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도(道)의 허상과 초락도
깨닫고 보면 도는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그렇지만 깨닫기 전에는 구만 리 장천 멀고 먼 길이다.
도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의 고뇌 많은 삶은 도를 몰라서이며,
언제나 다른 데서 생(生)의 길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도는 한자 뜻 그대로 길이며, 우리의 참된 근본에 이르는 길이다.
그 길은 지금까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바로 우리의 몸, 마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가 인생의 궁극목표는 아니다.
도의 목표인 깨달음은 진정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기초 작업이다.
세상평화와 개개인의 평안은 그 기초 작업이 되었을 때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세상의 도는 이미 오래전에 목적지를 잃어버렸다.
왜, 도를 해야 하는지의 이유와 도의 필요 충분 조건을 제시해 주지도 않는다.
도의 의미는 변질되어, 참된 도를 구하는 자에게는 끊어진 길이 되어 버렸고, 일반인들에게는 건강이나 능력을 얻는 수단 정도로 인식되어 있다.
설령, 바른 도를 하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하늘의 지도가 바뀌어 있는 이 시기엔 기존의 수행법은 한계가 있다.
수행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천사만마(千邪萬魔)가 날뛰는 말세는 결코 번뇌마(煩惱魔)를 이겨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지나온 시대에 빛을 보았던 염불도, 기도도, 참선도, 명상도, 호흡도, 주문수행도 역시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경(寫經)을 하고 설법, 설교를 듣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위의 수행법들은 그나마 인간은 가슴 속에 순저(純情)이 살아있을 때 통했던 방편이었다.
도는 몸과 마음이 같이 되어야 하며, 마음만 깨닫는 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몸뚱이에 집적되어 있는 마(魔)의 파동 즉, 골수에 박힌 업장과 죽음의 그림자는 깨달음에 상관없이 절대적인 힘이 아니면 소멸되지 않는다.
위없는 깨달음을 얻은 성인도 세상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결국 죽음의 마(魔)를 깨뜨릴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천 도의 형편을 하늘이 간파하고 자기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 죽음의 마에 침해받지 않도록 준비해온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감로해인(甘露海印)과 감로의 도인 초락도다.
이 길은 나를 찾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치유하며,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도이며 처음으로 즐겁게 닦는 도인 것이다.
초락도는 성과 속이 따로 없는 모든 이의 깨달음과 자기변화의 길이다.
초락도는 내 뜻대로 살기 위한 도가 아니라 하늘의 뜻대로 살기 위한 도다.
하늘의 뜻은 우리가 개체를 버리고 전체로 거듭나는 것이며 서로 받들고 위하는 본디의 삶이다.
초락도는 의식의 깨달음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초락도의 결론은 탈겁중생이다.
탈겁중생은 '죽지 말고 살라는 하늘의 뜻'이며 이 세상의 도와 종교가 목표로 해온 참 해탈, 구원이다.
무엇보다 초락도는 천의(天意)를 살리려는 정성이 없는 자에게는 인연이 없는 도다.
천의 란 첫째는 자신을 살리는 것이며,
둘째는 남도 살 수 있도록 활인(活人)하는 것이다.
즉, '살고 살리는 것' 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기 살기에만 급급하면 잘 사는 줄 아나 그것이 온갖 불행비극과 죽음의 길인 줄을 결코 알지 못한다.
우리의 불행비극과 죽음은천의에 등을 돌린 결과이지만 사람들은 천의를 무시하는 것이 잘 사는 길인 줄 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상관없이,
하늘은 천의를 따르려고 자타를 살리는 사람을 그냥 보고 있지 않다.
인간에게 기울인 노력은 보답이 없을 때도 있고,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흉년일 때가 있으나 천의를 살린 결과는 불분명한 것이 아니다.
이 시대는 도와 인생이 따로 있는 시대가 아니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기이며 언제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를 불안이 팽배해 있는 말세다.
그러므로 도를 알고 모르고에 관계없이 말세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초락도를 찾는 길 밖에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초락도는 몸과 마음을 씻어 자신과 인생을 변화시키는 도이며 말세의 유일한 피난처다.
