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영적 훈련-1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의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재촉하심으로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은 이 과정이 모든 성도들도 속성상 동일하다.(지도) 이처럼 아브라함의 삶을 잘 잘 공부하면, 은혜로 이 세상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성도가 이 땅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에 관해 잘 배울 수 있다. 큰 오해는 많은 분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어떤 수확을 거두고 싶어 한다. 자신이 선 자리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뀌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삶을 잘 공부해보면 성도가 겪는 이 땅에서의 삶은 전혀 그런 기대와는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간 아브라함이 처음 당도한 곳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였다.(창 12:6) 히브리어 ‘모레’는 ‘지침, 교사’의 뜻을 가지기에 그 단어는 종종 ‘무당이나 점쟁이’로 번역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수리나무’는 구약에서 가나안 종교의 문란한 종교의식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던 나무이다.(호 4:12-13)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도착한 가나안의 세겜 땅은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이방신전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처음 인도함을 받고 당도한 땅은 하나님께서 미리 잘 살라고 준비해 놓은 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곳은 풍요와 다산의 가나안 이방 신상과 이방 신전이 있는 땅이었고, 그 이방 신에게 속하여 풍요와 다산을 좇는 가나안인들이 우글거리는 땅이었다. 그는 가나안인 들의 냉대와 질시 속에서 정착을 할 수가 없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밀리고 밀려 계속해서 황무지뿐인 남방으로 쫓겨 가는 형국이었다.
풍요와 다산을 좇는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모든 이들을 경쟁자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낯선 이방인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기로 선택된 사람이었다.(현재 성도도 동일) 이처럼 성경은 지금 예수를 믿게 된 성도가 처음 맞게 되는 현실이 바로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라는 것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때 비로소 세상의 정체를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그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추악한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예수를 알게 되고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되면 그는 그 세상이 얼마나 죄가 많은 곳이며 그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들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훈련의 첫 번째 순서이다.(본토, 친척, 아비집의 허망함)
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바로 하나님 나라에 넣지 않으시고 세상과 사단과 그 사단의 자식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 던져 넣으실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속해 있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다름’을 그들 속에 있는 믿음을 발휘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라고 성도를 이 이방 땅에 던져 넣으시는 것이다.(벧전 2:9) 즉 하나님은 성도들이 어떠한 선택으로 어떠한 삶을 사는지 보여주려 하시는 것이다.(고전 1:27)
‘세상은 힘을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행복해하고 기뻐하지만 너희는 그러한 세상의 힘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으로 행복과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음으로 보이라’는 것이다. 그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를 구원하신 후 세상에서 데려가지 않으시고 세상으로 돌려보내시는 것이다.(요 17:15, 18)