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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호메로스, <일리아스> (천병희옮김, 도서출판숲, 2015개정판) | <일리아스>는 인류 최초의 문학 작품이다. 물론 수메르나 이집트의 더 오래된 기록들도 많지만 그것들은 문학이라 할 수 없다. 문학의 본질은 저자가 글로 완성한 작품을 독자가 즐겁게 감상하는 것이다. <길가메시의 서사시>가 오래된 서사시라 해도 그것을 누가 왜 썼고, 누가 어떻게 즐겼는지 알 수 없으므로 문학 작품이라 보기 어렵다. (1)저자, (2)독자, (3)글로써 완성된 작품, (4)독서의 즐거움, 이 네 가지야말로 문학 작품을 이루는 기본 요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리아스> 만큼 완벽한 문학 작품은 없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였고, 문명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문학 작품이 이토록 강력했다니,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일리아스>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
② |
| 앵그르의 <제우스와 테티스(1811)>이다. 왼쪽 위에서 헤라가 의심스럽게 엿보고 있다. 부부싸움이 벌어지는 상황도 뒤에 이어진다. (엑상 프로방스 '그라네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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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의 <아킬레우스의 분노(1757)>이다. 아테네 여신에게 머리칼을 잡힌 아킬레우스의 표정이 생생하다. 왼쪽의 인물은 아가멤논이다. (비첸차 '빌라 발마라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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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포
사포(B.C. 612`?)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여류시인이다. 소녀들을 모아 음악·시를 가르쳤으며, 문학을 애호하는 여성 그룹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다작 시인으로, 서정시·만가(挽歌)·연가·축혼가 모두가 솔직·간명·정확한 표현으로 개인적 내용을 노래한 서정시의 대명사이다.
그녀의 작품이 알렉산드리아 시대에는 운율에 의하여 9권(또는 8권, 7권)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제1권에 1,320행이 수록되어 있었다. 레스보스(Lesvos) 섬의 방언으로 소녀나 청년에 대한 애정을 읊은 정열적인 서정시를 썼다. 장편시 <아프로디테 송가(Aphrodite 頌歌)>외에 몇몇 단편(斷片)이 남아 있다.
[문제2] 다음은 사포의 시 ‘질투’ 이다. 읽고 감상을 적어보자.
그는 생명을 가진 인간이지만 내게는 신과도 같은 존재. 그와 네가 마주 앉아 달콤한 목소리에 홀리고 너의 매혹적인 웃음이 흩어질 때면
내 심장은 가슴속에서 용기를 잃고 작아지네. 흠칫 너를 훔쳐보는 내 목소린 힘을 잃고 혀는 굳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내 연약한 피부 아래 뜨겁게 끓어오르는 피는 귀에 들리는 듯 맥박 치며 흐르네. 내 눈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감상> 위의 시는 서정시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사랑하며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시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
그 후 그리스 문학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 3대 비극 시인의 등장으로 극(劇)문학은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BC 4세기의 산문시대 이후 시는 거의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리스의 시에서 배운 로마 시인들 가운데에는 BC 1세기의 철학 시인 루크레티우스와 서정시인 카툴루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3대시인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가 유명하다. 베르길리우스는 <목가(牧歌)><농경가(農耕歌)>그리고 로마 건국의 서사시 <아이네이스>등 3대 작품을 썼다. 호라티우스는 카툴루스로 시작되는 로마 서정시를 완성시켰으며 오비디우스는 사랑이야기를 꾸미는 데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2. 중세 서양시
중세 최대의 시적 현상은 유럽의 여러 민족이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그 나라의 신화와 전통에 바탕을 둔 저마다의 민족서사시를 만들어 나간 일이다.
영국에는 베어울프((7∼8세기), 독일에는 니벨룽겐의 노래(13세기), 프랑스에는 롤랑의 노래(11세기), 에스파냐에는 시드의 노래(12세기), 아이슬란드에는 에다(9∼12세기), 러시아에는 이고리 원정기(12세기)가 있다.
