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신앙 • 성경 • 실천” 信仰・聖書・実践 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에 걸쳐서 은혜를 나누는 세 번째
시간으로서 실천 즉 “행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마지막 시간이기 때문에 행함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말씀 드렸던 믿음과 말씀에 대해서도 함께 종합적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대해서 논의를 하다 보면 종종 혼란이 생기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믿음과 말씀과 행함 중에서 특히 믿음과 행함의 관계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믿음과 행함 중에서 어느 쪽이 중요하냐 하는 것이지요.
우선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 구절을 듭니다.
로마서 4장 3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
聖書は何と言っていますか。「アブラハムは神を信じた。それで、それが彼の義と認められた」とあります。
로마서 4장 18절~22절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彼は望み得ない時に望みを抱いて信じ、「あなたの子孫は、このようになる」と言われていたとおり、多くの国民の父となりました。
彼は、およそ百歳になり、自分のからだがすでに死んだも同然であること、またサラの胎が死んでいることを認めても、その信仰は弱まりませんでした。
不信仰になって神の約束を疑うようなことはなく、かえって信仰が強められて、神に栄光を帰し、
神には約束したことを実行する力がある、と確信していました。
だからこそ、「彼には、それが義と認められた」のです。
이 말씀은 무엇이냐 하면 창세기 15장 3절~6절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15장 3절~6절
"3.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さらに、アブラムは言った。「ご覧ください。あなたが子孫を私に下さらなかったので、私の家のしもべが私の跡取りになるでしょう。」
すると見よ、主のことばが彼に臨
んだ。「その者があなたの跡を継いではならない。ただ、あなた自身から生まれ出てくる者が、あなたの跡を継が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して主は、彼を外に連れ出して言われた。「さあ、天を見上
げなさい。星を数えられるなら数えなさい。」さらに言われた。「あなたの子孫は、このようになる。」
アブラムは主を信じた。それで、それが彼の義と認められた。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은 당시 거의 100세가 된 고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사라도 역시 나이가 많아서, 당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상속자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들과 같이 많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즘은 도시 갈은 경우에는 아무리 맑은 날이라 하더라도 밤하늘에 별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기가 깨끗하고, 그리고 달이나
주변에 불빛 같은 것이 없는 사막 같은 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면 지금도 별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보인다고 하지요.
너는 지금 아들 하나만 달라고 하는데, 아니야, 내가 너에게 줄 축복은 아들 하나 정도가 아니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손을 네게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이것은 상당히 비현실적인 말씀이라고 하겠지요.
여러분께서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셨다면 기쁘실 것 같으세요?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 그러면 별로 안 기쁠 것 같으세요?
그렇다면 좀 우리에게 와 닿는 말씀으로 해 볼까요?
100세 가까운 사람이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내가 나이가 많이 먹었는데 지금 이 나이 먹도록 집 한 채가 없어요. 작은
단칸방이라도 좋으니까 집을 하나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기도를 드리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단칸방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집을 짓게 될 건설회사 사장으로 너를 시켜주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제가 탈 자동차가 없어요. 작은 차 중고라도 좋으니 한 대만 주세요. 라고 기도를 했더니 작은 중고차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동차를 만드는 자동차회사 사장을 시켜주겠다.
하나님, 제가 돈이 없어요. 매달 100만원 밖에 벌지 못해요. 이것 가지고는 생활이 안 됩니다. 정말 최소한 200만원 정도만
되더라도 좋겠어요. 제발 제 수입이 매달 200만원 정도가 되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했더니만, 아니야, 200만원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돈과 재산을 너에게 주겠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이와 같은 축복을 주시는 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어떠세요. 여러분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을 느끼시겠어요?
하지만 문제가 뭐냐 하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면 뭘 해요. 하루 이틀 나이는 먹어가지요. 실제 상황을 보면 전혀
이루어지는 것 같은 기미가 안 보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이를 믿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바로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라고 하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지요.
반면에 야고보서에는 어떻습니까.
