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신앙고백은 천지창조로부터 시작된다. "전능하사 천지(하늘과 땅)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여기의 하늘은 초월의 영계(靈界)가 아니다. 피조세계인 우주와 천체의 현상계(現象界)을 말한다. 하늘과 땅은 함께 창조되었다. 그렇지만 상징과 은유(隱喩)로 가득한 성서에는 현상계의 하늘로 초월의 영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마태복음 6:10) '하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요한계시록 4:2) "하늘 나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마태복음 5:3)… 이 하늘은 현상계가 아니라 초월의 영계를 뜻한다. '창조 이전'의 자리다.
천지창조는 창조주 스스로의 '자기 비움'(케노시스, κενοσις)이다. 땅은 하늘의 자기 비움이요, 시간은 영원의 자기 비움, 유한(有限)은 무한(無限)의 자기 비움이다. 그 비움의 자리에서 초월의 하늘을, 영원의 무한을 깨우치는 것이 땅의 신앙이다.
종교는 현상계인 땅의 인간이 초월의 신성(神性)을 갈망하는 기원(祈願)이고, 신앙은 부조리와 무의미로 가득 찬 삶의 현실에서 고통과 절망의 어두움에 빠진 인간이 구원의 빛을 찾아가는 땅 위의 긴 여정(旅程)이다. 땅은 흙이라는 물질을 넘어 땅에서 이뤄지는 역사, 문명, 그리고 사회와 개인의 일상 등 모든 삶의 현실을 두루 포함한다.
예수는 하늘의 초월적 종교를 선포하지 않았다. 땅에서의 실천적 신앙을 가르쳤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8:18) 초월을 만나는 자리는 하늘이 아니다. 이 땅에서 펼쳐지는 삶의 현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한다(창세기 12:1).이스라엘의 유랑, 그 땅의 역사가 펼쳐진다. 예수는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고 가르쳤다(마태복음 5:5). 신앙의 복(福)으로 다가오는 땅… 땅의 신앙이다.
땅의 현실에서 초월의 영계에 닿으려고 점(占)집을 찾거나 운세(運勢)를 보거나 접신(接神)을 기다리는 등 '올라가는 신비'를 믿고 좇는 사람들이 초월의 영계가 땅의 현상계에 임재(臨在)하는 '내려오는 신비'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모순이다. 뒤엣것이 허황된 기적이라면, 앞엣것은 더욱 허황된 환상일 터이다. 초월이 없다면 현실도 없다.
"온 땅이여,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라."(시편 96:1) 온 땅이 초월을 만나는 자리다.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 ‘지금 여기’(hic et nunc)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자리다. 땅이 신앙의 영역 안에 들어온다.
유대교에서 파문 당한 스피노자는 자연을 신의 자리에 두었다. 그 자연은 현상계인 소산적 자연(所産的 自然, Natura naturata)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능산적 자연(能産的 自然, Natura naturans)이다. 뭇 존재에게 '자기보존 의지'(conatus)를 불어넣는 초월적 실체… 범신론의 신성(神性)이다. 범신론이든 유일신론이든, 신성 없이는 현상도 없다.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무신론자로 알려졌지만, 그는 인간이 거주하는 사방세계(四坊世計, Welt-Geviert) 안에 성스러운 신적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방세계 너머에서 어느 초월적 존재가 땅을 향해 미소짓고 있지 않을까?
내세는 혼령들이 떠다니는 허공이 아니다. 죽음도 슬픔도 없는 새 하늘 새 땅(요한계시록 21:4,5), 갓난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사자가 짚을, 뱀이 흙을 먹는 새로운 땅이다(이사야 11:7, 65:25). 우리는 깊은 숲속 한 송이 들꽃에서 이미 영원의 손길을 보고,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에서 불현듯 창조의 섭리를 깨닫는다(마태복음 6:26~29). 땅의 일상에서 만나는 초월의 깨우침… 땅의 신앙이다.
"그리스도가 진리 밖에 있는 것이 증명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진리 밖에 있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고백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뒤 8년 동안 감옥과 유배(流配)의 시련을 겪으면서 크리스천이 된 그는 땅의 신앙을 이렇게 노래한다. "대지를 사랑하라. 땅에 엎드려 입 맞춰라."
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Baruch Spinoza
[출처] (너머의 길녘 23) 땅의 신앙|작성자 leegadf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