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광화문 현판 갑자기 교체, 왜?
● 왜 지금인가? 문화재 전문가들은 광화문을 원래대로 복원할 경우 현판 글씨도 바꿔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복원 전에 현판부터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 오해를 살 우려가 있으므로 복원이 다 끝난 뒤가 좋다”는 의견과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물었을 때 바꿨어야 하는데 지금도 늦은 감이 있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문화재위원회 건조물분과위원장인 김동현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는 “광화문 구조를 원래대로 목조로 복원하고 위치도 현재보다 14.5m 앞의 원위치를 찾아준 다음에 현판을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건조물분과 위원인 김동욱 경기대 교수(건축사)도 “현재 철조 콘크리트 건물을 제 위치에 목조로 복원하기 전까지는 그대로 두는 것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재위원은 “언젠가는 바꿔야 하겠지만 지금 바꾼다면 정치적 오해를 살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 계획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인 정양모 경기대 전통예술감정대학원 석좌교수는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물 당시부터 광화문 현판을 원래대로 한문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당시에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바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화재위원인 이태호 명지대 교수(회화사)는 “어차피 바꿔야 할 것이라면 지금 못 바꿀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왜 정조 글씨인가? 현판 글씨를 정조의 글씨로 집자해 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비판적 의견이 우세했다. 김동현 교수는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고종 때 복원됐기 때문에 정조 때는 광화문이 없었고 정조가 광화문 글씨도 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조의 글씨를 집자해 현판으로 쓰는 것은 역사왜곡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김동욱 교수는 “임금이 궁궐 문의 현판글씨를 직접 쓴 경우가 없다”면서 “정학교가 현판글씨를 쓴 것도 명필이었기 때문인 만큼 이제 다시 복원한다면 우리 시대 최고의 명필에게 맡기는 것이 전통에 맞다”고 말했다. 김양동 계명대 서예과 교수는 “현재의 현판도 역사적 존재 이유를 갖는데 이를 궁색하게 정조의 글자를 집자(集子)해서까지 바꾸려는 것은 지금 글씨가 보기 싫다는 정치적 반감의 소산”이라며 “굳이 바꾸겠다면 역대 최고 명필로 꼽히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해서 쓰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한글전용을 강조하기 위해 한글로 쓴 현판을 굳이 한자로 바꾸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김계곤 한글학회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광화문과 현충사의 현판을 일부러 한글로 바꾼 것에는 나름대로 깊은 뜻이 있건만 이를 무시하는 것도 문화파괴”라고 말했다. ● 개혁군주 정조의 이미지?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개혁군주 정조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 10월경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노 대통령과 창덕궁 후원을 거닐며 독대할 당시 정조가 세운 규장각을 안내하며 “정조는 개혁정치를 추진했고 소장학자들을 양성했으며 수원 화성으로 천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는 말을 건넸다. 당시 노 대통령은 “내가 어디 정조대왕에 비할 수 있겠느냐”면서 “정조에 대해 좀 더 연구해 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유 청장은 그 직후 정옥자 서울대 교수의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와 박광용 가톨릭대 교수의 ‘영조와 정조의 나라’ 등 정조 관련 책들을 청와대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유 청장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현판을 교체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신문칼럼 등에서 “박 전 대통령의 광화문 현판 글씨에 살기조차 느껴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수원 운한각 박정희 친필 현판 24일 떼내▼ 경기 수원시 화령전(華寧殿·사적 제115호) 운한각(雲漢閣)의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이 공교롭게도 24일 교체됐다. 1801년 화성(華城) 안에 지어진 화령전은 정조의 제사를 지내는 건물로 운한각은 그중 정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전각이다. 원래 현판은 정조의 아들 순조가 썼으나 6·25전쟁 중 현판이 소실돼 1966년 박 전 대통령의 현판이 걸렸다. 수원시 화성사업소는 “화성행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34개의 현판을 원래 모습에 가깝게 교체하는 과정에서 운한각의 현판이 작고 목재 재질도 좋지 않아 지난해 12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서예가 정도준(鄭道準) 씨의 글씨로 교체했을 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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