한편 12∼13세기에 남프랑스에서 음유시인(吟遊詩人), 즉 트루바두르가 서정 시인으로 활약, 기사도정신에 입각한 연애시와 민중 속에서 우러나온 우화시(寓話詩)를 읊었다. 독일에서는 거의 같은 무렵에 미네젱거라고 불리는 연애서정시가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프랑스에서는 궁정시인(宮廷詩人) 샤를 도르레앙과 프랑수아 비용이 나타났다. 이탈리아에서는 《신곡(神曲)》의 시인 단테와 중세 최대의 서정시인 페트라르카가 나왔다.
그중에서 단테(1265 ~ 1321)는 13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예언자, 신앙인이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인류에게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을 남겼다. 중세의 정신을 종합하여 문예부흥의 선구자가 되어 인류문화가 지향할 목표를 제시하였다. 주요작품은《신생》,《농경시》,《향연》등이다.
신곡(神曲)은 1321년, 이탈리아의 시인 A.단테가 쓴 장편 서사시이다. 1307년경부터 쓰기 시작하여 1321년에 완성하였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3부로 이루어졌다. 각편 33가(歌), 각행 11음절(音節), 3운구법(韻句法)을 취했다.
서가(序歌)를 합하면 100가에 총 행수 1만 4233행에 이른다. 제명(題名)을 중세의 관용(慣用)에 따라 희곡(喜曲)이라 붙인 것은 비참한 인상을 주는 것은 <지옥편>뿐이다. 나머지 <연옥편> <천국편>에는 쾌적하고 즐거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표면에 나타난 주제는 사후(死後)의 세계를 중심으로 한 단테의 여행담(旅行談)이다.
[문제3] 단테의 신곡은 파란만장한 인생체험이다. 단테 자신의 영혼의 성장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정치적 ·윤리적 ·종교적 문제로 고민했던 단테가 자신의 양심과 영혼 속에서 해결방법을 찾아내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고 줄거리를 써 보자.
단테가 33살 되던 해이다. 성(聖)금요일 전날 밤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며 번민(煩憫)의 하룻밤을 보낸 뒤, 빛이 비치는 언덕 위로 다가가려 한다. 그때 3마리의 야수(野獸)가 길을 가로막으므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단테를 구해 주고 길을 인도한다. 그는 먼저 단테를 지옥으로, 다음에는 연옥의 산(山)으로 안내하고는 꼭대기에서 단테와 작별하고 베아트리체에게 그의 앞길을 맡긴다. 베아트리체에게 인도된 단테는 지고천(至高天)에까지 이르고, 그 곳에서 한순간 신(神)의 모습을 우러러보게 된다. |
3. 르네상스기 서양시
1)르네상스란 무엇인가
르네상스는 14∼16세기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문화운동이다. 학문이나 예술의 부활·재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 중심의 사상과 봉건 제도로 개인의 창조성을 억압하던 중세에서 벗어나, 문화의 절정기였던 고대로 돌아가자는 운동으로, 문화·예술 분야뿐 아니라 정치·과학 등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기법의 시도와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인쇄술도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게 되고, 지식 또한 확산되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독일, 프랑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의 정치·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쳐 '서양 문화의 어머니'로 비유되기도 한다.
2)르네상스는 어느 나라에서부터 시작 되었는가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서유럽 여러 나라에 문운(文運)의 융성을 가져왔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풍부한 문화가 쌓여 있었다. 지리적으로 이슬람과 동로마의 문화를 접하기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이탈리아 문화를 서유럽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14세기에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강력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었다. 경제적으로 번영을 이룬 후에는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는 회화의 마사초, 보티첼리, 조각의 도나텔로, 건축의 브루넬리스키를 비롯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예술 분야의 거장들이 나타나 문화의 황금시대를 맞았다.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웠다.
[문제4] 르네상스 시대에는 특히 미술이 문화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3대 거장은 누구이며,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적어보자.
