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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임당한 예수님의 피 마26:45-56 27:45-61
코로나가 전세계로 팬데믹한 이후 국내에서도 코로나 확진자수는 매일 30만명대로 확산되면서 지금까지 누적 확진사수는 1350만명이니 국민중4명중 한명은 코로나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망자도 매일 300-400명 정도로 누적사망자수는 벌써 16600명 정도이다 보니 지금은 전국의 화장터가 초만원이라서 장례를 마치고서도 화장순서를 며칠정도 기다리는 것도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사망당한 사람들의 가족들은 죽는 그 시간에도 면회도 안되고 죽은 후 화장한 재가루를 받는 것으로 가족을 떠나보낸다니 그 고통은 두고 두고 마음의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한다. 사람이 이처럼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일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는 이처럼 누구에게나 공포를 주게 마련이다. 죽음의 현장을 보면서 누가 백신을 안맞겠는가? 하지만 백신 3차까지 접종완료한 사람도 코로나에 걸리고 그렇다고 코로나 걸렸다고 항체가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지금은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각자가 살기위해 면역력을 키우는 것 이외엔 특별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들은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한다. 실제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도 눈물을 흘리면서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곤 한다. 말 못하는 소도 도살장에 끌려갈 때 눈물을 흘린다는 그런 말 듣고 살아왔는데—뉴스에 보니 50개월이 된 그리고 새끼를 두번이나 출산한 암소가 도살장에서 최후 결심을 했는지- 도축하려는 사람들을 들이 받아 1명이 사망하고 1명부상 당하는 사고를 내면서 탈출한 암소가 산속에 숨어 있다가 마취총을 맞고 포획이 됐다는데—말 못하는 짐승도 죽는 순간을 아는 모양일까? 마음이 숙연해 진다. 그 도살장 암소의 행동을 본 사람들은 그 암소가 죽음이 두려워서 난동을 부렸다고 하는데— 이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지방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곧 이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마16: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가이사랴 빌립보는 갈릴리 보다 더 북쪽에 있는 도시인데 베드로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을 들으신 후에 이곳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밝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다시 말씀하셨는데 이번에는 갈릴리에서 말씀하셨다.
(마17:22-23) 22 그들이 갈릴리에 거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23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지리라. 하시니 그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그리고 예수님은 정말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갈릴리를 떠나 유대지방 예루살렘 가까이 가셨을 때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다시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마20:18-19)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그를 정죄하여 죽게 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요, 셋째 날에 그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죽음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보라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할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하신 후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한발짝 한발짝 죽음을 향해 가까이 가셨다. 누구든지 죽음을 피하는데 왜 예수님은 죽음을 향하여 나가셨을까? 그것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26:54) 그러나 그리되면(내가 당장 지금 내 아버지께 기도하여 당장이라도 그분께서 12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게 주시도록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느냐?) 반드시 이렇게 되리라 한 성경 기록들이 어떻게 성취되겠느냐 하시더라.
예수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죽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이다.
신학자 존 파이퍼는 “만일 우리가 잘 죽는 것을 배운다면, 잘 살게 될 것이다.” 라고 역설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잘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진정 어떻게 사는 길이 잘 사는 것인지 배우게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님의 죽음을 바로 알아야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길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세 번 씩이나 말씀하셨다고 조금 전에 제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배반을 당해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그를 정죄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게 할 것이라는 죽음을 세번씩이나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건성으로 대충들었는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합니다. 오히려 4일전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나귀타고 들어가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했던 그 광경을 회상하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을 뿐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신 주님은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육을 입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느끼는 죽음 공포를 똑같이 느끼셨지만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성경의 예언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죽음을 향하여 묵묵히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신 것입니다.
2000년 전으로 돌아가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주님의 고난을 마태복음 26장과 27장을 통해 더듬어 봅시다.
