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태극기 휘날리며>
얼마 전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았다. 아무런 생각없이 보러 갔다가 영화의 엄청난 규모에 놀라웠다. 난 이 영화에 대해 지금까지 좋은 감정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다른 면에서도 살펴볼 생각이다. 이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의 비평을 적으려 한다.
그는 이 영화를 삼류영화라 칭하고 있다. 우선 그가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전투장면에서 신빙성 없이 촬영하였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위험한 상황에서 형제가 만나는 장면을 꼽는다. 수 많은 총알이 쏟아지는 전쟁 한복판에서(게다가 형은 다리를 절고 있었다.) 둘은 걸어다니는데 총에 맞지 않는다. 그들은 거의 전쟁터에 소풍나온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는 이 영화가 한국전쟁에 관한 내용이지만 사실은 이 영화가 한국전쟁과 관련이 없는 전쟁영화라는 점이다. 사실상 이 영화의 줄거리에서 한국전쟁이어야 하는 역사적 필연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대부분의 전투장면들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이 없으며, 거의 풍경이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전투는 항상 대규모로 펼쳐지며, 주인공이 속해있는 부대는 언제나 전면전에만 불려 다니는 이상한 부대이다.
세 번째는 "남동생 이진석 구하기"라고 할 만큼 상영시간에 비해 줄거리가 단순하다는 점이다. 형 진태 (장동건)가 남동생 진석(원빈)을 구하기 위해 태극무공훈장을 받으려고 전쟁터에서 악전고투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형은 점점 미쳐가고 ('지옥의 묵시록'?) 동생이 죽은 줄 알고 인민군에 투항한 형을 되찾으려고 동생 진석은 인민군 본부를 찾아가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디어헌터'?) 세월이 지나고 형에게 남긴 만년필의 추억을 따라서 이제 노인이 된 진석은 유해가 묻힌 곳을 찾는다. ('타이타닉'?) 말하자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과 아무런 상관없는 전후세대의 영화감독이 전쟁에 대한 체험이라고는 할리우드영화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그 첫번째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감히'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전쟁영화로 만들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기괴한 것은 이 지루한 영화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남동생을 제대시키기 위한 형의 눈물나는 노력이다. 그러나 이 눈물나는 노력의 의미는 집안의 아버지의 자리는 부와 명예를 안겨 줄 수 있는 사회적 점핑을 약속하는 아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그 무시무시한 계급질서의 담론에로의 복종을 뜻한다. 여기서 진태가 죽음을 맞이하는데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진태의 죽음은 이 영화 전체의 전제 조건이다. . 오직 그의 죽음만이 이 영화를 성립시킨다. 그 대신 당신이 "모든 인간에게는 그 자신의 삶의 권리가 있다"는 존 로크의 말을 믿는다면 이 영화의 첫 장면, 그러니까 좋은 집에서 필요 이상으로 예의바른 손녀의 인사를 받는 이 집의 큰 어른 진석이 등장하는 맨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 모든 희생을 치르고 과연 그 자리가 그렇게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물어볼 때 비로소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그가 이 영화를 비판하는 이유이다. 나도 이 영화를 보았지만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이 기회를 맞아 다른 측면에서 좀 더 깊게 볼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