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선물도 포기합시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하늘 높이 날아라.... 그 노래를 부르던 어린 시절 비행기를 탄다는 꿈이라도 꾼 적이 있었던가. 시발택시와 경찰오토바이를 겨우 한 번 보고 한 시간도 넘게 떠들었던 때이니 아마 상상 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업무로 여행으로 수시로 비행기를 타고 들락거리며 선물을 무엇을 사와야 하나 고민을 하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세상 오래살고 보아야한다는 말이 어른들 말로만 여겼는데 내게도 꼭 들어맞는 말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언감생심, 꿈도 이루어진다.'
기념이 되는 때 챙기는 것이 선물이다. 그렇다면 동네 체육대회와 해외여행. 어느 것이 보다 기념적일까.체육대회를 열면 수건 한 장씩은 돌리는데 해외여행은 요즘에선 국물도 없으니 그런 면에서 행사 날짜가 박힌 수건에 쓰여진 별 볼일 없는 동네행사가 훨씬 기념적이다. 더 이상 해외에 나간다는게 자랑꺼리가 되지 못한다. 험한 말 개나 소나 다 나간다는 게 요즘의 해외여행이다. 그런데 대개 기념을 하면 선물을 받게되고 선물을 받으면 무슨 날이야 하는 물음이 자연히 붙는 것이 필시 기념과 선물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 빛내기 위해 기념하기위해 선물을 하고 행사도 하고 패도 새기고 비도 새기고 인간들은 때때로 난리부르스다.
따지고보면 때때로라 하는 행사의 대표가 설날이나 추석같은 명절이다. 알록달록하고 예쁘게 만든 아이의 옷인 때때옷이 때때로 라는 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우리는 때때로 때때옷을 입는 때가 돌아오면 마음부터 부산해진다. 상 차리는 것 말고도 선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 주고 안받기 운동을 전개하지고 말들을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부대끼며 사는 데는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는 좋든 싫든 이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부담없는 선물이란 말을 하지만 실은 이 말은 완전무결한 말이 아니다. 선물은 관계를 좋게 갖자고 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가볍더라도 최소한의 감정 무게를 얹은 것이다. 부담 백배라 한다면 그 무게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그런 무게감이란 것은 아주 상대적으로 사회상과 생활상을 반영하고도 있다. 설탕 한봉지로도 감격하던 때가 우리에게 있었다.
전쟁 이후 사회복구에 힘쓰던 1950년대에는 밀가루, 쌀, 계란, 찹쌀, 돼지고기, 참기름 등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농수산물을 직접 주고 받았다. 전후 복구가 한창이던 60년대에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은 설탕, 비누, 조미료 등 생활필수품이었다. 이 가운데 설탕은 물자가 부족했던 60년대 최고의 선물이었다. 백설표 설탕이 판을 치던 때 미풍과 미원의 조미료 경쟁도 이 무렵 시작되었다. 이 시대에는 기본적인 식생활에 도움이 되는 품목 위주로 선물을 주고 받았다. 이 외 아동복, 내의 등 옷가지가 인기선물에 속했으며, 가격대는 2천~3천원대였다.
누런 포장지에 맡겨진 다이알비누는 한번 쓱 문질러 얼굴에 곱게 칠한 후에는 다시 얌전히 말아 제 위치에 두었다. 동산유지에서 나온 벌꿀비누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말표 비누는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을 때 세수비누를 안쓰고 이 비누를 썼다. 소금 대신 칫솔에 뭍혀 쓰던 럭키치약, 얼마나 중했으면 이름에 약을 부쳐 치약인가. 70년대엔 고도성장에 들어섬에 따라 국민들이 선택하는 선물 경향도 바뀌어 갔고, 그 종류도 늘었다.
국내에서 공산품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식용유, 럭키치약, 와이셔츠, 피혁제품, 주류 같은 선물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생필품이 아닌 기호품의 성격을 띠었는데, 가격대는 3~5천원 안팎이었다. 이 시대엔 커피세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70년대 선보인 동서식품의 맥스웰 커피세트는 추석선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 백화점 선물 매출로는 설탕과 조미료세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어린 아이에겐 모든 과자가 조금씩 들어있는 종합선물세트가 최고의 선물이었다.
