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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일을 미리 예단한다는 것이 어리석거나 무모한 일이라는 전제하에 거의 그런 일 이 없는 삶을 살아보려 이제껏 노력해왔지만, 밤새 빗소리와 바람소리와 파도소리에 쫑긋 귀를 기울이며 지새우다시피 하고나니 새삼 그런 예단을 한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당연히 이번 예단이 하나의 치기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각오이자 결심이라는 전제하에 반듯이 실천을 해야만 하며 또 그만큼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게 된다.
'내 생각에,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많이 찾아와 가장 여러 번 캠핑을 할 장소로 여기 연곡솔향기 캠핑장이 으뜸으로 손꼽힐 것 같다.' 어쩌면 그건 예단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이 가능한 확신이다.
지극히 내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 하에서 ‘전반적인 모든 면에 있어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캠핑장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연곡 솔향기 캠핑장)’이라고 대답하겠다.
솔향기 캠핑장을 드나들으면서 산책도 하고 휴식도 취해본 것은 아주 여러 번이었지만, 지난겨울 A존 캠핑에 이어서 오늘 글램핑까지 실제적으로 캠핑을 위한 방문은 겨우 두 번째이다. 두 손으로 겨우 꼽을 송계 캠핑에 비하면 겨우 두 번으로 솔향기 캠핑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단은 어쩜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우리 병아리들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전제를 깔고 나면 이제부터의 모든 상황은 변하고 말 것이다. 시간만 나고 구실만 생기면...... 병아리들이 성장해서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와 노는 게 재미없어요.’하기 전까지 열심히 드나들 생각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기운 떨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찾아 올 생각이기 때문이다.
삼 년 전에 이곳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숙소를 마련하고 약 6개월 동안 여기 이 해안도로를 따라 오르내리면서 경포대 옆에 건물 신축을 맡아 공사를 한 적이 있었다. 쉬는 날이 아니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해안도로를 따라 출퇴근을 했고, 쉬는 날이면 이곳에 들러 한겨울의 소나무 숲과 해안을 거닐기도 하고 가끔은 달리기 운동도 했었다. 이 해변에 가득 늘어선 커피숍에 들어앉아있기 보다는 해변 길을 걷다가 캠핑장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하나 먹거나 덥혀놓은 캔 커피를 하시며 솔숲의 비어있는 데크에 앉아서 겨울캠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넌지시 바라보면서 한없이 부러워하곤 했었다.
어제는 밤이 새도록........ 병아리 두 마리를 품에 안고 할머니랑 솔향기 캠핑장에 베이스 캠프를 차린 다음에 여러곳에서 다양한 놀이와 여행을 하면서 한없이 즐거운 생각에 잠을 설쳤다. 이제부터는 (A존 데크가 되었던) (C존 노지가 되었던) (D존 카라반이 되었던) 아니면 (G존 글램핑이 되었던), 앞으로 강원도 동해안을 찾게 되면 무조건 여기가 우리의 여행 거점이다.
고성 건봉사에서 속초와 설악산은 물론 양양에서 오색이나 한계령까지는 물론 남쪽으로 정동진과 무릉계곡과 삼척과 영덕까지가 모두 당일 나들이 가능 권역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통고산 캠핑이나 건봉산 캠핑이나 소금강 캠핑이나 미천골 캠핑이나 설악동 캠핑까지 다양한 캠핑장들은 즐비하지만, 여기처럼 중심에 거점을 마련하고 위쪽과 아래쪽을 모두 당일 여행권으로 두루 커버할 수 있는 장소는 결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당연히 큰손녀 태리의 써핑 강습이다. 솔향기 캠핑장에서 해변을 따라 10분 남짓만 걸어 내려가면 닿는 사천진에 써핑 클럽이 서너 군데 있다. 내가 전에 이미 사전답사까지 해두었는데, 오늘 낮에 한번 다시 가보려 한다. 금년엔 방학기간에 맞추지 못했지만, 내년 여름의 최고 목표는 태리의 써핑 체험이다. 할아버지의 선물이다. 재미가 들려서 취미를 넘어서고 호주나 포르투갈까지 큰 파도를 쫓아다닐지는 모르지만, 차후의 시간과 비용은 아들의 몫이 되겠지만...... 시작은 할아버지의 작은 선물로부터......
두 번째 목표는 이곳에 거점을 두고 하는 등산이다. 한계령 흡임골에서 출발해 등선대에 오르고 주전골로 내려서 오색약수로 빠지는 등산로를 (설악산 공룡능선) 다음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등산로이자 트래킹 코스라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 내 나이와 신체조건으로 공룡능선을 다시 타기에는 무리를 넘어 죽음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병아리들에게도 다분히 무리일 테고 말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흡임골에서 주전골 트래킹)을 선택했는데....... 허리를 수술하고 무릎이 안 좋은 세리할머니가 문제가 되었다. 더하여 죽어라 계단으로 시작해서 계단으로 끝나는 코스라 이젠 내게도 다분히 무리라고 죽어라 말리지 않는가? 나는 우리 병아리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데....... 우리 아들이 여기를 새끼들 데리고 올라 갈리는 천부당만부당인 것 같고 해서 ‘할망구야. 너는 가 보았잖아. 등선대의 감동적인 풍광을 아직 기억하지? 나라도 병아리들에게 꼭 보여주어야만 하겠어. 꼭 내가 갈 거야.’라고 선언해서 겨우 동의를 구했다. 솔향기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할머니가 우리를 한계령 흡임골 입구까지 태워다 주고, 오색으로 내려가 주차를 하고 어디 커피숍을 전전하다가 두 시간쯤 지나서 천천히 주전골 위로 걸어 올라오면, 아주 전망 좋은 어느 골짜기에서 모두 만날 것이라고 약속과 계획까지 다 잡아 놓았다.