야고보서 2장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が伴わないなら、それだけでは死んだものです。
야고보서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からだが霊を欠いては死んでいるのと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を欠いては死んでいるのです。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는 이를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하겠지요. 그렇다면 과연 믿음과 행함은 어느 쪽이 중요한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믿음만 있으면 된다, 라고 하고, 야고보는 아니다, 행함이 있어야 진짜 신앙이다…….이렇게 주장을 한 것이라면
서로간에 모순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가요?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은 그 내용에
있어서 서로간에 전혀 모순이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약에 앞서 살펴본 행함에 대한 구절 때문에 로마서는 믿음을 강조하고, 야고보가 행함을 중요시했다고 한다면,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은
행함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것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2장을 봅니다.
로마서 2장 13절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なぜなら、律法を聞く者が神の前に正しいのではなく、律法を行う者が義と認められるからです。
이처럼 바울도 행함의 중요성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믿음과 말씀과 행함의 관계를 명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말씀을 전할 때에 이 상호관계에 대해서 말씀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기록을 살펴보니까 작년 5월 달에 전해드린
말씀이었어요.
하지만 이번에 또다시 정리를 해보니까 조금 시각을 달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믿음과 말씀과 행함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작년에는 믿음이 씨이고 말씀이 밭이고, 행함이 가꾸기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아무래도
믿음이 밭이고, 말씀이 씨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무엇보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무거운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주시고는 부활하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우리의 모든 죄는 해결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그 귀한 믿음이야말로 기름진 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을 갖게 되는 계기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아직 예수님을 믿기 전에 누군가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주셔서 병이 나음을
받았다거나, 아직 믿음이 없을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했더니 문제가 해결 되었다거나, 여러 가지 경우는 있겠습니다만, 이
믿음이 올바로 서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하면,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안에 말씀을 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하나님의 축복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내 신앙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밭에 좋은 씨를 심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놔두기만 한다면
제대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끊임없이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잡초를 뽑아 주고 하면서 가꾸어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행함인 것입니다.
믿음과 말씀과 행함 중에서 하나만 빠지더라도 우리의 신앙은 흔들립니다.
먼저, 믿음이 없어지고 말씀과 행함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경에 대한 지식은 있습니다. 성경에 보니 예수님의 능력이 적혀 있어요. 이 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합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납니다. 병이 든 사람에게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해줬더니 병이 나았어요.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해줬더니 문제가 해결되었어요.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해줬더니 귀신이
물러갔어요.
이것만 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하지만 그 마음 안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23절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その日には多くの者がわたしに言うでしょう。『主よ、主よ。私たちはあなたの名によって預言し、あなたの名によって悪霊を追い出し、あなたの名によって多くの奇跡を行ったではありませんか。』
しかし、わたしはそのとき、彼らにはっきりと言います。『わたしはおまえたちを全く知らない。不法を行う者たち、わたしから離れて行け。』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그런 사람을 보면 누구나 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물리치고 많은 권능을 행했다 하더라도 이는 불법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파하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좋은 일인가요? 나쁜 일인가요. 이를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렇게 아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데 나한테는 그 아픈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약을 만들 수 있는 지식이 있었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을 수술할 수 있는 지식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수술을 하고 약을 지어서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어요. 그러면 참 좋은 일이잖아요? 그렇다면 저는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됐느냐. 칭찬은 고사하고 경찰한테 잡혀갔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예. 그렇습니다. 저는 수술을 할 자격이 있는
의사도 아니었고, 약을 지어서 줄 자격이 있는 약사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의사 자격이 있는 사람이 진찰했었어도 나와 같은 수술을
했을 것이며, 아무리 약사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약을 지었어도 제가 주었던 약을 지어주었을 것이라 하더라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이러한
일을 했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경도 알고 행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라고 하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하면 그와 같은 일들을 주님이 아니라
자신의 공로로 돌려버립니다. 주님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신앙은 올바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고 오히려 불법을 저지른 자가 되어버린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과 행함은 있는데 말씀이 없는 경우는 어떨까요. 이 또한 대표적인 거짓 선지자가 되고 맙니다. 그의 말에는 성경이
없습니다. 기도를 하니까 꿈에서 이런 계시를 받았다, 천사가 나와서 저런 환상을 보여주었다……뭐 이런 말이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아무리 한다 하더라도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까 엉뚱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마치 자기가 응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 생각이 마귀가 준 생각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 안에 성경 말씀이 없으니까 그것이 하나님 말씀인지 마귀의 장난인지도 구분이 안 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재수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어떤 기숙사에 살고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만, 아마도 밤 1~2시쯤이
아니었을까 해요. 주변은 다 조용할 때였는데, 갑자기 옆방에서 뻥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뭐, 그렇다고 대형폭발사고……정도는 아니고요. 하지만 그래도 무슨 물건을 떨어뜨리는 정도의 소리가 아닌, 모르긴 몰라도 분명히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근데 그게 다예요. 뭐 그 다음이 경보기가 울리거나 불이 나거나 심한 냄새가 나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저는 계속 하던 공부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제 방 문을 두드립니다. 그래서 누군가 하고 방문을 열어봤더니 옆방에 있는 학생이에요. 그래서 뭐 그
친구도 고3이었으니까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나 보죠.
