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제자라면 금생에 꼭 한번 해보아야 할 버켓 리스트 경문
“manassa kho, brāhmaṇa, sati paṭisaraṇan”ti.
“바라문이여, 마노[意]는 문지기(sati)를 의지한다.”(S48:42 운나 바라문경, M43)라는
다르마(담마) 법에 대한 인식과정입니다.
'아비담마'는 mano의 역할을 정신들의 식별이라는 인식과정에 말합니다.
M10 념처경(satipatthanasutta)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분명히 알고, 색성향미촉법 육경을 분명히 알고, 육식을 알고 등 여섯 감각장소(토대)의 일어남과 사라짐를 알고...처럼.
눈과 형색의 결박이라는 보는 눈의 문眼門과
그리고 동시에
의와 법의 결박이라는 의문意門이 발생하지요.
이들 안문과 의문이라는 門들은 선정에서 경험됩니다.
선정을 가진자는 M111 차례대로경 말씀처럼, 선정을 출정한 뒤 법을 차레대로 식별할 수 있습니다.
초선정 이상의 선정을 출정한 뒤에 비로소
법들의 차례대로 결정을 경험할 수 있는데 그게 sati의 힘으로 됩니다.
입정과 출정하면서, 일어났든 정신들을 법으로 식별하지요.
눈과 같은 문(보는 감각기능작용) 즉, 오문五門에서의 眼門이 있고, 또한 볼 때의 찰나 법을 헤아리는 문인 mana 감각기능이라는 의문意門이 있지요.
그 意門이 sati(문지기, 마음챙김)를 의지한다는 경문이죠.
참고로
sati를 직접 언설한 술어(정의)의 경문입니다.
‘낑수까 나무 비유 경(S35:245)’
"dovāriko’ti kho, bhikkhu, satiyā etaṃ adhivacanaṃ. -
비구여, 문지기이란 sati를 두고 한 말이다."
sati를 mindful(마음챙김)에 해석한 서양인들이 이 ‘낑수까 나무 비유 경(S35:245)’을 발견하고는 mindful 대신에 doorkeeper(문지기)로 고쳐 사용하더군요.
mana가 나오면 반드시 D2<사문과경> 에서의 "감각기능이 결여되지 않은 상태인 마노意로 만든 몸(意成身)"을 뜻하지요,
그래서 위 M10 념처경(satipatthanasutta)에서의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분명히 알고...."의 경문에서의 의意를 '마노意로 만든 몸(意成身)'에 염두에 두고서 경문에 함의하고 있는 숨은 의미를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즉, 감각기능이 결여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비로소 감각기능根들인 눈과 그 대상 형색(귀와 소리, ... 몸과 촉)의 결박들의 전향(門)이 일어나고 동시에 마노意와 법의 결박이라는 전향이 일어나 내외입처의 감각장소(ayatana)에 대한 법들의 인식과정들이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근데 선정을 개발하지 않으면 이러한 M111 차레대로 법을 결정하다를 알수가 없죠...)
다시 말하자면
감각기능 mana의 意 이것은 사선정을 출정한 뒤의 의문意門이라는 (법들에 대한) 인식과정을 의미한답니다.
선정이 없는 자에게는 mana인 意根의 감각기능이 탐진치에게 소실되어 버려서 감각기능 mana의 意根로부터 연기된 법들(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경험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그러한 자들은 어쩔수 없이 (일어나는 법은 반드시 그치는) 법 대신에 무더기로 취取(오취온)할 수밖에 없게 되고,
따라서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이라는 경문처럼 사성제의 체험이 금생에서는 성취하기가 어렵겠지요.
삼매를 가진 자는
‘운나바 바라문 경(Uṇṇābhabrāhma ṇa-sutta, S48:42)’에 나오는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된다. 세존의 가르침은 삼매 선정 개발→여섯 가지 감각기능 청정→마노(意)→싸띠(sati)→해탈(vimutti)→열반(nibbāna)의 순서로 의지처가 전개된다.
즉, 초기불교의 니까야 경문도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초선정의 경험은 꼭 필요하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이순耳順이 넘어도 선정 삼매에 최선을 다한답니다.
한적한 곳에 찾아 가서 평좌로 앉아 삼매 선정을 개발해야 합니다.
사리뿟다 존자의 수행 지침서인 논서의 경장 <빠띠삼비다막가> "아나빠나 사띠 함의"를 여기서 찾아 그 내용을 따라가며 선정 개발에 실천해보시길,
희열과 행복한 초선정을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첫댓글 여러번 읽습니다
마노는 문지기(sati)를 의지한다..
여러번 읽는데도 알듯 말듯하니
성자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한 모습을 봅니다
오늘도 법의 심오함과 깊이를 느끼며
담마에 인도되고 능숙해 질때까지. 정진하라 서원하고 다짐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SN2:26/AN4:45,46) 도반이여, 나는 인식하고 마노로 식별하는 육척 단신의 몸 안에서
세계와 세계의 일어남과 세계의 소멸과 세계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천명하노라.(
Api ca khvāhaṃ, āvuso, imasmiṃyeva byāmamatte kaḷevare sasaññimhi samanake
lokañca paññapemi lokasamudayañca lokanirodhañca lokanirodhagāminiñca paṭipadanti.)
我今但以一尋之身,說於世界、世界集、世界滅、世界滅道跡。赤馬天子!何等為世間?謂五受陰(一尋(=八尺 / 六尺)
(SN35:116)" 벗들이여, 그것을 통해 세계에 대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마노에 식별할 때에 그것을 고귀한 님의 정의에 따라 세계라고 부릅니다.
도반들이여, 이 세계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자와 세계를 마노에 식별하는 자는
그것을 두고 성자의 율에서의 세계이라 말합니다.(
Yena kho, āvuso,
lokasmiṃ lokasaññī hoti lokamānī –
ayaṃ vuccati ariyassa vinaye loko.)
마노는 문지기를 의지한다..
문지기는 사띠를 두고 한말이다...
이해될듯..안되고 그러다가..여러번 읽고 생각하고 이해한것 같은데..어렵네요ㅠ
사두 사두 사두🙏🙏🙏
부처님처럼 수행이 먼저 있었기에 그에 대한 니까야 언설이 있답니다.
"마노가 문지기sati를 의지한다"는 이러한 경문을 수행에서 체험할 수가 있답니다. 이렇게 함 해보시길 권해요.
손 등에 숨을 후하게 불어보세요. 이렇게 닿아 사라지는 느낌처럼 붓다의 호흡 명상이라는 '아나빠나 사띠(안반선)'를 개발하세요. 즉, 긴 들숨과 긴 날숨과 긴 들숨 및 날숨 등의 3가지로 구분해서 15분 연습하면서 입술위에서 숨이 닿아 사라지는 촉감(니밋따)만을 문지기로 삼아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가 있다면 비로소 사띠sati를 확립한 것이랍니다.
이때, 촉감이 일어나 사라지는 것을 법이라고 말하고,
그 법을 대상으로 헤아리는 감각기능根을 마노意이라고 하죠.
자! 봅시다.
여기서 마노意가 일어나 사라지는 촉감의 니밋따에 대한 관찰인 문지기sati에 의해서 드러나게 되었죠.
그래서 마노意는 사띠sati를 의지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