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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의 금강경 핵심강좌 제14회 (제십사 관념을 떠난 열반-(1) )제14 이상적멸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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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모든 상을 떠나면 밝은 지혜로서만 이해되는 적멸의 실다운 상이 나타난다.
<상(相)을 떠나 적멸하다(1)
수보리가 지금까지의 법문을 듣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린다. 처음 있는 일이며 희유한 일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경전을 듣고 신심이 청정해진다면 곧 실상이 밝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제일가는 공덕, 희유한 공덕을 성취할 것입니다. 부언하건대 실상이란 모양다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실다운 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실상이란 무엇인가. 일체의 모든 법의 진실한 상태를 뜻한다. 모든 법의 진실한 상태란 본래로 생기지도 아니하고 소멸하지도 아니하며 원만하고 걸림이 없으며, 평등하여 실제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우주만유보다도 먼저 있으되 시작이 없으며, 우주만유보다 더 뒤에 있으되 마침이 없다. 그래서 실상은 곧 나이며, 곧 너이다. 실상은 곧 반야이며,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이러한 실상을 깨달은 사람은 일체상을 떠났을 것이므로 제일 희유한 사람이며 바로 부처님이다.
제14.이상적멸분(1)[제십사 관념을 떠난 열반(1)]
이시 수보리 문설시경 심해의취 체루비읍 이백불언
희유 세존
爾時 須菩提 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希有 世尊.
그때 수보리가 이 경을 설하심을 듣고 뜻을 깊이 이해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불설 여시 심심경전 아종석래 소득혜안 미증득문
여시지경
佛說 如是 甚深經典. 我從昔來 所得慧眼. 未曾得聞
如是之經.
제가 지금까지 얻은 혜안으로는 부처님께서 이같이 깊이 있는 경전 설하심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세존 약부유인 득문시경 신심청정 즉생실상 당지 시인성취제일 희유공덕
世尊 若復有人 得聞是經 信心淸淨 卽生實相 當知 是人成就 第一 希有功德.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음이 청정해지면 바로 궁극적 지혜가 일어날 것이니, 이 사람은 가장 경이로운 공덕을 성취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존 시실상자 즉시비상 시고 여래설명실상
世尊 是實相者 卽是非相 是故 如來說名實相.
세존이시여! 이 궁극적 지혜라는 것은 궁극적 지혜가 아닌 까닭에 여래께서는 궁극적 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 아금득문여시경전 신해수지 부족위난
世尊 我今得聞如是經典 信解受持 不足爲難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 같은 경전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고 지니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약당래세 후오백세 기유중생 득문시경 신해수지 시인 즉위제일희유
若當來世 後五百歲 其有衆生 得聞是經 信解受持 是人 卽爲 第一希有.
그러나 미래 오백 년 뒤에도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고 지닌다면 이 사람은 가장 경이로울 것입니다.
하이고 차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소이자하 아상 즉시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시비상
何以故 此人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所以者何 我相 卽是非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是非相.
왜냐하면, 이 사람은 자아가 있다는 관념,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아가 있다는 관념은 관념이 아니며,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은 관념이 아닌 까닭입니다.
하이고 이일체제상 즉명제불
何以故 離一切諸相 卽名諸佛.
왜냐하면, 모든 관념을 떠난 이를 부처님이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불고 수보리 여시여시
佛告 須菩提 如是如是.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렇다.
약부유인 득문시경 불경 불포 불외 당지 시인 심위희유
若復有人 得聞是經 不驚 不怖 不畏 當知 是人 甚爲希有.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 하지도 않는다면 이 사람은 매우 경이로운줄 알아야 한다.
하이고 수보리 여래설 제일바라밀 즉비제일바라밀 시명
제일바라밀
何以故 須菩提 如來說 第一波羅蜜 卽非第一波羅蜜 是名
第一波羅蜜.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는 최고의 바라밀을 최고의 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였으므로 최고의 바라밀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수보리 인욕바라밀 여래설 비인욕바라밀 시명인욕바라밀
須菩提 忍辱波羅蜜 如來說 非忍辱波羅蜜 是名忍辱波羅密
수보리여 인욕바라밀을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였다
하이고 수보리 여아석위 가리왕 할절신체 아어이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 歌利王 割截身體 我於爾時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왜냐하면 수보리여!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온몸을 마디마디 잘렸을 때 나는 자아가 있다는 관념,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이고 아어왕석 절절지해시 약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응생진한.
