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월초 카자흐스탄 침켄트를 다녀 온 나는 그곳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자신감을가지고 있었다.
그때 여수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 정원군(34세)와 일산에서 특수작물을 경작한다는 이일제군(35세)이
비슷한 시기에 카자흐스탄 결혼을 희망했다.
김군은 재혼이었고 이군은 초혼이었다.
이번에는 키르키스탄 알마티를 통해서 가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알마티 공항에 한 밤중에 내렸다.
어두워서 나오는 길조차 잘보이지 않는데 출구앞에 따냐 집사와 그녀의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마티에서 침켄트까지는 700키로라고 했다.나는 한국식 계산으로 다섯시간 정도걸리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알마티에서 침켄트까지는 끝이 없었다.
가도가도 막막한 초원밖에 보이지 않는 길을 아마15시간쯤 달렸을 것이다.
차는 낡은 현대포니로 두시간 정도 가다가 시동이 꺼지고
기름이 떨어질락 말락해서 가슴을 조이고,
이렇게 한국에서 오후 네시에 출발해서 침켄트까지 꼬박 24시간만에 도착했다.
우리는 전과 마찬가지로 가지고 간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고 김치를 꺼내고
현지 수퍼에서 생선과 술을 구입해서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부터 우리 숙소에서 맞선을 보기로 했다.
대학 4학년인 22세의 소냐,24세의 강나타샤,방송국에서 근무한다는 28세의 여성,
간호원이라는 32세의 여성등 6명과 맞선을 보았다.그리고 김정원씨는 소냐와 그리고 이일제씨는 강나타사와 결정되었다.
그리고 강나타사는 쉽게 부모의 동의를 받았다.그런데 소냐는 어머니가 반대한다는 것이다.
소냐는 참 예쁘기도 하고 외모가 너무 착하게 보였다.
그래서 김정원씨는 난처한 입장이었다.그때 따냐 집시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아직 학생이니까 일단 결혼키로 하고 부모동의 없이 관광비자로 한국에 입국한다.
그렇게 하면 결국 부모는 동의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있으면서 학비를 지원해 주면 졸업때쯤 와서 시험만 보면 졸업할 수 있다.
상당히 좋은 제안 같았다.김군은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니.동의.반대를 거듭했다.
이틀정도 지났다.김군은 포기했다.
그러더니 미련이 남았던지 자기가 준비한 시계와 반지만이라도 전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냐양이 거절했다.
결혼을 안하는데 어떻게 예물을 받을 수 있으며,잊을 만하면 혼란케 한다고..
그래서 할수 없이 이일제군과 강나타사양과의 결혼만 진행키로 했다.
우리는 나타샤양집에 초대되어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물론 보드카와 함께...
그리고 다음날 침켄트교회에 가서 양 선교사의 주례로 감사와 측복기도를 드렀다.
귀국하기전 따냐 집사가 한가지 문제점을 이야기 했다.
강나타샤가 한국에서 3년정도 일하다가 귀국했기 때문에 비자가 안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일제씨에게 말했더니,고사장님만 믿고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진퇴양난이었지만 어찌할 수 없이 일단 한국에 와서 해결하기로 했다.
귀국하기 전날 첫날밤을 맞으러 갈 때 내가"이일제씨! 대한 남아의 기상으로 일곱번은 꽂아야돼"하자
"네! 알겠습니다"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우리는 침켄트에서 비행기로 알마티까지 와서 귀국했다.알마티에서 이일제씨에게 물었다.
몇번했어?하자 아침에 일곱 번째로 막올라가는데 운전기사의 초인종이 울려 여섯번 밖에 못했습니다.
귀국했지만 나에게는 두가지 일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