그런데 제 방으로 찾아왔는데 얼굴을 보니까 하얗게 질려 있어요. 그래서 아까 무슨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는데 그게 너 방에서 난
소리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맞대요. 자기 방에서 난 소리래요.
그래서, 뭔가 터지는 소리 같던데 뭐가 터졌냐고 물었지요. 그러니까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전화기가 터졌대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무슨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도 아닙니다. 집전화기가 터졌다는 것이에요.
제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니, 어떻게 전화기가 터지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방 전화가 잘 안됐는데, 자기 친구한테
들었는데, 전화기 선을 전기 꽂는 곳에 꽂으면 전화가 된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착한 어린이와 철없는 어른들은 절대로 따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이 친구가 머리가 나쁜 친구가 아니거든요. 결국 대학은 꽤 좋은 명문대 좋은 학과에 들어갔어요. 공부에
대한 지식은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에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전화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겁
없이 저질러서 결국 전화기가 터지고 말게 된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고, 아무리 행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 안에 성경 말씀이 없다면 이는, 옥토에
씨를 심지 않고 물 주고 비료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아무 것도 안 자라요? 차라리 그러면
낫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번 해보십시오. 좋은 밭에 아무 것도 심지 않은 채로 물 주고 비료를 주기만 하면 온갖 잡초들이
생겨서 열매는 거두지 못하고, 잡초들로 인해서 밭만 엉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과 말씀은 있는데 행함이 없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계셨는지 모릅니다만, 저는 그런
사람을 몇몇 봐온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 기도도 많이 합니다. 방언 기도를 얼마나 기차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주일예배만이 아니라 수요예배, 금요철야,
그리고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나갑니다. 그리고 금식도 밥 먹듯이 하십니다. ……뭐 금식을 밥 먹듯이 한다는 것도 좀 말이
이상합니다만, 아무튼 금식도 그렇게 자주 하십니다.
교회도 오래 다녔고 직분도 있습니다. 저보다도 연배가 훨씬 위인 분이십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계세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이 분이 행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에서 봉사도 하지 않아요. 그저 기도하고 예배하고 금식하고 성경만
봅니다. 제가 이 분과 몇 번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럴 때마다 느낀 것이 뭐냐 하면 그 마음 안에 불평과 불만이 꽉 차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 마디 말씀을 나눌 때마다 얼마나 제가 피곤함을 느꼈는지 몰라요.
여러분, 행함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함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35절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新しい戒めを与えます。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
互いの間に愛があるなら、それによって、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弟子であることを、すべての人が認めるようになります。」
그렇습니다. 행함 중에 가장 아름다운 행함, 가장 중요한 행함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믿음이 있고 말씀을 많이 안다고는 하나, 그 안에 사랑이라고 하는 행함이 없다면, 이는 믿음이라고 하는 좋은 밭에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씨를 심었으나, 물도 주지 않고 가꾸지도 않았기 때문에 결국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서 열매를 거둘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요? 아닙니다. 행함이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지, 행함이 없는
사랑은 그야말로 있으나 마나 한 사랑, 죽은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 믿음이라고 하는 좋은 밭,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한 그 아름다운 밭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경 말씀을 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합니다. 이는 한 두 번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이나 밤이나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私が植えて、アポロが水を注ぎました。しかし、成長させたのは神です。
ですから、大切なのは、植える者でも水を注ぐ者でもなく、成長させてくださる神です。
바울은 참으로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공로로 돌리지 않습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믿음과 말씀과 행함을 겸비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는 믿음이라고 하는 밭에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심고,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행함으로 가꾸어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30배 60배 100배의 열매, 300배 600배
1000배의 열매를 거두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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