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농산정(陜川 籠山亭)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 있는 건축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4대 계곡으로 손꼽히는 가야산 홍류동 계곡 입구에 세워져 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0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고운(孤雲)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당나라로 유학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사면 처마 아래 ‘농산정’ 편액이 걸려있고, 누각 안에는 「제가야산독서당」을 비롯한 여러 기문과 시판이 걸려있다.
조선시대에 유림에서 최치원을 추모하여 정자를 세우고 농산정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세상의 시비가 귀에 들릴까 저어하여, 짐짓 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다 막았네(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라는 그의 자작시에서 연유한다.
정자 옆에 ‘고운최선생돈적지(孤雲崔先生遯跡地)’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또 학사영각(學士影閣)도 있었으나 근년에 후손들이 정자의 동쪽 강 건너편으로 이건(移建) · 중수(重修)하고 여기에서 봄 · 가을 마다 제사를 지낸다.
신라의 골품제 굴레에 갇혀 자신의 포부를 펼치지 못한 그는 전국을 떠돌며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 바로 농산정이다. 이곳에서 세속의 티끌 다 털어내고 홀연히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까지 남겼다.
‘농산정’이란 이름은 그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시에서 따온 것이다. 최치원이 원래 머물던 정자 이름은 ‘독서당’이었다. 독서당이 언제 지어졌는지 모르지만 후대에 중수를 하면서 최치원의 시구를 따서 ‘농산정’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제가야산독서당」에는 최치원의 홍류동 계곡에서 마지막 삶의 의미가 잘 담겨져 있다.
題伽倻山讀書堂
가야산 독서당에 제하다
狂奔疊石吼重巒
첩첩이 바위에 미친 듯 부딪고 겹겹이 산 속을 포효하니,
人語難分咫尺間
옆 사람 말소리도 들리지 않아,
常恐是非聲到耳
세상의 시빗거리 귀에 닿을까 늘 두려웠더니,
故敎流水盡籠山
부러 물을 흘려보내 온통 산을 에워쌓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