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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언약
I. 다윗과 선지자 나단의 대화
1. “왕이여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다윗은 안팎으로 안정을 맞게 되었습니다. 안정의 어떤 날에 다윗과 선지자 나단 사이에 대화가 오갑니다. 이 대화는 약간은 선문답 같습니다. 다윗이 “나는 백향목 궁전에 살게 되었는데 여호와의 법궤는 천막에 있네요.” 나단이 “왕이여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다윗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나단과 다윗 사이에는 설명이 필요없었습니다. 바로 여호와를 위한, 구체적으로는 법궤를 위한 집을 짓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 우리는 이것을 시간을 거슬러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추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의 마음에 있는 것, 그것은 다윗의 행동을 통해서 실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다윗의 영광과 위기
다윗은 매우 이른 시기에 이미 인생의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양을 치던 그가 사무엘을 통해서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뒤이어 그는 이스라엘에겐 넘사벽, 불가능의 영역이었던 블레셋의 골리앗과의 일대일 승부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보자면 다윗의 앞길은 이제 거칠 것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런 칭송이 온 천하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사격 금메달 반효진 선수가 16살이더라고요. 다윗이 정확히 몇 살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신체적 성장으로 보자면 10대 중반 정도이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적어도 전혀 성인에 이르지 못한 나이였습니다. 지금도 기독교 신앙을 모르는 분들도 뭔가 예상치 못한 큰 승리나 성공을 거두었을 때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탄탄대로를 달릴 것 같은 다윗의 인생은 그 때부터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골리앗을 죽인 절정의 시점과 비교해 보자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호와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삼상 15:35)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고 여호와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을 측근에 두었고 심지어 딸 미갈을 주었던 장인이 끊임없이 자기를 죽이려 골몰하는 극단적인 조울증 환자같은 사울을 피해 광야를 떠돌아야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또 다른 적인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 피난해서 미친 척 하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사울과 블레셋, 그리고 사울에게 자신을 넘기려는 이스라엘 백성들 틈바구니에서 하루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짧았던 영광의 시간에 비해 너무나 길어 보이는, 하루살이 같은 삶을 보냈습니다.
나의 인생이 이런 절정의 영광에 이어진 나락을 경험했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요?
우리는 이 내리막길의 시간 속에서 다윗의 마음을 분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행동은 다윗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이 무엇인가를 짐작하게 해 줍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다 생략합시다. 나단과 다윗의 대화가 있었던 이 날에 가까운 일들만 생각해 봅시다.
II. “다윗이 여호와께 맹세하여”
1. 법궤 운반과 다윗의 마음
다윗은 사울이 죽고 유대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추대됩니다. 다윗은 처음에는 유다 지파의 땅 깊숙이 있었던 헤브론을 중심으로 삼았지만 이스라엘 전체를 염두에 두면서 유다와 북쪽 지파들 땅의 경계선에 있는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하였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내리막길로 떨어지게 했던 사울과 블레셋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휴가가자! 쉬자! 즐기자! 광야에서 굶었으니 기름진 것과 포도주의 오래 된 것으로 연회를! 나쁜 것들이 아닙니다. 그 오랜 시간을 광야에서 시달렸다면 충분히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다윗이 했던 일은 다윗의 마음에 있었던 모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증거해 줍니다. 다윗이 착수한 첫 일은 법궤를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다윗 성에 법궤를 옮겨다 놓고자 하는 시도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법궤를 그 집의 두 아들이 소가 끄는 새 수레에 싣고 가자고 제안한 것 같습니다. 다윗은 온갖 악기, 수금, 비파, 소고 양금, 제금으로 연주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과정은 법궤에 손을 댄 웃사가 죽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법궤를 가져오는 일이 좌절된 다윗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가드 사람 에벧에돔의 집에 다시 석달이 지체 되었습니다. 다윗은 그제서야 다시 레위 사람들이 지고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왔습니다.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심지어 왕의 처신에 맞지 않게 뛰놀며 춤추었습니다. 이 춤춘 장면을 좀 더 적나라하게 들여다 봅시다.