70년대 또 하나의 흥미로운 현상은 화장품과 여성용 속옷, 스타킹이 고급 선물세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비비안의 판타롱 스타킹은 꽤 유명했다. 텔레비전, 전자보온밥통, 전기밥솥, 가스렌지 등 가전 제품이 선물로 집중 소개되고 있어 당시의 급속한 산업화와 전자제품의 대중화를 엿볼수 있다. 80년대는 경제가 대중 소비사회로 접어들고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선물도 고급화, 다양화하면서 획일적 선물이 아닌 상대방에 맞춘 선물 문화가 자리잡았다.
그 중에서도 넥타이, 스카프, 지갑, 벨트, 양말세트 등 신변 잡화와 함께 가장 보편적인 선물로 떠오른 것은 식품이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육세트와 고급과일, 참치, 통조림으로 대변되는 규격식품이다. 80년대 주요 특징은 선물 문화가 본격적으로 정착된 점인데, 업체의 상품개발 및 배달 서비스, 소비자의 소득향상이 그 요인일 것이다. 90년대 선물은 고가제품과 실용적인 중저가 선물세트가 양극화 현상을 보인 것이 주된 특징이다.
이는 소비의식 및 당시의 경제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알뜰구매 현상에 따라 실용적인 중저가 상품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끄는 한편 식품의 경우 햄, 참치 등 규격화된 상품이 줄어들고 지역특산물 수요가 급속히 늘어났다.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신변 잡화 상품 판매도 늘었다. 90년대 들어와서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삼, 꿀, 영지 등 건강 기호식품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또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물자가 풍부해지자 필요한 물건을 직접 고를 수 있는 다양한 상품권이 등장했다.
상품권은 선물에 대한 의미가 없어진다는 비판이 없지 않으나, 개인주의가 중시되어가는 사회 분위기에 알맞은 선물품목으로 자리 잡아갔다. 이와 함께 골프, 헬스기구 등 스포츠·레저 관련 선물이 등장했다. 대규모 할인점의 성장으로 저가형 규격식품(참치, 조미료세트 등)도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와인과 올리브유 등 이른바 웰빙 상품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최근에는 웰빙에 이어 건강과 치유까지 생각하는 힐링 선물도 등장하고 있다.
정육과 청과, 굴비 등 지속적인 인기상품과 함께 젊은층과 1인 가구의 증가를 감안한 트렌드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요즘 항간을 달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뇌물 리스트가 우리 사회에 허리케인과 같은 엄청난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몇 억대가 넘는 돈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에 기가 차고 정신이 혼미에 질 따름인 데 선물 리스트 또한 상상을 초월 한다.
A4용지 200장으로 이뤄진 장부에는 성 회장이 16년 동안 해마다 정관계 인사들에게 전달한 선물 내역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성 회장은 선물을 보낼 대상자를 크게 세 분류로 나눴다. 최상위 등급으로 분류된 인사들에게는 15만원 상당의 전복이나 종합해산물 세트를 보냈다. 상위등급에는 전복이나 대하, 그 외에는 충남 서산특산품인 마늘을 선물했다. 최근 8년 동안만 3억원이 넘는 돈을 선물을 사는데 지출했다.
똑 같은 리스트인데 선물과 뇌물을 나누는 경계가 이채롭다. 우리 집도 어릴 적 큰 선물을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진급에서 누락이 되자 며칠 고민을 하던 엄마는 당시에 있었던 무임소 장관 집을 어떻게 어떻게 알아 엄청난 가격인 밍크코트를 남대문에서 사다가 전했다. 당시 아버지는 좌천격으로 집 앞 직장을 놔두고 수원에 축산시험장에 다녔는데 그 꼼수 아니 뇌물이 통한 것인지 다시 예전 근무처로 돌아 올 수있었다.
