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상속결격이라 함은 민법이 규정하는 상속순위자가 일정한 부도덕행위나 상속에 관한 유언의 방해행위를 했을 경우에 그 상속자격을 박탈하는 민법상의 제도이며 또한 호주승계결격도 규정하고 있다. 호주승계나 상속은 피상속인과 상속인간의 기본적 상속질서, 즉 혈연·인격·정신·가풍·가법·신뢰 등 정신적 협동관계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재산승계의 윤리적·경제적 협동관계로 이루어진 질서이며 이 질서는 형법에 의해도 담보되면서 형성·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개인적 자의에 의한 왜곡이 용납되어서는 안 되므로 이 기본적 상속질서를 침해한 자에게는 상속권을 부여·보장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상속질서의 침해는 생명침해와 같은 반인륜적 부도덕행위인 경우도 있고 상속에 관한 유언방해행위와 같은 재산취득질서의 교란행위도 있어 민법은 이러한 행위를 한 자는 원칙적으로 상속자격자임에도 불구하고 상속결격자로 보아 상속권을 법률상 당연히 박탈한다. 한편 호주승계결격은 오로지 생명침해라는 반인륜적 부도덕행위만을 문제삼을 뿐이다. 상속결격제도는 우리 나라에서는 현행민법에서 비로소 제도화되어 시행해 왔는데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은 탓인지 연구의 대상으로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상속개시후의 낙태가 상속결격으로 되는지에 관한 분쟁이 발생해 대법원과 하급심의 판결이 나오게 됨으로써 주목을 끌게 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판결의 사안과 판시사항에서 의문되는 점을 중심으로 해 우리 민법상의 상속결격 규정 내용의 특색, 1004조 1호와 2호소정의 직계존속에 대한 해석, 낙태행위의 결격사유 여부에 한정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_ 우리 나라 상속결격제도는 상속인의 피상속인에 대한 비행에 대한 제재임은 틀림없지만 피상속인의 생명침해라는 비행과 피상속인의 유언행위에 대한 위법한 간섭이라는 서로 입법취지가 다른 결격사유를 병존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첫째 하나의 공통된 기초 위에 있다고 보기 어려워 제도의 본질을 일원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둘째 결격사유에 있어서의 고의를 판단하는 데 차이가 생기게 되고, 셋째 결격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문제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주1) 또한 민법 1004조의1호와 2호에서는 피상속인 또는 상속의 선순위자와 동순위자뿐만 아니라 특별히 직계존속과 피상속인의 배우자까지도 포함하고 있어서 공익적·도덕적 제재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있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는 우리 법만의 특색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주1)
_ 같은 유교문화권에 속했던 국가로서는 일본을 제외하고 중화인민공화국승계법과 중화민국민법이 우리 제도와 유사하다. 중국승계법에서는 직계존속을 따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동법 7조에서 (1) 고의로 피상속인을 살해한 때(1호), (2) 유산을 쟁탈할 목적으로 기타의 상속인을 살해한 때(2호), (3) 피상속인을 유기또는 학대해 그 정상이 중대한 때(3호), (4) 유언을 위조·변조·파기해 그 정상이 중대한 때(4호)라고 규정하고 있고 상속인의 범위와 순서는 동법 10조에 제1순위는 배우자·자녀·부모, 제이순위는 형제자매·조부모·외조부모로 규정되어 있어 부모·조부모·외조부모 등 직계존속에 대한 살해가 당연히 포함되고 더욱이 피상속인인 직계존속에 대한 중대한 유기와 학대까지도 결격사유로 하고 있어 부도덕행위의 폭이 확대되어 있다.주2) 중화민국민법도 1145조 1항에 결격이 규정되어 있는데 고의로 피상속인이나 선순위상속인 또는 동순위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살해미수로 형의 선고를 받은 자(1호), 피상속인에 대해 중대한 학대 또는 모욕을 한 사실이 있어 피상속인으로부터 상속시킬 수 없다는 의사가 표시된 자(5호)를 결격자로 하고 있어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은 취지이며 2호 내지 4호는 우리 민법과 같이 유언에 대한 부정행위에 관한 규정이다. 