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0,5-9, 루카 9,1-6): 하느님 주신 것만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이탈리아 피에트랄치나 태생으로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도회 소속의 사제가 되어 평생 사목적 열정과 가난의 모범, 기도와 겸손한 삶의 여정을 통해 참 신앙의 길을 남겨주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상처를 온 몸에 지닌 고통을 안으면서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였던 성 비오 사제의 거룩한 생애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느님만으로 충만하고, 하느님의 뜻을 지향하는 ‘가난한 순수성’으로, 참 삶의 가치와 진리를 좇는 이의 발걸음에 묻은 기쁨을 몸소 유산으로 남겨준 성인의 삶을 반추할 때마다 깊은 공경과 추모의 마음이 절로 더해집니다. 우리도 그 성인들과 같이, 이 세상의 기울어진 욕망과, 집착적인 유혹의 틀이 던지는 착각이 매몰되거나 때묻지 않기를 기도해야지요. 그러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정체성을 숙고하고 성숙시켜 갈 수 있는 진정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잠언 30장 5절, 6절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순수하고, 그분께서는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그분의 말씀에 아무것도 보태지 마라.”라고 일러줍니다.
이 말씀을 새기면서, 최근에 들었던 어느 사제의 인상적인 강의가 떠오릅니다. 그 내용의 골자는 ‘악의 세력은 당신을 나쁘게가 아니라 바쁘게 만듭니다.’라는 제목에 요약되어 있었지요. 이는 외형적인 분주함을 좇거나, 많은 일의 성취를 이루어야 하느님께 충실하다는 착각에서 우리가 자유롭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일을 좇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정작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할 순간이나 일은, 고통받는 가난한 이 하나에 주목하신 그리스도의 몸짓을 보고 따르는 데 놓인 것이니까요.
같은 맥락에서, ‘사제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사진 한 컷도 제겐 커다란 울림을 주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내전 중에 찍힌 사진으로 알려진 그 한 컷에는, 부상을 다해 죽지 않으려고 사제의 수단을 붙드는 군인의 손과 죽어가는 사람을 혼자 두지 않으려고 붙드는 사제의 손이 교차되는 극적인 장면이 담겨 있었지요. 그 한 장면이 묵직한 메시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게 느껴졌습니다.
사제의 길은 어떤 화려한 언변이 필수적인 것도, 수많은 직책을 수행하며 얻는 자족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성과 마음, 생각과 힘, 열성을 다해 하느님을 전할 수 있도록, 하느님 앞에 깊이 머무는 묵상과 사색의 깊이를 더하는 일에 전념해야 하고, 동시에 그 충만한 마음으로, ‘한 사람’에게로 다가서는 선택과 집중, 순수한 헌신만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묵묵함이 바로 하느님 뜻에 걸맞은 응답입니다. 늘 초심(初心)에서 한 끝도 변함 없이 가난한 이의 모습 그대로 주님 뜻을 채우셨던 비오 신부님의 생생한 복음적 여정도 가장 뚜렷한 예가 될 수 있겠지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루카 복음 9장 3절, 5절에서,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아. …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 모두 어떤 것에도 매임이 없이, 하느님께 매료되어, 하느님만으로 충실하고, 하느님을 전하는 투명한 길 위에 서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가난에 찬 기쁨’을 살아가 수 있도록 맞갖은 은총을 간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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