선물을 대별하여 마음이 담긴 선물,의식적으로 주는 감정없는 선물,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는 선물로 나눈다고 할 경우 어느 선물이 제일 바람직한 것일까. 나는 이 세상 선물은 마음이 담긴 새털같이 가벼운 대상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실속 챙기는 것이 진정한 선물의 의미라고 착각하는 현실때문 늘 문제지만 그러해도 선물은 정성껏 담은 주는 사람의 영혼이 들어있는 것이다. 감정이 담긴 것이어야 받는 사람도 그 의미나 가치를 전해 받는다. 선물을 뜯어볼 때 제일 짜릿한 건 포장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선물이다 하여도 그것을 뜯어 볼 때 이를 보낸 느낌을 잠시라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기에 선물은 아무리 내용이 사소해도 물질적으로보다는 그 사람의 감정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이 선물의 의미이자 선물을 받은 사람의 예의이다. 좋은 면에서는 선물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대개는 선물을 받게 되면 그 감정을 보기 보단 내게 오는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렇듯 내용물의 가치에 치중하여 받아들이다보니 문제가 생기고 그 의도를 간파하여 뇌물성으로 변질도 된다. 우리 주변에 아직도 뇌물이 아니면 일이 잘 되지가 않는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많다. 몇 천 년 전의 역사인 성경의 잠언에 보면“은밀히 안기는 선물은 화를 가라앉히고 몰래 바치는 뇌물은 거센 분노를 사그러트린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수천 년 전부터 인간사를 꿰고 경고를 한 말인데 실로 지키지 못하는 어려운 행실이다. 어린 양은 쉬이 그런 함정에 빠지고 타락할 것을 성경은 이미 알았던 모양이다. 특히 사회지도층이 부패를 선도 하듯 뇌물과 선물 리스트가 횡행하면 어느 결과가 초래되는지 여싷히 보여주고 있다. 드디어 과도한 선물 공세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고 김영란법이 시행단계에 이르렀다.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꼴이 되고 만 현실, 3점에 얼마 5점에 얼마 하는 고스톱도 아니고 식사 값에 3장 , 선물 값에 5장 , 경조사비에 만원짜리 10장이 제한선으로 정해졌다.
이번 추석이 지나면 바로 시행된다는데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누구는 꽃집 조화가 얼마이고 사과 한 상자에 인삼에 굴비에 소갈비 값이 얼마인데 어쩌란 것이냐고 한다. 참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다. 철저해지자 하니 결국 이 세상은 김영란 법에 추가하여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가 대세가 될 공산이 크다고 나는 본다. 하지만 이를 잘 된일이라고 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백화점 선물코너가 사라져서가 아니다,
고마움도 따라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스스로 삭막한 사막으로 걸어가는 형국이 되는 것은 아닐까. 갈수록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는 대상들이 늘어만 간다. 뇌물, 상처, 스트레스, 주민등록증( 신분증을 몰래 빌려서 쓰는 범죄도 심심치가 않다)... 거기에 마음의 선물까지 동참한다면 장차 이 삭막함은 어찌 할까싶다. 차라리 이 참에 선물은 예나 다름 없이 달콤한 정이 담긴 설탕 한 봉지로 못을 박아두는 규약을 정하는 것이 어떨까. 情 하면 우리나라 였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글러 먹었다. 이제부터서는 마음의 선물도 포기하고 사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있겠는가..... 구더기가 장을 다 버려 버렸으니 말이다.
.
첫댓글 1987년 중3담임을 하던 시절, 부반장 엄마가 학부형 총회를 하는 날 누런 봉지로 싼 참기름을 선물로 주시는데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 난 그 때 31살이었는데 결혼을 했는줄 아시고 살림하는 주부니까 참기름을 주셨는데 그 선물이 기억나~~~얼마나 순수하고 정겨운지^*^ 만안초등학교 건너편에 사셨는데 그 곳을 지날 땐 한번 쳐다보게되. 제자와 어머니가 뵙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