[격암유록] [54장 송가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雜저世上當末運에 不毛之獸丁寧하다 浮金冷金牛運에도 似人不人傳 했으며 (잡저세상당말운에 불모지수정녕하다 부금냉금우운에도 사인불인전했으며)"
뜻을 풀이하면, '설거지통 같이 온갖 잡스러운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말세의 운이 당도하면, 틀림없이 털 없는 짐승들이 미쳐 날뛰는 꼴을 보게 될 것이니 그때는 부금, 냉금의 우성(하느님)이 출현하는 운이라, 사람을 닮았으나 사람이 아닌 존재가 피난처임을 전했다' 이다.
여기서 털 없는 짐승이란 인간이 인간에게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하는 자들 즉,
이미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자들을 말한다.
부금, 냉금, 우성은 십승진인 미륵불의 대명사이며 사인불인은 사람과 유사하거나 사람이 아닌 사람이란 뜻으로 역시 미륵불의 대명사다.
초락도가 이 시대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는 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도이기 때문이다.
[격암유록] [5장 말운론]에는 이 시대는 도를 하지 않으면 죽으며 참된 도는 온갖 맺힌 것을 푸는 도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
"惡者不通不知卽 無道之人皆病死 (악자불통부지즉 무도지인개병사 비도각이무지사 도지인해원세)"
뜻을 풀이하면, '악한 자는 도가 통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은 즉, 도가 없는 사람은 모두가 병에 걸려 죽는다.
도가 아닌 것을 가지고 도를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지로인해 죽는다.
도를 하는 사람은 가슴에 맺힌 것을 푸는 세상이다' 이다.
다시 말해, 예사로 악업을 짓는 인생들은 도를 할 수 없고 관심조차 없으며, 참된 길이 나왔어도 모르고 병들어 죽는 것은 도를 모르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렇다고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매달리지 말고 맺힌 것을 푸는 도가 세상에 나와 있으니 각자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초락도는 천운(天運)이 있는 사람이라야 만날 수 있으며, 거짓 나를 진실로 죽여 거듭나겠다는 일심(一心)이 도의 중간과 끝을 결정짓는다.
초락도는 인간을 고해에서 건져내는 이 시대의 길이지만, 욕심이 많고 돈에 눈이 먼 사람에겐 인연 줄이 닿지 않고, 초락도에 들어왔더라도 진정한 자기변화를 도모하지 않는 사람은 결실을 거두기 어려운 도다.
더욱이 돈이 전부라고 하는 케케묵은 사고방식과 세상의 집착을 버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길이 끊어진다.
그런 사람은 초락도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락도는 개벽 이래 처음으로 즐겁게 닦는 도이지만 자신의 거듭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에겐 어려운 도인 것이다.
초락도는 사람이 펼치는 도가 아니라 이 시대의 하늘이 인도하는 도이며 우리가 가는 길중에 최상의 길이기 때문이다.
* 돈을 열심히 버는 것과 돈에 눈이 먼 것은 다르다.
잘 벌어서 잘 쓰는 것은 눈이 먼 것이 아니다.
돈에 눈이 멀었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빚을 내어서라도 하지만 자타를 살리는 일, 뜻 있는 일에는 한 푼도 쓸 줄 모르는 마음상태다.
* 돈을 열심히 버는 것과 돈에 눈이 먼 것은
다르다.
잘 벌어서 잘 쓰는 것은 눈이 먼 것이 아니다.
돈에 눈이 멀었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빚을 내어서라도 하지만 자타를 살리는 일, 뜻있는 일에는 한 푼도 쓸 줄 모르는 마음상태다.
* 돈에 눈이 먼 사람은 초락도의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다니다가 떠나게 된다.
돈으로 구할 수 없는 은혜를 보지 못하고 진리 강의도 듣지 않으며 복력에만 재미를 붙이고 현실공덕만 더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 인생고해에서 허우적거리던 목숨을 건진 것은 은혜로 생각하지 않고 돈이 나를 살린다고 생각하면 나중에는 목숨을 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