(마26:1-2) 1 예수께서 이 모든 말씀들을 마치시고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천국에 관한 말씀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 끝 날에 일어날 징조와 또 주께서 세상 끝 날에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을 다 마치시고)
2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십자가에 못박히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지상에 가르치시는 사역이 끝이 나고 예수님 생애 마지막 부분 곧 십자가의 죽음을 향한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왜 예수님이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힌다고 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유월절을 연관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죽음이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것을 기념하여 유월절을 대대에 지키라고 하였는데 그 유월절 때 죽임을 당한 양은 출애굽기12:5에 보면 너희 어린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라고 하셨듯이 2000년전 유월절에는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임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실제로 출애굽을 하였을 당시 유월절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자 출애굽기 12장으로 잠시 가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는 마지막 10번 째 재앙을 통해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바로 왕의 장자부터 치기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애굽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애굽을 떠날 준비를 시키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달이 너희에게는 달들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니 곧 한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시며 이 달 십일에 너희 각 사람이 한 집에 어린양 한마리씩을 취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가족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 어린양을 준비해야 했다. 어린 양은 흠이 없고 일년된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그것을 14일까지 간직했다가 저녁때에 이스라엘 회중의 전체 집회에서 그것을 죽여야 했다. 또 그들은 피를 취하여 그 고기를 먹을 집의 양옆 기둥과 위의 문기둥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먹되 날로나 물에 삶지 말고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그것을 먹을지니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그것을 먹어야 했다. 또 그들은 고기를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고 남은 것은 곧 불로 태워야 했다. 이것이 주의 유월절 이었다(출12:1-11).
이어서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지나가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내가 애굽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일이 되게 할지니 이날을 너희 대대로 주를 위한 명절로 지키고 규례에 따라 그것을 영원토록 명절로 지킬지니라고 모든 죽음의 저주가 넘어가게 하는 유월절을 제정하도록 하셨다(출12:12-14).
모세는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를 위해 어린양을 취하여 그 어린양을 죽이고 우슬초 한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여 그 피를 인방과 양 옆 기둥에 바르고 아침까지 한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주께서 두루 지나가시며 애굽사람을 칠 때에 문의 인방과 양 옆 기둥의 피를 보시면 주께서 그 문을 넘어가시고 파멸시키는 자가 너희 집에 들어가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시리라. 그들은 이 규례를 영원히 지켜야 했다. 후에 그들의 자녀들이 이 예식이 무엇을 뜻하냐고 물으면 그것은 주의 유월절 희생물이니라. 주께서 애굽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어 가사 우리의 집을 건져 주셨느니라, 하라 하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말을 듣고 머리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였고 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출12:21-28).
한밤중에 주께서는 애굽 땅에서 처음 난 모든 것 곧 왕좌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감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셨다. 참으로 무서운 재앙이었다. 그러므로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모든 애굽 사람들의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가운데서 떠나며 너희가 말한 대로 가서 주를 섬기고 너희가 말한 대로 양도 소도 몰아가라고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급히 내보내려 하였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반죽이 발효되기도 전에 빵 반죽 그릇들을 가져다가 옷에 묶여 어깨에 매니라. 또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의 말대로 애굽사람들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였고 주께서 애굽사람 앞에서 그 백성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그들이 구하는 대로 얻게 하셨으니 그들은 애굽사람의 물품을 노략하였다(출12:29-36).
이스라엘 자손은 라암셋에서 떠나 숙곳에 이르렀을 때 출애굽한 백성들의 수를 세보니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었고 여자들과 어린이를 합하면 200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 애굽에서 나올 때 발효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 즉 누룩없이 만든 떡을 구웠다.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 되는 해이었다. 430년이 마치는 그날에 주의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으므로 그들은 그 밤을 주 앞에서 대대로 지켜야 했었다(출12:37-42).
이방인은 유월절 양의 고기를 먹지 못할 것이나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주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다. 유월절 고기는 한 집에서 먹고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아야 했고 유월절 양은 뼈를 꺼지 말아야 했다. 뼈도 꺽지 말라는 규례는 예수그리스도께 적용되었다. 요한복음 19장 33, 36절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를 통해서 보더라도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이셨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기이한 능력으로 열 번째 재앙 곧 장자 재앙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문기둥과 인방에 발라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넘어가셨다는 말이다. 유월절 어린양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을 예표하였다.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말했다(고전5:7). 유월절 어린양이 흠없는 수컷이어야 한 것은 구주예수께서 죄없는 속죄제물이심을 예표한다. 어린양의 피를 문기둥과 문인방에 바르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루신 속죄를 믿는 믿음을 예표한다. 고기를 불에 구워 쓴 나물과 무교병과 함께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예표한다.