사울의 딸 미갈은 마음에 다윗을 업신여겼다고 합니다. (삼하 6:16) 이유는 삼하 6장 20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하갈의 지적은 타당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왕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고 춤을 추다니, 좀 염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여기서 하갈의 마음과 다윗의 마음의 결정적인 차이가 나타납니다. 하갈의 마음은 다윗이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처신했는가에 비중이 있었습니다. 이 때 다윗의 대답을 보십시오. 21절에서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
다윗의 마음은 전적으로 여호와에 있었습니다. 법궤를 다윗 성에 옮겨오는 다윗의 행동도 같은 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이 이 나라, 이 왕위, 이 백성의 중심에 오셔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의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이 일이 실현된 날 그는 그것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염치를 생각했던 하갈과는 달리 하나님이 예배받으시고 이 나라의 중심에 계셔야 한다는 열망으로 그의 마음은 가득했습니다. 법궤를 다윗 성에 가져오는 행동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2. 시편과 다윗의 마음
다윗은 법궤를 옮겨오면서 악기를 사용했습니다. 이전에는 제사가 예배 중심이었습니다. 제사장을 통한 축복등이 있었지만 말은 적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다윗이 악기를 사용한 것은 악기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말의 제사가 더 풍성해 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악기만을 많이 더 도입했다고 생각하고 성가대를 조직했다고 여기지만 사실 다윗의 공헌은 시편처럼 말로 된 예배를 이것들과 연결한 것입니다.
법궤를 다윗 성에 옮기는 장면을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역대상 16장 5절에 보면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칭송한다, 감사한다. 찬송한다고 밝힌 내용은 바로 이어지는 역대상 16장의 시편에서 확인됩니다. 시편 105편, 시편 96편, 시편 106편을 조합해 놓은 역대상 16장의 시편은 하나님을 향해서 탄원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말의 예배가 다윗에게서 얼마나 풍성해 졌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기, 성가대와 연결된 시편의 말의 예배는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골몰해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법궤를 위한 집과 다윗의 마음
이 모든 일들에 이어 다윗은 이제 법궤가 영원히 정착될 집, 곧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계속해서 머무는 집을 지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선지자 나단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법궤를 가져와 다윗 성과 이스라엘의 중심에 모시고 시편을 통해서 말로 된 간구, 감사, 찬양의 풍성하게 하며 법궤가 영원히 거처하실 집을 짓는 일, 이런 일들이 다윗 왕이 가장 먼저 진행한 일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잘 증거해 줍니다. 시편 132편은 이런 다윗의 마음을 잘 설명합니다.
3절 내가 내 장막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다윗은 여호와 계신 곳에 들어가 그의 발등상 앞에 예배하는 일에 모든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자기 뿐만 아니라 전 이스라엘이 이 일에 마음에 모든 것이 되도록 예배를 위해서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일들을 진행하였습니다.
4. 하나님 자신의 마음 같은 자 (행 13:22)
다윗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는 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여호와께 맹세하였습니다.
시편 132편 2절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맹세와 서원의 사람입니다. 말로 한 맹세와 서원을 따라서 신실하게 행하였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그의 마음의 모든 것과 일치하였습니다. 나단이 말한 왕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은 사실 하나님을 나라의 중심에 거하게 하시며 그 분만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에만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 자신의 마음과 같은 사람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22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그대로 가진 사람이라고 하나님이 다윗을 설명하십니다.
● 우리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은 무엇입니까? 다윗의 인생처럼 우리는 외적으로는 위기와 영광의 양극단을 오갑니다. 이 외적인 조건은 우리의 마음을 이리저리로 빼앗아 갑니다. 긍정과 부정, 절망과 낙관, 빛과 어두움이 교차합니다.
법궤를 가져 올 때도 좌절이 있었고 법궤가 다윗 성에 돌아오는 것을 기뻐할 때 하갈의 업신여김도 받았습니다. 그런 일을 당해도 우리의 마음이 꺽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를 향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에 계시게 하실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더 풍성해지고 분명해 질 수 있는가?에 집중하고 있어야 합니다.
III.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1. 하나님의 집 건축을 거절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지 않으십니다. 법궤를 위한 하나님의 집 건축을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지 못하도록 거절하십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을 다한 열망을 거절하시는 하나님은 옹졸하시지 않습니다. 다윗인 건축한 집을 바로 받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은 기꺼이 다윗 성 시온에 거하시길 원하십니다.
시편 132편 13-14절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저를 삼고자 하여 이루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하나님은 다윗을 거절하시는 듯 했지만 사실 다윗성에 거처를 정하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고 그것을 마음으로 열망하셨다고 합니다.
2. 과거 회상을 통한 언약 확인
8절에 보면 다윗 개인의 인생길을 조명하면서 다윗을 향한 마음을 증거하십니다. 먼저 과거의 한 개인인 다윗에게 행하셨던 일을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향한 마음으로 가득하셨고 이를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한 사람이 목자에 불과했던 다윗이 전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때도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그를 택하시고 기름 부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의 밝은 빛과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하나님 자신이 그의 인생을 평안 가운데 인도하셨습니다. 다윗의 모든 과거는 사실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있었고 그 결과였음을 증거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설명합니다.
