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보약’
내가 커피를 처음 맛본 것이 아마 회사원 시절보다 14~15년 전인 1953년 말쯤인 것 같다. 6.25 전란이 3년쯤 이어질 무렵, 정전 협정(1953년 7월 27일)이 이루어지고 연합군에게 지급되던 전투식량(C-Ration)이 시골 가정에 한 개씩 선물(?)로 보내졌었다. 상자는 작았지만, 한 끼 때우는 데 부족함이 없을 만큼 온갖 먹을 거리가 다 들어있었다. 우선 입맛에 맞는 달콤한 것들부터 먹고, 끝으로 국방색 방수포에 들어있는 검은 가루가 남게 되었다. 연고처럼 새까맣게 녹아내린 것을 물에 타서 마셔보니 그건 진짜 댓진 맛이었다. 그렇게도 쓸 수가! 그게 바로 내가 난생처음 맞본 커피 맛이었다. 정말이지 함부로 먹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혔었다. 그런 후로 커피는 마실 생각도 없었지만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바깥 모임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다방에 들르는 일은 거의 없었고, 들른다 해도 백차를 마시며 약속한 친구를 만나면 곧 자리를 비우는 것이 전부였다.
1965년 입대하여서도 여전히 커피는 다른 사람들의 음료였다. 1967년 KMAG(미군사고문단)로 옮겼는데, 식단이 완전히 바뀌어 음식과 함께 마시게 되는 것이 커피였다. 짙은 것도, 입맛에 맞는 것도 아니고, 마치 숭늉에 떨떠름한 첨가제를 넣은 듯 묽은 갈색이 마시고 나면 몸이 나른해지면서 저절로 힘이 빠진다. 그것 또한, 마실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재확인해 주었다.
그 후로 커피를 물 마시듯 마시던 때가 있었다. 무역 회사에 근무하면서부터였다. 사무실 안에 응접실이 따로 없었던 때라, 고객이 방문하면 으레 같은 건물 지하다방으로 안내하고, 주문하는 음료는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커피’였다. 하루에 평균 다섯 잔 이상 마시는데도 밤에 잠도 잘 잔다. 젊었기 때문일 것이고 또 하는 일이 고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그렇게 커피에 길든 나는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커피 마시는 버릇이 그대로 전수되었다.
종로 신문로 빌딩 2층에서 한국번역가협회에서 일할 때, 점심 식사를 마치면 찾는 곳이 건너편 건물 지하층에 있는 찻집이었다.
그 찻집은 입구에 원형으로 된 유리 벽에 딱 두 줄 글귀가 쓰여있었는데, 윗줄에는 영자로 Coffee라 쓰여 있고 바로 그 밑에는 한글로 ‘보약’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뜻은 커피랑 홍차도 있고, 몸에 좋은 한방차도 있다는 뜻이겠다.
번역 일을 하다 보니까 그 글들이 그냥 지나쳐 보이지 않고 마치 영어문장 밑에 번역된 우리말 문장을 타자(打字)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Coffee라는 말을 번역하면 ‘보약’이 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커피는 보약이라…”
그렇다면, ‘보약’이 될 정도라면 도대체 ‘커피’가 무엇이길래? 우선 그것이 궁금하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인으로서 커피 사업을 했던 뒤푸르(Dufour : 1622–87)는 자기가 쓴 글에 “bunchum(커피 원두)의 효능을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바그다드의 라제스(Rhazès)”라 하고, “우리에게 커피란 따뜻하고 담백 쌉쌀하고, 또한, 위장에도 매우 좋은 음료라고 밝혔다.”라고 했다. 라제스(Rhazès : 865-932)는 고대 페르시아의 화학자, 철학자, 그리고 의학에 박식한 의사였다고 한다.
‘커피’는 그 원산지로 알려진 이디오피아의 ‘짐마’(Jimma) 부근 ‘카파’(Kaff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디오피아어로 ‘힘’을 뜻하는 ‘Kaffa’는 아라비아로 건너가 ‘와인’을 뜻하는 카화(Quahwa)로 불렸고, 터키에서는 카붸(Kahve)로 불렸다. 영국에서는 처음에 ‘아라비아 와인’이라 지칭했는데 블런트 경(sir H. Blount : 1602-1682)이 1650년경 ‘Coffee’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나라마다 명칭이 달라 프랑스에서는 Café로, 이탈리아에서는 Caffe로, 터키에서는 Kahve로, 폴란드에서는 Kawa로, 독일에서는 Kaffee로 불린다.
