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2년4월5일 강원도 영월에서 부산으로 왔다.
처음 서구 동대신동3가에서 살았다.
중2때는 부산진구 범천동 중앙시장 상가주택(1층은 점포, 2층~주거지)에서 살았다.
2학년말인가 3학년 때 중구 동광동5가로 이사했다. 건국중, 건국상고 정문입구 돌계단 입구였다.
그곳에서 얼마 안살았다. 거기서 가까운 영주2동으로 이사했다. 중3때이다.
(본적지를 이곳으로 옮겼다. 1995년12월 김해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다)
교회는 처음 동대신동에 있는 제일감리교회를 다녔지만 담임목사의 전횡과 세속화로
영주동에 있는 시온(중앙)교회로 옮겼다.(장로였던 아버지의 판단. 난 모름)
(예전엔 시온교회, 지금은 시온중앙교회)
3학년5반....다대포에 사는 강태흥을 만났다.
조회시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않아 여호와의증인인줄 알았다.
장로교중 고신파인 다대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기독교는 일제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하였다.
물론 신사참배를 거부한 신앙인들도 많았다.
해방 이후 '신사참배'란 배교행위를 한 기독교계는 하나님과 민족 앞에 회개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당시 신사참배를 반대한 신앙인들이 세운 교회가 '재건교회'였고 고신파이다.
일제에 저항하고 신사참배란 배교행위를 하지 않은 것에 자부심이 대단한 교단이다.
내가 감리교인이라고 하니까 이단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 종파간 열강간 합의에 따라 지역을 나누어서 선교를 하였다.
경상도지역은 호주장로교의 선교지였을 것이다.
중부와 이북지역은 미국 감리교와 북장로교 등의 선교지였다.
부산지역 감리교회는 6.25전쟁 때, 피난 온 피란민신자들이 세웠다.
미약한 감리교였고 다대포처럼 '시골어촌'엔 없었다.
내 기억에 그 당시(1976년) 부산에 감리교회는 20여곳이 안되었을거다.
감리교는 영국 요한웨슬레가 교리를 완성하였고 장로교에 비하면 진보적이다.
세속화되었다고 말한 제일감리교회 임목사는 유신반대한 민주화운동을 하였고,
대청감리교회는 민주화운동의 요람이었다.
시온(중앙)교회 정목사도 민주화운동과 타종교와의 교류 등 진보인사였다....말이 샜다.
강태흥의 초대로 처음 다대포를 갔었다.
아직도 노선운행하고 있는 11번버스.
그 이후 다대포를 자주 갔었다.
강태흥은 학사장교로 군생활중 순직하였다. 현충원에 있다.
(사고의 내용은 누구한테도 들을 수 없었다)
중3 때 교류하면서 신앙적으로 성숙하였다.
태흥은 시온(중앙)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하였다. 그에겐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는 수요일 저녁예배를 가끔 다대교회 가서 보기도 했다.
당시 깊게 이야기한 것이 있다.
절대 예정론과 자유 의지론.
국기에 경례하는 것이 우상숭배냐 하는 것.
다대교회는 찬송가를 부를 때 박수를 치지않았다. 기타반주나 가요를 교회서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감리교는 찬송가를 부를 때 박수도 치고 가요도 교회서 불렀다.
천주교서 시작한 가스펠도 불렀다.
서로의 교리를 이해하고 기독교란 종교를 더욱 깊게 배운 시절이었다.
1976년 여름, 통일교 용두산 가두선교 시 그곳에 가서 그들과 몇시간 이단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다가
납치 당할뻔도 했다. 겁도 없었다.
부산 남고를 다녔던 태흥이와는 고교시절에도 자주 만났었다.
다대포에 가면 늘 그 친구, 강태흥이 그립다.
(강태홍의 부친은 원양어선 선원이었다. 형도 그렇고. 동생 태영은 중학교 2년후배였다)
2018년4월25일(수) 저녁, 다대포의 노을이다.
2018년4월28일(토) 오후 몰운대 걷기.
어촌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대명목재 원목하치장은 아직 그대로 있다.
화손대를 향하는 새론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사진 가운데가 솔섬.
동섬, 쥐섬(가운데), 동호도(뽀족한 삼각형의 섬)
화손대,,,모자섬(등대)
모자섬
2018년4월29일(일)...대암산(669m) 산행
점심을 먹고 집에서 나왔다.
평지마을(김해시 진례면)에 주차, 남산재(오른쪽 방향)로 향했다.
가볍게 비음산이나 갔다올까 했으나 남산재에서 대암산으로 향했다.
남산재이정표엔 대암산1.9km, 비음산1.1km. 평지마을에서 여기까지 1.4km.
10여년만에 오니까 길이 낯설다. 처음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나무계단이 곳곳에.
철쭉은 지고 있다.
미나리냉이가 많이 피어있다. 예전에 보기 어렵던 족두리풀꽃도 많다.
주택의 정원이 예쁘다. 주위환경 잘 이용하여 조성한 집이다.
평지저수지와 평지마을, 평화롭다.
용지봉과 대암산
김해방향은 그런대로....창원방향은 미세먼지로 회색이다. 피어난 철쭉이 나를 반긴다.
걸어온 능선, 정병산과 비음산이 보인다. 낙남정맥구간이다.
고목이 춤을 추기에 같이 흔들어 봤다.
음~~~! 장군바위는 예나 지금이나 늠름하게 창원을 지켜보고 있다.
언제 설치하였지? 정상석이 있다.
대암산에서 용지봉으로 향하면 어느 안부에 평지마을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임도를 만날 때까지 거리가 1.4km정도. 마을까지 임도는 1km가 넘을 것 같다.
꽃도 보고 잠시 쉬기도 하면서 넉넉히 4시간을 보냈다. 약6km쯤 걸었을까?
하산길에 본 북카페.
곤충연구가가 사는 곳이다. 나와 지인이지만....
그는 아동문학가이기도 하다,,,,너무 '자기중심적'이라서 어울리고 싶지가 않다.
미나리냉이꽃
족두리풀꽃
으름덩굴꽃
선밀나물 수꽃 /선밀나물꽃은 암수가 다르다고 한다. 밀나물은 덩굴이고...인터넷검색으로 암.
봄마중(꽃마중)
삿갓나물꽃....삿갓나물=삿갓풀, 칠엽일지화(七葉一枝花). 우산나물과는 비교됩니다.
떨어진 꽃, 오동나무꽃일까?
으아리
여러 종류의 제비꽃, 미나리아재비, 홀애비꽃대 등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