何以故 我於往昔 節節支解時 若有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應生嗔恨.
왜냐하면, 내가 옛날 마디마디 사지가 잘렸을 때, 자아가 있다는 관념,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있었다면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第十四 離相寂滅分
제 십사 이상적멸분
離相寂滅(이상적멸), 그렇습니다.
상을 떠남으로 해서 적멸하다. 상을 떠남으로 해서 적멸하다 했는데 이게 이제 第十四에 참 중요한 내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第十四 離相寂滅分
제 십사 이상적멸분
爾時에 須菩提가 聞說是經하사옵고 深解義趣하사 涕淚悲泣하사
이시 수보리 문설시경 심해의취 체루비읍
그랬습니다.
청량국사는 화엄경을 보다가 ‘하 내 죽을 곳을 얻었다! 내가 이 화엄경에서 죽어야지!’이런 표현을 했다면은, 여기 수보리는 涕淚悲泣(체루비읍)이라, 지금까지의 설명을 듣고는 그 깊은 이치를 알아가지고서 정말 체루비읍이라고 하면 그냥 막 그냥 펑펑 우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고, 눈물, 콧물 막 흘리고, 정말 슬프고 감동스럽고 이런 표현입니다. 우리도 사실 공부하다가 부처님 말씀에 정말 이 눈물 흘려야 되는데 모르겠습니다 스님들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일동 웃음) 참, 많고 정말 훌륭한 가르침인데, 아무튼 수보리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기서.
而白佛言하사대
이백불언
希有世尊하
희유세존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佛說如是甚深經典은 我從昔來所得慧眼으로 未曾得聞如是之經호이다
불설여시심심경전 아종석래소득혜안 미증 득문여시지경
그랬습니다. 부처님께서 지금 설하신 이와 같이 깊고 깊은 경전은 내가 옛날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왔지마는 그동안 쌓아온 지혜의 눈으로도 아직 한번도 이와 같은 경은 얻어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뜻이죠.
世尊하 若復有人이 得聞是經하고
세존 약부유인 득문시경
세존이시여!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信心淸淨하면 則生實相하리니 當知是人은 成就第一希有功德이니이다
신심청정 즉생실상 당지시인 성취제일희유공덕
그랬습니다.
‘나는 뭐 이렇게 눈물을 펑펑 흘릴 정도로 감동했습니다.
딴 사람도 이 금강경을 들으면은 믿는 마음이 청정해져서[信心淸淨(신심청정)하면] 곧 실상을 내리라[則生實相(즉생실상)]’,
그랬어요. 則生實相(즉생실상) 그랬습니다.
‘실상을 낸다’고 하는 게 참 이상한 표현이죠. 뭐 실상이 도대체 뭔가? ‘신심을 내리라!’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신심이 청정해가지고서 則生實相(즉생실상)한다 그랬으니까 실상에 대한 지혜, 실상에 대한 이해, 그것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존재의 실상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그래서 則生實相(즉생실상)이에요.
왜냐하면 실상은 이건 뭐 어떤 유용한 어떤 물질도 아니고,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이치이기 때문에 이치는 이미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에게서나, 모든 생명체에게서 있는 것인데, 그 있는 것의 실다운 그런 이해, 아주 제대로 보는 안목, 안목이 난다! 이해가 생겼다! 뭐 이런 의미로 生(생)자를 봐야 할 겁니다 .
그렇다면은 실상에, 존재의 실상에 대한 이해가 생긴사람[信心淸淨(신심청정)하면 則生實相(즉생실상)하리니]이라면
當知是人은
당지시인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成就第一希有功德이니이다
성취제일희유공덕
제일가고 희유한 공덕,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것이 된다. 그랬습니다.
그렇죠.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 그냥 평범하게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살았는데,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그런 것들이 실지로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그 내면을 꿰뚫어 보니까 너무 시원하거든요.