큰손녀 태리는 이제 다 자랐기에 중간 중간 쉬기만 하며 거뜬히 돌파를 해낼 것이고, 아직 어린 세리는 계단이 힘겨울 것이라 할아버지가 배낭에 담아 어깨에 둘러메고 트래킹을 완주할 생각과 각오까지 이미 마친 상태다.
‘헐!!! 자기가 맨날 청춘인지 알아요? 자기 한 몸도 벅찰 텐데 세리를 업고 산을 넘는다고 시방?’
‘아직은 할 수 있어. 자신 있어. 이번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산행이 된다고 해도, 어쨌든 이번만은 자신 있어. 태리할아버지는 아직 현역이야.’
부득불 내년으로 미루어지게 되었지만....... 여보야. 내년까지는 자신 있어. 믿어 줘.
세 번째는 크리스마스이던 연말이던 한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고속도로가 차단될 정도의 그런 겨울에...... 여기에서 병아리들하고 하얀 눈싸움이 가득한 겨울캠핑을 하고 싶다.
네 번째는 동해시 무릉계곡의 베틀바위 트래킹을 하고 싶다.
그러고 나서........ 솔향기 캠핑장이 지겨워질 즈음이 되면 차에다가 가벼운 캠핑 장비를 싣고 병아리들과 울릉도에서 캠핑을 하고 싶다.
제주도는 이미 여러 번 드나들었던 할머니가 극구 사양을 하는데...... 병아리들 핑계로 언젠가 다시 한 번 제주도 캠핑도 추진해 보고 싶다.
가만....... 그걸 다하자면........ 태리야! 할아버지 오래오래 살아야겠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언제나처럼 아침산책을 나서려는데, 밤새 내리던 빗줄기는 조금 누그러졌는가 싶었지만 바람은 우산을 펼칠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드세게 불어 닥치고 있었다. 일단 모닝커피를 준비해 유리창을 통해서 숲속의 아침풍경을 내다보면서 비바람이 조금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려 본다. 커피를 다 마시고나니 슬슬 생리적 현상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을 꼭 한 번은 다녀와야 하는 오랜 습관 탓이다. 그런데..... 솔향기 캠핑자의 카라반은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지만, 글램핑에는 딱 한 가지 험으로 화장실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불편함이 있다. 근데 이게 가만히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큰 불편을 초래한다. 밤이 깊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밖의 기상이 좋지 않을수록 화장실의 유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몰라볼 정도로 무척이나 중요해 진다. 그런데 현재 솔향기 글램핑에는 화장실이 없다. 그리고 구조상 앞으로도 설치가 불가능하지 싶다.
미루고 머뭇거리다가 부득불 밖으로 나섰다.
어차피 나선 김에 산책까지 하고 오겠다고 생각해 카메라를 챙겨서 나와서 우산을 펼쳐들었다. 숲의 안쪽이라 내리는 비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바람도 거의 느낄 수가 없었는데.... 결코 아니었다. 주차장이 있는 해변 도로로 나오니 비가 다시 거세졌고 바람은 우산을 펼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어쩔 수 없이 우산은 포기를 했다. 카메라를 옷 속에 감추고 화장실을 다녀나오니 비를 우선 피해야만 할 정도로 아침 산책은 그냥 폭 망한 상황이다.
어차피 이미 몽땅 젖었는데 뭐.
카메라에만 신경을 쓰면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캠핑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캠핑을 하다보면 같은 캠핑장에 설치된 다른 사람의 텐트를 비롯해 타프와 여타 살림살이에 대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기웃기웃 살펴보는 남다른 재미가 솔솔 하다. 남자들 모여 앉아 삽겹살 파티라도 벌이며 술잔을 나누는 곳을 지나다보면, 열에 아홉은 자신이 사서 이용하고 있는 캠핑장비 자랑하는 장면들이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들이 난상토론을 넘어 몸싸움을 거나하게 각본에 의한 쇼처럼 연출하는 것을 연상시킬 정도로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가족들과 자연 속에서 함께하고 싶어서라는 표현들은 다분히 연출된 말씀들이고,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비싼 돈을 쏟아 부어서 장만한 장비들을 가지고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한 먹자파티를 연출하면서 ‘내가 이정도야. 부럽지?’하는 캠핑을 빙자한 허세 자랑놀이가 요즘 캠핑 대중화의 가장 으뜸이 되는 목적과 바램들이 아닐까 싶다.(물론 극히 일부겠지만 말이다)
하도 캠핑문화가 대세이고 대중화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하니까....... 잡지고 방송이고 SNS를 통해 대충...... 척 보면 저 텐트는 얼마고...... 타프는 얼마고..... 화롯대는 얼마짜리고...... 등등 등으로 쭈욱 한참을 나가다가...... 그래서 구입한 해외직구 텐트가 일천만원을 넘기며, 캠핑카가 아파트 한 채 값이며....... 아예 호와 빌라를 한 채 캠핑장으로 옮겨 다니는 수준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고......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사실에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그 정도 돈이면 난 캠핑 안한다.
