.
말이 팔방미인이지 팔방미인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것 같지만, 어느 한가지도 전문가처럼 딱 떨어지게 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전문가의 시대입니다. 무엇이든지 한 가지를 똑떨어지게 잘하면 환영받고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믿음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성령충만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이 무엇일까요?
어떤 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술취하지 말라고 하시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하셨지요?
취하는 건 같은데, 술에 취하느냐, 성령에 취하느냐가 다릅니다.
술에 가득 취했을 때를 만취 상태라하지요?
성령에 가득 취했을 때를 성령 충만이라 합니다.
공통적인 것은 자아가, 그 취한 사람이 마음대로 못한다는 거지요.
만취하게 되면 자기 의지대로 되지 않습니다.
만약에 술에 만취했는데, 모든 것을 다 자기 의지대로 할수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취 상태는 자기 몸도 자기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고, 자기 의지대로 하지 못합니다.
성령충만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 본성대로,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합니다.
성령에 이끌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ex)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 어떻게 시험을 받으셨나요?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마태복음4: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예수님이 만이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믿음의 용사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습니다.
창15:7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아모스2:10
10.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사도행전8:39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술은 완전히 자기를 상실하게 만들지만, 일종의 마비상태가 되지만, 분별력이나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성령 충만은 그렇게 자기를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기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아가 마비되거나 인사불성이 아니라 지정의가 온전한 상태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경은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하시는가?
성령 충만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독교는 성령의 종교이고, 기독교인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과 기독교, 성령과 믿음, 성령과 교회, 성령과 성도, 그 어느 것도 성령이 빠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성령과 함께 살아야 되는 존재입니다.
갈라디아서5:25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그래서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성령으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살지 못하면 성령의 사람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경우를 가리켜 성경은 ‘어린 아이의 신앙’이라고 합니다(고전3:1).
고린도전서3:1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여기서 육신에 속한 자, 어린 아이의 신앙을 이해하려면 다른 말씀, 고린도전서 2:14의 말씀을 같이 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고린도전서 2:14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3:1절의 ‘육신에 속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사르키노이즈:’로, 고린도전서 2: 14의 ‘육에 속한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키코스’ 는 미묘한 의미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절의 ‘육신에 속한 자’(사르키코스)는 ‘육체적인’ (fleshly), ‘육체의 본성을 가진’이라는 뜻으로 ‘자연인과 같은 본성의 행동을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다시 풀이하면 ‘중생을 했으나 여전히 육적인 것을 버리지 못해 육적인 행동을 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육신에 속한 자를 어린 아이라고 하는데, 어린 아이(네피오이스)를 직역하면 이는 ‘말이 없는 자’이 라는 뜻으로, 결국 말을 할 줄 모르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육신에 속한 신자는 거듭나기는 했으나 아직도 육적인 일에 잠겨 있는 까닭에 영의 일에 대해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믿음의 세계에서 어린 아이입니다.
고린도전서 2:14절의 ‘육에 속한 사람은 ‘자연적인’, 본성적인’, ‘자연의 본능에 의해 지배되는’의 뜻으로 ‘자연인’, 즉 아직 중생하지 않은 인간의 죄된 본성 그대로의 상태로 있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일을 받지 않은 자’, 즉 그대로의 상태로는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따라서 육신에 속한 자는 ‘윤리적으로 육적인 사람’입니다. 장성한 신앙에 이르지 못한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진 자’, 즉 아직 신령하지 못한 성도’이고, 육에 속한 자는 ‘본질적인 육의 사람’으로,즉 불신자,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믿음을 기준으로 사람을 세 부류로 분류할수 있습니다.
1)성령충만 한 신앙인 – 장성한 분량의 믿음의 사람으로 성공적인 신앙생활이 가능하고 열매가 있는 신앙생활이 가능한 사람.