이름 | 작품명 | 그림 |
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년~1519년) | 화가이며 만능예술가이다. <최후의 만찬> 수도사들이 식사하는 대식당의 벽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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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75년~1564년) |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다비드상> 성경 속 인물인 다비드(다윗)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1504년에 완성한 대리석 조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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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산치오 (1483년~1520년) | 만능 예술가이다 <감옥에서 구출되는 성 베드로> 바티칸 궁의 벽화이다. 뛰어난 구성과 빛의 묘사가 돋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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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르네상스의 근본정신은 무엇인가
르네상스 문화의 근본정신은 인문주의, 즉 ‘보다 인간답다’는 뜻의 휴머니즘(humanism)이다. 그리스·로마의 고전에서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뜻하는 후마니오라(humaniora)에서 시작된 말이다. 인간이 지니는 가치, 즉 인간의 창조성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약 6백 년 이상 이어진 중세는 신(神)중심의 세계관이 지배했던 사회였다. 인간의 개성과 창의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단테를 시작으로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 이탈리아의 문학가들이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화에서 휴머니즘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인간 본연의 개성과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머니즘 사상은 이탈리아 사회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미술 분야이다. 예술가들은 인간의 얼굴 표정과 육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자연을 연구하여 그 모습을 정확히 묘사했다.
휴머니즘 사상은 독일과 네덜란드, 영국 및 프랑스로 전파되어 발전했다. 18세기에는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괴테, 등이 탄생했다.
①괴테
괴테(1749.8.28 ~ 1832.3.22)는 독일의 시인·극작가·정치가·과학자.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다.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등이 있다. 괴테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세익스피어였다.
<파우스트>는 괴테가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60년 동안이나 쓴 이 웅장한 드라마이다. 괴테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 최대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내용의 전개 부분들이 섬세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인간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명제들이 모두 다루어지고 있는 바, 천상과 지상의 교통, 참회와 구원, 신의 섭리와 은총 그리고 '영원히 여성적인 것' 등이다.
얼핏 보면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2백년 가까운 세월동안 인류의 심금을 울리면서 고전중의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천상적 초월성 속에 잠복한 현재적 실감을 발견하는 일이 <파우스트>를 이해하는 관건이다.
[문제5] 괴테의 파우스트 첫머리를 적고, 줄거리도 써 보자. 그 외의 괴테의 시를 적고 감상해 보자.
<파우스트의 첫머리>
자네들도 알다시피, 우리 독일 무대에서는 누구나 원하는 일을 시도해 볼 수 있으니 오늘은 배경이건 소도구건 마음대로 사용해 보자고. 크고 작은 천상의 조명들을 모조리 동원하고 별들도 얼마든지 사용하게나. 물, 불, 암벽은 물론 동물과 새들도 빠져선 안 되네. 비록 비좁은 판잣집 안일망정 창조의 온 영역을 재현해놓고 알맞은 속도로 두루 거닐어보자고. 천국에서 현세를 거쳐 지옥에 이르기까지.
<줄거리 쓰기>
괴테 시①/ 우리는 함께 생각하고 느껴요 산과 강, 도시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일까요? 그러나 우리가 비록 헤어져 있을지라도 우리는 함께 생각하고 느끼며 영혼이 가까이 있는 그 누군가가 있음을 알고 있다면 이 세상은 사람이 살고 있는 정원이 될 것입니다
괴테 시②/ 내 그대를 사랑하는지
내 그대를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단 한번 그대 얼굴 보기만 해도, 단 한번 그대 눈동자 보기만 해도, 내 마음은 온갖 괴로움 벗어날 뿐, 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하느님이 알 뿐 내 그대를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
르네상스의 근본정신이 19세기에는 니체, 톨스토이 등 많은 철학자와 문학가들에 의해 이어졌다.
②니체
니체(1844.10.15. ~ 1900.8.25)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영향력을 끼친 인물은 바그너였다. 1868년의 10월 28일,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을 들은 후 니체는 바그너의 열성적인 지지자가 된다. 여성편력이 화려했던 바그너는 당시 라이프치히에서 은신 중이었다. 긴밀하게 주선된 만남을 통해 두 사람은 식사와 대화를 나누며 교감하게 된다. 이후 니체의 행보는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니체의 대표작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5>이다. 서양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6]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3개의 질문에 답변을 해보자.