다윗이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한 것에도 과거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해 가진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삼하 7장 18절)
3. 미래를 향한 약속과 언약의 영원함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이 변치 않으며 자신의 맹세는 영원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제 미래를 향합니다. 하나님은 다윗만이 아니라 다윗의 씨에게서 난 자를 세워 다윗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십니다. 다윗은 아직 후계자 상상조차도 못한 시간에 영원한 왕위를 견고하게 세우신다는 엄청난 약속을 다윗에게 주십니다. 때로 하나님은 그 왕들에게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시겠지만 사울에게 한 것처럼 그 은총을 빼앗아서가 아니라 은총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다윗의 이어지는 말에서도 이것은 확인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삼하 7:19)
시편 132편 후반부인 11절에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준 사무엘하 7장의 언약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행한 일, 말, 마음을 담아 맹세한 것의 데칼코마니처럼 이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맹세하시고 이를 언약한 대로 실행하십니다. 시편 132편 10절과 10절의 짝이 되는 17절에는 두 번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에는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탄원이, 17절에는 여호와가 직접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신다고 말합니다. 마치 다윗의 요청과 맹세가 이어지는 하나님의 맹세와 약속 속에 담겨 있기도 하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맹세로 다윗의 맹세에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4.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
사도행전 2장 30절에는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이 맹세를 다시 기억합니다.
다윗은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이 맹세는 예수님의 부활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의 왕위를 이은 왕들은 다윗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거나 매우 부족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맹세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지녔다고 했던 다윗 자신도 금방 그 마음을 상실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태로 떨어졌습니다. 다윗 자신과 그 왕위를 이은 그 어떤 왕도 다윗의 맹세대로 행하고 예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베푸신 언약은 고스란히 하나님 편에서 감당해야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 역사속에서 드러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만이 고독하게 자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부활시키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지금도 다윗에게 준 언약을 이루어 주십니다.
VI. 다윗 언약의 아름다움
하나님 편에서의 맹세를 나단을 통해서 들은 다윗은 자신의 귀로 들은 것을 하나님을 향한 감탄으로 돌려드립니다.
삼하 7:22
“그 누구도 없습니다. 당신과 같은 분이, 당신 외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아들을 삼으시는 자들 곧, 이스라엘 또한 그 어떤 땅의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백성이 됩니다.
삼하 7:23
누가, 땅의 그 어떤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우리는 공예배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께 맹세한 언약이 결단코 우리의 것임을 확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그 분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대로 하나님을 우리의 중심, 우리의 전 존재를 드려 예배할 분임을 인정합니까? 그 어떤 누구도, 땅의 어떤 나라도 당신과 같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름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의 맹세를 지켜가십니다. 씨, 곧 자기 백성을 견고하게 하시고 영원히 아들의 특권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우리에게 이 하나님은 당신과 같은 분이 이 세상에 전혀 없는 유일한 하나님입니다.
인간 역사에 가장 아름다운 언약은 순간,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그 어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되시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나의 마음으로 삼는 땅의 그 어떤 누구도 될 수 없는 백성들이 함께 하는 이 언약의 순간이 관악교회가 공예배로 모일 때마다, 우리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재현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아름다운 다윗 언약을 성찬을 통해서 확인하고 누리며 삼위께서 우리를 언약적 삶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하면서 성찬을 받겠습니다.
본문: 삼하 7:13-16/ 시편 132편
설교개요
I. 다윗과 나단 선지자의 대화
1. “왕이여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2. 다윗의 이른 영광과 시련
II. “다윗이 여호와께 맹세하여”
1. 법궤 운반과 다윗의 마음
2. 시편과 악기들, 그리고 다윗의 마음
3. 법궤를 위한 집과 다윗의 마음
4. 하나님 자신의 마음 같은 자 (행 13:22)
III.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1. 하나님의 집 건축을 거절
2. 과거 회상을 통한 언약 확인
3. 미래를 향한 약속과 언약의 영원함
4. 부활과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VI. 다윗 언약의 아름다움
생각할 문제
1. 다윗은 하나님 자신의 마음과 같은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불리게 된 그의 행동을 2
가지만 말해 봅시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때 다윗과 같이 될 수 있을까요?
2. 하나님 편에서 다윗에게 해 주신 맹세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이런 맹
세와 어떻게 연결될까요? 이런 하나님의 언약이 여전히 나에게도 유효하다는 것을 언제 묵
상합니까?
3. 사무엘하 7장 22-23절에 나오는 다윗의 감탄은 무엇입니까? 다윗의 이 감탄이 나의 감탄
이 되기를 서로에게 축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