내가 굳이 캠핑을 고집하는 이유 중에는 나름의 맛과 재미고 충분히 있지만, 여행 가성비를 따져볼 때, 가장 자유롭고 저비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글램핑 카라반이 편하고 좋은 것을 어찌 나라고 모르겠는가? 적지 않게 여기저기서 이미 많이 경험해 본 나 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줄기차게 캠핑을 추구한다. 내게는 추억과 향수가 가득 배어있고, 우리 병아리들에게는 이 할아버지가 아니면 누가 제대로 캠핑을 가르쳐주고 경험시켜 주겠는가? 물론 이제부턴 기상을 따지도 추위와 안전을 생각하면 병아리들과 여름엔 캠핑이 가능하겠지만, 가을 겨울엔 당연히 카라반을 가야겠다고 이미 다짐하고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부자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궁핍하지도 않은데 굳이 맨날 불편한 캠핑만 고집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여기저기 그렇게 비싸다는 명품 브랜드의 대형 텐트들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솔향기의 대형 데크는 다른 곳에 비해서 커다란 5M X 7M의 면적을 가진 테크가 여럿이라 캠핑카를 가진 사람 못지않게 엄청나게 투자를 많이 한 비싼 명품 싸이트도 자주 목격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요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미니멀 캠퍼들이다. 아주 소형 텐트 하나에 작은 타프 하나만을 가지고 싸이트를 구축하고, 정말 간단하고 여유로운 진자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쏠린다. 내가 나르시스 돔 텐트를 구입한 이유 또한 바로 그것이었다. 어디 어느 캠핑장을 가던지 웬만한 테크 위에 날렵하게 올라앉는 작고 예쁜 텐트를 고르다 만난 녀석이다. 그런데 정작 금년에 한 번 꺼내보지도 못하고 창고에 방치되고 있다. 병아리들과 함께라면 무조건 크고 튼튼하고 안전해야 한다는 세리할망구의 고집으로 브라이튼에 밀려버리고 말았다.
이 빗속에 저 작은 텐트랑 작은 타프 하나로 어떻게 밤을 견뎠을까 싶은 싸이트들이 사방곳곳에 즐비하다. 여유 공간이 없었는지 비를 맞으며 커피를 끓이는 캠퍼도 보인다. 솔향기의 특징 중에 하나인 하나의 데크 위에 두 개의 소형 텐트를 설치해 올린 싸이트들이 여기저기 제법 많다. 대개 1사이트 안에 1 개의 텐트 설치를 요구하는데...... 솔향기는 허가 배정된 자신의 데크 위에선 어떤 텐트를 몇 개 설치하던 자유롭게 허락해 준다. 다툼이 생긴 연인이나 부부가 데크 위에 큰 텐트 하나치고 돌아누워 자느니 차라리 작은 텐트 두 개를 설치하고 각방을 써도 좋다는 뜻이겠다.
아예 이런 편리함이나 드러냄을 멀리하고 아예 숲속의 가장 외진 가장자리에, 그것도 데크도 없는 노지 풀밭에 널찍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간단한 장비로만 싸이트를 구축하고 한적함과 고즈넉함과 조용함을 추구하며 아주 먼 옛날에서 있었을법한 분위기의 캠핑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노라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먼 옛날의 내 모습이 바로 저랬었다.
‘나와 아내도 처음에 꼭 저렇게 하고 전국을 쏘다녔는데...... 텐트 뒤에 프라이드만 한 대 서있었으면 영락없는 우리 싸이트였겠다.’
그렇게 캠핑장 구석구석을 구경하다보니 발길이 저절로 향해서 멈춰지는 곳은..... 카라반 싸이트였다.
‘담에 여기 올 때는 무조건 카라반이다.’
카라반 창가에 앉아서 눈앞에 펼쳐지는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예쁜 병아라 두 마리가 벌써 눈앞에 아른거린다. 겨울엔 눈밭이 되려나? 아님 가을에 기회가 있으려나?
카라반에 대한 추억은 온통 동해시 망상해수욕장에 있던 카라반을 여러 번 이용했었는데, 어느 해 동해안 초대형 산불에 망상해수욕장 시설이 모두 완전 화재로 소실된 적이 있었다. 그후 복구를 해 놓았다는데....... 그 이후론 카라반 이용 기회가 없었다.
'솔향기의 다음 캠핑은 무조건 병아리들이 좋아 할 카라반이다. 글램핑은 병아리들에게 화장실 문제가 치명적일 수 있어.'