하~ 나라고 하는 존재,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뭐 명예나, 재산이나, 그 모든 것들이 정말 뭐 미움이나, 사랑이나 이 모든 것들이 아 참 금강경에서 이야기한 대로 즉비미움이요, 즉비사랑이구나!
즉비미움이요, 즉비사랑이구나!
즉비명예고, 주지도 즉비주지구나! 곧 아닌 주지야. 없는 주지라고.(일동 웃음), 그래서 거기로부터 확 시원하게 깨어났어, 이제. 하~ 그 참 여름에 땀을 잔뜩 흘려갖고는 목욕도 못한 것 같은 그런 찝찝~한 끈적끈적한 그런 어떤 그 의식이 내~ 끌려 다녔는데 내 딸려 다녔는데 아 이 금강경을 보고 즉비반야요, 즉비삼십이상이요, 즉비중생이요, 즉비제불이요, 즉비미진이요, 즉비세계요, 모든 것이 다 ~ 그렇게 알고 보니까 ‘즉비’인것을, 아 이렇게 알면은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사실.
이게 확연히 우리 가슴에 탁 와 닿는다면은 정말 이거는 정말 불법만난, 어마어마한 그야말로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제일 가고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것이다!’
그러니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보시한 그 인연으로 얻은 공덕보다도 이 금강경 사구게의 공덕이 훨씬 크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거짓말이 아니고, 유혹할라고, 공부하라고 유혹할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유혹당해가지고 금강경을 읽어요.
하~! 복이 그렇게 많다니까 그 복, 복! 이렇게 생각하고 일단은 금강경을 좋아합니다. 부처님 마음은 그게 아니에요, 사실은!
사실은 이 이치를 제대로 꿰뚫어 알면요 저 금정산만한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훌륭한 그런 그 정신세계를 영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이치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은 아! 펑펑 울다가 깨어나가지고
‘나는 이렇게 감동했습니다! 정말 지금까지 나는 이런 말씀 못 들었습니다! 未曾得聞如是之經(미증 득문여시지경)!’
하고는 딴 사람은 어떨까요? 딴 사람은 어떨까요?
만약에 다른 어떤 사람도 정말 존재의 실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난다면은, 생긴다면, 則生實相(즉생실상)한다면은,
當知是人(당지시인)은 成就第一希有功德(성취제일희유공덕)이니이다!
이 사람은 제일가고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것이 된다!
이렇게 어떤 자기의 그 느낌을 갖다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世尊하
세존
세존이시여!
是實相者는
시실상자
‘실상’하니까 또, 또 덥석 물죠. ‘한로(韓獹)’주3) 똥개처럼. 던지기만 하면 던지는 족족 문다. 똥덩어리를 던지든지, 흙덩어리를 던지든지, 뜨거운 감자를 던지든지, 뜨거운 무를 던지든지 지가 이빨이 빠질 건지 안 빠질 건지 그것도 모르고 덥석 무는 거야, 이거. 어리석은 개는 그렇다구요.
그래 우리 중생의 그런 속성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거라. 그래서 좋은 말 한 마디 하기가 너무 겁이나 사실은.
앞에서 금강경도 그랬고, 여기서 ‘실상’하니까 얼마나 근사한 용어야?
‘실상’, 존재의 실상, 실다운 모습!
무슨 문제가 생겼다, 정치적인 문제 뭐 어떤 문제, 그 실상이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었을까, 그런데 우리는 ‘모~든 존재의 실상’을 여기서 두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실상을 두고!’
그러니 얼마나 이게 무게 있는 말입니까? 실상!
뭐 저기 일본에 ‘생명의 실상’이라고 아주 수 천만권이 팔린 그런 책도 있습니다. 이 실상이란 말 가지고.
그래 이런 말 좋긴 좋지만 쓰기가 아까운 거야. 쓰기가 겁나는 거야, 아깝다기 보다. 덥석 무니까. 뜨거운 무 구워가지고 그 저기 저 개에게다 던지면 그 개가 덥석물면 이가 쏙 둘러 빠진다 그러거든요. 중생이 마치 그와 같은 입장이라!
그래서 뭐라고?
是實相者는 則是非相일새
시실상자 즉시비상
즉비입니다.
是故로 如來가 說名實相이니이다
시고 여래 설명실상
名實相(명실상), 실상이 실상이 아니야!