1)‘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서문에서 제4부까지 모두 90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이 연속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고, 상징과 비유가 많이 나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니체가 마지막에 자신의 저서들을 정리한 글 <이 사람을 보라>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장을 먼저 읽는 것이 좋다. 니체가 어떤 배경에서 어떤 철학적 의도로 이 책을 썼으며, 책의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가가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책에 나오는 비유나 상징, 패러디 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상징이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 정신사의 배경과 그 안에서 사용된 상징 및 상징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뱀이라는 단어가 어느 문맥에서는 순환하는 세계를 의미하는 진리의 상징으로, 또 어느 문맥에서는 허무주의의 상징으로 읽힌다. 머리말에 나오는 고향 마을의 호수란 인간의 개인사를,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생애사를 의미한다. 정신분석에서 물, 호수, 강, 바다는 무의식의 내용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정신분석, 미학, 정치학, 종교학 등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먼저 국내에 나와 있는 상징사전을 이용해 상징이나 비유의 의미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3. 서양 정신사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서양의 전통적 사상과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에 의문부호를 붙이며 니체 자신의 몸 철학이나 생명(디오니소스)의 철학을 제시하는 고전이다. 니체는 서양 정신사 전체와 투쟁하며 몸이나 현실을 긍정하는 새로운 미래의 철학을 구상하고자 했다. 니체철학의 핵심 주제들이 이 책에 다루어져 있다. 몸의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면, 이 책을 통해 서양 정신사 전체와 접속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
③톨스토이
톨스토이(1883.1.10 ~ 1945.2.23.)는 러시아의 러시아의 작가 겸 사상가이다. 처녀 시집 《서정시 Lirika(1907)》로 문단에 등장했다. 대표작은 <전쟁과 평화 1869><고백록><부활><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안나 카레니나1877>등이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동명의 여주인공이 자신의 열정을 추구하다가 사회의 편견 속에서 질식해 가는 과정을 고발한 소설이다. 비극적 결말이 유명한 안나의 이야기와 병행되는 이상주의자 지주 콘스탄틴 레빈의 이야기는, 이 작품의 집필 당시에 중년의 위기를 겪은 톨스토이의 자화상으로 여겨진다.
젊은 시절의 톨스토이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다. 성욕과 도박의 유혹 앞에 무방비 상태였으며, 쾌락에 굴복한 직후에는 처절한 환멸이 몰려와 자괴감을 더해주는 일종의 악순환이 벌어졌다. 이런 모순적인 사고방식은 말년까지 톨스토이를 괴롭힌 요인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과 사상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신혼 초기부터 남편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성격을 알고 부인은 충격과 혐오에 빠졌다. 비록 8남매를 낳고 반세기 가까이 해로하긴 했지만, 두 사람은 성격부터가 대조적이었다. 남편이 이상주의자이고 부인은 현실주의자였다. 성격 차이는 날이 갈수록 극명해져서 톨스토이의 말년은 힘겨웠다.
1908년의 80회 생일에는 전 세계에서 축하 인사가 답지할 정도로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사생활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1910년에 그는 (체르트코프의 조언을 따라)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자기편이었던 딸 알렉산드라에게 모든 저서의 판권을 상속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이에 경악한 소피야는 이때부터 남편의 행적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톨스토이는 가출했다. 1910년 10월 27일 밤, 자기 서류를 뒤적이는 아내의 행동에 분격해서이다. 그는 한 집에 살고 있던 친구 겸 주치의 두샨 마코비키와 함께 몰래 집을 빠져나와 기차를 탔다. 그의 가출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며칠 후, 톨스토이는 기차 여행 중에 감기에 걸렸고, 폐렴으로 번졌다. 작은 간이역 아스타포보의 역장 집을 빌려 몸져누운 톨스토이는 가출한 지 열흘 만인 1910년 11월 7일 새벽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야스나야 폴랴나로 운구 되어 묻혔다.
