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7일 ~ 8일
졸업을 앞둔 학생과 학교를 떠나게 될 선배들이 있어
후배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전주한옥마을 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처음에 여행 장소를 두고 어디를 갈지 말이 많았지만
다수가 전주에 가본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최종적으로 전주가 선택된 것이다.
그런데 일정을 짜면서 전주에 있는 볼거리와 명소들을 단 몇시간 만에 후딱 지나가는 계획을 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억에 남는게 별로 없고 의미도 없으니
시간을 널널하게 잡고 중간에 카페를 들리는 등 쉬는 시간을 넣으라고 선생님이 조언해주셨다.
특히 전주에서 더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려면 한복을 입고 한옥마을 거리를 걷는 체험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경환이는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게 부끄럽다고 질색하자 이런 기회가 또 없을거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나중에 아쉽게도 예산 문제로 인해 한복 대여는 무산되버렸다.
아침부터 연락이 안되는 혁수가 또 택시를 타고올까봐 마음이 심난했다.
차로 타도 한참 걸리는 거리를 택시 타고 온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이번엔 도 단위로 더 멀기 때문에 결판을 내야했다.
어이가 없는건 선배인 나를 통해 연락이 온게 아니라 경환이를 통해서 연락을 한 것이다.
며칠 전부터 독감에 걸렸단다. 그래서 우린 쉬는 것을 권했다.
차를 타고 출발하던 도중에 또 연락이 왔다. 컨디션이 괜찮으니 여행에 같이 참여하고 싶다고.
어디로 나오면 되냐고 하자 만나는 장소를 정해서 기다리고 같이 합류하게 됐다.
전주하면 비빔밥이 유명하기에 남부시장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게됐다.
그러다 우연히 남부시장에서 청년 상인들이 운영한다는 소규모 식당들과
공방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그 거리를 잠깐 들리게 됐다.
작은 공방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책이나 잡다한 장식물들을 감상하고 조용히 나왔다.
풍남문을 한바퀴 돌고 광장에 나오니 뜻밖에도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작은 천막이 있었다.
그곳에서 향을 피워 묵념을 하고 보라색 리본을 받을 수 있었다.
세월호 추모를 상징하는 리본은 노란색인데 보라색은 이태원 참사를 추모를 뜻한다는 걸 새롭게 알아갔다.
경기전에 입장해 이성계의 어진부터 시작해서
경기전 내에 모든 유적과 볼거리들을 빠짐없이 다 보고 말겠다는 마음을 먹고 돌아다녔다.
그러자 선생님도 그렇게까지 볼 체력이 없어서 자신 없는데 그걸 시도하는 우리들이 대단하다고 하셨다.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워져서 한옥이 보이는 건물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아다녔다.
선배인 나와 유준형이 음료를 쏘기로 했는데
거르고 걸러 찾아 들어간 카페에 음료 값이 다른 곳보다 비싸 놀랐다
그렇지만 크게 한턱 낸다 생각하고 따뜻하게 휴식을 취했다.
전동성당 입장 시간이 되고 성당 안에 들어가 기도를 올렸다.
성당 밖에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조각상이 있었는데
아무도 이 조각상의 이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적어도 어디를 갔다 오면 한 두가지 정도의 정보라도 정확히 알아야
남들 앞에서 말할 수 있기에 돌아온 날 이 작품에 대해 알아오기로 했다.
이후 측우대와 측우기를 보러 가는 일정이 계획에 있었지만
오목대와 자만벽화마을로 가는 거리와 동선이 멀어서 아쉽게도 못가게 됐다.
오목대에서 한옥마을 전경을 내려다보며 한옥으로 된 건물들을 원 없이 구경했다.
유적지를 다 돌고 디스코팡팡과 노래방에서 날이 어두워지도록 시간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온 후 남자방은 시끌시끌했다.
바로 옆방이 사장님 방인데 애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탁자가 없어서 편의점에서 사온 컵라면과 간식들을 바닥에 놓고 먹기 시작한다.
빨간 국물이 이불에 튈까봐 이불을 멀리하라고 외친다.
다 먹고는 서로 위로 올라 누워서 햄버거 놀이를 하는 것이다.
정신 사납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한옥 마을을 벗어나
전주 국립 박물관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놀랐고
놀거리도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뷔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최대한 굶었다가 갈 계획이었는데
아침에 조식으로 빵을 먹고 이른 점심을 먹고 온 탓에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박물관에서 허기가 지기를 바라면서 최대한 움직였다.
그러나 뷔페에 도착했을 땐 반찬들이 거의 소진되어 있어서
아쉬운대로 남은 잔반들을 먹었다.
그런데 현서만 다른 테이블에서 혼자 밥을 먹고있는 것이다.
따로 거리를 두고 있는 게 신경 쓰여
챙겨줘야 되는거 아니냐 말을 꺼냈지만
다른 애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너가 해’라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고
현서에게 다 들리게 말을 꺼낸터라
계속 지체되면 무안해질 것 같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나서고 말았다.
내 역할은 내가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게 아니라
남들에게 일을 시키는 거라고 마리아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셨는데
그 역할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
나중에 선생님이 오셔서 이 사실을 알게되고
결국 야단을 듣고 말았다.
나도 내가 이정도 밖에 판단 못해서 속상한데
여러번 가르쳐온 선생님은 오죽하실까 생각했다.
다음에 여행을 가게 될 때
역할을 다하지 못한 설움에 복받치는 마음으로 애써야겠다는 마음이 들끓었다.
여행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그런 마음가짐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날다에 돌아왔을 때 우리가 계획한 여행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남은 한달 잘 마무리 해보고, 모두 고생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