그저 말을 하자니, 편의상 표현하자니, 실상이야. 말을 하자니 실상이지. 그러나 그 말은 또 우리에게 정말 뭔가 실상을 한 70%~80%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하나의 좋은 방편이 되는 거야.
그런 입장에서 보면 이 참 좋은 말이라.
그런 뜻입니다. 아무튼 실상도 앞에서 뭐 32상, 미진, 세계, 금강경 뭐 등등 다~ 이야기해 거론해 왔죠.
여기 와선 실상을 또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世尊하 我今得聞如是經典하고 信解受持는 不足爲難이어니와
세존 아금득문여시경전 신해수지 부족위난
내가, 저 같은 사람이야 뭐 공부 많이 했으니까 이 경전을 듣고 信解受持(신해수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마는[不足爲難(부족위난)],
若當來世後五百歲에
약당래세 후오백세
若當來世後五百歲(약당래세 후오백세)에其有衆生(기유중생)이,
당래세, 미래, 후오백세, 후오백세라면 전번에 말씀드렸듯이
오백년, 오백년, 오백년을 잘라서 이제 후오백년 그랬어요.
이 대승경전이 불멸 오백년경에 결집이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당시로서 그 오백년이라고 하는 기점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불교 교리에도 이 오백이란 말을 잘 써요. 특히 대승경전에서.
법화경 같은데도 오백년이란 말을 잘 쓰고, 금강경에서도 오백년이란 말이 나오고, 그렇습니다.
其有衆生이 得聞是經하고
기유중생 득문시경
그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듣고
信解受持하면 是人은 卽爲第一希有니이다
신해수지 시인 즉위제일희유
(믿고 이해하고 받아 가지면) 是人(시인)이 사람은, 卽爲第一希有(즉위제일희유), 제일가고 희유할지니
何以故오
하이고
왜냐하면
此人은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이니 所以者가 何오
차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소이자 하
이 금강경은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이다, 그랬어요.
四相(사상)이 다 떨어졌다, 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금강경은 그야말로(기침하심) ‘무상으로 위종한다’ 그랬어요. 첫 시간에. ‘무상으로 위종한다’, 그랬기 때문에 그 ‘相(상)’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에 다 해당된다, 모든 것에 다 해당된다, 라고 하면서 그 모든 것을 낱낱이 열거하고 있잖아요. 부처님 삼십이상도 열거하고, 다 해당된다 이거예요.
금강경도 거기에 해당된다, 微塵(미진)도 거기에 해당된다, 세계도 거기에 해당된다, 그런 뜻입니다, 이게, 금강경도.
알고 보면 그런 뜻이에요.
그래 모든 ‘相(상)’은 다 해당되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모든 ‘相(상)’에서 다 벗어날 수가 있다, 이 말입니다.
此人은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이다
차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所以者가 何오
소이자 하
我相이 卽是非相이며 人相衆生相壽者相이 卽是非相이라
아상 즉시비상 인상중생상수자상 즉시비상
我相(아상), 아상 하고 이야기하니까 도 뭐 아상이 실재하는 것처럼 또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我相(아상)이 卽是非相(즉시비상)이라, ‘즉비’죠, 역시‘즉비’.
아상 즉시비상이다!
人相衆生相壽者相(인상중생상수자상)이 卽是非相(즉시비상)이라 역시 ‘즉비’다.
卽非(즉비) 金剛經(금강경)! 즉비 금강경이라고 내가 그렇게 말씀드렸죠.
또는 卽非經(즉비경)!
‘卽非經(즉비경)’이라 해도 뭐, 아마 부처님이 좋아하실거예요. ‘즉비경’, 아! 그 금강경을 해석 잘 했다. 그렇지, ‘卽非經(즉비경)’이지 바로. 모든 존재에 대한 것을 한마디로 그야말로 벼락을 쳐서 사물을 깨드리듯이, ‘즉비’라고 하는 이 말 한 마디로써 모든 존재의 상을 깨뜨리는, 실상 마저도 깨뜨린다!
실상이 실상이 아니라 이 이름이 실상이다 했으니까, 실상마저도 깨드려 버리는 게 이 금강경이다 이거예요.