유월절은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의 진리와 우리의 속죄신앙을 계시한다. 구주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우리를 지옥불로부터 구원하였다는 것을 복음서에서는 이렇게 강조하셨다.
(요6:53-55) 53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니.
이 말씀은 속죄의 피가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에게 속죄 신앙이 필요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마음의 문기둥에 발라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며 그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속죄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었는가?
1.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을 때 명절에 참여한 사람들이 외치기를
(마21:9-10)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던 무리들이 외쳐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그분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도시가 소동하여 이르되 이분이 누구시냐? 하거늘.
이 때 일반사람들과는 반대로 예수님을 가장 시기했던 사람들이 수제사장들과 장로들 서기관들이었다.
(마26:3-5) 3 그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저에 함께 모여 4 예수님을 교묘히 붙잡아 죽이려고 협의하였으나. 5 말하기를 백성 가운데 소동이 있을까 염려되니 명절날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본래 산헤드린 공회는 성전 밖 남쪽에 있는 가지트 공회당에서 열어야 되는 것인데 그들은 예수를 죽이는 음모를 꾸미기 위해 공회당이 아닌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저에서 모였던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한 불법적인 공모가 이루어 졌으며 가롯 유다의 배신이 예수님의 죽음을 결정적으로 확정했다.
(마26:14-15)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라 하는 자가 수제사장들에게 가서(마귀가 가롯유다에게 들어가니 예수님의 제자가 자기 스승을 팔고자 대적들에게 찾아갑니다). 1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를 너희에게 넘겨주면 너희가 무엇을 내게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서른 개로 그와 언약을 맺거늘
가롯유다가 예수를 넘겨주고 받았던 돈이 은 30세겔 이었는데 이것은
슥11:12의 예언의 성취라고 볼 수 있다. 스가랴서는 예수님 오시기 500년전 기록된 예언서로
(슥11: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값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하매 그들이 곧 은 삼십개를 달아 내 값으로 삼으니라.
슥9:9에서는 메시야가 나귀타고 자기백성에게 오신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하였을 때 나귀타고 오셨다는 예언이 이루어 졌다.
이처럼 예수님에 관련된 행위는 이미 예언된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최후의 만찬마26:17-30, 막14:12-21, 눅22:7-21
무교절 첫날에 최후의 만찬이 제정되었는데 이 만찬은 이땅에서 제자들과 함께하는 만찬인데 예수님이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셨다. 성만찬을 준비하실 때 예수님은 아직 베다니에 계셨는데 제자 둘에게 말씀하십니다.
(마26:18-19) 18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도시로 들어가 이런 사람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겠다 하시니라, 하시매 19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정해주신 대로 행하여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그래서 예수님이 시키신 대로 준비하여 최후의 만찬이 시작되었다
(마26:20) 이제 저녁이 되매 그분께서 그 열둘과 함께 앉으시니라.
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갖는 예수님의 감회가 어떻했을까요?
(눅2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어린양 먹기를 바라고 또 바랐노라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이 최후의 만찬이 십자가 죽음을 향하여 성큼 한발자국을 앞으로 내딛는 발자국으로 절대로 후진할 수 없는 발자국입니다.
그 만찬자리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26:21-23) 2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중의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리라. 갑자기 분위기가 엄숙해집니다.
22 그들이 심히 근심하여 저마다 그분께 말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주여 그게 내니이까 하매 23 그분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는 자 곧 그가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리라.
제자 중 누가 예수님을 판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패륜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반드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 일을 위해 가롯 유다는 이미 은 삼십을 받아둔 상태인데 여기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41:9) 참으로 내가 신뢰한 나의 친한 친구 곧 내 빵을 먹은 자가 자기 발꿈치를 들어 나를 대적하였나이다.