동해안이나 남해안이나 서해안에는 한반도가 가진 아주 특수한 상황 덕분으로 근자에까지 대부분의 해안선을 점령하고 있던 군사시설들이 해제되고 축소되고 개방되면서 많은 숲과 해변이 자유롭게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소나무 숲이 있는 해변이야말로 천혜의 해양관광지가 아니겠는가? 자연휴양림이 생겨났고 도립 시립 해수욕장과 사설 캠핑장이 마구마구 생겨나 캠핑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숲이 무성하고 아름다운 해변은 전국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이 있다. 이들 중에 유명세를 이미 톡톡히 치루고 있는 휴양 명소들도 많이 있다.
(연곡 솔향기 캠핑장)은 그중에서도 지자체가 관리하고 있는 최고의 캠핑장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숲이 무성하고 아름답고 각종 시설들에 제공된 공간의 여유로움이 아마도 대한민국 최고가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서해안에 즐비한 해변 캠핑장에 비한다면, 솔향기는 지금 설치되어 있는 테크들의 시설을 충분히 두 배까지 늘릴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여유롭다. 아예 숲을 훼손하지 않으려 노지 캠핑으로 전환 내지는 노지 캠핑 싸이트 수를 타 캠핑장 수준으로 늘리기만 한다 해도, 아마도 지금 시설 허용 숫자의 세 배정도까지는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나와 옆 텐트의 공간이 다른 캠핑장이라면 두 세 개의 텐트가 들어 설 정도의 충분한 공간이 텅 비어있어 최고의 프라이빗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B 존의 데크가 3.5M X 5M 크기로 나름 만족스러운 느낌인데, 왜냐면 여타의 캠핑장 경우 대부분이 3M X 3M 이거나 좀 크다 하면 3M X 4M 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에 나부터도 보유한 테트가 여섯 개나 되지만 1인용 비박텐트를 제외하면 테크 사용이 상당히 불편하거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니멀을 해보려 부러 구입한 나르시스 돔 경우에 다른데서는 억지로 짜 맞춰야 하지만 솔향기의 B 존이라면 맞춤형처럼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솔향기의 진짜 매력은 A 존에 있고, A 존에는 5M X 7M 크기의 데크가 120면을 넘게 설치되어 있다. 가히 테크위에 설치하는 캠핑 싸이트 구축의 천국이라 할 만 하다. 소형텐트의 경우는 두 개까지도 날렵하게 올라앉는다. 대형에 속하는 브라이튼 텐트를 가볍게 올려놓고도 앞뒤로 충분한 여유 공간이 확보된다. 아주 비싼 사용료를 요구하는 사설 캠핑장이 아니고는 여기만한 크기의 시설과 프라이빗 공간을 확보해 주는 솔숲을 아직까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최근 들어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이젠 솔향기 캠핑장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인터넷 선착순 예약제거나 추첨제로 바뀌었다는 현실이다. 번번이 떨어지기 일쑤다. 남들 컴퓨터 사양이 우수하거나 손가락 놀림이 재빠르거나 그분(?)이 찾아오시는 날이거나....... 암튼 나는 늘 뒤로 밀려 떨어졌다. 이번처럼 누군가 부득불 취소를 하는 상황이 생겨 불쑥 생겨난 찬스를 운이 좋아 얻어 걸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마도 남들이 나들이를 꺼리는 절대 비수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겠다.
어떻게 강원도나 강릉시에 지대한 공헌을 해서 (평생 수시 이용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까? 아니면 거기에 아예 취직을 해 버릴까?
경쟁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나만 손해인데....... 수시로 주변에다 대고 난 ‘대한민국 최고의 캠핑장은 연곡의 솔향기 캠핑장이여. 일단 한 번 가보라고. 가서 싸이트부터 설치하고 나서 나한테 전화해. 뭘 하면 좋은지 그때 가르쳐 줄게. 대신 옆자리 비는 게 생기면 일단 무조건 선 예약부터 해 놓고 나서 나한테 이야기 해주는 조건이야?’
비바람은 쉬거나 멈출 기미조차 전혀 보이지 않고...... 평상시대로라면 비가오던 말던 어디든 싸돌아다녔겠지만 이번의 등 떠밀린 샐프 효도관광은 느닷없이 아무런 준비나 계획없이 떠나온 여행인지라, 애초부터 그냥 들어앉아서 쉬다가 낮잠도 자고 해변 산책이나 하고 끼니때가 되면 어디 맛집이나 찾아 다녀오자고 했던 터라 방안에서만 이래저래 나뒹굴며 창밖 구경이나 한다.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커피나 더 끊여 마시고 지나가며 마눌 엉덩이나 툭 툭 걷어차고, 더 지겨워지면 방바닥에 엎드려 책을 펼쳐든다. 이번 여행기가 끝나면 예전에 쓰다가 만 중동문제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어서 중동문제에 대한 책을 한 권 가지고 왔는데 거의 미술백과사전에 비교될 만큼 크고 두꺼운 분량이다. 연필로 밑줄도 긋고 메모장에 따로 생각을 기록까지 하면서 독서에 정진하다 보니, 이번엔 핸드폰으로 성경 읽기에 지루해지기 시작한 마눌님이 다가와 자꾸 시비를 건다.