또 상속인의 범위는 배우자·직계존속·부모·형제자매·조부모의 순서로 되어 있고 조부모에는 외조부모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있어 직계존속에 대한 부도덕행위의 폭이 넓다.주3) 뿐만 아니라 이태리민법 463조 1호에서 "피상속인·그 배우자·비속 혹은 존속을 고의로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한 자"라고 해 우리 법과 동일하며 비속이 포함된 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법정상속인은 배우자·자녀·형제자매·부모·부계 및 모계의 적출조부모·6촌이내의 혈족의 순위와 범위로 되어 있다(565조·586조). 주2)
_ 우리 법이 직계존속과 함께 피상속인의 배우자에 대한 부도덕행위를 특별히 규정한 이유는 입법이유서가 없으므로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다음과 같이 짐작할 수 있다. 첫째로, 호주상속제도와 재산상속제도를 두고 있던 구민법에서는 호주상속결격을 규정하면서 부도덕행위자의 호주상속배제를 특히 강조하고 그 규정을 그대로 재산상속결격에 준용하게 하는 규정체재를 취했기 때문에 양상속의 결격사유가 동일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직계존속은 피상속인이나 그 배우자 또는 동순위상속인의 범주에 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따로 특별히 규정한 취지는 직계존속에 대한 살해 등 행위는 인륜질서의 파괴행위로서 형법과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민법에서도 그 죄질의 악역성을 엄하게 제재하고자 하는 뜻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방식 즉 "피상속인" 속에 감추기보다는 정면으로 명백하게 표출시킴으로써 윤기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된다. 조선왕조시대에는 당시의 우리 나라 형법의 보통법이었던 대명률에서는 조부모·부모·외조부모에 대한 구타·모살행위는 "악역"으로 규정짓고(명예률 악역조) 조부모·부모·외조부모를 모살하려 한 경우에는 참형이고 살해한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능지처사에 처하며 구타한 경우도 형벌이 동일했다(형률 모살 조부모·부모조). 현행형법에서도 직계존속에 대한 살해·그 예비와 음모·상해와 그 미수·중상해·상해치사·폭행·유기·학대·체포·감금·중감금·협박은 가중처벌하게 되어 있어 이러한 형법규정에 대응된 것이 직계존속에 대한 부도덕행위를 제재하는 민법의 규정이다. _ 그렇다면 문제로 되는 것은 직계존속에 대한 부도덕행위가 있는 경우에 결격의 효과는 어디까지 미치느냐이다. 우선 직계존속을 살해 또는 상해치사케 한 자는 피해자인 직계존속에 대해서 결격자로 됨은 물론 그 직계존속의 배우자인 직계존속에 대해도 결격자이다. 즉, 예컨대 부나 모를 살해 또는 상해치사케 한 자는 모나 부를 상속할 수 없다. 그러면 그 결격자는 조부모·증조부모·외조부모·외증조부모에 대해서도 결격자로 되느냐에 관해서는 결격의 효과가 상대적임을 전제로 할 것이냐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즉, 피해자인 직계존속이 선순위자인 경우에는 선순위자를 살해한 것으로 되어 결격자로 되며 외조부모 등에 대해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부를 살해한 자는 외조부모 등에 대해서는 부와 함께 동순위로 대습상속권이 있으므로 동순위자를 살해한 것으로 되어 결격자로 된다. 모를 살해한 경우에도 조부모 등에 대해서는 동순위의 대습상속인이므로 동순위자를 살해한 것으로 되어 결격자로 된다. _ 또한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문제가 있다. 즉 첫째 조부모·외조부모 등을 살해한 자는 부 또는 모를 상속할 수 있느냐, 둘째로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직계존속외의 4촌 이내의 혈족에 대해도 결격자로 되느냐이다. 결격의 상대효를 직계존속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본다면 첫째의 경우에 부 또는 모에 대해는 결격자가 아니며 직계존속의 경우에 상대효를 부정한다면 결격자로 된다. 