(마26: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장차 유다가 처하게 될 영원한 고통을 생각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만찬의 핵심인 예수님의 피와 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마26:26-28)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다 그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
죄사함을 받기위해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게 될 새로운 언약의 피라는 말씀입니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성취되는 것인데 이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이란 믿음으로 말미암은 죄사함으로 얻는 구원이 새언약인데 가치면이나 효력면에서 볼 때 구약의 옛 언약과는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옛 언약은 불완전한 짐승의 피에 근거한 반면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예수님은 새 언약을 말씀하시면서 성만찬을 마치셨습니다. 이 만찬이 끝난 후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26:31) 그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 밤에 너희가 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떼의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슥13:7)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오 칼아 깨어서 내 목자 곧 내 동료인 그 남자를 치라. 목자를 치라 그리하면 양들이 흩어지리니 내가 내 손을 돌이켜 작은 자들 위에 두리라.
3. 예수님의 체포 및 재판
(마26:36)그 때에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감람산의 겟세마네라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 너머에 가서 기도할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자 마지막 기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마26:39) 조금 멀리 가서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는 이러한 기도를 세 번씩 드린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셔서 말씀합니다.
(마26:46-56) 46 일어나라 우리가 함께 가자. 보라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는 자가 가까이 왔으니라, 하시니라. 47 그분께서 아직 말씀하실 때에 열둘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보낸 큰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9 곧바로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그분께 입을 맞추니라. 50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슨 까닭으로 왔느냐 하시매 그때에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거늘 51 보라, 예수님께 함께 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손을 내밀어 자기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의 귀를 베니 52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 집에 꽂으라 칼을 잡는 자들은 다 칼로 망하리라. 53 너는 내가 지금 내 아버지께 기도하여 당장이라도 그분께서 12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게 주시도록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느냐?
54 그러나 그리되면 반드시 이렇게 되리라 한 성경 기록들이 어떻게 성취되겠느냐? 하시더라.
제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이 잡히실 때 아무 반항도 못합니다. 오히려
56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대언자들의 성경기록들을 성취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모든 제자들이 그분을 버리고 도망하니라. 이는
(슥13:7)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오 칼아 깨어서 내 목자 곧 내 동료인 그 남자를 치라 목자를 치라 그리하면 양들이 흩어지리니 내가 내 손을 돌이켜 작은 자들 위에 두리라.
예수님은 체포되어서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집으로 호송되어 갔습니다. 그곳에는 서기관과 장로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재판 하기도 전 예수의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하고 거기에 맞는 죄 값을 찾기 위해 거짓증인들을 세웁니다. 어떤 거짓증인은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삼일동안에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었는데
(마26:61) 이르되 이자가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거짓 증인들은 마치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릴 계획을 갖고 계시기라도 한 듯 왜곡된 증인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짓증인들의 말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으시고 묵비권을 행하셨는데 이것은 당신을 모함하는 그들에게 진지한 변론을 늘어놓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임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침묵에 가야바인 대제사장이 묻습니다.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가야바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극악한 범죄로 여겨졌던 신성모독죄의 올가미를 예수께 뒤집어씌우고자 그렇게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고서 대제사장은 그렇게 심문한 것이었습니다.
(마26:64)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이후에 너희가 보리라 하시더라. 이 말을 들은 대제사장이 흥분하며 분노합니다.
(마26: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우리에게 증인이 더 필요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그의 신성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
신성모독이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말입니다.
(마26: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하되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하고
대제사장은 예수 스스로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으니 이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만장일치로 결론을 냅니다.
4. 불법재판을 받으신 예수님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이나 대제사장 장로들은 예수님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1.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예수께 대하여 사형의 결정이 내려져 있었다.(마26: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함)
2. 중요한 소송일 경우 적어도 2틀 동안에 걸쳐 재판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하고 하룻밤 사이에 소송 안건을 처리해 버렸다.