[문제7] 톨스토이에게 영향을 끼친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일까? 다음 글을 읽고 톨스토이가 영향을 받은 책에 대하여 정리해 보자.
<참고자료> 1891년의 일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출판업자가 대문호 톨스토이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입니까?” “중국의 공자와 맹자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어요. 하지만 노자에게서 받은 영향은 실로 거대합니다. 저는 노자에게 큰 감화를 받아 결국 '이 책'을 러시아 말로 번역했지요., 노자의 <도덕경>입니다.
도덕경이란? ‘도덕경’은 우주의 본질을 밝히고 생명 원리에 대해 통찰한 지혜를 들려준다. 노자는 생명을 으뜸으로 예찬하고, 부드러움을 귀하게 여기며 약함을 숭상한 사람이다. ‘도덕경’에서 회자되는 구절 중 하나 제8장 ‘상선약수’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까운 도덕경은 그윽하고 미묘한 도와 덕을 탐구하고 기리는 경전이다. 또한 대교약졸의 노래, 도법자연(道法自然)의 활구, 생명예찬의 시, 지혜의 총서 중 으뜸가는 열매다. 세상으로 퍼져나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곤궁한 것들을 기르고 살리는 자양분이다.
<고전시대 노자 도덕경 동영상>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79132&rid=2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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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휴머니즘은 국가나 종교,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을 인간 자체로 존중하는 태도로 거듭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소중한 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서정시인 롱사르를 중심으로 플레이아드파의 7명의 시인이 모여 프랑스시를 질적으로 높여 놓았다.
영국에서는 이탈리아로부터 소네트가 들어와 페트라르카풍(風)의 달콤한 연애시가 많이 만들어졌다. 그 시 형태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집(集)》으로 결실을 보게 된다. 같은 시대의 시인에는 이 밖에 필립 시드니 등이 있으나 이 시대의 가장 큰 성과는 역시 셰익스피어의 시극(詩劇)이다.
④세익스피어
세익스피어(1564.4.26 ~ 1616.4.230)는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로서, 희·비극을 포함한 38편의 희곡과 여러 권의 시집 및 소네트집이 있다. 주요저서는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햄릿》 《맥베스》등이 있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셰익스피어극의 절정이자 세계문학의 금자탑이다. 이 시기에 씌어진 로마 사극도 비슷하게 비극적 내용을 담고 있다.
세익스피어는 고전의 ‘살아 있는’ 모델이라고 한다. 작품이 영어로 씌어져 있음에도 셰익스피어가 영국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은 이미 19세기 이후에 두드러졌다. 세계 각국에서 자국어(自國語)로 번역 출간하여 읽는 셰익스피어에 못지않게 또한 무대 위에서도 보는 셰익스피어가 세계 곳곳에서 상연되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한국에 알려진 것은 개화기(開化期) 초에서부터이다. 그때는 단편적인 소개에 지나지 않았으며, 본격적인 소개는 1923년 현철(玄哲)에 의한 《햄릿》의 완역(完譯) 출판이 시초이다. 1920년대에는 이 밖에도 셰익스피어 소개가 있었으나 모두 단편적이었다. 1930년대에 와서 극예술협회에 의한 《베니스의 상인》 공연이 되었다. 이것도 법정장면만을 다룬 부분적인 소개였다.
학교극으로서 셰익스피어가 상연된 기록이 남아 있다.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가 소개된 것은 해방 후인 6·25전쟁 이전에 김동석의 《셰익스피어 연구》, 설정식의 《햄릿》 번역이 나왔다. 1950년대에 들어와 각 대학의 셰익스피어 강의가 보편화되었으며, 세계문학출판이 활기를 띠면서부터 학문적 연구·번역·공연 등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뉘른베르크의 구두장이[靴匠] 한스 자흐스가 16세기 최대의 민중 시인으로서 건전한 시민정신을 시 속에 나타낸 사람이다.