둘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직계존속에 대한 부도덕행위자는 그 자의 모든 상속에 관한 자격이 박탈된다고 해 확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컨대 부모·조부모·외조부모를 살해한 자는 형제자매나 3촌·4촌 등 혈족에 대해 결격자로 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직계존속에 대한 부도덕행위자는 문제로 되는 직계존속인 피상속인에 대해 결격자로 되며 다른 직계존속이 피상속인이 될 경우에는 피해자인 망인이 "피상속인의 배우자·선순위자·동순위자"에 해당될 때에만 결격자로 되며 기타의 경우에도 상대효원칙이 적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직계존속"도 피해자에 포함하고 있고 그 "직계존속"은 가해자보다도 상속순위가 후순위일 경우가 있다고 설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부모·외조부모를 살해한 경우에는 부모에게도 결격자로 된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1992.5.22 판결, 92다2127). _ 결격의 용서를 인정할 것인가. 결격의 용서는 피상속인의 일방적인 용서의 의사표시 또는 감정의 표시로 결격의 효과를 소멸케 하는 것인데 독일 민법 2343조와 스위스민법 540조 2항, 이태리민법 466조, 중화민국민법 1145조 2항은 결격의 용서를 인정하고 있으며 그 중 중화민국민법에서는 살해행위(1호)와 학대·모욕(5호)의 경우에는 용서를 인정하지 않으며 유언에 대한 부정행위(2호 내지 4호)의 경우에만 용서를 인정한다. 우리 민법은 결격자의 상속복권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결격의 용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1004조 1호와 2호의 경우에는 직계존속을 따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1호와 2호의 경우 직계존속인 피상속인과 기타의 피상속인을 살해한 경우에는 결격의 용서를 할 여지가 없다. 기타의 경우에는 부도덕행위나 유언에 관한 부정행위가 상속개시전에 있으므로 피상속인이 될 자는 생전에 결격을 용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결격의 용서에 관한 명문규정이 없고 부도덕행위는 그 윤리적·공익적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용서는 허용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으나, 한편 유언에 대한 부정행위의 경우에는 용서를 인정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부도덕행위를 한 경우에도 피상속인이 생전에 생전증여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용서와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결격의 용서는 인정해도 좋다고 생각한다.주4) 입법논으로서는 중화민국민법과 같이 하는 길이 있고 혹은 이태리민법과 같이 피상속인이 공정증서 또는 유언에 의해 명시적으로 복권시키거나 명시적으로 복권되지 않았더라도 유언서에서 결격원인을 인정하면서 결격자를 유언중에 고려하고 있는 경우에는 상속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이 있을 수 있는데 후자가 바람직하다. 주4)
1.민법 1004조 1호·2호의 해석 _ 민법 1004조는 고의로 직계존속·피상속인·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자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1호)와 고의로 직계존속·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자(2호)를 상속결격자로 하고 있다. 1호와 2호의 행위는 불법·부도덕행위인데 "직계존속"의 구체적 내용은 일견 명확한 것 같으나 일응 밝혀둘 필요가 있다. 직계존속은 부모·조부모·증조부모 등 부계직계존속은 물론 모계직계존속인 외조부모·외증조부모 등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예컨대 갑이 그의 부모나 직계비속없이 사망하고 갑의 조부모와 외조부모가 있는 경우에 외조부모도 상속권자로 되며 갑의 배우자인 을이 있는 경우에는 공동상속인이 되며 유류분권자로도 된다(1112조 3호). 유산의 일부는 직계비속여를 매개로 해 외손에게도 승계될 수 있는데 외손의 유산이 외조부모 등에게로 상속되더라도 부당할 것이 없으며 모계직계존속은 기여분권자로도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_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선순위자·동순위자에는 직계존속 그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 직계존속을 제외한 이들은 4촌 이내의 혈족과 그 배우자이다. 