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몇일 있다 시드니로 돌아갔다.
꼭 놀러오라는 다짐을 주고 같지만 몇일 지나 잊고 지낼수밖에 없었다.
중간놈이 가끔 아버지 메일 왔어요?
왜 안오시느냐구 메일 왔어요?
............
메일 주소좀 알려도라...
한남동 해밀턴 호텔에 갔을때 내게준 명함을 나는 중간놈에게 주곤 관리좀 해달라고했었다.
수의대를 다니는 놈이였기에 가끔 메일을 보내 뭔가 학문에 관한 연결고릴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였다.
그놈은 메일을 나누면서 나를 배제시켰다.
내가 도와달랄까봐 지레 예측하고 명함을 잊었다고도 햇다....
그러고 몇해가 지났다.
중간놈은 보건대학원엘 들어가 역학을 공부하겠다고 첯등록금만 .....
자식 이기는 장사 잇다던가.
고집대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진로 결정하기전 농막에서 두어서너달 나를 도왔다.
에나 지금이나 농사일이 허접스럽고 수익날 구조도 아니고 사회생활을 접고 귀농형태를 띠다보니
만물상 형태로 시간때우기라.....
그래도 그놈은 차분하게 내생활을 이해하려하구 잘 따라주었다,
이때 매실도 심고 구찌뽕지름내는겄도 실행할수있었다.
그러다 그는 모의대 연구실로 들어가 연구원 생활을하며 유학을 꿈꾸며 경비를 대달라고......
"안돼!" 너의형 유학을 막았으니 너도 예외는 안된다.
네능력대로 해라.... 돈애 관한한 나는 널 도울수없단다.
그놈은 집요하게 미국의 여러대학을 끊질기게 절충을하다 계기를 마련하게 되였다.
두두리면 열린다는 속담대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