‘여기까지 와서 고시공부 하니? 맨날 쓰잘데없는 책만 열심히 읽어대고...... 그게 그렇게 재미있니? 하랄 때는 공부 죽어라 안하더니 열심히 돈 벌으라니깐 이제와선 들어앉아 책이나 읽고 싶다 하고...... 나 심심해. 어쩔거여?’
‘아들한테 전화 해. 엄마 아빠를 이렇게 등 떠밀어 억지로 효도관광 보내놓고 속이 시원하냐고...... 짜식 말이야........’
‘그 얘기 그만 하랬지? 아들이 뭐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목소리 톤과 표정부터 달라진다. 아들 험담만 하려하면 벌써....... 아니 아들을 자기 혼자 낳았나? 딴데서 낳아 데리고 왔나? 나랑 하도 닮아서 보기 싫을 때도 있다면서?
‘배에서 자꾸 소리가 나네? 아침에 빵도 먹었는데....... 어째 가만히 앉아서 노는데 배는 더 빨리 고파지는 거지? 슬슬 나가서 어디 맛 집이라도 찾아볼까?’
‘오면서는 물회 생각이 간절했는데 막상 바닷가 오니까 이번 여행에서는 이상하게 생선회 생각이 팍 들어가지? 극성 바가지 상혼 뉴스를 근자에 너무 여러 번 보아서 그런가? 주문진 가면 회 말고 다른 건 없나?’
‘많이 있지? 막국수도 있고 생선구이도 있고 조개 찜이나 구이도 있고....... 재료 사다가 해먹을 생각은 이번엔 아예 없는거고.’
‘음식 안하기로 했잖아. 그런데 이상하게 딱 땡기는 게 없네? 우리 어제 족발과 오징어 튀김도 아직 남았어.’
‘선교장 쪽으로 초당 두부 먹으로 갈까? 아니면 강릉도 군산만큼이나 짬뽕 경쟁이 있다고 하던데, 이참에 여기까지 와서 또 짬뽕 맛 집 탐방을 해봐?’
‘어제 오면서 강원도니까 산채비빔밥이 어떠니 저떠니 하더니 식당에 들어가서는 밀면..... 뜬금없이 부산 밀면을 고르는 것을 보고 알아봤어. 이번여행에선 맛있는 거 먹기는 다 글렀구나 하고. 강원도 와서 밀면 찾으면 자갈치 시장가서 곤드레밥 찾겠구나.’
‘그 또한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때그때 개개인의 취향이 다 다르니까..... 그래서 오늘은 점심이 뭐냐고? 정해놓고 나갈 거여? 돌아다니며 찾아 볼 거여?’
‘아참. 나 어제 중앙시장에서 나오다가 꾸꾸 봤다? 강릉엔 꾸꾸가 있던데?’
‘나도 봤어. 그럼 강릉까지 와서 꾸꾸 간다고?’
‘그런 건 아니고...... 꾸꾸를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연수동 하나로마트 꾸꾸 다니던 생각도 나고.....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지.’
‘며칠 전에도 고메스퀘어 갔었잖아? 꾸꾸(qoo qoo)나 고메스퀘어(gourmetsquare)나?’
‘다르다니까? 확실히 달라?’
‘다르긴 뭐가 달라? 간판만 다르지같은 장소에 메뉴도 다 거기서 거긴데?’
‘꾸꾸가 메뉴 가지 수가 훨씬 다양하고 변화도 자주 주고 했다고, 고메스는 간소화하고 질을 높이겠다고 하는 모양인데...... 나는 어딘가 모르게 꾸꾸가 좋았던 것 같아.’
‘뭐가 그렇게 달랐는데? 난 다 거기서 거기던데?’
‘커피 시스템이나 후식은 확실히 고메즈가 도 고급져 보이는데 어딘지 모르게 축소된 음식의 가짓수가 늘 여러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극히 일부 음식은 일부러 은근히 등한시 하는 느낌이 들었어. 꾸꾸는 일단 메뉴가 풍부한 느낌이어서 어딘지 모르게 선택의 폭이 훨씬 넓었단 느낌이고, 수익성에 지장을 주겠지만 일단 조리하는 사람이던 서빙하는 사람이던 인원이 고메즈의 두 배는 되어 보여서 그때그때 새 요리를 다시 채워주고 최성의 상태로 관리해주던 모습들이 인상적이었거든. 인건비야 훨씬 더 들었겠지만 훨씬 대접받는 느낌?’
‘그러니까 인건비 때문에 수익성이 줄어 철수를 해야 했을 거고, 같은 장소에 같은 음식 뷔페로 고메즈가 새로 들어오다 보니 당연히 인건비 부분에 최고 관심을 두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일부 음식 가짓수를 줄여야 했겠지. 난 별 차이를 못 느끼겠던데?’
‘꾸꾸는 마고루(냉동참치) 옆에 냉동연어도 함께 주었는데 고메즈엔 연어가 없고, 꾸꾸는 양념 김을 싸먹으라고 주었는데 고메즈엔 김이 없어.’
‘헐!’