즉, 직계비속인 자녀·손자녀·증손자녀와 그 배우자, 외손자녀와 외증손자녀와 그 배우자, 2촌인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 3촌인 백숙부고와 그 배우자, 질·질녀와 그 배우자, 외숙·이모와 그 배우자, 생질·생질녀·이질·이질녀와 그 배우자, 4촌인 종조부·대고모와 그 배우자, 종손·종손녀와 그 배우자, 외종조부·외대고모와 그 배우자, 외종손·외종손녀와 그 배우자, 종형제자매·내종형제자매·이종형제자매와 그 배우자이다. 그 밖에도 2촌인 동모이부형제자매와 그 배우자, 이들의 자녀·손자녀와 그 배우자가 포함되며 계모·적모·계부도 포함된다. 즉 계모나 적모에 대한 살해행위는 부가 피상속인인 경우의 부의 배우자에 대한 살해이며 계부는 모가 피상속인인 경우의 모의 배우자이다. 타인의 양자로 된 자는 생가와 양가에서 이중의 친족관계가 발생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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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처가 부의 직계존속을 살해 또는 상해치사시킨 후에 무자녀의 부가 사망한 경우에는 동순위자에 대한 살해로 되어 결격자로 되며 예컨대 시부모를 살해해 아직 이혼하지 않은 동안에 부가 사망한 경우이며 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2. 결격사유존부의 판단기준시 _ 결격사유의 존부는 상속개시시를 표준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나 반드시 그렇지 않다. 1호의 사유는 반드시 상속개시전에 존재해야 하며 피상속인이 피해자인 경우에도 결격과 상속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상속개시후에 1호에 해당한 친족에 대한 행위는 이미 개시된 상속의 상속인으로 됨에 지장이 없다. 예컨대 부를 모와 함께 상속한 자가 상속개시후에 유산을 독점할 목적으로 모를 살해한 경우에 부에게는 결격자가 아니며 모에 대해서만 결격자로 된다. 2호의 사유도 마찬가지이나 다만 특수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_ 예컨대 모에게 상해를 가했는데 부가 사망해 상속이 개시되고 후에 모가 상해로 인해 치사된 경우, 기타 계모나 적모·계부에게 상해를 가했는데 부나 모가 사망해 상속이 개시되고 후에 이들이 상해로 인해 치사된 경우에는 사망이라는 결과는 상속개시후에 발생했더라도 가해자는 당해 상속에 관해 결격자로 된다. 그것은 상해라는 치사의 원인되는 사실은 상속개시후이지만 상해와 사망사이의 인과관계존재의 요건때문에 결과를 발생시킨 원인이 상속개시전에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3호와 4호의 사유도 반드시 상속개시전에 있는 것이며 5호의 사유는 상속개시전에 있을 수 있고 상속개시후에도 있을 수 있다. _ 요컨대 5호의 사유를 제외하고는 결격사유는 당해 상속개시전에 있었으면 결격으로서 인정함에 충분하며 상속개시후에 1호와 2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미 개시한 상속에 대한 결격여부의 문제가 아니므로 결격자가 아니며 오직 전상속개시후에 개시된 후상속에 관한 결격여부의 문제로 된다. _ 이와 같은 우리의 결격제도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일본의 결격규정과 비교해 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즉, 일본 민법상의 결격사유는 (1) 고의로 피상속인 또는 상속의 선순위 혹은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사망하게 하고 또는 사망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처형된 자(891조 1호), (2) 피상속인이 살해된 것을 알면서 이를 고발하지 않거나 고소하지 않은 자, 다만 그 자에게 시비의 분별이 없는 때 또는 살해자가 자기의 배우자 혹은 직계혈족인 때에는 그렇지 않다(동조 2호). 그리고 동조 3·4·5호는 우리 민법규정과 동일하다. 그래서 일본 민법상으로는 동조 1호의 사유는 문제의 상속개시전에 있을 수도 있고 개시후에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처형이 요건이기 때문에 살해 등 행위는 반드시 상속개시전에 있어야 하지만 처형은 상속개시후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 1호의 사유는 상속개시후에 있을 수 있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2호의 사유는 반드시 상속개시후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이며 3·4·5호의 사유의 경우는 전혀 우리의 경우와 같다.
