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결혼생활과 인내심 / 인송. 박정웅
누구나 살다보면 크고 작은 시련, 고통, 풍파를 당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길은 인내하는 길 뿐이다.
성장과정과 가정문화, 교육, 성별이 다른 부부가
결합한 결혼생활은 더더욱 그렇다.
물리적 결합을 넘어서 정신적 화학적 결합을 이루기까지는
오랜 세월 동안 인내가 요구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말은 그래서
실감나는 표현이라 여긴다.
한마디로 결혼 생활에서 인내심이 제일가는 미덕이라고 본다.
끝까지 서로 양보하고 참는 부부가 최후 승리자가 된다.
가사심판 판사들의 이혼 조정사건의 80%가 인내심 부족에서
기인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로마제국 네로황제 때에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단 한 송이 무화과를 가지고 싶어도
거기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고 범사에 인내의 중요성을 고 설파했다.
우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또한 서양 속담에 "하늘은 인내할 수 있는 자에게 모든 것을 준다"
고 했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예술품을 창작한 예술가가, 기계를 발명하는 기술자가
이룩한 모든 인류의 재산은 결국 인내에서 나온 것이다.
하물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부생활의 성공여부는
계속적인 인내심에 달려 있음은 재론할 여지조차 없다.
저명 인사들의 인내심을 강조한 결혼관을 보면 이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지 않나 싶다.
영국의 문호 쉑스피어는 "결혼생활에서 인내력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펄벅 여사는 '대지'라는 작품에서
주인공 왕륭을 중국 결혼생활에서 전형적인 인내심 상징 인물로 클로즈업시켰다.
홍수가 오거나 메뚜기 떼의 재난과 마적 떼가 휩쓸어가는 시련도 참아내고
조상이 물려준 농토를 지키고 늘리는 등 부인 아란과 합심하여
결혼생활에 인내심의 모범을 보인 점을 잘 소개해 주었다 .
그 소설은 화려하지도 않고 로맨틱한 장면이 별로 없어도
많은 독자층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그 이유는 평범한 농민인 왕륭의 대지를 지키는 끈기와
보물보다 몇 백배 더 값진 결혼생활의 인내심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펄벅 여사는 한국 애국자 집안 4대의 가정생활에 큰 감동을 받아
한국인의 애국심, 인내심, 결혼생활을 찬양하여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사회는 펄벅의 이런 칭송과는 거리가 먼
사건들이 수시로 터지니 안타깝기만 하다.
결혼 생활에서 인내심 대신에 이기심, 아집, 조급증으로 인해
3쌍 중 1쌍이 이혼한다.
사소한 일로 순식간에 배우자 살인까지 저지른 참사가 일간지
사회면에 가끔 등장하니 한심스럽다.
어느 날 장자가 공자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수양(마음공부)의 요점을 한마디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공자가 장자에게 대답했다.
'백 가지 모든 행동 중 참는 것이 제일이다. 왕이 참으면
국가가 편할 것이요, 관리가 참으면 지위가 높아질 것이오,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해로할 것이오'라고 했다.
부부 생활에서 인내심이 중요함을 공자도 설파하고 있다.
필자가 1997년 여름, 공직에 재직 시 일본 여행 중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건립한
닛교에 있는 유명 사찰에 원숭이 세 마리를 조각해 놓은 것을
호기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두 손으로 귀를 가린 원숭이,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원숭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원숭이로 결혼 생활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결혼 초기부터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
합계 9년 동안 듣기 조심, 보기 조심, 말하기 조심을
동시에 실천하고 인내하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런 부부간의 인내심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9년이 아니라 평생 유지해야 인생길이 순탄하다고 본다.
부부가 한평생 사는 동안 갈라지고 싶은 마음이
숱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결혼 당시 생각했던 기대에 못 미쳐 서로 실망할 때도 있고,
칭찬 대신 무시하는 대화로 이어져서 의견 마찰이 생길 때도 있다.
상대가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혹은 덕스럽지 못한 행동을 봄으로써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 격언에 "전쟁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라. 바다에 나갈 때는
두번 기도하라. 그러나 결혼할 때에는 세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
즉 결혼 생활은 전쟁보다도, 항해보다도 더 어렵다는 말이다.
평생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유지된다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사막의 모래에서 자동차가 빠져 나오는 방법은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일이라고 한다.
공기를 빼면 타이어가 평평해져서 바퀴 표면이 넓어지기 때문에
모래 구덩이에서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다.
부부가 갈등의 모래사막에 빠져 헤맬 때 즉시 서로의 자존심과
고집이라는 바람을 빼야 하리라. 그러면 둘 다 편히 살 수 있다.
(수필 전문지 에세이 포레에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