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에서 부산 가는 길
기장에서 부산가는 길엔 대변항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1996년쯤엔 항구를 따라 비닐로 만든 천막을 치고
해삼이나 멍게, 개불따위를 파는 노점들이 많았다.
비가 오는 날은 그 값이 더욱 쌌는데 그런 비오는 날 그곳엘 나는 더러갔었다.
비닐천정이 들려주는 빗소리, 그리고 바다에 그려지는 비의 표정을 바라보며
해삼이나 멍게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곤했다.
지상의 끝에 앉아 먹었던 간소한 음식들이 지금도 마음과 혀끝에서 사물사물 되살아난다.
도대체 나는 왜 그런 담박하고, 담박을 넘어 차라리 누추한 추억들이 많을까?
그리고 그런 누추한 추억이 왜 지금 명징하게 떠오르는 것일까?
내 혈액형이 누추한 때문일까?
해운대 역에서 서면가는 전철로 갈아탄다.
서면에서 뮤클회원들과 술 한잔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서면, 어느 문어요리 전문식당
서면 뒷거리, 바람과 어둠이 더욱 짙은 길모퉁이에 그음식점이 있다.
비교적 널찍한곳이지만 손님마저 드물어 담소를 나누기에 적당하다.
지금은 소주의 알콜도수가 대개 20도 아래지만 과거엔 일쑤 25도를 넘었다.
그리고 맛이 무척썼다.
경남지방의 토종 브랜드인 무학소주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맛이 무척 거칠었고 숙취또한 대단했다.
그러나 요즘처럼의 선택은 있을수 없었다.
진로 아니면 무학이었는데 상대적으로 맛이 나은 진로는 말하자면 미끼 상품이었다.
진로를 마시는 날은 재수가 좋은 것이었다.
그러니 과거에 비하면 요즘의 술, 특히 소주는 엄청나게 개선된 것이다.
이제 소주가 맛이 순하고 달며 숙취 또한 덜하니 많이 마실 수 밖에 없다.
그 땐 주량이 소주 한병이면 애주가였고 두병이면 모주꾼에 속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말이 큰의미가 없다.
바야흐로 음주의 하향평준화가 된것이다.
-대화
남과여, 그리고 청년과 장년이 스스럼없이 어울려 대작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뮤클의 큰 장점이다.
그것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삶의 반려로 삼는 사람들은 그 대화조차 음악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각 성부에 맞는 소리를 협화음으로 대화하는...
회화의 오리지널, 혹은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대화가 있었다.
원화를 감식 해 낼 수 있는 시선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리고 원화와 모사화에 대한 변별은 무엇인가.
즉, 원화를 감상할 때와 모사품을 감상할때의 느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나는 원화와 모사화에 대한 느낌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원화를 매일같이 감상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신체구조나 감각 탓에 아무리 미세한 이변도
손쉽게 변별해낸다.
원화에 대한 그런 감각이 애초 부족한 우리들이 감식해 낼 수 있는 방법은 사실 거의 없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음반으로 듣는 음악이 도판, 혹은 모사품으로 보는 회화가 거의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리지널에 접근 할 방법이 거의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차라리 공감각에 골몰하는 편이
오히려 경제적이 아닐까?
공감각, 즉 어떤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함이다.
나는 그래서 공감각에 골몰하는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포터블 라디오로 음악을 들으며 깊이 감동하며
도판 그림으로도 만족하곤 한다.
사람이란 전반적으로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다.
-헤어짐
2차, 맥주전문점에까지 갔는데도 일인당 비용이 2만원에 불과했다.
무척 경제적인 회식이었던 셈이다.
나이가 들며 절감하게 되는 것이
어느 정도만 취해도 말이 생각대로 짜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취했어도 말은 예민하고 풍성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의 지청구가 쏟아진다.
요즘 음주가 너무 잦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가장으로 겪는 자잘한 기쁨 아닌가?
첫댓글 가장으로 겪는 자잘한 기쁨도 좀 지나면 가을처럼 싱겁게 지나갈텐데...
바닷가라 안주거리 많으니,
술맛 땡기고, 뭇 친구들과 어울리니, 더 땡길테고...
그러니, 집에 있는 마래여사 지청구 쏟아지는 거고....
지청구 정도면 약한 거~착한 아내 만나서 그정도지!~내쫒기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아시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