‘꾸꾸의 냉동 소고기 육회는 양의 넉넉한데 좀 부실해 보이고, 고메즈는 쬐끔씩 내주는데 품질은 훨씬 나아보이고. 초밥은 꾸꾸가 더 다양하고 맛이 있고, 고메즈는 공갈빵이나 피자나 특히 디저트와 야채는 고메즈가 더 고급져 보여. 음료도 고메즈가 더 다양하고...... 그래도 저녁이나 주말 인상된 가격때 추가로 나오는 음식까지 치자면...... 난 꾸꾸가 더 좋았던 것 같아.’
‘헐!!! 그런 것 까지? 그래서 오늘 강릉까지 와서 점심은 굳이 꾸꾸를 가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충주에서 없어진 꾸꾸를 강릉에 와서 다시 보니 반가워서..... 내가 점심 사주겠다고.....’
‘누가 돈을 내던 그게 그거지?’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당연히 그게 우선이지. 뭘 드시고 싶어?’
‘없어. 떠오르는 게 없어. 그러니 강릉까지 와서 반가운 꾸꾸라도 가야지?’
‘중앙시장도 또 가고.’
‘어제 꺼도 아직 남았는데?’
‘오늘은 다른 것 사면되지 뭐. 닭강정을 살까?’
‘여기까지 와서 또 닭강정? 닭강정은 이마트꺼가 최고라며?’
‘그랬나? 암튼 가보고 나서........ 오늘은 일단 점심을 꾸꾸에서.......’
(알림) 이건 순전히 내가 좋아서 가고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표현한 것이지, 사전 어떤 의도를 가졌거나 누구의 부탁를 받았거나 사례를 받고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랍니다. 우리 태리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이제까지나, 앞으로도 음식이나 숙소나 여행을 통한 모든 이야기는 순수한 아마추어 정신으로 나의 경험과 생각을 늘어놓은것 뿐입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글은 일절 사양하고 쓰지 않을 것입니다.
내 고향 충주에 꾸꾸가 처음 생겼을 때 나는 크게 환영했다. 당연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식장소였다. 아내랑 둘이서 무수히 드나들었고, 누군가 대접하고 싶다면 무조건 1순위가 꾸꾸였다. 충주에도 찾아보면 더 좋은 음식점들이 많이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가성비나 분위기나 맛으로 따지면 가히 최고수준이라 늘 생각해왔다. 아마도 거기에는 적지 않게 내가 막 결혼했던 직후의 강한 추억이 늘 어떤 향수처럼 따라다니고 있기 때문이리라. 꾸꾸는 엄청 호황을 누렸었다.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한두 번 다각적인 변화를 주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같은 장소에 같은 부류의 외식업체가 다시 들어선 것이 바로 고메즈다. 같고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그 두 업체의 상관관계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다. 지금은 열심히 고메즈에 드나들고 있는데...... 고메즈에 가면 과거의 꾸꾸와 어떤 비교를 수시로 하는 알 수 없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그러다가 강릉 여행 중에 중앙시장에서 느닷없이 꾸꾸를 다시 만났다. 강릉이나 주문진 맛집을 찾아 외식을 하려던 차에...... 어처구니없게도 지난 향수에 맛집 대신 꾸꾸를 찾아가는 나, 그리고 내 마누라님....... 왜 그러지? 물회가 먹고 싶었는데 말이다.
강릉의 꾸꾸....... 옛날 충주 꾸꾸에 비하자면 한참 뒤떨어진다고 해야겠다. 건물의 위치나 접근성을 떠나, 매장의 크기와 환한 인테리어와 음식의 배치에 있어서 충주가 5성급이었다면 강릉은 2성이나 3성쯤 되겠다. 넓고 아늑하고 쾌적하고 모든 것이 널널한 그런 여유가 강릉 꾸꾸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분들이 지금의 충주 고베즈를 방문해 꾸꾸 매장의 개성을 연상해 본다면 나의 이런 평가가 절대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의 다양성이나 거기에 대한 호감도나 만족도도 충주 꾸꾸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져 보인다. 물론 기본적인 꾸꾸만의 분위기나 내놓는 음식에 대한 기본이나 기준은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말이다. 무척 많은 양을 맛있게 먹었다. 다만 밖으로 나와서도 돌아보면 옛날 충주 꾸꾸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이 한없이 듬뿍 배어나오고 있었다.
내게는 이런 뷔페식 외식문화에 대한 짙은 향수가 있다.
스물다섯에(1985년) 서울 출신 새댁에게 장가를 들었다. 서울이란 곳을 아주 가끔 오르내리기를 하기는 했지만 서울 생활이란 것에는 전혀 문외한이 충주 촌놈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이후로 서울에 가면 지하철에 놀라고 미도파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에 놀라고 고층 빌딩에 놀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서울이란 도시는 내게 호감을 주는 도시도 아니었고 살고 싶은 도시도 아니었다. 다만 대학마다 큰 도서관이 있고, 사방에 음악다방과 카페가 있고, 생맥주집과 남대문 시장과 남영시장 돼지껍데기에만 관심과 호감이 있던 정말 토종 촌놈이었다.