4)르네상스를 이끈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북부의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밀라노 공국, 중부의 교황령, 남부의 나폴리 왕국 등 다섯 도시 국가는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다. 이들은 경쟁적으로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많은 예술품을 창작했고, 특징 있는 건축물과 예술 작품을 남겼다.
[문제8] 르네상스 도시국가는 어디이며, 어떤 전성기를 누렸는지 적어보자.
도시국가 | 내 용 |
밀라노 공국 | 이탈리아 북부 도시인 밀라노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도시 국가이다. 비스콘티가의 지배하에 영토를 확장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주도하였고, 스포르차 가문 때 전성기를 누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브라만테 등의 예술가들을 불러들여 활동을 장려하며 예술을 꽃피웠다. |
로마 교황령 | 가톨릭의 중앙 통치 기관인 교황청은 로마에 중심을 두고 있다. 15세기부터 예술가들에게 교회의 건축과 미술, 조각을 맡기며 창작을 장려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이 로마에 머물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
나폴리 왕국 | 중세부터 남부 이탈리아를 통치했다. 14세기부터 프랑스 앙주가와 스페인의 아라곤가의 통치를 받았다. 항해 도시로 발전하며 르네상스의 번영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
베네치아 공화국 |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네치아에 있던 도시 국가이다.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였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베네치아로 건너가 후기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교회 음악의 중심지로, 르네상스 음악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
피렌체 공화국 | 르네상스가 처음 시작된 출발점이다. 평민 출신 가문인 메디치가가 통치하고 있었다. 상업과 은행업으로 재력을 쌓은 메디치 가문은 정치적으로 평민의 입장을 대변했다. 학문과 예술을 전폭적으로 후원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수많은 작품을 남기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5)유럽의 근대화를 이끈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16세기에 프랑스와 영국,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다. 이때 발달된 문화·예술·자연 과학 등은 서양의 역사에서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9]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각 국가에서 어떻게 발달되었는지 적어보자. 그 외의 나라도 찾아서 적어보자.
국가
| 발달과정 |
프랑스 | 이탈리아의 발달된 문화에 매료되어 기술자들을 데려와 프랑스 문화 발전을 이끌었다.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을 궁전에 초빙하였고, 학교를 세워 인문학을 전수받기도 했다. 프랑스 왕실에 시집온 메디치가 여인들에 의해 이탈리아 문화가 더욱 빠르게 유입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건축물들은 이탈리아 영향을 받아 지어진 것이 많은데 대리석과 조각, 회화 등으로 성 전체를 장식하는 양식은 르네상스 건축의 특징이다. |
영국 | 미술이나 건축보다는 문학 분야에 집중되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시작으로 많은 작가들이 영문학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어 낸다. 셰익스피어 역시 영국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16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했다. |
폴란드 | 이탈리아의 상인과 화가들이 들어오면서 폴란드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왕국의 수도였던 크라쿠프에는 지그문트 예배당, 바벨성 등의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당시 이곳이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음을 알게 해 준다. |
스페인 | 스페인 왕국의 후원으로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였고, 유럽 근대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퇴화한 중세 시대의 유물인 기사도 정신을 풍자했다. |
4. 17세기 시
프랑스에서는 우선 말레르브가 엄밀한 시작법의 기초를 닦았다. 풍자시인 부알로가 고전주의의 대표적 이론가로 등장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의인화하여 쓴 시 또는 교훈이나 풍자의 내용이 들어 있다. <우화시>의 작자 라 퐁텐(1621년 7월 8일, 프랑스~1695년 4월 13일)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1)라 퐁덴
라 퐁덴은 왕족들의 호화판 사치생활과는 딴판으로 백성은 곤궁에 빠지고, 좋은 점보다는 결점이 많았다. 반면에 군주(君主)의 생활은 화려했다. 그때 라 퐁텐은 세련된 기지와 유머로 풍자의 붓을 날렸다.