1. 사안의 내용과 판시사항 _ 대법원 판결의 사안은 다음과 같다. 소외 망갑이 1989년 8월 6일에 을(피고)의 불법행위(자동차사고)로 인해 사망했는데 사망 당시 망갑의 처인 제1심 공동원고인 병은 망갑의 자를 포태하고 있었는데 병은 망갑의 사망후인 1989년 9월 18일에 태아를 낙태시키고 을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자 망갑의 부인 정과 모인 무도 뒤늦게 을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해 두 사건이 1심에서 병합 심리되었다. 1심인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는 원고 병·정·무에게 각자의 상속분에 따른 손해배상을 인정했다(90가합1336·3486). 이에 정과 무는 병은 망갑의 자인 태아를 낙태시켰으므로 상속결격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_ 광주고등법원은 첫째 낙태를 하면 구민법 1004조 1호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둘째 상속결격제도의 중심적 의의는 개인법적 재산취득질서의 파괴 또는 이를 위태롭게 하는 데에 대한 민사적 제재라고 보아야 하며, 셋째 상속결격자라고 하기 위해서는 구민법 1004조 소정의 범죄를 범한 자의 고의안에는 적어도 그 범행으로 말미암아 상속에 유리하게 된다는 인식도 함께 있을 것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이를 전제로 한다면 병이 망갑과의 사이에 잉태한 태아를 낙태했으나 그 범행은 태아를 출산할 경우 결손가정에서 키우기 어려우리라는 우려와 남편의 사망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신체적 쇠약으로 고민끝에 이루어진 것이고 또한 낙태를 하지 아니했더라도 그는 호주상속할 태아와 공동상속인이 되어 그 상속분은 이분의 일이 되고 낙태한 경우에도 정·무와 공동상속인이 되어 그 상속분은 역시 이분의 일이 되므로 병이 낙태죄를 범한 이유는 그 범행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재산상속에 유리하게 된다는 인식없이 오로지 장차 태어날 아기의 장래에 대한 우려 등에 기인했으므로 병은 상속결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1991년 11월 29일 판결, 90나6889·6886). 정·무는 항소이유와 같은 이유로 원심이 상속결격제도에 관해 법리를 오해했다고 해 상고했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시사항은 다음과 같으며 파기환송되었다. _ 첫째, 태아가 호주상속의 선순위 또는 재산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경우에 그를 낙태하면 구민법(1990.1.13 법률 419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992조 1호 및 1004조 1호 소정의 상속결격사유에 해당한다. 둘째, 위 민법규정들 소정의 상속결격사유로서 "살해의 고의"이외에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필요로 하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1) 우선 992조 1호 및 1004조 1호는 그 규정에 정한 자를 고의로 살해하면 상속결격자에 해당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더 나아가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까지는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고, (2) "피상속인 또는 호주상속의 선순위자"(992조 1호)와 "피상속인 또는 재산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1004조 1호)이외에 "직계존속"도 피해자에 포함하고 있고 "직계존속"은 가해자보다도 상속순위가 후순위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에도 그 가해자를 상속결격자에 해당한다고 규정한 이유는 상속결격요건으로서 "살해의 고의" 이외에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요구하지 아니한다는 데에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으며, (3) 동법 992조 2호 및 이를 준용하는 1004조 2호는 "고의로 직계존속·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자"도 상속결격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상해의 고의"만 있으면 되고 이 "고의"에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필요없음은 당연하므로 이 규정들의 취지에 비추어 보아도 그 각 1호의 요건으로서 "살해의 고의" 이외에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_ 다음으로 서울민사지방법원판결의 사안도 비슷하다. 망갑은 피고을이 경영하는 자동차운전학원에서 운전교육중 운전교습생의 운전사고로 인해 1991년 12월 20일에 사망했으므로 망갑의 처이며 원고인 병은 운전학원 공동대표이사 을 등을 상대로 망갑이 을 등에 대해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법정상속분에 따라 상속했음을 원인으로 해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청구했다. 병은 망갑의 사망 당시 10주되는 망갑의 자를 포태하고 있었으며 망갑의 사후에도 2차에 걸쳐 태아의 건강진단을 받은 바 있다. 1992년 1월 27일에는 병은 시모인 무와 함께 건강진단을 받으러 가서 임신 14주이며 태아가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병은 1월 30일에 태아를 낙태시켰다. _ 이에 망갑의 부모인 정무는 독립당사자참가인으로서 원고인 병에 대해 병이 상속결격사유에 해당하므로 망갑이 가지는 손해배상채권에 관해 재산상속권의 부존재확인을 구하고 을 등에 대해서는 정·무만이 망갑의 공동상속권자이므로 채권전액의 지급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서 판결에서는 태아가 재산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경우에 그를 낙태하면 민법 1004조 1호 소정의 상속결격사유에 해당하며 병은 태아를 유산시킬 만한 아무런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순위에 있는 망갑의 상속인인 태아를 고의로 낙태시켰기 때문에 민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상속결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_ 요컨대 대법원은 첫째 상속개시후에 행해진 고의의 낙태는 민법 1004조 1호의 결격사유에 해당하며, 둘째 고의에는 "살해의 고의"로써 족하고 따로 "상속에 유리하다는 인식"은 필요로 하지 않으며, 셋째 후순위상속인인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에도 결격자로 된다고 하는 세가지 점을 판시했다. 예컨대 세번째의 경우는 조부모나 외조부모를 살해한 자는 부모에 대해 결격자로 된다는 뜻인 것 같기도 하다. 더욱이 당해사건은 구법규정이 적용되는 사건이며 구법에서는 호주상속에 있어서도 태아의 호주상속능력이 인정되었었기 때문에(구민법 988조) 태아를 낙태하면 호주상속의 선순위자를 살해하는 것으로서 결격자로 된 것으로도 본 것이다.
