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굴복하는 일
하나님의 편을 선택하려면 항상 수반되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나의 뜻을 포기하는 일이다. 즉, 육신에 속한 나의 뜻과 나의 고집과 욕망을 포기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기 위해 자신을 굴복하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편을 선택할 때, 항상 함께 수반되어야 하는 일로서, 바울은 이것을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표현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 2: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이것은 예수께서 범죄하지 않기 위하여 지체 중 하나를 잘라내라고 하신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마태복음 5장 29,30절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정말 우리의 신체를 해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마음을 제어하라고 단호하게 경고하신 것이다. 만일 우리 몸이 병이 들고, 그 병이 몸에 퍼져 생명을 빼앗기게 되었다면, 그래서 우리 몸을 살릴 수 있는 치료 방법이 우리의 신체 중 일부를 절단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자신의 오른팔이라도 잘라내는 것을 감수할 것이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잘라내어야 하며, 그렇게 해야 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자아를 굴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죄로 기울어지는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유혹을 받을 때, 육신의 소욕대로 행하고 싶은 육체의 욕구가 우리 마음속에서 강하게 움틀거리며 올라온다.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기보다는 육신에 느껴지는 감정대로 행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기 위하여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뜻을 굴복하고 하나님의 편을 선택한다. 그것은 마치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것처럼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그래야만이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으며 영적인 생명이 소생될 수 있는 것이다.
2) 의지를 바치는 일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은 단순히 죄의 필연적 결과인 고통에서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타락하여 훼손된 영혼은 순결해지고 변화되어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시 90:17) 옷 입고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 (롬 8:29)아야 한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 (고전 2:9)한 것이다. 오직 영원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이 맞이할 영광스러운 운명을 드러낼 수 있다. 이 높은 이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는 영혼을 넘어지게 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죄가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의지를 통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지를 굴복시키는 것을 눈을 빼 버리거나 손을 베어 버리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표현하셨던 것이다.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이 평생을 불구나 절뚝발이로 보내기로 동의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자주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불구가 되고, 상처를 입고, 절뚝발이가 되더라도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더욱 좋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재난으로 생각하는 그것이 최고의 유익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려면 늘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만 그 영적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나면, 목숨은 잠시 부지할지 모르나 영적인 생명은 소유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침으로써만 그분의 생명을 받을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자아의 굴복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숨은 죄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자아에 매달려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거절한다면, 사망을 택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은 죄를 사르는 불이 되신다. 그러므로 죄를 택하고 죄에서 분리되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죄를 사르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의해 함께 불살라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것은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 고상한 것을 위하여 저속한 것을, 신령한 것을 위하여 세속적인 것을, 영원한 것을 위하여 사라져 없어질 것을 버리는 희생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파괴하려고 하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의지의 활용을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순결하고 깨끗하게 된 상태로 다시 돌려 받기 위하여, 매일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우리의 마음과 뜻대로 행하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쳐들때, 즉시 우리의 의지를 굴복하여 하나님의 편에 놓아야 한다. 우리의 의지는 매일, 아니 매 순간 하나님께 바쳐져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또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아낌없이 쏟아 부으실 수 있는 통로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그분과 늘 연결시켜 놓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특히 마음과 성격이 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들에게는 이런 굴복이 힘들고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그것은 유익한 것이다.
3) 우리가 해야 할 일
마태복음 5장 29~30절에 언급된, 범죄하지 않기 위하여 지체 중 하나를 잘라 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마음을 제어함으로써 우리의 몸도 제어하라고 하신 것이기도 하다. 이 성경 구절은 우리가 기도하면 그분께서 즉시 우리 삶에서 죄악적인 성향을 제거하실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하게 우리를 이끄시지만, 종종 우리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일을 포기하게 하시거나 혹은 어떤 일을 시작하도록 단호한 요구를 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만일 우리가 그 죄를 계속 품고 버리지 않을 때는 우리의 영적인 생명이 위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지를 바치는 일이나 죄를 버리는 일은 그 아무도 우리를 대신해서 해줄 수 없다. 그 일은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성령께서 감동하시고 또 기도하면 그렇게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어느 한 편을 선택하는 일, 의지를 바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행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의지의 선택이나 그 힘에 대해서는 가르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믿기만 하면 그 모든 일을 예수님께서 다 해주신다고 막연하게 믿고만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행할 일은 하지도 않고 말로만의 믿음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감화하심에 따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어느 한 쪽을 늘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동의 없이 억지로 그를 사단의 세력에서 구원하실 수 없으시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능력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힘으로써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악을 저항하여 싸워 이겨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것처럼 인간도 이겨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전능하신 이름으로 쟁취한 승리를 통하여 그는 하나님의 후사, 곧 그리스도와 공동 후사가 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싸워주셔서 이기셨다면 이런 특권이 주어질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몫을 해야 한다. 인간은 예수께서 주시는 힘과 은혜를 통하여 자기가 싸워 승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극복하는 일에 그리스도와 동역하는 자가 돼야 한다. 그래야 그는 그분의 영광에 동참하는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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