3. 예수께는 직접 공회에서 자신을 변호하였다.(눅22:66-71)
4. 유대소송법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야간재판은 금지되어 있으며 특히 중요한 소송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한밤중에 이루어졌다.
5.재판이 산헤드린 공회가 아니라 오직 대제사장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이런 불법재판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 끝난 후는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분노로
(마26:67) 예수의 얼굴에 침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집단적인 폭행을 합니다. 예수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표출합니다. 사형판결이 내려지자마자 조롱과 폭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마26:68) 너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대언하라. 너를 친자가 누구냐? 누가 때렸는지 알아 맞춰보라는 것입니다.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라는 말이다.
심한 핍박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인내하시면서 잠잠히 고난을 참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인류의 죄악을 혼자 담당하시려는 메시야적인 열정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27:1) 새벽에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결박하여 총독 빌라도에게 눅23:2과 같은 고발장을 넘겨줍니다.
(눅23:2) 그분을 고소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우리가 보니 이자가 민족을 그릇되게 하고 카이사르에게 공세내는 것을 금하며 스스로 그리스도 곧 왕이라 하더리다, 하매
관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모여 들기 시작합니다.
빌라도는 마침 유월절 명절에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므로 그 때에 강도이기도 하고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한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빌라도는 예수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지도자들의 시기로 넘겨져 온 것을 알고서 무리에게 바라바를 택할 것인지 그리스도라하는 예수를 택할 것인지 촉구합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바라바를 달라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해야 한다고 외치게 합니다. 빌라도는 말합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하였을 때 유대지도자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죽이기 위해선 어떤 저주도 달게 받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무죄한 예수를 죽음에 내어 줌으로써 예수의 예언을 성취시킨다.
(마20: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포악한 로마병정들은 예수를 채찍질합니다. 가죽끈에 갈고리가 달린 채찍을 때리는 것은 우리들이 질병에서 나음을 얻기 위한 것이며 예수님의 등에 채찍자국이 생기더니 살첨이 떨어져 나가면서 피가 튀기시작 합니다.
(마27:27) 군병들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기 위해 온 군대를 모으고 일을 척척 진행시킵니다.
5. 채찍후에는 예수님을 왕으로 희롱하다.
(마27:28-30) 28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군인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의 겉옷을 입힙니다. 홍포는 왕이나 지도자들이 입던 옷이다. 예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두른 것은 순전히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조롱하기 위한 것이다.
29 머리엔 왕관대신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이런 모욕적인 언행을 통하여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칭하는데서 절정을 이룬다. 군병들이 사형수인 예수께 평화를 기원하였다.
30 그에게 침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예수께서도 그들의 조롱을 피하려고 얼굴을 돌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군병들은 예수께 침을 밷으며 모욕을 한 후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쳤다. 조롱하는 자들이 왕의 홀의 대용으로 쥐어준 갈대줄기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쳤다는 것도 매우 치욕적인 행동이었다. 더욱이 가시 면류관을 쓰신 머리를 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수반하였는가는 짐작할 만하다. 정말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온갖 수욕을 견디시며 참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사50:6-9) 6 모욕과 침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6. 십자가에 못박히시다
온갖 희롱을 당한 후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를 향해 예루살렘 거리를 한발작 한발작 힘들게 가십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채찍질을 당한 사형수가 지기에는 너무 무거웠는데 너무 힘들고 무거워 때로는 쓰러지십니다. 군병은 채찍을 때리며 일어나라고 하지만 금방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마침 시몬이란 구례네 사람이 우연히 그 곁을 지나다가 로마 군병의 권한으로 십자가를 강제로 지게 되었습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부지방에 있던 한 성읍으로 구례네 살던 사람이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까지 온 평범한 사람으로 그의 아들은 알렉산더와 루포였다고 한다. 그러나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억지로 진 십자가는 그에게 놀라운 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막15:21)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에서 와서 지나가매 그들이 그에게 억지로 그분의 십자가를 지게 하고
(롬16:13) 주 안에서 선정된 루포와 그의 어머니 곧 나의 어머니께 문안하라.
