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내고 어느덧 1주기를 맞습니다.
비보를 접했을 때 황망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년이란 세월을 흘렀다네요.
그러나 뒤집어보면
360여일의 시간만큼 우리는 그의 존재를 조금씩 잊어왔고,
그의 부재를 서서히 인정해 왔던 것은 아닌지.
새삼스레 지나간 사진들을 모두 들춰내어
그의 사진을 찾다보니 드는 생각,
'우리가 삶의 한가운데서 찍히기를 즐기던 그 시간에
그는 우리들의 삶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구나.'
그가 주인공이 되어 찍힌 사진이 이렇게도 없었구나.
1995년 소리왓에 합류해서 2006년까지 10년이란 세월동안
10권이 넘는 그 사진첩 속에서
그의 얼굴이 들어있는 사진이란
당연히 찍힐 것을 전제로 해야하는 공연사진, 프로필사진이 대부분,
일상활동 속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네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는 우리들을 찍어주고 있었네요.
되돌아보면 소리왓 식구들에겐
그와 비슷한 기억들이 많습니다.
초반 그의 차 한대가 우리가 가진 기동력의 전부이던 시절
공연연습이 끝난 늦은 밤이면
날이면 날마다
동쪽으로는 함덕에서 서쪽으로는 하귀까지
동서를 오가며 일일이 회원들을 집까지 데려다주던 것이며,
힘들고 껄끄러운 일이 있을 땐 자청해 기꺼이 도맡아 하며,
회원들 개개인의 어려움까지도 함께 해결하려 나서주던 일,
주저할 땐 "어렵지만 해보자!" 밀고 나가기도 하고,
잘못을 인정할 땐 " 기냐? 경헌거 닮다" 인정할 줄도 알고,
아쉬움이 있을 땐 "쩝!!" 한 번 입 다시는 걸로 끝낼 줄도 알고,
조그만 일에도 "허허!" 웃을 줄 아는
장점도 참 많은 이였지요.
그를 되돌아보며,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돌아보게 되네요.
그때 그 밝던 얼굴들...
그 싱그럽던 얼굴들이 세월이 흘러
조금씩 삶의 나이테를 그리기 시작하고,
풍상을 담아가기 시작했네요.
"나 다시 돌아가고 싶어--!!"
세월을 거스를 순 없지만
이미 이마에, 눈가에 조금씩 새겨져 버린 세월의 흔적을 지워낼 순 없지만
그때 그 시절의 풋풋한 마음만 가질 수 있다면...
이제 알겠네요.
김경률, 그는 우리에게
거창한 이름의 영화감독이기보다,
소리왓이라는 하나의 몸체로 만난 각각의 세포였음을
그리고 이제 겨우 아물어 껍질이 앉아가는 하나의 상처였음을 ...
...
그러니 남아있는 우리들 역시 모두 소중한 하나하나의 존재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