그래도 소위 처갓집이 서울인데........ 이따금 처갓집에 올라가면 외국회사에 다니시던 손위 처남이 우리를 선릉역이나 삼성역 인근의 고급 맛집에 데려가 주시곤 했는데, 그때 현대백화점 건너편의 빌딩 지하에서 뷔페를 처음 만났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뷔페가 곧 천국이었다.’ 점심과 저녁의 가격대가 달랐고, 저녁에 킹크랩에다가 맥주 같은 주류가 포함되었다. 지금의 뷔페 가격과 비교해 보자면 그때가 훨씬 가격대가 높은..... 비쌌다고 생각된다. 국밥집과 자장면이 외식의 대부분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꾸꾸나 고메즈 보다도 더 고급 진 뷔페가 떡하니 내 앞에..... 그것도 무한리필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나타났으니....... 지금도 뷔페에 가면 처남 생각이 나고, 그 어렵던 시절에 보내주신 배려에 늘 깊이 감사하고 있다. 그 추억에 내가 기꺼이 정년퇴직하신 처남을 꼬득여..... 지금은 충주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겐 아마도 이정도 수준의 외식문화가 제격인 것 같다. 더 고급스런 레스토랑에서 고급 매너에 신경 쓰거나 주눅 들지 않아도 되고, 옷차림이나 주변의 시선에서도 자유스러우며...... 무엇보다도 무한리필이라는 특혜 속에서 본전을 생각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내 맘대로 맘껏 먹을 수 있는...... 지금의 고메즈 정도가 딱 좋다.
구꾸가 그랬던 것처럼 또 어느 날 훌쩍 고메즈가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오늘 내일이면 지금 현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터인데...... 모레쯤 마누라님 모시고 또 외식을 해 볼까?
'여보. 밥 먹으러 함께 나갈까? 내가 모실께. 고메즈 어때?'라고 했는데....... '나 밀면 먹고 싶어.' 라던가, 아니면 아니면 '송어 비빔회 사다가 집에서 먹자.' 하면 말짱도루묵....... 꽝!!!!!
'우이 씨, 제기랄......... 그냥 라면이나 끓여먹자. 외식은 무슨........'
금방 뷔페에서 먹는 즐거움에 한껏 취했다가 막 나온 처지였음에도, 중앙시장의 입구에 다가서자마자 벌써부터 온갖 맛있는 길거리 음식들이 내뿜는 여러 가지 냄새로 인해 코가 벌렁거리고 시선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배는 부른데 죄 다 먹어보고 싶고, 주점 부리로 이것저것 사들고 가고 싶은데 캠핑장 냉장고엔 어제 산 오징어 새우튀김과 족발이 아직 남아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제 반쯤 먹다가 떨어 트려 포기해야 했던 호떡 정도는 꼭 다시 먹어주어야만 하겠고,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기 시작한 노점의 핫도그까지는 아니더라도 꽈배기 정도는 매너상이라도 먹어주어야만 할 것 같다. 웨이팅이 가장 긴 닭강정은 당연히 참고 건너 뛸 수 있겠지만 닭꼬치 하나 정도는 맛이라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정이 사정이니만큼 순대국밥집 골목은 애써 외면하면서 통과하고, ‘한 그릇에 3천원이라는 착한 가격이 시방 리얼이야?’라는 감탄사를 연발시키는 칼국수집 앞에도 길게 웨이팅 길이 늘어서 시간을 핑계로 애써 외면해본다. 아니, 김치말이 삼겹살은 또 뭐람? ‘참을걸..... 괜히 점심에 뷔페를 갔나?’
서둘러 먹자골목 시장을 탈출하는 길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캠핑장으로 돌아오면서 경포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일단 그렇게 해야만 또 우리방식의 맛나고 폼 나는 저녁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차를 세우고 애국선열 기념공원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뭐야? 이러면 호수 산책은 힘들지? 이번 여행은 끝까지 날씨가 말썽이네?’
애국선열들의 조각상을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점점 비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차로 철수....... 주차장에서 좀 기다려 보는데도 그치거나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동하다가 길거리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얼음 커피를 마셔본다. 주변에 그럴싸하게 폼 나는 커피숍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편의점 파라솔 커피라........ 청승인가?
잠시 머물다가 날씨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아 해안도로를 따라 솔향기 캠핑장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여기 경치 끝내주네.’하는 마눌님의 탄성에 서둘러 도로가에 차를 다시 주차한다.
‘사천진이야. 캠핑장까지 백사장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사천해수욕장이야.’
‘일직선 해변이야?’
‘응. 캠핑장 해변에서 우측으로 저만치 보이던 방파제가 바로 여기야. 가까워.’
‘바위가 멋있네. 노란 등대도 이색적이고, 다들 빨간 등대였는데 말이야.’
'여기가 우리 태리 써핑 체험 강습해변이야.'
'양양이 아니고?'
'처음엔 양양이었는데 여기 가까운 사천진에도 있더라고. 체험 강습 수준에 굳이 파도가 어떠니 저떠니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이미 검색해 보았고 써핑 숍에 문의도 해 보았어. 여기서 배우고 나서 잘하면 스페인을 가던지 포르투갈을 가던지...... 태리와 아들이 차차 해결할 일지지 뭐. 할아버진 슬쩍 맛보기 체험까지만.....'