2. 태아의 상속자격 _ 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해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보므로(1000조 3항) 상속의 선순위자나 동순위자로 될 수 있다고 하겠으나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의 해석에 관해 해제조건설과 정지조건설이 있으며 판례는 정지조건설을 취하고 있다(대판 76.9.14, 76다1365). 해제조건설에 의하면 태아는 정지조건설에 따를 경우보다도 더 보호된다는 장점이 있다. 현행민법에서는 호주승계의 경우에 태아의 승계자격을 인정하지 않지만 구법에서는 이를 인정했고, 더구나 구호적법에서는 호주상속인이 태아인 때에는 그 출생의 기재를 하기까지는 전호주의 호적중 호주에 관한 부분을 말소하고 호주상속인이 태아임을 기재해야 한다(19조)고 하고 또 호주상속인이 태아인 경우에는 모는 상속개시를 안 날로 부터 1월 이내에 진단서를 첨부해 호주상속신고를 해야 하며(97조 1항) 그 신고서에는 호주상속인이 태아인 것을 기재하도록 했기 때문에(97조 2항 2호) 해제조건설을 지지하는 유력한 법적근거가 되었었으나 현행호적법에서는 승계상 지위가 전혀 없게 되었다. _ 상속에 있어서도 태아의 법정대리인 내지는 상속재산관리인이 누구냐의 문제를 해결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그나마도 위 구호적법규정이 있으면 그 취지로 보아 모가 되고 모가 법정대리인으로서 권리능력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재산관리를 하거나 증거보전(민소346조 이하)이나 집행보전(민소 696조 이하)과 같은 권리보전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이나 정지조건설을 취하는 판례의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으므로 법정대리인이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법정대리인에 의한 수증행위도 할 수 없어(대판 82.2.9, 81다534) 현실적으로는 "인"이라고 보기 어렵게 되어 있다.주6) 구체적으로는 피상속인이 처와 태아·직계존속을 두고 사망한 경우에는 우선 처와 직계존속이 상속하고 후에 태아가 살아서 출생하게 되면 그 자에게 상속을 회복시켜 주게 되며 또 태아가 예컨대 상속인이거나 수유자(1064조)나 사인수증자(562조)인 경우에 사산되면 그 상속분, 수유·수증재산은 상속개시시에 소급해 처음부터 처와 직계존속이 상속하는 것으로 되며 낙태된 경우에도 다를 바 없으며 또 태아로서는 피상속인으로서 자격이 있을 수 없다. 주6)
3. 낙태행위와 결격 _ 상속결격이 문제로 되는 것은 1004조 5호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문제의 상속이 개시된 때가 기준이 되어야 함은 기술했거니와 다시 말한다면 상속개시전에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추정상속인 또는 그 행위로 인해 추정상속인이 된 자에 한해서 문제의 상속에 있어서 결격자로 된다. 결격은 법률상 당연히 발생하기 때문에 문제의 상속에서는 당연히 상속인으로 될 수 없는 것이며 상속을 한 상속인이 결격행위를 한 경우에는 이미 한 상속은 유효하고 새로이 문제로 되는 상속에 있어서 결격자로 되는 것이다. _ 그러면 낙태의 경우는 어떠한가. 낙태가 결격사유로 되기 위해서는 상속개시당시 즉 피상속인의 사망시에 포태되어 있는 태아를 낙태시킨 경우이며 그 태아는 상속개시당시의 가해자의 선순위에 있는 자와 동순위에 있는 자이다. 그렇다면 상속개시전에 낙태시킨 자의 결격여부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피상속인이 생존중인 때에 낙태를 한 경우는 그 태아는 상속을 전제로 하는 선순위자나 동순위자가 아니라 피상속인이 될 자가 앞으로 그 태아가 출생하기 전에 사망할 경우에 상속의 "선순위자·동순위자로 될" 자이다. 따라서 장래에 상속인으로 될 태아를 낙태하는 것은 결격사유로 되지 않는다. _ 예컨대 남편 생존중에 처가 낙태한 경우가 많은데 그 낙태된 태아는 앞으로 상속할 지위에 있을 자이지 사망당시 포태되어 있는 태아로서의 상속의 선순위자·동순위자는 아니다. 