[문제10] 프랑스의 작가 라 퐁덴의 우화와 우화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적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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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솝
이솝(? ~ ?)은 고대 그리스의 우화작가(寓話作家)로 알려져 있다. BC 6세기 사람으로, 사모스 사람 이아도몬의 노예였으며, 델포이에서 살해되었다고는 하지만 출생도 사망도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안짱다리, 불룩 나온 배, 검고 비할 데 없이 추악한 용모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이솝은 시대적으로나 또는 작품의 우수성으로나 동물우화의 제1인자이다. 소재를 널리 그리스 이외의 곳에서까지 구한 것은 작품 속에 나타나는 동물의 종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 소재에 혼(魂:도덕관)을 불어넣어 문학작품으로 다듬어 낸 것이다.
이솝의 우화들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문체(文體) 속에서도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간직하고 있다. 교묘하게 인생기미(人生機微)인 세상을 살아가는 낌새를 눈치 채게 하면서 일상생활에 도덕적 기조(基調)를 제공하고 있다. 이솝우화는 그리스에서 유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시대에도 읽혔고, 세계 여러 학교의 교과서에도 등장하고 있다.
[문제11] 그리스 로마의 작가 이솝우화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적고, 토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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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우화에는 어떤 교훈이 들어 있는가?
우화에는 그 뜻을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교훈적인 표현이 따르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다. 라 퐁덴은 교훈을 첫머리에 놓기도 하고 말미에 놓기도 한다. 이야기는 감미로운 데 반해, 교훈은 대개 시시하고 평범하다. 라 퐁테느의 교훈은 이야기 속에서 찾아야 한다.
영국에서는 세기 전반에 존 던을 선두로 하는 형이상학파 시인들이 활약했다.
4) 형이상학파(Metaphysical Poet)의 시적 특징
형이상학파 시는 영문학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폭넓은 문학의 하나이다. 이 시풍은 17세기 전반에 가장 활기찼을 때 최상의 연애시와 최상의 종교시와 목가시, 명상을 낳았다. 형이상학파 시는 감성과 지성이 분리된 상태가 아니라, 혼연 일체로 만드는 능력을 발휘한 시다.
5)T.S 엘리어트
T.S 엘리어트(1888년 9월 26일 ~ 1965년 1월 4일)는 영국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황무지>가 있다. 1부는 <죽은 자의 매장>, 2부는 <체스 놀이>, 3부는 <불의 설교>, 4부는 <수사>, 5부는 <천둥이 한 말> 로 되어있다. 이 작품은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 생산이 없는 성(性),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한 시이다 모두 모두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이다.
우리가 아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황무지의 다섯 부분 중 1부 <죽은 자의 매장>의 첫 머리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14세부터 시를 썼다. 에즈라파운드를 만나 조언을 받았다. 제임스조이스,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조력이 있었다.
[문제12] T.S 엘리어트의 황무지를 적어보고 감상해보자. 우리나라의 봄에 대한 시와 비교해 보고 패러디 해보자.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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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의 현대시
1)현대시
현대시(現代詩, the modern poetry)는 개화기 이후 최근까지 존재한 시(詩) 장르 전체를 말한다. 개화기에서 해방 이전까지의 시를 ‘근대시’라 하고 해방 이후의 시를 ‘현대시’라고 하여 구별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전체를 아울러 현대시라고 한다.
2) 학문적 성격
시에 대한 이론을 별도로 ‘시론(theory of poetry)’이라고 한다. 주로 시의 구성 요소와 특징을 소개하는 것으로 현대시 연구 전체에서 일부분을 차지한다. 시론에서는 비유, 이미지, 리듬, 어조 등의 기본적 구성 요소와 아이러니, 역설, 알레고리, 패러디 등의 수사적 기법을 연구한다.
현대시 연구에는 시론 외에도 현대시 문학사, 현대 시인론, 현대시 작품론, 현대시 비평론, 현대시 교육론 등이 포함된다.