卽是非相(즉시비상)이다!
何以故오 離一切相을 卽名諸佛이니이다
하이고 이일체상 즉명제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제일 좋아하는 의미도 있지마는, 금강경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離一切相(이일체상)을 卽名諸佛(즉명제불)이다, 이말입니다.
이 일체상을 떠난 것이 곧 부처다!
부처님, 그것도 제불 그랬어요. 제불하고 우리가 부처님에 대한 그 존경심, 그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 위대함, 그 자비와 그 지혜와 특히 대승경전에서 부처님에 대해서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설명해 놨습니까?
대~단한 분으로 설명해 놨습니다. 그 모든 것 다 포기하고, 그 찬탄, 부처님에 대한 그~ 많고 많은 찬탄, 佛所行讚(불소행찬)주4)에서 부처님을 그냥 하루 종일 찬탄하는 그런 찬탄 다~ 포기하고, 딱 한 마디로 이 離一切相(이일체상)을 卽名諸佛( 즉명제불)이다, 찬탄, 그거 시시한 거 하지 마라 이거야! 일체상 떠난 것이 부처다!
아! 무서운 소리입니다.
그야말로 참, 불자가 안 써야 될 용어가 ‘寸鐵殺人(촌철살인)’, ‘살인’이란 말이 있으니까.
이 말이야말로 ‘寸鐵殺人(촌철살인)’이에요, 이건.
부처님에 대한 그 위대성, 그 찬탄, 다~ 배제해버리고, 딱 한 마디로 ‘일체상 떠난 것이 부처다’그래버렸어요.
우리도 사실 일상생활에서 진정으로 상을 떠나서 살면은 부처로 존중받습니다.
존경받아요. 부처로 존경받으려고 상을 떠나면 안 되고, 진정으로 상을 떠나면은 (그건 상떠난 사람이 아니죠. 존경받으려고 상 떠나면 그건 안 돼죠.)
진정으로 참, 상을 떠난 사람은 정~말 부처님처럼 존경받습니다.
이게 사실이에요.
‘離一切相(이일체상)을 卽名諸佛(즉명제불)이다!’
이건요 어마어마한 투기입니다, 이거요!
이거 만약에 못 알아들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부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님은 어마어마한 분인데, 그런데 이거 딱 한 마디로써 부처님을 표현했다 이말이여!
세상에 이런 투기가 있어요?
여기다 올인 한 거예요, 한마디에.
알고 보면은 사실은 이게 차~~암 금강경에서, 다른 경에서는 허용이 안 됩니다, 이 말은. 단 금강경에서 이 말이 허용이 됩니다.
離一切相(이일체상)을 卽名諸佛(즉명제불)이다
모~든 많은 가르침을 딱 한 마디로 여기다 실었어요. 그 무게를 전부 한 마디로 다 실어가지고 부처님을 표현했는데, 그것은 결국은 어쩌자는 것이냐?
부처님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 우리들 자신이 부처로 사는 길은 뭐냐? 상 떠난 것이다!
뭐 복 짓고, 뭐 지혜 닦고, 뭐 무슨 공부 많이 하고, 참선 많이 하고, 염불 많이 하고, 많이 알고... 그런 게 아니다, 이거예요, 이 금강경에서는.
상 떠날 줄 알면 그건 부처 노릇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에요.
상 떠날 줄 아는 그 사람이 부처 노릇 하는 것이다!
이걸 뭐 사실 책을 한 권을 써도 다 못 쓸 정도의 말입니다.
‘離一切相(이일체상)이 卽名諸佛(즉명제불)이라!’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如是如是하다
불 고수보리 여시여시
‘如是如是(여시여시)’그런데 이 말이, 이 말이 부처님 당신의 말이 아니야. 수보리 말이라구요.
그 말 듣고 부처님은 ‘如是如是(여시 여시)!’ 그저 인가를 했을 뿐이야, 그 말을.
수보리 참, 대단하죠? 어. 수보리에게는 부처님의 자비도 모른단 말인가? 지혜도 모른단 말인가? 그~ 많고 많은 찬탄을 모른단 말인가?
