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킬
강신홍
괴산 읍내에서 동아리 행사를 마치고 아내와 귀가하는 길. 삼거리 1차선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중 3차선에 놓여있는 고양이 사체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차선을 바꾸어 골목길에 주차를 했다. 직진하는 차들에게 사체가 더 이상 손상되지 않게 피해가도록 신호를 보내며 고양이를 집어 들었다. 몸이 아직 굳어있지 않은 상태로 보아 사고를 당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길가에 마침 놓여있던 깨끗한 종이박스에 사체를 고이 담았다. 더 이상의 처리는 못하고 애처로운 마음만 내려놓고 다시 차에 올랐다.
수년 전 증평에서 문학 행사에 참석하고 귀가 하던 중 멧돼지와 충돌했던 사고가 있었다. 모임이 예정보다 지연되어 캄캄한 어둠 속을 달려야했다. 초여름에 접어든 때라 짐승들의 출몰을 염려하며 눈을 부릅뜨고 낮 주행보다 속도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순간이었다. 짐승 한 마리가 튀어나와 도로를 가로질러 갔다. 브레이크를 재빨리 밟았지만 늦었다. 쿵! 차의 충격과 함께 커다란 멧돼지 모습이 보였다. 한 바퀴 구른 돼지는 벌떡 일어나 가던 길(무단횡단!)을 건너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차에 대한 이상 유무가 걱정이 되었다. 차를 다시 드라이브 온하니 문제없이 나아갔다. 집 대문 앞에 도착해 차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억지로 밀고 몸만 빠져나와 살펴보니 왼쪽 라이트도 꺼져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자세히 보니 라이트와 운전석 문이 상당히 파손되어있었다.
언젠가는 한밤 중 읍내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집을 지척에 두고 차도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고라니를 만났다. 라이트를 깜박거리기도 하고 살짝 경적을 울리기도 했지만 좀처럼 비키려하지 않았다. 한참을 고라니 꽁무니만 바라보며 천천히 운전해야했다. 시골 사는 이들에게는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일이다.
문화생활을 하려다보니 차를 이용해 읍내를 자주 왕래하게 된다. 오가는 길에 로드 킬 당한 동물들의 사체를 종종 보게 되는 일은 시골생활의 어두운 면이다. 이 일이 감당하기 어려워 귀촌한 사람이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난 2022년도에 로드 킬이 1만8148건(충청투데이 보도)이었다. 공식 집계되지 않은 건수를 합하면 훨씬 많으리라. 로드 킬은 5월에서 6월, 10월에서 11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종류로는 고양이가 제일 많고 뒤를 이어 고라니, 너구리, 개, 노루, 족제비, 오소리, 멧돼지 등으로 나타났다.
환경부에서는 생태도로를 확대하고 개선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로드 킬의 주원인으로 도로, 주택단지, 농지 등의 확장으로 인한 자연 파괴를 언급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개인으로 접근하기 어렵고 가능할 수 있는 일은 야간에 주행속도를 낮추고 조심 운전하는 방법이다. 로드 킬이 주로 야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엇그제 반려견과 점심 때 집 주변 산책을 나갔다가 나의 집 울타리 밖에서 너구리를 만났다. 몸통은 60cm정도, 멋진 나선형 꼬리 크기는 15cm 정도였고, 전체적으로 짙은 회색의 털을 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동면을 하는데 가끔 한겨울에도 발견된다는 글을 읽었는데, 요즈음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탓에 아직 동면에 들어가지 않은 듯했다. 철 지난 돼지감자밭에서 땅을 헤치며 먹을 것을 찾는 웅크린 모습이 애처로워보였다. 한동안 그의 모습을 지켜보아도 좀처럼 머리를 들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그 당당함에 이제는 경외를 느꼈다. 마침내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마지못해 느릿느릿 자리를 벗어난다.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나도 상쾌한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동시에 로드 킬 당하지 말고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