현대시 연구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1970~80년대 무렵이라 할 수 있다. 그 전까지의 현대시 연구는 주로 비평가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 등의 문예잡지를 중심으로 시인론, 작품론, 비평론 등이 광범위하게 소개되었다. 일종의 재야 연구가 활성화되었던 것이다. 1970년대부터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박사를 배출하기 시작하면서 현대시 연구가 대학으로 이전될 수 있었다. 1980년대에는 문단과 학계에서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대립구도가 정착되면서 연구의 경향에서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였다.
1988년 월북 문인들에 대한 해금조치가 시행되어 백석, 정지용, 오장환, 이용악 등 식민지시대 시문학의 절창들이 연구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1990년대 이후 이념적 연구가 퇴조하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현대시는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시의 난해성도 심화되었다. 시 연구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강세를 보이면서, 이론에서 다양성이 확보되었다.
2000년대 이후 문화연구의 영향으로 풍속의 관점에서의 시 연구, 혹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 작법에 대한 연구, 해외 디아스포라 시인들에 대한 연구로 점차 연구의 영역이 확산되었다.
대대포구에서
오양심
갈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사 모든 잡사를 듣기만 했다.
말을 들어주는 그가 싫지 않았다.
그도 나를 싫어하지 않은 눈치였다.
둘 사이를 오락가락한 것은
순천만이었다.
가끔씩 비를 뿌리다가
햇살을 내 비치다가
구름이 되어 잠시 머물다 갔다.
따라다니는 역마살도 자리를 피해 주었다.
불씨가 되어 더워진
동천과 이사천이
몸을 물고 풀고 있을 때
강물은 제 살 속에다
깊은 뿌리를 내렸다.
끝내 만삭이 된 뱃속의 피가 통했다.
* 송수권 시인, 김용수 시인과 함께 순천만 갈대밭에서...
아름다운 사람 -
박재삼
바람이 부는 날은
별들은 갈대로 쓸리고 있었다
강가에서 머리카락을 날리는
아름다운 사람아
달이 높이 뜬 날은
별들은 손을 호호 불고 있었다
얼어 붙은 강을 보며 고개 숙인
아름다운 사람아
* 겨울 나그네 -
박재삼
마흔다섯으로 접어드니
세월은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하면서
내 이마에 잔주름을 잡고
허리 밑에 찬바람을 일으키고
머리 위에는 눈발을 날려
영낙없는 겨울 나그네의 이 쓸쓸함이여
솔잎에 송충이던가,
오장육부(五臟六腑)도 갉다가
살갗도 갉다가
아침 밥숟갈 드는 손의 힘도 앗아가고
무엇도 앗아가고 무엇도 앗아가더니
마지막 눈 정신(精新) 쪽에는 그래도
남겨줄 것을 남겨주었더라는 듯,
막내아이 치는 팽이가
한창 신을 내고 돌아가는 판에
햇빛이 장난치듯 감겨들고 있는 것을,
오, 아이의 손에 세월이 잠깐 묶이고 있는 것을,
눈물겨운 광경으로 환히 환히 내려다보노라
* 그리움 -
박재삼
나뭇잎은 햇빛에 싱싱하게 윤이 나고
그와 비슷한 촌수로
물결은 더욱 빛나는 무늬를 끊임없이 빚고
또한 바람은 연방 그리운 것 외에
불 줄밖에 모르는 이것들,
천날 만날 한결같은
오, 이것들을 보아라.
물방울처럼 스러졌다가 이어져
마음은 움직이는 것을 통하여
사랑의 연습만을 부지런히 하고
그것을 영원토록
지치지 않고 하겠다는
그것 말고 나는 볼 수가 없구나.
참으로 환장할 일은 이것이로다.
갈대밭에서
박재삼
갈대밭에 오면
늘 인생의 변두리에 섰다는
느낌밖에는 없어라.
하늘 복판은 여전히
구름이 흐르고 새가 날지만
쓸쓸한 것은 밀리어
이 근처에만 치우쳐 있구나.
사랑이여
나는 왜 그 간단한 고백 하나
제대로 못하고
그대가 없는 지금에사
울먹이면서, 아, 흐느끼면서,
누구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소리로
몸채 징소리 같은 것을 뱉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