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착放下着
송영수
20여 년 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주를 했다. 전에 살던 집이 용담댐 수몰지로 별 수 없이 용담댐 최상류지역인 이곳에 새 집을 짓고 둥지를 튼 것이 벌써 22년이 지났다 하여 집이 많이 손상되고 벽이 부서졌다. 벽지가 떨어지고 창틈이 벌어지고 담장은 때가 끼고 대문은 부서지고 현관문 유리가 깨져서 폐가가 되기 일보 직전이다 더구나 나무 기둥과 흙벽으로 지은 집이어서 손상이 빠르고 나무기둥과 벽 사이가 벌어져 난방이 되지 않아 실내에서도 두터운 것 옷을 입어야 할 형편이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은 어떻게 견디겠는데 바퀴벌레가 출몰하였다 청소를 하고 주방 싱크대의 곳곳을 닦고 약을 뿌려도 바퀴벌레는 더욱 극성을 부린다. 급기야 주방기기를 모두 밖에 내놓고 쓸고 닦기를 수번 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결국 리모델링을 결심하고 추석 지나고 바로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 전 집안 구석구석을 치우는 것이 내 임무였다. 먼저 장롱을 정리했다. 입지 않는 옷가지가 장롱서랍과 옷걸이 구석구석에 가득가득 쟁여있고 이 보다 안 덮는 이불이 산덩이 같아 치우기조차 힘들었다. 물론 버리기는 너무 아까운 것들이어서 보관했던 것들이다. 올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내년엔 입어야지 하고 버리지 못하고 이불도 상용하지 않는 것이 더 많지만 혹여 손님이 올까봐 보관했었던 것이다. 한 번도 덮지 않았던 이불도 있으나 두꺼운 솜으로 만들어서 관리가 힘들어 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주방과 찬장에는 왜 그리 안 쓰는 그릇이 많은 지 여러 번 골라냈어도 지금도 산덩이다. 예쁘고 좋은 것은 못 버리고 안쪽에 잘 보관하고 행여 손님이 와서 상을 차릴 때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엔 손님도 안 온다. 만일 온다 해도 나가서 음식을 대접하게 되고 또 집에서 여럿이 식사할 일이 있다 해도 일회용 그릇을 쓰곤 한다. 설거지가 무서워 모두들 일회용을 쓰자한다
또 책장 속의 책들은 왜 이리 많은지 도서관을 차려도 될 만하다. 옛날에 사 두었던 세계문학전집, 세익스피어전집, 도스또엡스끼전집, 노벨문학상전집 등등과 각종 사전, 진안향토지, 수년간 매월 나온 월간지, 문학지, 연 1회씩 나온 문학지, 아는 문인들이 보내 온 문학 발간지 등 등 등...
특이한 것은 대강 모아 두었던 초,중,고 국어 교과서들과 유명 문학지들, 혼불1질, 토지1질, 태백산맥1질을 보관했고 어린이 책들도 상당량 모았었다 안내의 일기, 앤, 로마 이야기, 이야기 삼국지, 이야기 중국사, 어린이들의 글짓기 수상작 모음집. 교직에 있었기에 근무지에서 해마다 발간된 학교지 등 등. 문학지 들이 주를 이루었고 진안군에 관한 향토지 각종 건강 관련 문집 각종 사전, 나주임씨 족보는 책장 하나를 다 차지하였다.
안 쓰는 책, 옷, 이불, 그릇 이런 것들을 다 버리기로 하고 두고 싶은 건 상자에 넣어 표지를 써서 한쪽에 쌓았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도종환님의 「단풍드는 날」이라는 시를 읊조린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의미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단풍 드는 날
나무가 잎을 하나씩 떨어뜨리면서 황홀하게 물들게 되는 이치를 우리 사람들의 인생에 비유하여 쓴 시라고 생각한다.
그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이 가장 아름다울 거라는 데 동의 한다. 내가 가진 것이 심히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내 삶의 의미였던 것이고 나를 키우고 살찌워서 70여년을 무탈하게 향유케 한 모든 것들을 어떻게 내려 놓는단 말이냐. 귀하고 고맙고 감사한 내 생을 유지케 한 이 모든 것들을.
이 시에 나오는 放下着
불교 선종에서 정신적 육체적인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해탈하는 일 또는 집착을 일으키는 여러 인연을 놓아 버리는 일이 放下의 사전적 의미다.
아무리 귀중한 것이라도 때가 다하면 버리게 되는 것이 인생이어늘 4~50년이 지난 소지품들을 버려야 하는 것에 이렇게 가슴이 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