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쪽으로 난 산책로 옆에는 붉은색, 분홍색, 하얀색 영산홍이 지천에 깔렸다. 강렬한 색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계절에 따라 화원을 장식하는 꽃이 달라진다. 이른봄 벚꽃이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면 5월 중순에는 영산홍이 주인공이다. 동산에 영산홍이 가득하다. 영산홍 아래에는 앙증맞은 분홍색 꽃잎이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펼쳐져 있다. 영산홍은 철쭉의 한 종류다. 꽃이 진달래보다는 늦게 피고 철쭉보다는 일찍 핀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따르면, 영산홍은 조선 세종 때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1441년(세종 23년) 봄, 일본에서 바친 화분 몇 개를 왕이 뜰에서 기르도록 명하였다. 꽃잎이 크고 색깔도 석류와 비슷해서 세종은 즐겁게 감상하고 상림원에도 내려 나누어 심게 했다.
영산홍의 아름다움은 왕은 물론 선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중신들은 왕이 영산홍을 너무 좋아해서 정사를 돌보는 데 소홀할까봐 궁 안에 있는 영산홍을 베어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왕 중에는 특히 연산군이 이 꽃을 좋아해서 "영산홍 만 그루를 후원에 심으라"고 하명하기도 했다. 선비들도 영산홍의 매력을 높이 쳤다. 강희안은 '화목구품'이라는 화품론에서 꽃의 품계를 1품부터 9품까지 나누었는데, 영산홍을 3품에 두었다. 영산홍의 품격과 운치에 높은 평가를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