2)육신에 속한 사람, 어린 아이같은 신앙인 – 믿고 중생은 하였으나 갓 태어난 아기처럼 말할 줄도 모르고 분별력도 없는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사람,
3)육에 속한 사람, 불신자 –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따라서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며, 육신에 속한, 어린 아이같은 신앙이 아니라, 성령충만한, 장성한 분량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육에 속한 사람도, 육신에 속한 사람도 아닌, 성령충만 한 사람을 살도록 권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4장에서부터 성도의 직분과 봉사, 옛 사람과 새 사람, 참된 성도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는 가운데 결론적으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첫절인 15절은 ‘그런즉’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그런즉은 우리가 예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고 새 생활, 참된 성도의 생활을 해야 함으로의 뜻입니다.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 ‘너희가 어떻게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주의깊게 살펴서 지혜롭게 하라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지혜로운 자는 악한 시대 속에서 살면서도 그 악한 시대 속에 흘러가지 않고 모든 기회를 선용하여 악을 대항하고 선을 행하라 말씀입니다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렇게 악한 시대 속에서 모든 기회를 선용하여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세상에 술에 취하면 안되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주님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이 내안에 충문하게 임하여 계시면 주님의 뜻을 명확히 알고 행할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19절부터는 성령충만 받은 성도들의 모습이자, 성령충만받기를 원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여기서 술취한 자들의 떠들석함과 성령 충만한 자들의 신령한 노래로 인한 온전한 기쁨을 대조하고
있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자주보는 술집과 밤거리의 광란과 엄숙하게 예배하는 교회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성령충만한 서도들, 또 성령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성도들의 삶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그대표적인 것이 바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배지요.
예배생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령충만한 성도의 모습이고, 그런 성도는 도한 성령충만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으로 사는 성령충만한 성도들은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니 모든 것, 범사에 감사할수 있지요.
-교회를 평생 다녔어도, 귀한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아직도 힘들고 어려우면 감사보다 불평과 불만을 토하는 교인들이 있는데, 그 경우가 정확히 육신에 속한 자,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그러면 저보고 그럴 겁니다.
목사님은 어려움 당해도 감사합니까?
어떻게 어렵고 슬픈데 감사한 마음이 들수 있나요? 이렇게 말씀하실 분들,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런데요, 예수님 안 믿는 사람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언어가 ’불행중 다행‘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잘 뜯어 보면 어려움을 만났으나 불행중 다행이란 말은 “그래도 감사하네” 이 말입니다.
ex)성경의 어려운 말씀을 풀이하여 책을 쓰는 사람을 성경 주석가라고 합니다.
성경 주석가 가운데 유명한 분이 있는데 매튜 헨리-강도 만난 후의 감사!!
매튜 헨리는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권면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번은 매튜 헨리가 강도를 만나 그의 돈을 빼앗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그는 감사의 기도를 이렇게 드렸다고 합니다:
1.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강도를 만난 적이 없었기에 감사합니다.
2. 그들이 내 돈만 빼앗아 갔지, 내 생명은 빼앗아 가지 않았기에 감사합니다.
3. 그들이 많이 가져간 것이 아니라 적은 돈만 빼앗아 갔기에 감사합니다.
4. 내가 강도가 된 것이 아니라, 강도를 당한 사람이었기에 감사합니다.
이 일화는 매튜 헨리의 감사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를 찾아내며, 신앙적 성숙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도 일상속에서 많이 경험하는 일들...
몸이 아픈데, 아무래도 중병같은 생각,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았더니 중병이 아니라 이제 경증, 살았다, 다행이다, 경증이기는 해도 병이 들었는데, 죽을 병이 아니니 감사하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우리는 그야말로 죄로 인하여 사형선고 받은 몸!!
아무 공로없이 모든 죄 탕감받고, 언제 이 세상을 떠나도 천국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모든 것 접어 두고라도 이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감사=>범사에 감사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가 분명 구원얻은 성도이고, 그리고 우리가 하루를 살아도 그것이 주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아 범사에 감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복종하라(휘포탓소메노이)는 고대 군사 용어로서 본래 '...아래 정렬하라'는 의미로 군대적 복종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피차 복종하라고 하신다. 군대의 복종은 일방적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복종...사로 존중히 여기라는 말, 그 근거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존경하고 섬기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알고 기가이 서로를 섬기고 존경해야 합니다.
다같은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요, 한 형제 자매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정리, 성령충만을 위해, 또 성령충만한 성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자(19절).
이것은 예배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감동이 있는 예배를 말합니다.
둘째,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자(20절).
성령 충만한 생활의 특징은 찬미와 더불어 감사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감사한다는 것은 받은 은혜를 안다는 것이고, 성령의 역사가 풍성하다는 증거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안에서 서로를 섬기고 존경하자(21절).
서로를 섬기고 존경하는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여 서로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은 신앙생활의 필요조건입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성령으로 살수 없고,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이길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을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한 때이고,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영원하며 우리를 영생복락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지나가고, 사라지고, 없어질 것들에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읍시다.
성령충만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이기게 하고, 열매맺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우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는 경건 생활, 예배생활을 힘쓰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서로를 섬기고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성도의 모습이고,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성령충만하게 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