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식당 발굴기]
경기 수지 <수지갈비>
한정식 수준의 맛깔스런 반찬들
우리 식구는 퇴근길에 집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많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내가 매일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무작위로 식당에 들어가다 보면 생각보다 형편없는 음식에 실망할 때가 많지만 간혹 기대 이상의 음식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주에 들렀던 <수지갈비>도 그런 집이다.
갈비 수준이나 반찬 맛이 예사가 아니었다. 주인장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기 전, 수원 최대 갈빗집 근처에서 대형 갈빗집을 운영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강적’과 병존하면서 쌓은 실력인 듯하다. 요즘 고기가 먹고 싶다는 아들 요청에 아내와 필자가 동의했다. 우리는 생강돼지갈비(250g 1만3000원) 3인분을 주문했다.
먼저 반찬들이 빈 식탁을 채워나갔다. 반찬 가짓수도 많았지만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반찬들이었다. 금세 식탁이 온갖 반찬들로 가득 찼다. 맛있는 찬으로 주부들 마음 사로잡는 수원 최대 갈빗집과 경쟁하면서 굳어진 이 집 스타일인 듯 했다.
가장 먼저 손이 간 건 부추전이었다. 회색의 계절 11월에 초록색 부추전은 그 색깔만으로도 사람을 유혹했다. 몸 생각하는 중년에게 초록은 건강의 상징색이기도 하다
반찬들
부추향과 고소한 부침 맛이 허기진 장기 속으로 퍼져나갔다. 견과류를 갈아 만든 특제 소스를 뿌린 샐러드도 마냥 집어먹기 좋았다. 배를 마치 깍두기처럼 썰어 넣었는데 아삭하게 씹혔다. 건강에 좋은 새싹채소와 신선한 양배추 역시 남김없이 먹었다.
쓴물을 뺀 뒤 유자청에 잰 도라지무침이나 겨자와 와사비에 무친 목이버섯도 맛이 좋았다. 고깃집은 물론이고 밥집에서도 보기 어려운 반찬인 가오리찜도 나왔다. 자연산 곰취 장아찌, 양념게장, 고추된장은 집에 가져가서 밥반찬으로 먹고 싶었다. 역시 고기 먹을 때는 맛있는 동치미가 최고의 벗이 되어준다. 이 집 동치미는 양도 넉넉하지만 맛도 수준급이다. 아내가 몇 번을 떠먹으면서 예전 친정에서 먹었던 동치미 맛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깃집임에도 반찬은 한정식 집 수준이었다.
양념 눌어붙지 않아 깨끗하게 구워지는 갈비
갈비보다 먼저 숯불이 들어왔다. 하루 종일 을씨년스런 찬바람에 몸이 떨었던 탓인지 숯불의 온기가 무척 반가웠다. 잠시 후 고급스런 하얀 사각 도기 접시에 얌전한 모양새로 갈비를 내왔다. 보통 양념갈비는 물기가 많다. 갈비를 내오는 그릇도 액체 양념이 밑에 고이는 형태를 대개 사용한다. 그런데 이 집은 흰 접시 밑에 배어나왔어야 할 양념 국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물이 많은 간장 양념이 아닌 소금 양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숯불에 갈비를 올렸다. 보통 양념돼지갈비를 구우면 양념 속 물엿이나 캐러멜 등이 석쇠에 눌어붙어 그을음이 생기고 연기가 난다. 그런데 이 집 갈비는 한 쪽이 다 익어 고기를 뒤집어도 석쇠가 여전히 깨끗했다. 그 비결을 물어봤다.
생강돼지갈비
물기가 없는 상태로 양념을 했다고 한다. 간장양념을 하면 삼투압현상에 의해 육즙이 빠져나오고 이것이 굽는 과정에서 눌어붙고 타면서 맛이 떨어진다는 것. 이 집은 간장양념이 아닌 일종의 소금 양념 갈비다. 모두 30여 가지 양념이 들어가는데 메뉴이름처럼 생강 역시 들어간다. 그러나 생각만큼 생강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주인장에 따르면 단백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코팅 숙성을 시켰다고 한다. 고기의 감칠맛을 내주는 성분들이 육즙과 함께 빠져나가지 않게 숙성을 시켰다는 것이다. 냉장고에서 7일간, 주인장의 방식에 따라 7일간, 모두 14일간 숙성을 시킨다고. 바싹 익히지 않아도 맛이 있다. 부드럽고 연하면서도 적당히 씹는 느낌이 살아있다. 또한 갈비 살 속에 수분으로 된 양념이 스미지 않아 제공하는 중량이 거의 고기의 실중량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만큼 실속이 있는 고기 메뉴다.
주인장의 말에 아들이 육즙 보습상태를 확인하겠다며 장난삼아 익은 고기를 짜냈더니 정말 육즙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래서 그런지 양념갈비임에도 생갈비 같은 맛이 난다. 잡내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양념갈비 특유의 강렬한 단맛이 나지 않는다. 느끼하지도 않고 담백해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수원갈비의 전통과 장점을 제대로 발전시킨 갈비다.
구수한 ‘시래기뚝배기’에 굴 넣어 시원한 맛까지
생강돼지갈비는 포장판매도 한다. 반찬이 빠지는 대신 1+1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1인분 값으로 2인분 분량을 준다.
물냉면
시래기뚝배기
고기 먹으면 서비스로 물냉면을 제공한다. 고깃집 냉면은 사실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 집 냉면은 그 한계를 가뿐히 넘어섰다. 자가제면으로 면을 뽑고 육수도 공장제품이 아니라 자가육수로 냈다. 웬만한 함흥냉면 전문점보다 맛이 훨씬 났다. 냉면 맛이 좋았지만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 시래기뚝배기(7000원)를 주문하고 아내는 후식용 된장찌개(2000원)를 시켜 마무리 했다.
푸짐한 시래기에 갈빗살을 넣어 끓인 고깃국이 시래기뚝배기다. 요즘 같은 겨울철엔 싱싱한 자연산 굴을 듬뿍 넣어줘 국물이 더욱 시원하다. 시래기, 갈빗살, 굴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맛이 좋다. 쳥양고추를 넣어 먹으면 얼큰하게 즐길 수 있다. 구수한 맛이 일품인 된장찌개는 큼직하게 썰어 넣은 감자와 호박이 먹음직스럽다. 단품 된장찌개인 식사용은 5000원이다.
지출(3인기준) 생강돼지갈비(1만3000원X3) 3만9000원+시래기뚝배기 7000원+된장찌개 2000원 = 4만8000원
<수지갈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2로76번길 25-36 031-264-9480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