한국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0년 전후인데, 을미사변(아관파천 : 1895년, 고종 32년) 때 러시아 공사 베베르(Waeber : 1841-1910 한국어 이름 : 위패韋貝)가 고종황제에게 커피를 진상한 게 그 최초라 한다. 그 커피를 당시에는 양탕(洋湯)국이라 불렀다 한다.
커피의 본래 의미가 ‘와인’ 또는 ‘힘’이라는 것을 보면 그것이 약간(?)은 ‘보약’이라는 의미가 들어있기는 한 것 같다.
대학에 출근하던 때를 회고해본다.
연신내역에서 3호선 지하철을 타고 강남 신사역에 내려, 그곳을 거쳐 가는 학교 버스를 타면, 도로 사정이 무난할 때면 9시 전에 안성 교정에 이른다.
그래서 신사역에서 학교 버스를 타려면 집에서 출발하는 시각을 조정하는 것이 문제였다.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는 데는 지하철이 버스보다 정확하다. 두 정류장 사이의 시간은 대게 2분이나 2분 30초 정도로 계산한다. 연신내역에서 출발하면 신사역은 열여섯(16) 번째이므로 30분 이상이 걸린다. 따라서 집에서 연신내역까지 걸어가는 시간과 지하철 타는 시간, 그리고 내려서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시간을 넉넉히 잡아두어야 한다. 학교 버스가 신사역에 도착하는 시각이 7시 50분 전후이므로 그 시각에 늦지 않으려면 집에서 7시 전에는 출발해야 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한 시간 정도로 잡으면 6시에는 이미 일어나 있어야 한다.
시간에 마음을 쓰다 보면 밤중에 수시로 잠을 깨어 시계를 본다. 자명종으로 조작해 놓고도 잠을 깨기는 마찬가지다. 이른 새벽부터 출근 준비에 마음을 쓰느라 덜 깬 잠을 달래며 연신내역으로 나간다. 일반 사람들은 나보다 더 부지런해서 내가 지하철을 탈 때쯤이면 지하철은 항상 만원이다. 다음 차일수록 더 복잡하다. 대부분 열차는 일산 대화역에서 출발하는데 몇 차례 지나면 구파발역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얻어낸 방법은 연신내역보다 한 정거장 더 멀리 구파발역에 가서 그곳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항상 타는 역에서 뒷걸음질해서 전 역에서 타면 된다. 참 좋은 발상인데 그게 그렇게 좋은 것만도 아니다. 한 정거장을 뒤로 물러서 타려면 집에서 출발하는 시각을 상당히 앞당겨야 한다. 자리에 잡아 신사역으로 가노라면 몇 정거장 못 가서 발 디딜 틈도 없이 열차 안은 꽉 찬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면서 지나가는 역 이름도 보이지 않게 앉아 있다가 거의 신사역에 가까워지면 용케도 슬며시 ‘그분’ - 졸음 -이 닥친다. 승객들이 우르르 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보면 벌써 두 정거장을 지난 강남 터미널 역 아니면 세 정거장을 지난 교대역이다.
부랴부랴 뛰쳐나와 건너편 쪽으로 건너가서 열차를 기다려 신사역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니 학교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되돌아 타는 왕복 시간도 미리 계산에 넣어야 한다.
너무 서두는 바람에 신사역에 너무 일찍 도착하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어진다. 버스가 올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그 빈 시간을 때울 다른 방법은 없다. 이래저래 조바심을 내며 마침내 버스를 타면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없고 그저 지나가는 들판만 눈에 들어온다. 학교 정문에 다다르기 10여 분 전쯤 되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면서 살며시 ‘그분’ 잠에 빠진다.
또 우르르 내리는 소리에 덩달아 나도 내리면 어떤 때는 소지품을 놓고 내릴 때도 있다. 차에서 내리고 나면 꿈속에서처럼 앞이 뿌옇고 흐리멍덩하다. 곧 첫 수업이 시작될 터인데… 얼른 커피 자동판매기 앞으로 달려간다.
자동으로 뽑혀 나오는 커피잔을 입에 대는 순간! 몽롱한 내 정신은 어디로 갔지? 정신이 이렇게 맑아질 수가!
아! 나에게 ‘커피’는 바로 ‘보약’이었다.
그러고 보니 번역가협회 맞은편 건물 지하 커피점의 <Coffee 보약>은 품목 이름이 아니라 진짜 대역(對譯) <번역문>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