또 낙태를 한 후 부가 사망한 경우에 그 사망시부터 역산하니까 낙태하지 않았더라면 부사망시에 포태되어 있을 태아이라고 해서 그 낙태행위를 결격사유로 본다는 것은 민법의 취지에 반하는 확장해석으로 된다. 그러므로 생존하고 있는 자연인에 대한 살해행위가 반드시 상속개시전에 있어야 결격사유로 되어야 하는 1004조 1호에서는 상속개시전의 낙태는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컨대 처 을이 낙태를 한 뒤에 부갑이 사망하면 을이 낙태와 갑의 사망간의 시간적 간격이 아무리 근접되어 있더라도 을은 갑에 대해 결격자가 아니며 을의 낙태행위가 형법상의 낙태죄를 구성하더라도 민법상의 결격여부와는 무관한 것이다. _ 그렇다면 판결들의 사안과 같이 상속개시후의 낙태는 결격사유로 되는가. 당해 태아는 명백히 상속개시시의 선순위자이거나 동순위자이며 이러한 순위에 있는 태아의 낙태는 상속개시후에만 있을 수 있다. 그리해 낙태는 결격사유이기 때문에 상속개시후의 낙태를 결격사유로 본다는 것은 1004조 1호의 규정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부당하다. 더욱이 낙태가 1호에 해당한다고 보면 "살해하려 한 자"를 "낙태하게 하려 한 자"로 해석하게 되는데 형법상 낙태죄의 미수는 처벌하지 않으므로 낙태의 경우는 적용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태아에게 상속자격이 있으므로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낙태도 결격사유로 된다고 하면서 낙태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명문의 규정에 반해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_ 한편 호주승계의 경우의 결격은 상속의 경우와는 달리 태아의 호주승계자격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태아는 호주승계의 선순위자가 될 수 없으므로 낙태행위는 992조 1호의 승계결격사유로 되지 않은데 상속의 경우에는 낙태가 결격사유로 된다는 것도 실은 균형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대법원 판결은 사안이 구법하의 것이어서 낙태를 결격사유로 하는 전제에서 호주상속과 재산상속의 경우 모두 결격자로 된다고 본 것이다. _ 결국, 구법이나 현행법하에서는 낙태는 살인과 같은 부도덕행위의 범주에 넣을 일이 아니며 1004조 1호의 원칙대로 낙태는 상속결격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승계결격과 상속결격의 균형을 맞추는 일도 되고 낙태를 상속질서에 대한 중대한 파괴행위로 볼 수 없는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보며 정지조건설을 취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사안의 병여는 부 갑을 상속함은 물론 재혼하지 않는 동안에 정·무가 사망하면 대습상속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병녀는 낙태죄로 처벌되더라도 결격여부와는 무관함은 물론이다.
_ 지금까지 민법 1004조 1호를 중심으로 약간의 의문되는 것을 검토해 보았다. 그리해 우리 1004조 1호와 2호 소정의 직계존속에 대한 살해행위가 있는 경우에도 상대효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며 상속결격으로 되기 위해는 동조 5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격사유는 반드시 문제의 상속이 개시하기 전에 존재한 경우에 한해야 하며 따라서 낙태는 상속개시전에 행해진 경우는 물론 상속개시후의 낙태도 결격사유로 될 수 없으며 그것은 구법과 현행법에서 다를 수 없는 것이다. 상속결격제도에 관해서는 여기에서 논한 것 외에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 고 있으므로 앞으로 활발히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