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원봉사
이 란
쓰레기도 쓸 데 있다
못난 모습
우격다짐으로 불붙이고
그 위에 젖은 쑥 올리면
느긋한 연기 노을에 닿을 듯
쑥 내 못 이겨 달아나는 모기
은은하게 최후를 맞이하는데
그 모습 반가워 우쭐하다
두피에 올라 스멀스멀 나를 덮는 흰빛 어둠
손 등에 갈색 반점 뚜렷해지는데
봉지 안의 물건일 때 가치 있던
내 인생은 얼마나 쓸모 있었을까
2 치과에서
이 란
아픈 것도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치과에 온 어린 것
눈물 뚝뚝 흘리며 소리 내어 울고
그 소리 듣는 나
이 빼는 것 무서워 울부짖을 때
사랑의 모습으로 억누르던 무서운 얼굴
어릴 적 아픈 기억 되살아나
어머니 아버지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는데
부모은중경을 백번 이해 감사하건만
영혼은 송두리째 젖지 못해
까치를 불러 빠진 이 주고
바라던 사탕을 못 받았을지
아프지만 아픈 것 모르고
엉엉 우는 소리도 내지 못하는
철없는 어른
3 배롱나무
이 란
수피가 홀라당 벗어진 맨살
음탕하다 여겨
안채엔 심지 않았다던
선비들의 시선
된여름 꼭대기에 찬란하게 펼쳤네
가지가지 붉은 칠한 수만 송이 매혹
흙바닥에 누워도 쌓이는 기품
21세기엔
매혹이 곧 기품이라
옷을 벗어도 흙에 누워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요염한 천사
4 거제수나무
이 란
요즘 관음증이 유행이다
밤늦은 시간 TV
손 속의 하인에게
이리 오너라 부르면
어김없이 대령하는 허망한 육체
나도 벗어야 한다
벗어야만 사는 것이기에
내가 벗는 종잇장 같은 껍질로
밑천 부족한 청춘들을 위해
화촉을 밝혀야 한다
지리산에서 벗기를 즐기는
나
그래야 나도 현대인이다
5 억지 효자
이 란
형 어제 그 애 묻어줬어요?
알바생의 말에 어정쩡 웃는 아들
퇴근하는 학생들 데려다주다가
길에 널브러진 주검을 보다
조금 전 친 것인지 따뜻하더라는
집으로 와 삽 들고 나가는데
이거 오소리 아니냐
어떻게 이걸 가지고 왔니
아스팔트 위의 딱지가 될 것 같아
묻어주려고
토치로 그을려 손질해
큰 솥에 물을 붓고
집 안의 약초란 다 모아 끓여
마당에 퍼지는 고깃국 내음새
더운 날 고생해 지쳤는데
보양식 먹게 되다니
이들은 이렇게 항상 엇나간다
카페 게시글
조선시 원고방
조선시 원고입니다(총 5편)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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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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