잘 알지요. 알지마는 금강경에서 이렇게 표현을 하니까 부처님이 있다가 수보리보고 ‘如是如是(여시 여시)!’다! ‘맞다! 맞다!’‘참 너야 말로, 그대야 말로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다!’‘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오직 너다!’
若復有人이 得聞是經하고
약부유인 득문시경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얻어듣고
不驚不怖不畏하면 當知是人은 甚爲希有니
불경불포불외 당지시인 심위희유
왜 不驚不怖不畏(불경불포불외)란 말이 나왔어요?
왜 나왔느냐 .. 이게 놀랄 소리 아닙니까?
‘離一切相(이일체제상)이 卽名諸佛(즉명제불)이라!’
어떻게 부처님을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까? 부처님이 그 어느 안전이라고
어떻게 부처님을 그렇게 표현하느냐, 덜덜 떨거야. 정말 몸 둘 바를 모를 거야.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거 도대체가.
그게 驚(경),怖(포),畏(외)입니다.
다 놀랍다, 뭐 두렵다, 같은 뜻이죠. 不驚不怖不畏(불경불포불외),
당연히 두려워해야 되는데, 만약에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받아들이고
不驚不怖不畏(불경불포불외)하면,
當知是人은 甚爲希有니
당지시인 심위희유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대단히 희유한 사람이다! 대단히 희유한 사람이다!
부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떻습니까? 참,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분인데, 이렇게까지 표현했으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如來가 說第一波羅蜜이 非第一波羅蜜일새 是名第一波羅蜜이니라
하이고 수보리 여래 설제일바라밀 비제일바라밀 시명제일바라밀
여기 이제 뒤에 忍辱波羅蜜(인욕바라밀)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것을 이제 보시바라밀을 제일바라밀로 대개 그렇게 이제 해석을 합니다. 그렇게 해석하는데, 우리가 흔히 이제 또 일반적으로 ‘제일 바라밀’하고 ‘제이 바라밀’ 이렇게 쓰는 경우는 그런게 있어요. 이제 ‘主波羅蜜(주바라밀)’, ‘助波羅蜜(조바라밀)’,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어요.
여기는 물론 ‘布施波羅蜜(보시바라밀)’이라고 보면 무난합니다.
주바라밀, 조바라밀, 그런 게 있어요.
‘參禪(참선)’한다고 하면은, 참선은 화두 드는 게 주바라밀이야.
근데 조바라밀, 도울 助(조)자, 부수적으로 해야, 닦아야할 바라밀이 있어.
그건 뭔고 하니 ‘看經(간경)’이야. 그래, 경을 위주로 사는 사람은 간경이 주바라밀이야. 그 다음에‘參禪(참선)’이 조바라밀이야. 조바라밀이라구요. 그게 있어야 돼요. 근데 조바라밀은 한 가지 뿐만이 아니야. 경도 보고, 뭐 염불도 하고, 행정도 하고 뭐 그래야 되겠죠.
그래 주지사는 사람은 ‘주지생활’이 주바라밀이야. 주바라밀이 돼야 된다 구요.
그 다음에 나머지는 조바라밀이야. 이런 식으로 우리가 살아가는데도 내 주바라밀은 무엇일까? 나의 조바라밀은 무엇일까?
이런 것을 정해놓고 수행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如來가 說第一波羅蜜이 非第一波羅蜜일새 是名第一波羅蜜이니라
하이고 수보리 여래 설제일바라밀 비제일바라밀 시명제일바라밀
또, 즉비[非(비)] 나왔죠.
즉비 전부 계산하면 스물 몇 개가 됩니다.
계산해 보세요, 여러분들.
(스님, 잠깐만 좀 ~ 하겠습니다.)(가마이있어(보자), 끝내고, 다 끝낼 때 됐어.)
그 다음에
須菩提야 忍辱波羅蜜을 如來가 說非忍辱波羅蜜일새 是名忍辱波羅蜜이니라
수보리 인욕바라밀 여래 설비인욕바라밀 시명인욕바라밀
그랬습니다.
인욕바라밀에 대해서 이제, 이렇게 이제 뭐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모든 바라밀이 다 똑 같은 경우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 하고, ‘何以故(하이고)오 부터는 이제 잠깐 쉬었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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