'(폭풍속으로)의 키아누 리브스도 아닌데 파도타령은 무슨? 일단은 바다와 친해지고 재미만 있으면 성공이지. 여기 딱 좋은데?'
'그러게 말이야? 이번에 함께 왔으면 딱인데 그치? 아들 녀석이 착오가 있을께 따로 있지, 애들 방학을 헷갈려 해?'
'또 그소리. 하지 말랬잖아? 언제는 아들이 자기를 쏙 배닮았다고 하더니........'
'알써. 안할께. 아들 험담 더 했다가는 아예 병아리들을 빼앗아 가는게 아닌지 모르겠네?'
'저기가 작은 병아리 몰놀이장이야. 어때? 딱이지?'
내 바램대로 였다면 아마도........
태리와 세리를 데리고 무작정 이곳으로 가장 먼저 왔을 것이다. 오면서든 아니면 이 근처에서든 끼니를 먼저 해결해 놓고서는 서핑 숍에 가서 태리 강습 신청을 해서 첫시간 이론 강의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작은병아리 세리도 무척 하고 싶겠지만 아직은 어리고 기럭지가 짧아서 녀석은 좀 더 자란 다음에 할것이라고 꼬득인 다음에 수영복으로 갈아입혀, 다리 난간 아래 커다란 돌과 바위로 기가막히게 둘러 쌓아 어린이 물놀이장을 만들어 놓은 곳에 풍덩 담가 버릴 것이다. 안성맞춤형 어린이 전용 바닷물 풀장이 그곳이다. 지금 두 꼬마와 부모가 이 흐리고 비내리는 날씨 속에서도 물놀이를 맛껏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병아리들이랑 지금 함께였으면 하는 아쉬움을 솔직히 떨쳐내기가 힘이 든다. 바로 옆 다리 아래 그늘은 세리 병아리 물놀이를 지켜보면서 할머지 할아버지 캔맥주 마시기에 최고의 명소이지 싶다.
그리고 이쯤이면 할아버지는 훌쩍 차를 몰고 솔향기 캠핑장으로 향한다.
예약해 둔 데크에 우리의 캠핑 싸이트를 구축해 놓고, 럭셔리까지는 아니더래도 우리의 즐거운 캠핑을 위해서 티케 타프도 치고, 야전 침대도 조립해 놓고, 조리대와 테이블도 준비해 놓고..... 캠핑 생활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모두 갖추어지면 얼른 반바지에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고 맨발로 해변 모래사장을 걸어서 병아리들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 된다. 작은 병아리 물놀이 함께 해주고 큰병아리 이론강의 끝나고 지상훈련 시작하면 쫓아다니면서 사진 찍어주고....... 수중 훈련 하는 것을 큰 기대속에 지켜보게 될 것이다. 언제쯤 보드에 놀라서 파도를 가르며 나가게 될까?
지치면 데려다가 쉬게하고 뭐든 먹이고, 또 물에 들어가 노는 것을 지켜보고...... 해거름이 찾아 오면 써핑 강습도 끝나고 물놀이도 끝나고....... 우리 넷이서 해변을 터덜터덜 걸어서 캠핑장으로 돌아 올 것이다. 여기 캠핑장에서는 장작 사용과 풍등 같은 화재 위험이 있는 것들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하여 불멍이나 불꽃놀이는 못하겠지만....... 우리에게 놀 꺼리는 언제나 풍부하지 않은가?
이번에 못한것은 다음에 병아리들과 함게 하면 되겠지 뭐. 서핑이나 물놀이야 내년 여름까지 기다려야만 하겠지만, 가을에도 겨울에도 또 봄에도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캠핑놀이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런 아쉬움과 기대감속에서 비를 맞으면 해변 야간 산책도 하고..... 성난 파도 소리도 들으면서....... 솔향기의 이번여행 마지막 밤을 맞는다.
다음날은 약간 흐리긴 했지만 날씨가 개였다.
정리를 하고 철수 준비를 하는데 아주 편리했다. 글램핑은 일단 쾌적하고 편리하다. 할망구는 자꾸 카라반 여행을 주장하는데...... 난 여전히 순수 캠핑을 고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할망구에다가...... 병아리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고려한다면.......... 그때 가봐서......
해변을 지나치려는데..... 거친 파도를 헤치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여러명의 젊은이들을 본다. '참 부럽고 아름답다.'
그리고 좀 더 지나서 이런 날씨에도 써핑 강습을 진행하고 있는 팀들을 발견했다. 날씨와 바람이 세차서인지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보드에 제대로 올라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지쳐서 나오는 사람에...... 아예 써핑은 포기하고 그냥 보드타고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로 바귀더니 제법 깊고 먼 바다까지 부지런히 헤엄을 치면서들 나아간다.
'내년엔 우리 병아리 한 마리도 저러겠지?'
--- 다음 이야기는 이슈 체크의 시간으로 (요단강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서너 번에 나누어 올려볼까 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