사도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에게 내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루포는 초대교회 유명한 사람으로 사도바울이 인정한 사람이었으며 마가도 믿음의 가문이 되었기에 기록하였나 봅니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대신 지고 십자가가 세워질 골고다까지 왔다.
(마27:33) 골고다 해골이라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골고다로 불리는 곳 해골이라 불리는 곳 이곳은 처형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므로 시체가 나뒹구는 곳이므로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마27:34) 쓸개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쓸개는 쓴맛이 나서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쓸개즙이 들어있는 포도주(고통감소를 위한 마취제 역할)를 예수께 주었다는 것도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다.
(시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를 성취한 것이다.
(마27:35)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병사들이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었다는 것도 예언의 말씀을 이루고자 함입니다.
(시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를 성취한 것이다. 이는 군사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행위조차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며 예수의 수난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27:37-38)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는 예수께서 처형당하신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 말은 히브리 로마 헬라말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죄패를 읽을 수 있도록 하였지만 그들의 말대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만왕의 왕이셨습니다.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 말씀은 그가 범죄자 중의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니라.
(사53:12)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악한 죄인들과 함께 잔인한 십자가형에 처하여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는 자들도 있고 의로운 자라고 인정하는 자들도 있었다.
(마27:41-42) 4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지나가는 사람들과 함께 조롱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27:54) 이제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켜보던 자들이 지진과 일어난 그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진실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원하지 않으셨고 자신의 목숨을 죄인을 위한 대속물로 내놓으셨다. 그가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능을 포기하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7. 영혼이 떠나가시다
(마27: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육시는 오늘날의 시간으로 정오를 가리키며 제 구시는 오후3시를 가리키는데 이는 하루 중에 가장 밝은 시간에 온 땅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예수의 수난현장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물론 온 땅은 지구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지역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가실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애도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고 무참하게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멸망을 자처한 무리들을 향하여 진노하셨던 것이다. 세시간 동안 지속된 어두움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으로 예수가 진실로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십자가 위에서 침묵하시던 예수님은 입을 열어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자기를 버리시냐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깊은 고통을 주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외침이며 절규입니다.
(마27:50)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라.
예수께서는 인간의 성정을 가지신 분으로서 모진 고통을 당한 끝에 운명하셨으나 그의 죽음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막10:45)한 죄인들을 대신한 특별한 죽음이었습니다
(마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고 첫 번째 일어난 현상은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성소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휘장을 말하며 예수께서 운명하시자 그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두 조각으로 찢어졌다는 것은 저절로 찢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찢어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성소의 휘장막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동시에 찢어진 것은 속죄일에만 대제사장이 한번 들어갈 수 있던 지성소가 활짝 열렸음을 의미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 사함과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된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일어나는 이적의 사건들을 지켜본 백부장과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입을 모아 고백한 것은 예수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구경하러 모인 무리들이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갔다고(눅23:48) 기록하고 있어 주변에 모인 모든 무리들이 예수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했음을 보여 준다.
8. 무덤에 장사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는 관습과는 달리 경건한 장사가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당시 보통 십자가에서 처형된 시체들을 묻지 않고 던져 버려졌다. 처형된 범죄자들은 아무렇게나 버려졌고 범죄자들을 가족묘에 장사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다.
(마27:57-60) 57 저녁이 되었을 때에 요셉이라 하는 아리마대의 부자가 왔는데 그도 예수님의 제자더라. 58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몸을 달라고 간청하매 (자신의 지위와 명예에 치명적 손실이 가해질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그의 참된 신앙과 용기를 볼 수 있다). 이에 빌라도가 몸을 넘겨주라고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그 몸을 가져다가 깨끗한 이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의 새 무덤에 그 몸을 두고 큰 돌을 굴려 돌무덤 입구에 놓고 떠나가니라.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2000년전 이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고자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이 우리를 천국에서 영생하게 하는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십자가의 은혜를 갈라디아서 6:14에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 내게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 할 것이 없다고 했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율법을 자랑하고 할례 받은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전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고백한 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고전1:24) 이심을 체험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